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연일까? 창조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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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주의

창세기 1:1–5 NKRV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땅이 혼돈하고 공허하며 흑암이 깊음 위에 있고 하나님의 영은 수면 위에 운행하시니라 하나님이 이르시되 빛이 있으라 하시니 빛이 있었고 빛이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았더라 하나님이 빛과 어둠을 나누사 하나님이 빛을 낮이라 부르시고 어둠을 밤이라 부르시니라 저녁이 되고 아침이 되니 이는 첫째 날이니라
시편 14:1 NKRV
어리석은 자는 그의 마음에 이르기를 하나님이 없다 하는도다 그들은 부패하고 그 행실이 가증하니 선을 행하는 자가 없도다
사랑합니다! 꿈사땅 예배에 오신 여러분을 진심으로 환영하고 축복합니다. 여러분, 혹시 같은 영상을 친구랑 같이 봤는데 서로 전혀 다르게 해석했던 적이 있는가? [사진] 또는 같은 사건을 보고도 친구는 “운이 좋았네.”라고 말하는데, 다른 친구는 “하나님이 도와주셨네.”라고 말하는 것을 들어본 적이 있는가? 같은 일을 봤는데 왜 이렇게 생각이 다를까? 이유는 간단하다. 사람은 보는 대로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믿는 대로 보기 때문이다. 우리는 모두 세상을 바라보는 ‘안경’을 하나씩 쓰고 살아간다. 그 안경을 ‘세계관’이라고 한다. 빨간색 안경을 쓰면 세상이 빨갛게 보이고, 파란색 안경을 쓰면 세상이 파랗게 보인다. 안경이 바뀌면 세상이 달라 보인다. 세계관도 똑같다. 무엇을 믿느냐에 따라 세상을 해석하는 방식이 완전히 달라진다. 오늘날 학교와 유튜브, 인스타그램, 영화, 드라마에서 가장 많이 들을 수 있는 세계관 가운데 하나가 있다. 바로 ‘자연주의’이다. 여러분, 질문 하나 해보겠다. 휴대폰이 우연히 만들어질 수 있을까? 자동차는? LEGO 하나도 누가 만들어야 만들어진다. 그런데 어떤 사람들은 이 세상은 만든 사람이 없다고 말한다. 우연히 생겼다고 말한다.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는가? 그런데 이상하지 않은가? 휴대폰보다 훨씬 복잡한 인간, 자동차보다 훨씬 정교한 우주를 보고는 “이건 우연히 생겼어.” 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다. 이것이 바로 오늘 우리가 살펴볼 ‘자연주의’이다. 자연주의는 이렇게 말한다. “하나님이 없어도 세상은 설명할 수 있어.”, “우주는 그냥 생겼어.”, “인간도 진화한 결과야.”, “기적은 없어.”, “눈에 보이는 것만 믿으면 돼.” 그런데 정말 그럴까? 정말 하나님 없이 세상을 설명할 수 있을까? 성경은 세상의 시작을 어떻게 말하고 있을까? 창세기 1장 1절은 성경의 첫 문장부터 자연주의와 정반대의 선언을 한다.
