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도의 공동생활_교회봉사
Notes
Transcript
제시해주신 소스 자료인 「성도의 공동생활: 교회 봉사」의 내용을 바탕으로, 1시간 분량의 강의 또는 소그룹 공부를 위한 정리안을 작성해 드립니다. 이 내용은 그리스도인의 공동체적 삶의 본질과 교회 봉사의 의미를 깊이 있게 다루고 있습니다.
[강의안] 성도의 공동생활과 교회 봉사: 사랑과 소명의 연합
[강의안] 성도의 공동생활과 교회 봉사: 사랑과 소명의 연합
권면의 말씀: 로마서 12장 10-11절 "형제를 사랑하여 서로 우애하고 존경하기를 서로 먼저 하며 부지런하여 게으르지 말고 열심을 품고 주를 섬기라"
제1대지: 그리스도인 삶의 필연적 현장, ‘공동체’ (10분)
제1대지: 그리스도인 삶의 필연적 현장, ‘공동체’ (10분)
1. 구원의 공동체적 성격
구원은 개인적인 사건으로 시작되나, 구원받은 후의 삶은 그리스도와의 연합 속에서 이루어지는 입니다.공동체적 삶
모든 지체와 한 몸을 이루어 살아가는 공동체적 삶은 그리스도인에게 있어 선택이 아닌 **‘숙명’**과도 같습니다.
2. 교회의 비밀을 아는 지식
자신이 그리스도 몸의 일부임을 알지 못하는 사람은 그리스도와 자기 자신에 대해서도 진정으로 알지 못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하늘나라의 모형으로 이 땅에 를 주셨으며, 우리는 교회 공동체 안에서 연합을 배우며 하늘나라에 합당한 사람으로 변화되어 갑니다.가정과 교회
제2대지: 교회가 이 땅에 존재하는 세 가지 이유 (15분)
제2대지: 교회가 이 땅에 존재하는 세 가지 이유 (15분)
1. 하나님을 위하여: 하나님의 영광
교회는 인간의 필요를 채우기 이전에 존재합니다.창조주 하나님의 뜻을 성취하고 그분의 영광을 드러내기 위해
삼위 하나님 안에 있는 사랑과 지혜가 교회를 통해 이 세상에 실현되도록 하는 것이 교회의 제1 비전입니다.
2. 세상을 위하여: 진리의 빛과 사랑의 전달
세상은 스스로의 힘으로 죄와 타락에서 회복될 수 없기에, 외부로부터 오는 을 필요로 합니다.진리의 빛(지식)과 사랑
교회는 이 빛과 사랑을 위탁받은 기관으로서, 세상 사람들에게 참된 행복의 길이 무엇인지 알려주어야 할 사명이 있습니다.
물질적 풍요 속에서도 영적 공허를 느끼는 현대인들에게 교회가 줄 수 있는 최고의 섬김은 그 자체입니다.풍성한 진리의 빛과 사랑
3. 교회 자신을 위하여: 지체의 온전함과 돌봄
이미 믿는 성도들이 은혜에서 미끄러지지 않도록 끊임없이 돌보고 교육해야 합니다.
교회 안의 비회심자들이 그리스도의 참사랑을 깨닫고 돌아올 수 있도록 혼신의 힘을 다해 섬겨야 합니다.
제3대지: 교회 봉사의 본질과 ‘까리따스(Caritas)’의 사랑 (20분)
제3대지: 교회 봉사의 본질과 ‘까리따스(Caritas)’의 사랑 (20분)
1. 은혜와 소명의 관계
하나님이 우리에게 은혜를 주신 이유는 반드시 **소명(심부름)**과 관련이 있습니다.
은혜를 유지하고 풍성히 누리기 위해서는 하나님이 부르신 소명의 자리로 돌아가 마음을 다해 섬겨야 합니다.
2. ‘까리따스’ 사랑에 기반한 섬김
참된 섬김은 인간적인 열심이 아니라, 하나님이 주시는 **‘까리따스(지순한 사랑)’**로부터 나옵니다.
이 사랑은 지체들 안에서 을 보게 하며, 상대의 허물에도 불구하고 그를 포기하지 않게 합니다.하나님의 형상의 아름다움
하나님 때문에 하는 섬김은 사람의 반응에 좌우되지 않으며, 어떤 난관 속에서도 인내하게 합니다.
3. 목적의 합치와 희생의 욕구
주님을 깊이 사랑하면 자신의 개인적 목표와 주님의 목표가 하나로 합쳐집니다.
이 사랑 안에는 사랑하는 대상을 위해 기꺼이 자신을 드리고 싶어 하는 가 내포되어 있습니다.희생의 욕구
제4대지: 살아있는 신앙을 위한 자기 점검 (10분)
제4대지: 살아있는 신앙을 위한 자기 점검 (10분)
사역과 봉사에 앞서 우리는 다음의 세 가지 질문으로 자신의 영적 상태를 점검해야 합니다.
"요새 어떤 진리가 당신의 마음을 뜨겁게 하고 사로잡고 있습니까?".진리의 현재성:
"기도할 때마다 가슴이 미어지게 만드는 구체적인 기도의 제목이 있습니까?".기도의 애통함:
"자신을 다 바쳐 충성하고 싶은 하나님의 일이 당신에게 있습니까?".사명의 헌신:
결론 및 적용 (5분)
결론 및 적용 (5분)
우리가 오늘 누리는 예배와 은혜의 뒤편에는 이름 모를 수많은 성도의 눈물 어린 희생과 헌신이 있었습니다. 이제는 우리가 그 사랑의 빚을 갚을 차례입니다. 교회의 ‘무임승차자’가 되어 영적 실증에 빠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맡겨주신 작은 자리에서부터 자발적이고 인격적인 헌신을 시작하십시오.
