나는 하나님을 경외하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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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생명을 보전하라
요셉은 형들을 3일 동안 가두었습니다. 그리고 다시 그들을 불러 새로운 제안을 합니다. 원래는 10명 중에 9명이 남아있고, 1명만 베냐민을 데려오는 것이었다면, 이제는 반대로 1명만 남아있고, 9명이 돌아가서 베냐민을 데리고 다시 오라는 것입니다. 왜 요셉은 마음을 바꾸었을까요? 18절과 19절 말씀을 함께 읽겠습니다. “사흘 만에 요셉이 그들에게 이르되 나는 하나님을 경외하노니 너희는 이같이 하여 생명을 보전하라 너희가 확실한 자들이면 너희 형제 중 한 사람만 그 옥에 갇히게 하고 너희는 곡식을 가지고 가서 너희 집 안의 굶주림을 구하고”
요셉을 애굽의 총리로 알고 있는 형들에게, 요셉 자신은 하나님을 경외한다고 밝힙니다. 애굽은 태양을 신으로 섬기며, 태양신이 왕의 수호자라고 세뇌를 시킵니다. 그 외에도 애굽에는 수많은 신들이 존재했습니다. 총리라면 어떨까요? 그 위상과 권위가 상상을 초월했습니다. 그런 그가 하나님을 경외한다고 고백합니다. 이것은 자신의 결정이 하나님의 뜻 가운데 있음을 내포하는 것입니다. 형들이 보기에는 애굽의 총리이지만, 그가 하나님을 경외한다는 것은 듣던 중 반가운 소리였을 것입니다.
그러나 요셉의 이런 고백은 형들의 환심을 사기 위한 빈말이 아니었습니다. 요셉은 정말 하나님을 경외함으로 그의 결정을 번복한 것입니다. 가족들의 생명을 보전하기 위해서 말입니다. 지금은 7년 풍년 이후에, 2년째 모든 지역에 흉년이 든 상황입니다. 그런 와중에 애굽에 저장된 곡식이 있다는 소문이 듣고, 겨우 음식을 구하기 위해 10명이나 되는 형제들이 찾아왔습니다. 그런데 이 인원이 전부가 아니지 않습니까? 집에는 이들을 기다리고 있는 가족이 족히 60명은 됩니다. 그런데 만약 1명이 곡식을 가지고 돌아간다 생각해보십시오. 누구 입에 붙이겠습니까? 요셉은 가족들의 생명을 보전하기 위해서, 그들을 굶주림에서 건져내기 위해서 되도록 많은 형들을 돌려보낸 것입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과 맺은 언약과도 관련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의 민족이 번성할 것이라고 약속하셨습니다. 그런데 만약 기근으로 인해 굶어 죽는다면 그것은 하나님의 언약이 효력이 없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처음과 나중 되시는 하나님은 이미 오늘을 예견하고 계셨습니다. 요셉이 형들에 의해 애굽으로 팔려 가게 되었지만 요셉을 향한 하나님의 계획은 이제 시작된 것이나 다름없었습니다. 일반적으로는 상상할 수 없는 스토리를 통해 요셉은 애굽의 총리 자리에 오릅니다. 그리고 3일 전 자기가 어릴적 꾸었던 꿈대로 형들이 그에게 절을 하는 것 아닙니까? 만감이 교차했을 것입니다. 3일이 지나는 동안 요셉 역시 깨닫지 않았을까요? 아브라함 때로부터 내려오는 믿음의 계보를 지키기 위해 자신이 하나님의 계획 가운데 쓰여지고 있다는 사실을 말입니다. 하나님께서 요셉을 통해 택한 족속들의 생명을 보전하신다면 1명이 아니라 9명을 보내는 것이 맞다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2.생명을 보전하는 과정
구원의 여망이 보이지 않는 찰나에 다시 하나님의 구원의 약진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런데 요셉이 9명을 돌려보내며, 막내 베냐민을 데려오라는 말에 형들은 달가워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아버지가 베냐민을 보내지 않을 것이 뻔하고, 설령 베냐민이 이곳에 오더라도 이후에 어떤 일이 벌어질지 장담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그런 염려도 있겠지만, 형들이 음식을 구하러 애굽 땅에 왔다가 정탐꾼으로 오해받으며 함정에 빠진 것만 같은 이 상황을 놓고 서로 주고받는 대화를 보십시오. 21절과 22절 말씀을 함께 읽겠습니다. “그들이 서로 말하되 우리가 아우의 일로 말미암아 범죄하였도다. 그가 우리에게 애걸할 때에 그 마음의 괴로움을 보고도 듣지 아니하였으므로 이 괴로움이 우리에게 임하도다. 르우벤이 그들에게 대답하여 이르되 내가 너희에게 그 아이에 대하여 죄를 짓지 말라고 하지 아니하였더냐 그래도 너희가 듣지 아니하였느니라 그러므로 그의 핏값을 치르게 되었도다 하니.”