창세기 1:1 NKRV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창세기는 성경의 첫 책이며, 성경은 아주 놀라운 한 문장으로 시작한다. 여러분, 성경을 읽어 보면 한 가지 특별한 점이 있다. 성경은 하나님이 왜 존재하시는지, 하나님이 정말 계신다는 증거가 무엇인지를 길게 설명하지 않는다. 처음부터 너무나 당연한 사실처럼 “하나님이 계신다.”라고 선포하며 시작한다. 왜 그럴까? 성경은 하나님이 인간이 만들어 낸 존재가 아니라, 태초부터 영원히 계셨던 분이라고 말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어떤 사람이 하나님을 믿지 않는다고 해서 하나님이 없어지는 것이 아니며, 반대로 하나님을 믿는다고 해서 하나님이 생겨나는 것도 아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생각이나 믿음과 상관없이 스스로 존재하시는 분이시다. 또 하나 주목해야 할 것은 창세기 1장 1절의 주어가 ‘하나님’이라는 사실이다. 성경의 첫 문장은 “우주가 생겨났다.”가 아니라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셨다.”이다. 이것은 매우 중요한 차이를 보여 준다. 오늘날 어떤 사람들은 우주가 우연히 생겨났다고 말한다. 하지만 성경은 세상이 저절로 생긴 것이 아니라 창조주 하나님께서 의도와 목적을 가지고 만드셨다고 선포한다. 세상에는 엄연히 만드신 분이 계시며, 그분이 바로 하나님이시다.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하늘과 땅’은 단순히 하늘과 땅만을 가리키는 말이 아니라, 온 세상과 모든 만물을 의미하는 표현이다. 우리가 살아가는 이 세상, 학교와 가정, 친구들과 함께 살아가는 모든 공간은 하나님께서 만드신 창조 세계이다. 또한 이 땅은 앞으로 성경에서 펼쳐질 하나님의 구원 역사가 이루어지는 무대가 된다. 오늘 우리가 읽은 본문은 창조의 첫째 날을 기록하고 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처음 땅을 만드셨을 때의 모습은 지금 우리가 보는 세상과는 달랐다. 성경은 그때의 상태를 이렇게 설명한다.
창세기 1:2 NKRV
땅이 혼돈하고 공허하며 흑암이 깊음 위에 있고 하나님의 영은 수면 위에 운행하시니라
하나님께서 하늘과 땅을 창조하셨지만, 처음부터 지금 우리가 보는 모습과 같았던 것은 아니었다. 성경은 당시의 땅을 “혼돈하고 공허했다.”고 설명한다. 여기서 ‘혼돈하고 공허하다’는 말은 세상이 엉망이거나 하나님께서 창조를 실패하셨다는 뜻이 아니다. 아직 하나님께서 창조를 완성하시기 전의 상태를 말한다. 마치 집을 짓기 전에 땅을 다지고 기초를 세우는 과정이 있듯이, 하나님께서도 창조를 단계적으로 이루어 가셨다는 것이다. 또한 이 표현은 사람이 살아갈 수 있도록 준비되지 않은 상태를 의미한다. 아직 식물도 없고, 동물도 없고, 사람도 없으며, 생명이 살아갈 수 있는 환경이 갖추어지지 않은 상태였다. 하나님께서는 이 땅을 조금씩 질서 있게 변화시키시며 사람이 살아갈 수 있는 아름다운 세상으로 만들어 가신다. 이어 성경은 “흑암이 깊음 위에 있고”라고 말한다. ‘흑암’은 말 그대로 어둠을 뜻하며, '깊음'은 끝을 알 수 없는 깊은 물을 가리킨다. 당시의 세상은 빛이 없는 어둠 가운데 있었고, 깊은 물로 덮여 있었다. 하지만 여기서 중요한 장면이 하나 등장한다. “하나님의 영은 수면 위에 운행하시니라.” ‘운행하다’라는 말은 새가 자기 새끼를 보호하기 위해 하늘을 맴돌며 날갯짓하는 모습을 떠올리게 하는 표현이다. 다시 말해, 하나님의 영께서는 아무 일도 하지 않고 계신 것이 아니라, 창조를 시작하시기 위해 그곳에 함께 계셨다. 창조는 하나님 아버지뿐 아니라 하나님의 영께서도 함께하시는 하나님의 사역이었다. 그리고 3절부터 하나님의 창조 사역이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하나님께서는 가장 먼저 말씀으로 빛을 창조하신다. 아직 어둠뿐인 세상에 하나님의 말씀이 선포되자, 세상에는 처음으로 빛이 비추기 시작했다.