기도 제목: "하나님, 나 같은 사람도 필요해서 부르셨으니, 이 생명을 주님의 몸 된 교회를 위해 밀알처럼 썩어지게 하시고, 주님의 사랑으로 채워 주셔서 기쁨으로 사명의 길을 걷게 하소서".
본 정리안은 제공된 소스 자료의 내용을 충실히 반영하여 작성되었습니다.
제시해주신 소스 자료인 「성도의 공동생활: 교회 봉사」의 내용을 바탕으로, 소그룹 성경 공부에서 활용할 수 있는 활동지를 만들어 드립니다. 각 문항은 소스의 핵심 내용을 깊이 있게 묵상하고 나눌 수 있도록 구성되었습니다.
[소그룹 활동지] 성도의 공동생활과 교회 봉사
[소그룹 활동지] 성도의 공동생활과 교회 봉사
주제 말씀: "형제를 사랑하여 서로 우애하고 존경하기를 서로 먼저 하며 부지런하여 게으르지 말고 열심을 품고 주를 섬기라" (로마서 12:10-11)
1. 마음 열기 (Ice Breaking)
1. 마음 열기 (Ice Breaking)
내가 처음 교회 공동체 안에서 '나도 이 몸의 일부구나'라고 느꼈던 순간이나, 누군가의 보이지 않는 섬김을 통해 은혜를 경험했던 기억이 있다면 나누어 봅시다.
2. 말씀 깊이 읽기 (Observation & Understanding)
2. 말씀 깊이 읽기 (Observation & Understanding)
질문 1: 그리스도인에게 공동체 생활은 왜 '숙명'입니까?
구원은 개인적인 사건이지만, 구원받은 후의 삶은 누구와의 연합 속에서 이루어진다고 설명하나요?
을 알지 못하는 것이 왜 자기 자신과 그리스도에 대해 알지 못하는 것과 같은지 소스의 내용을 바탕으로 이야기해 보세요.교회의 비밀
질문 2: 하나님이 이 땅에 교회를 두신 세 가지 이유는 무엇입니까?
교회의 가장 중요한 비전과 존재 목적은 무엇입니까?하나님을 위하여:
세상이 교회에 기대하는, 세상에는 없는 '그 무엇'은 구체적으로 무엇입니까?세상을 위하여:
이미 믿는 성도들과 아직 회심하지 못한 지체들을 위해 교회는 어떤 노력을 기울여야 합니까?교회 자신을 위하여:
3. 삶으로 응답하기 (Reflection & Application)
3. 삶으로 응답하기 (Reflection & Application)
질문 3: '은혜'와 '소명(섬김)'의 관계는 무엇입니까?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를 주시는 이유는 무엇과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습니까?
우리가 받은 은혜를 유지하고 풍성히 누리기 위해 돌아가야 할 '자리'는 어디인지 나누어 봅시다.
질문 4: 참된 섬김의 동력, '까리따스(Caritas)'의 사랑
인간적인 열심은 한계가 있지만, **하나님이 주시는 지순한 사랑(까리따스)**은 우리가 지체들을 바라볼 때 무엇을 발견하게 하나요?
사람의 반응이나 환경에 흔들리지 않고 끝까지 사명을 감당하게 하는 힘은 어디서 나오는지 소스의 내용을 참고해 나누어 보세요.
4. 영적 상태 점검 (Self-Check)
4. 영적 상태 점검 (Self-Check)
다음 세 가지 질문에 대해 정직하게 자신의 상태를 점검하고, 소그룹 지체들과 한 가지 이상을 나누어 봅시다.
최근 내 마음을 뜨겁게 하고 나를 사로잡고 있는 는 무엇입니까?진리:하나님의 진리
기도할 때마다 내 가슴을 미어지게 만드는 구체적인 이 있습니까?기도:기도 제목
나를 다 바쳐서라도 충성하고 싶은, 주님이 맡겨주신 **나의 일(사명)**은 무엇입니까?사명:
5. 합심 기도 (Closing Prayer)
5. 합심 기도 (Closing Prayer)
함께 기도할 제목:
교회의 '무임승차자'가 아니라, 주님의 몸을 세우는 '지체'로 살아가게 하소서.
지체들의 허물보다 그들 안에 있는 하나님의 형상의 아름다움을 보게 하소서.
주님이 주신 은혜에 합당한 소명의 자리에서 기쁨으로 섬기게 하소서.
이 활동지는 「성도의 공동생활_교회봉사.pdf」의 내용을 기반으로 제작되었습니다.
10 성도의 공동생활 공동생활과 교회봉사 - YouTube
https://www.youtube.com/watch?v=qFWILcaaEqA
Transcript:
(00:00) 하나님의 말씀은 로마서 12장 하나님의 말씀은 로마서 12장 10절에서 11절입니다. 입니다. 같이 우리 읽겠습니다. 시작. 형제를 사랑하여 서로하고 존경하기를 먼저 하며 부지런하여 게으르지 말고 열심을 품고 주를 섬기라. 아멘. 형제를 사랑하여 서로 우회하고 존경하기를 서로 먼저 하며 부지런하여 으르지 말고 열심을 품고 주를 섬기라. 아멘.