요셉이 9명을 보내며 가족들의 생명을 보전하고 굶주림에서 구해내라고 했는데도, 형들은 지난날의 잘못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지금 벌어지고 있는 이 모든 일들이 동생 요셉을 해코지한 것에 대한 하나님의 징계라고 자신들의 범죄를 자복하는 것입니다. 자신들이 한 대로 돌려받고 있다고 자책하는 중입니다. 형들은 요셉이 죽었을 것이라 생각하고, 그 죄값을 톡톡히 치르고 있다고 믿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것이 바로 영적인 생명을 보전하는 과정입니다. 멀어진 하나님과의 관계를 회복하는 길입니다. 하나님께로 나아가는 첫걸음입니다. 우리의 추악함과 완고함으로는 거룩하신 하나님을 마주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죄를 들추십니다. 우리가 그 죄에서 돌이켜 하나님의 긍휼과 용서하심을 받도록 말입니다. 그리고 이웃과 형제자매들에게 잘못한 것들 역시 모른척하지 않으시고 우리의 양심을 찔러 화해의 길을 여십니다. 숨겼던 죄가 밝혀졌을 때, 부끄러움이 가장 먼저 우리에게 찾아옵니다. 그러나 그 부끄러움을 겪고, 죄값을 치루고 나면 우리에게 찾아오는 것을 무엇일까요? 자유와 평안입니다. 지금 형들은 그 자유와 평안을 향해 나아가고 있는 중입니다.
요셉은 형들이 서로 주고받는 대화를 다 들었습니다. 그 사이에 통역관을 두었기 때문에 형들은 자신들의 대화를 애굽 총리가 이해하지 못할거라 생각했겠지만 요셉은 다 알아들었습니다. 요셉은 예전 형들로부터 받았던 핍박과 멸시가 떠올랐을 것입니다. 형들의 대화처럼 마지막 구덩이에서 자신이 그렇게 애걸하던 그때가 떠오르지 않았을까요? 한편으로는 형들이 안쓰럽기도 했을 것입니다. 지금 저런 대화를 나누고 있는데, 내가 요셉이라는 것을 알면 미안해서 고개도 들지 못하겠지? 요셉은 그 자리를 벗어나 눈물을 닦고, 마음을 가라앉힌 후에 다시 돌아와 자신이 제안했던 일을 진행합니다.
그런데 누구를 결박합니까? 둘째 시므온입니다. 원래라면 대표성이 있는 첫째 르우벤을 잡아 둘텐데, 시므온을 잡아둔 이유는 형들의 대화 속에서 당시 르우벤이 자신을 지키려고 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라고 학자들은 이야기합니다. 설득력이 있어 보입니다. 어찌됐든 이제 나머지 9명은 곡식을 가지고, 가족들이 있는 가나안에 갔다가 시므온을 구하러 다시 오기 위해 베냐민을 데려와야 합니다. 그런데 돌아가는 길에 어떤 일이 일어납니까? 25절을 읽겠습니다. “명하여 곡물을 그 그릇에 채우게 하고 각 사람의 돈은 그 자루에 도로 넣게 하고 또 길 양식을 그들에게 주게 하니 그대로 행하였더라” 요셉이 신하들을 시켜 곡물과 함께 형들이 가져온 돈을 자루에 다시 넣도록 한 것입니다. 그리고 돌아가는 길에 먹을 양식도 챙겨주었습니다. 애굽 땅에서 가나안까지 걸어서 7일 정도의 시간이 걸린다고 하는데, 그 정도 양의 먹을 양식까지 챙겨준 것입니다.
3.죄의 쓴 뿌리
그러나 요셉의 호의에 어떻게 반응하는지 보십시오. 한 사람이 여관에서 나귀에게 먹이를 주려고 자루를 풀었는데 그 안에 있는 돈을 발견하고는 아연실색이 되어버린 것입니다. 그가 다른 형제들에게 이 사실을 알립니다. 그러자 형제들 역시 두려워합니다. 자신들은 분명 돈을 다 지불하고 왔는데 왜 이런 일들이 벌어지는지 하나님이 아니고서는 설명이 되지 않는 것입니다. 그래서 말합니다. ‘하나님이 어찌하여 이런 일을 우리에게 행하시는가?’