창세기 1:3 NKRV
하나님이 이르시되 빛이 있으라 하시니 빛이 있었고
하나님은 빛을 만드신 후에 빛을 어둠과 나누신다. 그리고 빛을 낮이라고 부르시며 어둠을 밤이라고 부르신다. 어둠은 하나님이 땅을 만드실 때에 이미 존재해 있었다. 낮과 밤이 있음으로 해서 날이 존재한다. 이처럼 창조는 기독교 신앙의 시작이다. 여러분이 고백했던 사도신경은 “전능하사 천지를 만드신 하나님 아버지를 내가 믿사오며”로 시작한다. 모든 성도들은 창조주 하나님에 대한 신앙을 고백한다. 더 나아가 창조는 이 땅 위에서 펼쳐질 역사의 시작이다. 앞으로 이 땅위에서 펼쳐질 하나님의 모든 구원 행동의 무대이기도 한다. 창조에는 하나님의 지혜가 나타난다. 하나님은 이 땅을 인간이 살기에 적당한장소로 만들어 가신다. 또한 각 식물을 종류대로, 각 어류와 조류 그리고 짐승을 종류대로 만드신다. 잠언은 하나님이 지혜로 창조하셨다고 증언한다. 잠 3:19-20
잠언 3:19–20 NKRV
여호와께서는 지혜로 땅에 터를 놓으셨으며 명철로 하늘을 견고히 세우셨고 그의 지식으로 깊은 바다를 갈라지게 하셨으며 공중에서 이슬이 내리게 하셨느니라
하나님께서는 넷째 날에 하늘의 발광체들을 만드셨다. 해와 달, 그리고 별들을 만드셔서 낮과 밤을 나누게 하시고, 계절과 날과 해를 구분하도록 하셨다. 우리가 매일 해가 뜨고 지는 것, 계절이 바뀌는 것, 한 해가 지나가는 것을 너무 당연하게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성경은 이 모든 것이 우연히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정하신 질서 안에서 이루어진다고 말한다. 하나님께서는 말씀으로 해와 달과 별을 만드셨을 뿐만 아니라, 그것들이 일정한 질서를 따라 움직이도록 하셨다. 그래서 지구는 정해진 궤도를 따라 움직이고, 계절은 반복되며, 시간은 계속해서 흘러간다. 우리가 매년 봄, 여름, 가을, 겨울을 맞이하는 것도 하나님께서 세우신 창조의 질서 덕분이다. 이처럼 하나님께서 만드신 세상은 우연이나 혼란으로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세우신 질서와 계획 가운데 운행되고 있다. 성경은 우리가 살아가는 이 우주가 창조주 하나님의 말씀으로 시작되었을 뿐 아니라, 지금도 하나님의 다스리심 아래 질서 있게 유지되고 있음을 보여 준다.
하나님은 세상이 만들어지기 전부터 이미 존재하셨던 분이시다. 하나님은 어느 날 갑자기 생겨나신 분이 아니라, 시작도 끝도 없이 영원부터 영원까지 살아 계시는 분이시다. 하늘과 땅이 존재하기 전에도 하나님은 계셨고, 온 세상을 창조하실 계획을 가지고 계셨다. 성경에서 하나님은 스스로 자신을 소개하시기도 하신다. 이사야 48장 12-13절
이사야 48:12–13 NKRV
야곱아 내가 부른 이스라엘아 내게 들으라 나는 그니 나는 처음이요 또 나는 마지막이라 과연 내 손이 땅의 기초를 정하였고 내 오른손이 하늘을 폈나니 내가 그들을 부르면 그것들이 일제히 서느니라
여기서 하나님은 자신을 "나는 처음이요, 나는 마지막이라."라고 말씀하신다. 이 말씀은 하나님께서 모든 것의 시작이시며, 모든 것의 마지막도 되시는 분이라는 뜻이다. 우리가 보는 세상은 하나님으로부터 시작되었고, 역사의 마지막도 하나님께서 이루어 가신다. 하나님은 세상을 만들어 놓으신 후 멀리 떠나 계시는 분이 아니라, 지금도 세상과 역사를 다스리시며 계획하신 뜻을 이루어 가시는 분이시다. 이사야 41장 4절
이사야 41:4 NKRV
이 일을 누가 행하였느냐 누가 이루었느냐 누가 처음부터 만대를 불러내었느냐 나 여호와라 처음에도 나요 나중 있을 자에게도 내가 곧 그니라
하나님은 역사를 주관하시는 분이라고 말씀하신다. 세상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을 하나님께서 하나하나 직접 일으키신다는 뜻은 아니지만, 역사의 흐름 전체는 하나님의 주권 아래 있으며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계획을 이루어 가신다. 하나님께서는 하늘과 땅을 창조하실 때부터 앞으로 이루어질 모든 역사를 알고 계셨고, 그 계획 가운데 세상을 다스려 오셨다. 그래서 성경은 세상이 우연히 흘러가는 것이 아니라, 창조주 하나님의 뜻과 계획 속에서 움직이고 있음을 우리에게 보여 준다.