기도하겠습니다. 고마우신 주님. (01:06) 오늘도 예배가 시작되었고 이제 주님이 우리에게 말씀하실 자례입니다. 우리에게 은혜를 내려 주셔서 말씀해 주셔서 우리로 이 말씀 속에 담겨진 주님의 마음을 함께 받게 하시고 그래서 저희들이 주님의 그 말씀으로 아버지 앞에 나아가도록 도와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성도의 공동생활 열번째 시간입니다. 오늘은 공동생활과 교회 봉사에 대해서 말씀을 드리려고 합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이 본문은 로마서의 후반부에 들어 있는 본문입니다. 사도는 로마서를 쓰면서 맨 앞에 내가 너희에게 복음을 전하기를 원한 원원했노라고 고백을 합니다. 이미 하나님을 믿고 구원받은 사람들이었지만
(02:10) 사도는 복음을 전하기를 원했고 여기에서이 복음이라고 하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해 죽으셨다는 단순한 사실이 아니라 그 복음의 뿌리를 둔 복음의 교리를 가르키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로마서 전편에서 기독교 사상에 뼈게 되는 중요한 교리들을 진술해 가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이제 후반부에 오면서 12장에서 그러므로 너희 너희의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산제사로 드리라고 권면합니다. 그러면서 구체적인 삶이 하나님 앞에 어떻게 드려야 돼야 될지를 설명하는 가운데 공동체의 문맥을 끌고 들어오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리스도의 몸에 각 지체된 사람들이 다시 공동체를 이루면서 살아가게 되는데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진리를 깨달은 신자의 삶의 현실이라고 하는 것이죠.
(03:15) 그 삶의 현실 속에서 신자는 전심으로 하나님을 사랑하고 그리고 이제 교회를 이루게 되는데 함께 교회를 이루고 살아가는 그 공동생활 속에서 서로 사랑하고 위하며 존경하기를 서로 먼저 하고 그리고 게으르지 말고 열심을 품고 주를 섬기라고 권면하고 있는 이것이 오늘 우리가 읽은 본문이 놓인 그 문맥입니다.
사도는 우리에게 너희들은 서로 사랑하고 우애하며 존경하기를 서로 먼저 하고 열심을 품고 주를 섬기라고 말합니다. 형제가 서로 사랑하고 우애하고 존경하는 것 따로 있고 주를 섬기는 것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그렇게 형제를 사랑하고 위하며 존경하는 그 자체가 하나님의 일이고 교회는 그렇게
(04:20) 성도들을 섬기는 가운데서 하나님을 제대로 섬길 수 있게 된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것이죠. 오늘날 우리는 교회 생활을 매우 자기 중심적으로 편의주의적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래서 아 자신에게 필요한 교회를 찾아가고 그 교회가 자신에게 만족을 줄 때까지 혹은 자신이 스스로 거기에 만족한다고 생각할 때까지 그 교회의 몸담고 더 이상 얻을 것이 없다고 생각되거나 더 이상 그 교회를 통해서 자신이 취할 것이 없다고 생각하면 미련없이 그 교회를 떠나 또 다른 교회로 옮기고 이렇게 하면서 살아가는데 이론적으로 본다면 그렇게 이렇게 더 좋은 교회를 찾아가고 더 좋은 교회를 찾아가고 그리고 이제 그 교회에서 유익을 얻을 수 있는 것이 끝나고 나면 또 다른 유익을 줄 수 있는 교회를 찾아가고 찾아가고 하는 그러한 생활을 통해서 이 사람이 영적으로 매우 건강하고 아름다운 삶을
(05:25) 누리게 될 것이라고 기대하게 되는데 사실은 정 반대이죠. 그것이 바로 복음과 교회의 비밀인 것입니다. 여러분들이 많은 지식을 가지고 있어서 하나님의 말씀의 이치를 히고 있다고 하더라도 교회의 비밀을 알지 못하면 여러분들은 진정으로 그 하나님의 말씀을 아는 사람들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자신이 그리스도의 몸의 일부이고 자신이 교회의 일부이기 때문에 그 자신이 교회에 대해서 알지 못한다고 하는 것은 곧 자기 자신과 그리스도에 대해서 알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무지 가운데 스스로 있다고 누리는 생명이라고 하는 것은 정말 참 생명일 수가 없죠. 모든 아름다운 생명의 역사는 지식을 통해서 일어나는 것이죠.
(06:22) 그것들을 소유할 때에 비로소 우리들이 참 생명을 누리며 살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이처럼 그리스도인의 삶은 구원받은 첫 순간부터 공동체의 삶입니다. 구원받은 것이 개인적이긴 하지만 그러나 구원받은 후에 그는 공동체적으로 그리스도 예수와의 연합 속에서 살아갑니다. 다른 모든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선택된 지체들과 함께 한 몸을 이루면서 살아가기 때문에 그에게 있어서 공동체의 삶은 가의 숙명적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구원받은 것이 바로 그 잃어버린 공동체를 찾은 것이라면 그 공동체 안에서 그는 영적으로 성숙해 가고 그리고 성숙해 간 그는 그 공동체 안에서 다른 공동체의 지체들과 함께 구원을 완성하고 영화의 상태에 들어가게 됩니다.
(07:14) 여러분들이 그리워하고 꿈꾸는 하늘나라도 공동체의 나라입니다. 거기에서 우리들은 혼자 하나님을 찬송하고 믿는 것이 아니라 모든 지체들과 함께 한 덩어리가 되어서 그래서 하나로 하나님을 찬송하고 예배하는 하늘 가족으로 살아가게 되는 것이죠. 이것이 바로 성경이 우리에게 그리고 있는 성도의 공동체적인 특성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런 하늘나라의 모형을 하나님께서이 땅에 두 개를 주셨는데 하나는 가정이고 하나는 교회예요. 그래서 이 교회 속에서 그런 공동체의 연합을 누리면서 살아가는 것을 배우는 것이죠. 그렇게 하면서 그 사람이 하늘나라에 합당한 사람으로 변화되어 가는 것이죠.