그리고 이제 가나안 땅에 도착해서 야곱에게 그동안 있었던 일들을 이야기합니다. 33절과 34절을 함께 읽겠습니다. “그 땅의 주인인 그 사람이 우리에게 이르되 내가 이같이 하여 너희가 확실한 자들임을 알리니 너희 형제 중의 하나를 내게 두고 양식을 가지고 가서 너희 집안의 굶주림을 구하고 너희 막내 아우를 내게로 데려오라 그러면 너희가 정탐꾼이 아니요 확실한 자들임을 내가 알고 너희 형제를 너희에게 돌리리니 너희가 이 나라에서 무역하리라 하더이다.” 어떻습니까? 아들들이 있는 그대로를 이야기했습니까? 아니면 아버지를 진정시키기 위해 없는 말을 만들어냈습니까? 무역이라는 말은 요셉이 꺼내지도 않았습니다. 그런데도 베냐민을 데려가기 위해서는 하는 수가 없었습니다. 이렇게라도 야곱을 안심시켜야만 모두가 살 수 있는 길이라 생각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야곱이 누구입니까? 남을 속이는 일이라면 왕년에 다 해보았습니다. 아들들의 말에 신뢰가 가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말한 후에, 9명이 각기 자루를 쏟아놓았더니 어떻게 되었습니까? 여관에서 발견했던 돈뭉치가 다른 자루들에도 다 들어있는 것입니다. 야곱은 그 돈뭉치를 보고 두려웠습니다. 어떤 학자는 이렇게 해석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형들이 요셉을 미디안 사람 상인들에게 팔았을 때, 은 20에 그를 넘겼습니다. 그리고 아버지에게 뭐라고 이야기했냐면 악한 짐승이 그를 잡아먹었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만일 야곱이 은20을 발견했다면 어딘가 석연히 않은 부분이 있다고 생각했을 텐데, 지금 또 비슷한 상황이 발생한 것입니다. 시므온은 돌아오지 않았고, 아들들의 자루에서 가져갔던 돈이 그대로 나온 것입니다.
야곱이 뭐라고 합니까? 베냐민을 데리고 갈 생각을 하지 말라고 합니다. 르우벤이 자기의 아들들의 생명을 담보로 걸고서 꼭 베냐민을 무사히 데리고 오겠다 말하지만 야곱은 듣지 않습니다. 요셉도 잃고, 시므온도 생사를 확인할 수 없는데, 라헬이 낳은 베냐민까지 잃는다면 살아갈 의미를 잃는 것이나 마찬가지이기에 허락할 수 없었던 것입니다.
4.결론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죄는 쉽게 잊혀지지 않습니다. 형들은 수십 년이 지났어도 요셉에게 한 일을 기억하고 있었습니다. 야곱은 아들들의 자루에서 나온 돈뭉치를 보며 두려움에 사로잡혔습니다. 죄의 쓴 뿌리는 그렇게 깊이 박혀 있어서 세월이 지나도 우리를 놓아주지 않습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에서 우리는 놀라운 사실을 하나 발견합니다. 요셉은 형들을 만났을 때 복수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생명을 보전하라고 말했습니다. 그것은 요셉이 선한 사람이어서가 아닙니다. 요셉 스스로 고백했습니다. "나는 하나님을 경외하노니."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은 자신의 손으로 심판하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심판도 하시고, 회복도 하시고, 구원도 하신다는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하나님께로 가까이 가려 할수록 죄가 잡아끄는 힘이 더 커집니다. 더 깊은 절망과 수렁에 빠질 것만 같은 공포심이 찾아옵니다. 그런데 바로 그 자리에서, 그 절망의 한복판에서 하나님은 일하고 계셨습니다. 요셉이 구덩이에 던져졌을 때도, 형들이 죄책감으로 고통받을 때도, 야곱이 두려움에 떨 때도 — 하나님은 단 한 순간도 언약을 잊지 않으셨습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하신 일이 바로 그것입니다. 우리 힘으로는 결코 뽑아낼 수 없는 죄의 쓴 뿌리를, 그분이 친히 담당하셨습니다. 수치와 저주를 몸소 받으심으로 우리에게 자유와 평안을 주셨습니다. 이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요셉의 고백입니다.
"나는 하나님을 경외하노니."
이 고백이 우리의 결정을 바꾸고, 우리의 관계를 회복시키고, 우리의 생명을 보전합니다. 죄의 두려움에서 벗어나 하나님의 경외함으로 살아가는 여러분 모두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