시편 14:1 NKRV
어리석은 자는 그의 마음에 이르기를 하나님이 없다 하는도다 그들은 부패하고 그 행실이 가증하니 선을 행하는 자가 없도다
시편 14편은 '어리석은 자'에 대한 이야기로 시작한다. 여기서 말하는 어리석은 자는 단순히 공부를 못하거나 머리가 나쁜 사람을 뜻하지 않는다. 성경이 말하는 어리석음은 하나님을 인정하지 않고 살아가는 삶의 태도를 의미한다. 시편 기자가 사용한 '어리석은 자'라는 히브리어는 '나발(לְדָ֫וִ֥ד)'이라는 단어인데, 단순히 실수를 하는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을 무시하고 자신의 생각대로 살아가는 사람을 가리킨다. 그래서 성경은 이런 사람을 지혜로운 사람이 아니라 어리석은 사람이라고 말한다. 그렇다면 시편 기자가 말하는 “하나님이 없다.” 말은 정말 하나님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주장하는 사람만을 의미할까? 꼭 그런 것만은 아니다. 하나님이 계신다는 사실을 입으로는 인정하면서도 삶에서는 하나님 없이 살아가는 사람도 여기에 포함될 수 있다. 다시 말해, 하나님을 삶의 주인으로 인정하지 않고 자신의 생각과 기준만 따라 살아가는 모습도 하나님을 부인하는 삶이라고 볼 수 있다. 성경은 잠언 1장 7절에서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지식의 근본이다.”라고 말씀한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이 참된 지혜의 출발점이라면, 하나님을 거부하거나 무시하는 것은 어리석음의 출발점이 된다. 이것은 오늘 우리가 살펴보는 자연주의와도 연결된다. 자연주의는 하나님 없이도 세상과 인간을 설명할 수 있다고 말한다. 하지만 시편 14편은 하나님을 삶과 세상에서 제외하는 것이 참된 지혜가 아니라, 오히려 가장 근본적인 어리석음이라고 말하고 있다. 그래서 성경은 세상을 이해하는 출발점이 자연이나 인간이 아니라, 창조주 하나님이어야 함을 우리에게 가르쳐 준다.