(08:00) 그래서 예수를 믿고 신앙생활을 열심히 하지만 그렇게 소속된 공공동체도 없고 사랑할 공동체도 없이 그렇게 살아가는 사람들의 신앙생활은 가히 정말 별 쓸모가 없는 신앙생활이라는 사실을 오늘 기억해야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렇게 구원이 만약에 공동체적인 것이라고 한다면 그렇게 해서 이루어지는 공동체가 교회라고 한다면 하나님이 그렇게 우리 각자의 구원을 교회론적으로 통합시켜서 그래서이 세상에 교회로 존재하게 하시는 이유는 무엇이겠는가? 다시 말해서 교회의 존재 이유가 무엇인가라고 하는 것이죠. 이것은 크게 세 가지로 나뉘어서 설명이 되는데 첫째는 하나님을 위해서고 둘째는 세상을 위해서고 셋째는 교회 자신을 위해서입니다.
(08:55) 먼저 교회는 하나님 자신을 위하여 존재합니다. 교회가 하나님을 위해 존재한다라고 하는 것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존재한다라고 하는 것이죠. 교회는 인간의 필요를 채우기 위해서 세운 것이 아니라 창조주 하나님의 뜻을 성취하고 이루고 그분의 영광이 온 땅에 가득하게 되는 일들을 위해서 주님이 진리와 사랑을 위탁하신 기관입니다. 그 교회를 통해서 하나님께서는 삼위 안에 있는 사랑 그 사랑을 가지고 역사하는 당신의 지혜를 실현해 가십니다. 그래서 죄로 말미암아 타락하고 망가진 이 세상에 다시 한번 창조주 하나님의 놀라운 계획이 사랑을 통하여 펼쳐지도록 만드시는 것이 하나님께서 원하고 바라시는 일입니다.
(09:46) 바로 그 일을 위해서 하나님이 교회를 이 세상에 세워 놓으신 거죠. 그렇기 때문에 교회의 가장 중요한 비전은 하나님 자신입니다. 하나님 자신을 경배하고 그분의 이름을 높이고 그래서 인간이 하나님 때문에 만족하기 이전에 먼저 하나님이 인간과 이 세상 때문에 만족하시도록 우리들이 그렇게 모든 삶과 예배의 초점을 하나님께 맞추고 그리고 그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 드리는 그것이 바로 교회의 존재의 이유라고 하는 것이죠.
두 번째 교회는이 세상을 위하여 존재합니다. 교회가 세상을 위하여 존재한다고 하는 것은 이 세상이 자신 안에는 가지고 가지고 있지 않은 어떤 도움들을 필요로 한다는 사실과 밀접히 연관이 있습니다.
(10:40) 이 이 세상은 자기 자신이 가지고 있는 것만으로는 죄와 타락으로 말미암아 망가진 상태에서 회복될 수 없고 그리고 수레바퀴처럼 반복되는 인간의 허무한 그런 운명의 굴래에서 벗어날 수가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들은 외부로부터 오는 하나님의 도움을 필요로 하고 그 도움은 특별히 빛과 사랑이니 곧 지식과 사랑입니다. 삼위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은 그 사랑을 가지고 하나님의 지혜를 이루는데 사용하심으로써 하나님은 당신의 찬란한 영광을이 땅에 드러내셨습니다. 신자의 모든 삶은 바로이 하나님의 지혜와 사랑을 찾아가는 삶입니다. 바로 하나님께서 이 세상의 구원을 허락하신 것은이 지혜의 빛과 사랑을 우리 인간들에게 나누어 주시기 위해서 허락하신 하나님이 세상을 고치시는 방법입니다.
(11:42) 인간의 모든 불행은 이 삼위 하나님 안에 있는 지혜와 사랑에 대해서 눈멀었기 때문에 생겨나는 불행이고 그리고 인간의 구원은 바로 그런 지혜의 빛과 사랑의 뜨거움으로 다시 돌아가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 지혜의 빛으로 사랑하지 않을 것들, 사랑했던 지난 날들을 회개하고 참으로 사랑해야 할 것들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되고 예전에는 사랑하지 말아야 될 것을 사랑함으로 불행해졌던 사람이 이제는 사랑해야 할 참된 대상으로 돌아가서 영원하고 불변하는 것들에 자신의 사랑을 바치는 것. 이것이 바로 인간의 구원입니다. 성화라고 하는 것은 구원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참으로 늘 흐려지기 쉬운이 지혜의 빛을 순결한 계시의 말씀으로 밝혀 그 본성이 변화되게 하는 것이고 또 타고난 부패성 때문에 마땅히 사랑해야 될 것 대신에 사랑하면 불행해지는 것들을 사랑하기 쉬운 인간들의 마음을 깨뜨려서 참된 사랑의 대상으로 돌아가게 만드는 것이 성화입니다.
(12:48) 영화라고 하는 것은 이 지혜와 사랑이 완전하게 된 상태를 의미합니다. 천국 생활이라고 하는 것은 바로이 지혜의 빛과 부어지는 사랑의 연속성 속에서 점점 더 증대되는 그 은혜의 빛과 그 점점 더 증대되는 기쁨 속에서 살아가는 것이 바로 천국 생활인 것입니다. 이렇게 함으로로 인간은이 모든 타락한 세상에서 영원한 세계를 향하여 합일의 삶을 살아가게 되는 것이죠. 그리고 지금 우리는 바로 그런 성화의 단계에 놓여 있는 것입니다. 바로 이러한 지식과 빛을 이제 어 완전한 하나님의 나라에서는 모든 사람들이 알 수 있게 되지만은 이 땅에 있는 동안에는 늘 인간에게 하나님께서 지성을 주셨지만은 그러나 타고 타고난 부패성과 그리고 여러 가지 악습들 때문에 지성이 온전해져서 하나님의 진리를 바라볼 수 없습니다.
(13:46) 누군가가 거기에 빛이 있다고 가르쳐 주어야 하고 그 빛이 바로 이런 것이라고 하는 것을 사람들에게 일러 주어야 합니다. 그들의 마음은 열렬히 하나님의 사랑을 찾지만 그러나 하나님이 누구신지를 알지 못하기 때문에 그들은 허무한 가운데 더욱더 이 세상에 있는 것들을 누리고 즐거워하려고 합니다. 그래서 그들은 사랑해서는 안 될 것들을 사랑하고 그것 때문에 끊임없는 상실의 고통 속에서 살아갑니다. 이런 사람들을 위해서 필요한 빛과 그리고 사랑을 하나님께서 교회의 교회에 위탁하셨습니다. 그래서 교회는 바로 세상을 위해 존재합니다. 교회의 사명은 이 지식의 빛과 사랑을 이 세상에 있는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어서 이 사랑의 사랑과 지식의 빛을 통하여 하나님께 돌아오게 하기 위해서 선택된 기관이 바로 교회이고 그런 의미에서 성도들은 그 빛과 그 사랑을 먼저 누리고 살아야 할 사명이 있습니다.
(14:45) 그때에만 그 사람들이이 세상에 빛을 잃어버린 사람들에게 현자로서의 빛을 전해 줄 수 있고 그리고이 세상의 사랑을 잃어버린 사람들에게 참된 사랑의 대상을 사람들에게 나누어 줄 수 있다라고 하는 것입니다.
언젠가 한번 신문을 보니까 오늘날 강남 항복판에서 누리고 있는 소비 생활이 국민소득 8만6천불의 수준의 소비 생활을 이어가고 있다고 합니다. 전에는 사람들이 예수 믿고 복을 많이 받기 위한 기복 신앙이었지만 지금은 기복 신앙이 좀 다르게 변형이 되어서 갖는 것들을 잃어버리지 않기 위한 기복 신앙으로 바뀌어 가고 있는 거 알고 계십니까? 천국에 관해서 열렬히 어느 목사님이 설교했더니 강남에 있는 어느 교인이 그러더래요.
(15:32) 목사님 너무 열매 천국생 설교하지 마세요. 병만 안 나면 이 땅도 상당히 살만합니다라고 말이죠. 이것이 오늘날 물질적인 부요 속에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의 모습입니다. 세계의 역사를 보면은 경제적으로 풍요롭고 부요하던 때에 사람들이 일심으로 하나님을 찾았던 때는 없습니다. 이거는 세계의 역사가 언제나 증거하는 것이죠. 풍요 속에는 항상 영적인 그런 빈곤이 있게 마련합니다. 이제 국민 소득이 높아지고 잘 살게 되면 잘 살게 될수록 사람들은 점점 더 기독교의 필요성을 느끼지 않을 것입니다. 어 사람들은 점점 더 교회에 나와야 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할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구라파에 잠들어 있는 교회의 역사가 우리에게 증언하고 있는 바입니다.
(16:23) 그러나 나는 분명히 말할 수 있습니다. 국민 소득이 높아지고 이제 우리들이 현실적인 문제들이 현실적인 먹고 사는 문제들에 대한 고민들이 해결되기 시작할 때 인간에게는 말할 수 없는 깊은 공허와 그리고 정신적인 병리 병리 현상들이 나타나게 됩니다. 이러한 비참한 정신적이고 영적인 곤궁함은 이제 더더욱 기독교를 필요로 하게 된다라고 하는 것이죠. 교회는 점점 교회는 점점 필요가 없어지는데 기독교의 진리에 대해서는 점점 더 필요성이 증대되는 시대를 만나게 된다라고 하는 것이죠. 그렇기 때문에 오늘날 우리들이 혼히 볼 수 있는 바와 같이 금과 은은 교회에도 있거니와 이런 식의 선교를 가지고는 미래에 변화되는 사회를 부응할 수 없다라고 하는 것입니다.
(17:14) 세계가 바뀌었고 세대가 달라졌기 때문에 우리들은 좀 더 세상으로 가까이 다가가기가 세상과 비슷한 것들을 우리들이 소유하고 있어야 된다고 말하고 그것을 소위 정황하라는 미명하에 합리화시키지만 사실은 그렇게 될수록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세상에 없는 그 무엇을 사람들이 교회에 기대한다라고 하는 것이죠. 도대체 그게 뭘까요? 그게 뭡니까? 가난하고 병든 사람들에게 많은 것들을 나누어 줍니다. 더 이상 그들이 더 이상 그런 도움이 필요 없을 정도로 잘 살고 난 다음에 그들이 교회에 원하는 것은 무엇일까요? 그것은 바로 진리의 빛이에요. 그리고 사랑이에요. 그것이 교회에 정말 필요한 것이니다. 미래에 세웠 미래의 시대가 아무리 변한다고 할지라도 교회가 세상을 위해 할 수 있는 최고의 섬김은 교회 자신이 이 진리의 빛과 그리고 사랑을 풍성하게 가지고 있는 것이에요.