앞에서 “어리석은 자는 그의 마음에 이르기를 하나님이 없다 하는도다.”라는 말씀을 살펴보았다. 그런데 여기서 한 가지 더 생각해 볼 것이 있다. 시편 14편이 말하는 “하나님이 없다.”는 것은 단순히 “하나님은 존재하지 않는다.”라고 주장하는 사람만을 가리키는 말이 아니다. 성경은 오히려 실천적인 무신론을 더 강조한다. 다시 말해, 하나님이 계신다고 말은 하지만 실제 삶에서는 하나님이 없는 것처럼 살아가는 태도를 말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예배에서는 하나님을 믿는다고 고백하지만 학교에서는 하나님의 말씀보다 친구들의 시선이 더 중요하고, 중요한 선택을 할 때도 하나님께 기도하기보다 내 생각과 감정만 따라 결정한다면 어떨까? 입으로는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지만 삶에서는 하나님을 빼고 살아가는 모습이 될 수 있다. 성경은 이런 사람을 어리석은 자라고 부른다. 여기서 어리석다는 것은 공부를 못하거나 머리가 나쁘다는 뜻이 아니다. 잘못된 기준을 가지고 인생을 살아가는 사람을 의미한다. 하나님을 삶의 중심에서 빼고 살아가는 것이 가장 큰 어리석음이라는 것이다. 반대로 성경은 지각 있는 사람, 즉 지혜로운 사람은 하나님을 찾는 사람이라고 말한다. 하나님을 찾는다는 것은 단순히 교회에 오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삶의 중요한 순간마다 하나님을 먼저 생각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기준으로 선택하며, 무엇보다 하나님을 가장 신뢰하는 삶을 말한다. 이것은 오늘 우리가 배우는 자연주의와도 연결된다. 자연주의는 하나님 없이도 세상을 이해할 수 있고, 하나님 없이도 잘 살아갈 수 있다고 말한다. 하지만 성경은 하나님을 삶에서 제외할수록 참된 지혜에서 멀어지고, 결국 하나님의 뜻보다 자신의 기준을 따라 살아가게 된다고 가르친다. 그래서 시편 14편은 단순히 믿지 않는 사람들만 향한 말씀이 아니라, ‘나는 정말 하나님을 삶의 중심에 두고 살아가고 있는가?’를 모든 사람에게 질문하고 있는 말씀이다.
여러분, 오늘 우리는 자연주의라는 세계관에 대해 함께 살펴보았다. 자연주의는 “하나님 없이도 세상은 설명할 수 있다.”, “우주는 우연히 생겨났다.”, “인간도 자연의 한 부분일 뿐이다.”라고 말한다. 하지만 성경은 처음부터 전혀 다른 이야기를 들려준다. 성경의 첫 문장은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이다. 성경은 모든 것의 시작이 자연이 아니라 하나님이라고 선포한다. 하나님은 세상을 우연히 만들어진 것으로 내버려 두신 분이 아니라, 말씀으로 질서를 세우시고 지금도 온 세상과 우리의 삶을 다스리시는 창조주이시다. 또한 시편 14편은 “어리석은 자는 그의 마음에 이르기를 하나님이 없다 하는도다.”라고 말씀한다. 여기서 말하는 어리석은 자는 단지 하나님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말하는 사람이 아니라, 삶에서 하나님을 빼고 살아가는 사람을 가리킨다. 입으로는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도, 선택과 행동에서는 하나님 없이 살아간다면 우리도 모르게 자연주의적인 삶을 살아갈 수 있다. 여러분은 학교에서, 유튜브와 SNS에서, 영화와 드라마에서 자연주의적인 생각을 자주 접하게 될 것이다. “운이 좋았을 뿐이야.”, “다 우연이야.”, “네가 하고 싶은 대로 살아.”라는 말들은 하나님 없이 세상을 바라보도록 우리를 이끌 수 있다. 그래서 우리는 세상의 생각을 무조건 받아들이는 사람이 아니라, 성경의 기준으로 분별하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중요한 것은 세상을 보는 출발점이다. 자연주의는 자연과 인간을 출발점으로 삼지만, 기독교 세계관은 하나님을 출발점으로 삼는다. 출발점이 다르면 삶의 목적도, 가치관도, 선택도 달라질 수밖에 없다. 여러분은 어떤 세계관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있는가? 세상의 기준이 여러분의 생각을 결정하고 있는가, 아니면 하나님의 말씀이 여러분의 기준이 되고 있는가? 창조주 하나님을 믿는다는 것은 단지 “하나님이 계십니다.”라고 고백하는 것으로 끝나지 않는다. 학교에서도, 가정에서도, 친구들과 함께 있을 때도 하나님이 내 삶의 주인이심을 인정하며 살아가는 것이 진정한 믿음이다. 이번 한 주도 세상이 말하는 기준보다 창조주 하나님을 먼저 바라보고, 모든 선택과 결정 속에서 “예수님이라면 어떻게 하실까?”를 먼저 생각하며 살아가는 꿈사땅 친구들이 되기를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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