(18:14) 그 이상의 섬김은 없어요. 그런데 교회의 역사는 항상 이 교회가 어느 시대든지 똑같은 말씀의 빛을 소유한 것이 아니라고 하는 것을 보여줍니다. 어느 시대의 교회는 하나님께로부터 많은 지혜의 빛을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공급받았지만 그러나 당시대에 살고 있는 사람들이 게으르고 나태하고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탐구를 게을리함으로 선조들이 물려준 그 지혜의 빛조차도 이해하지 못하는 한심만 무지 속에 살아갑니다. 그러나 교회의 사명은 바로 이 빛을 더욱더 찬란하게 타오르게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급기야는 이 빛과 이 사랑이이 빛과이 사랑이 무리 바다를 덮음과 같이 온 세상을 가득 덮게 하는 이것이 교회의 사명입니다.
(19:04) 그래서 부름받은 목회자와 그리고이 학문을 위해서 했쓰는 사람들은 온 마음을 다해서 지성을 다해서이 일을 위해 헌신해야 합니다. 불철주야 노력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탐구하고 사색하고 진리의 세계를 궁고함으로써이 시대에 하나님께서 주신 그 많은 진리의 빛들을 더욱 찬연하게 드러내어서 이 시대에 사는 많은 사람들에게 참된 지혜의 빛을 비추어 주어서 참으로 행복에 이르는 길이 무엇인지를 알려 줘야 할 사명이 교회에 있고 이것을 게을리하는 교회와 목회자는 하나님께 결코 인정받을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모든 일을 다 한다고 할지라도이 일을 다하지 않는다면 그 교회는 하나님께 칭찬받을 수 없는 악하고 게으른 종과 같습니다.
(19:51) 성도들은이 진리의 말씀을 하나님께로부터 받고 목회자와 함께 깨달아 이 빛을 더욱더 찬란하게 바라 후손들을 교육하고 그리고 오고 오는 세대의 이 진리들을 효과적으로 습득할 수 있도록 나누어 주며 자신들은 이 진리의 빛 아래서 자신을 끊임없이 진리에 부합하도록 합치시키는 가운데 이 진리의 빛이 본질이 무엇인가를 알아가는 일에 접근해야 합니다. 그래서 그 심오한 진리들을 자신의 온 삶을 거기에 부합하게함으로써 심오한 진리의 본질들을 깨닫고 그 깨달은 진리의 본질의 빛들을 한 시대가 이해할 수 있도록 더욱 찬란하게 빛으로 바라 모든 세대의 그 진리의 빛을 전해 주고 오고 오는 모든 세계의 이 진리의 빛을 나누어 가질 수 있도록 헌신하는 그것 그래서 이전에 우리 선조들에게 물려받은 그 진리의 불꽃과 지혜의 불씨를 더욱 찬란하게 하게 밝혀서 그래서 그 빛을 우리의 후손들에게 물려주어 이 시대가 아무리 타락하고 어둡다고 할지라도 그 찬란한 비달에서 우리의 후손들이
(20:55) 진리와 함께 진리 안에 거하며 진리를 사랑하며 살아갈 수 있도록 만들어 주는 이것이 오늘날 우리가 타고난 역사적인 사명이고 교회사적인 소명인 것입니다. 이 이 일을 게을리하는 모든 세대는 자기의 후손들에 무너져 가는 그 불신앙의 역사를 하나님의 나라에서 눈 두 눈을 똑바로 뜨고 보게 될 것입니다. 그런 점에서 교회는이 세상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죠.
지난주에는 우리 청년들이 정선에 복음을 전하러 갔습니다. 마을 사람들이 밥을 주면 먹고 안 주면 굶으면서 그렇게 한 주간은 복음을 전했습니다. 비가 쏟아지는데 복음을 전했지만 모든 사람들이 복음을 받아들인 것은 아니죠. 언제나 그렇습니다.
(21:46) 그러나 그 속에 복음을 듣지 못한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들에게 복음을 전할 때 그들은 그 복음을 받아들였습니다. 오늘도 조용히 눈을 감고 생각해 보십시오.이 세상에 흩어져 있는 수많은 사람들. 복음을 누군가가 전해 주었더라면 믿었을 사람들. 그 복음을 전해 주었더라면 그 복음을 꼭 붙들고 주님을 섬기며 살아서 창조의 목적에 부합하는 인생을 이어갔을 수많은 사람들. 그 사람들이 얼굴이 떠오르지 않습니까? 그들을 위해서 우리들이 무엇을 해야 할지 생각해 보시기를 바랍니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은 하나님의 말씀이 넘쳐나는 대로 넘쳐나는데도 그 하나님의 말씀의 진력과 실증을 느끼고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으로부터 마음은 멀어져 가고 있습니다.
(22:45) 그러면서 하나님께서 자신들에게 그리스도를 통해 주신 그 구원을 일상적인 것으로 여기면서 살아가죠. 이 이 모든 것들은 하나님께서 말할 수 없이 가슴 아파하는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깊이 생각해야 합니다.
마지막으로 교회는 자기 자신을 위하여 존재하죠. 모든 사람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그리스도의 몸에 접붙여집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자녀가 되죠. 그러나 그들이 온전한 신자가 아니라고 하는 사실은 너무나 잘 알지 않습니까? 오늘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생애적으로 주님을 만나는 사람들이 몇 년 뒤에는 은혜에서 미끄러진 채 무기력한 신자로 변해 있을 수 있습니다. 몇해 전에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어린아이처럼 기뻐하고 변화를 받던 수많은 신자들이 이런저런 이유로 뒤로 미끄러지고 침륜에 빠져서 그리고 정말 하나님의 택하신 자녀에게는 어울리지
(23:50) 않는 추루한 인생을 살아가는 일들이 얼마든지 일어날 수 있습니다. 그러한 모든 것들을 보면서 우리 신자들은 하나님의 교회가 얼마나 많은 돌봄이 필요로 한지를 깨닫게 됩니다. 그래서 교회는 자기 자신을 위하여 존재합니다. 모든 사람들이 구원받았다고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사는 것이 아니고 복음의 이치를 깨달은 모든 사람들이 이 빛을 모르는 수많은 사람들에게 흐느끼는 마음으로 다가가서 예수의 사랑과 예수의 복음을 전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 일을 위해서는 이미 믿은 신자들을 끊임없이 돌보고 교회가 그 일을 위하여 헌신해야 하죠. 또 교회에 오 와서 출석은 하고 있지만 사실 영적으로 보면은 아직은 불신자인 그렇게 그리스도 그리스도와 아직 접붙여지지 못한 비회심자들이 교회에는 많이 있습니다.
(24:48) 그들이 교회 나오는 것은 하나님의 특별한 섭리가 아닐 수 없습니다. 언제까지나 그들의 교회의 출석이 계속될지 모르지만 있는 동안에 교회는 혼신의 힘을 다해서 그를 사랑하고 그에게 그리스도 예수의 참 사랑이 무엇인지를 보여주고 하나님의 위대한 복음의 비밀들을 알려 주어서 그들로 하여금 깨닫고 하나님 앞에 돌아오게 하는 그 일이 절대적으로 필요합니다. 이 일을 위해서 교회는 부름을 받았습니다. 참된 신자의 걸 길을 걸어가기로 결심한 모든 사람들이 항상 그 길을 걷고 있는 것이 아니고 그 길을 걷고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항상 진리의 빛 아래 충만한 생활을 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들에게는 더 많은 지식이 필요합니다.
(25:33) 그래서 더 많은 지식의 빛을 좇아 그 빛 때문에 사랑이 더욱 풍성해지고 그리스도 예수의 날까지 흠이 없고 점이 없는 주님의 사람들로 날마다 변화되어 가야 합니다. 한때는 쓰레기 같은 죄인이었지만 그리스도 예수의 피로 구하여 하나님의 자녀로 삼으셨듯이 한 때는 쓸모없는 신자였지만 그러나 진리의 빛을 받고 변화되어 가면서 점점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아름다운 사람으로 주님의 형상을 닮아갑니다. 이 이 일은 신자들이 교회 한 구석에서 혼자 저절로 터득하는 것이 아니라 누군가가 그들을 위하여 기도하고 헌신하고 그들을 위해 돕고 도울 수 있는 사람들을 그 일을 잘 돕게 하기 위해서 또 돕고 돕는 그 사람들이 효과적으로 사용을 사역을 수행하기 위해서 지원하고 하는 이 모든 섬김의 연결 속에서 교회는 이 세 가지 목적을 구현해 나갈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26:24) 그때의 교회는 건강한 교회로 자기가 존재해야 할 이유를 다하며이 땅에 존재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 교회가 그런 교회가이 땅에 있다고 하는 것은 이 세상에 있는 수많은 신자들에게도 행복이요 다행이며 또 이미 주님을 믿고 그 교회 출석하고 있는 신자들에게는 더 말할 것이 없는 하나님의 큰 축복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께서 교회를이 땅에 두신 이유입니다. 핍박과 고난, 시련 그런 속에서도 견디도록 하나님께서 교회를 붙들고 계시고 부족한 것이 많은 허물은 그리스도인들끼리 모여서 함께 교회를 이루어 가게 하시면서 부딪힘과 고통이 많음에도 불구하고 그 부딪히 주님의 사랑만을 주님의 사랑과 도우심만을 전적으로 의지하며 그렇게 하나님의 교회를 세워 가시고 그 교회를 세워가는 과정을 통하여 모든 교회들의 교회 속한 지체들의 마음이 하나님께 기울어지고 그리스도를 향한 절대 의존 속에서 살아가게 만드는 것이 불안전한 교회를이 세상에 두신
(27:28) 하나님의 섭리 방법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교회가 이처럼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사는 신자 그리고이 세상을 위하여 빛을 나누어 줄 수 있는 신자 이 빛을 모르는 사람들을 미워하는 대신 사랑을 가지고 찾아가서 무지한 상태에 있는 그들을 끌어앉고 눈물로 이 진리의 진리의 빛을 전해 줄 수 있게 되기 위해서는 교회가 자기 자신을 위해 존재해야 합니다. 그래서 교회 안에 신자들을 점점 더 온전한 사람이 되게 해야 합니다. 자기의 영광을 위해 살던 사람들이 변화되어 하나님의 영광에 꽂치게 만들어 주고 한 걸음 더 나아가서 자기밖에 모르는 이혹에 붙잡혀 살던 사람들에게 주님이 없어 고통받는 이 세상에 많은 사람들을 보며 눈물 잃를 수 있는 사랑 그리고 무지 가운데 있는 그 사람들에게 나아가 학자의 혀로 말해 줄 수 있는 지식의 빛을 소유한 사람들로 변화시켜 주어야 하는데 이 일들은 교회의 교회 자신을 위한 많은 헌신이 없이는 이런 성도들이 세워질 수 없다라고 하는 뿐만 아니라이 교회 안에 있는 많은
(28:34) 지체들을 위해서 기도하고 그들을 종과 같이 섬겨 준 이 일들을 위해서는 보다 많은 섬김들이 필요한데이 섬김들은 실로 숫자를 헤아릴 수 없을 정도의 많은 사람들의 섬김을 기대하고 있으며 그런 속에서 훌륭하게 교회가 자기 자신을 위해 헌신하고 봉사하는 성도들을 많이 가지고 있을 때 교회는 역동적인 힘을 가지고 하나님의 영광과 이웃을 위해 봉사할 수 있는 아름다운 교회의 상을 회복하게 되는 것입니다. 바로 이 일을 위해서 하나님께서는 교회를 세우시고 오늘도 많은 성도들에게 은혜를 주셔서이 모양 저 모양으로 교회를 섬기게 한다고 하는 말씀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세상에서 가장 불행한 사람들은 아직 그리스도 예수께 접붙여지지 않은 불신자들이며 두 번째 불행한 사람들은 구원은 받았지만 사랑할 교회가 없는 사람들입니다.
(29:26) 존경할 수 있는 목회자가 없고 사랑할 수 있는 교회가 없고 섬길 수 있는 지체들이 없는 사람 그래서 누구에게도 소속되어 있지 않고 어느 교회에도 소속되어 있지 않으며 그래서 어느 교회에서든지 자신이 그 목회자를 사랑하고 목회자와 함께 진리를 찾고 성도들을 섬기고 그리고 자신이 교회를 섬기면서 자신은 그 교회를 통해 사실은 그리스도 예수를 섬기고 있다라고 하는 그 기쁨을 느낄 수 없는 사람이야말로 이 세상에서 가장 불행하고 비참한 사람인 것입니다. 그런 사람들이 이 세상에서 각자 자기의 소견에 오른 대로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면서 살아가지만 그들의 영혼은 매우 곤고하고 그리고 그들의 눈빛은 여전히 이 세상에 대한 욕망에 불타오르고 있습니다.
(30:11) 진리가 그들을 자유롭게 하지 못합니다. 그들이 진리를 알았다고 하지만 그 진리를 소유하는 일을 위해서는 그런 교회에서 영혼들을 위하여 섬기고 그런 교회에서 목양을 받으며 자신보다 더 뛰어난 진리의 빛으로 자신들에게 전해 주는 누군가 신앙의 선배들의 도움이 필요하고 자신의 그 삶 속에서 그 깨달은 진리의 말씀을 구체화하는 길이 무엇인지 그 모본을 교회에서 풍성히 보게 되면서 자신의 죄와 악함을 깨닫고 뉘우치게 되며 진리의 빛을 찾아가는 삶을 살게 되는 것입니다. 교회의 유익은 그 안에서 수많은 구도자들을 만난다는 것입니다. 그리스도 예수를 향한 사랑의 눈빛으로 불타 있는 사람, 진리를 공고하기 위해서 그 눈이 열려 있는 사람, 마음을 열고 진리를 통해 우리에게 허락하신 자유를 찾기 위해서 갈망하는 사람들을 볼 수 있다라고 하는 이 현실은 보는 사람 없이 듣기만 하는 그 모든 복음의 진리보다도 훨씬 뛰어난 것입니다.
(31:07) 그 일을 위해서 하나님께서는 눈에 보이는 교회를 그 불완전한 사람들을 통해이 땅에 세우게 하신 것입니다. 그리고 그 일을 위해서는 실로 수많은 섬김이 필요한 것입니다. 오늘 여러분들은 우중의 교회를 찾았습니다. 그리고 지금은 조금도 불편함이 없이 하나님 앞에 예배를 드리고 있습니다. 아무 결점 없이 여러분들은 편안한 가운데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있습니다. 그러나 여러분들이 오늘 이렇게 편안한 누림 속에서 예배를 드리기 위해서 이름을 알지 못하는 수많은 사람들의 희생이 있었습니다. 멀리는 여러분들을 위해 십자가에 못 박히신 그리스도 예수의 희생이 있었고 그거보다 좀 더 가깝게는이 황량한 공장 부지에 교회 설립의 꿈을 안고 그리고 많은 물질로 헌신했던 성도들의 이름모를 헌신이 있습니다.
(32:05) 이 이 교회를 여러분들이 여러분이 교회를 세우고 이름을 알지 못하는 영혼들을 이 교회에 담기 위해서 자신의 전 모든 재산을 하나님께 드리고 자신의 집을 주님께 드리고 자신의 모든 땀과 그리고 피 노후에 자신의 안전을 보장해 줄 많은 물질을 바친 사람들이 있습니다. 어떠한 희생의 순간에도 결코 자신을 희생하지 않았던 야비한 신자들도 있었지만 순수한 마음으로 힘에 넘치게 수고해서 하나님 앞에 부요할 수 있는데도 가난해진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보다 더 가깝게는이 교회를 짓고 그리고이 교회를 짓기 위해서 했쓴 사람들이 있었고 그보다 더 가깝게는 이제 하루 전에 이 교회에 나와서이 교회에서 여러분들이 안전하고 편안하게 예배드릴 수 있도록 쓸고 닦고 헌신한 수많은 지체들이 있었습니다.
(33:02) 어눌 하지만 이 오늘의 예배를 위해 기도하며 설교를 준비한 목회자가 있었고 목회자가 그렇게 유능한 설교로 준비할 수 있도록 연구를 도운 그런 일꾼들이 있었습니다.이 이 원고를 돕고 그리고 이 원고를 통해서 성도들이 편안한 예배를 드리고 그리고 예배를 드린 후에는 곧바로 자신에게 선포된 그 말씀을 가슴에 새길 수 있도록 정리본을 만들기 위해서 기도하고 애쓴 성도들의 헌신이 있습니다. 헤아릴 수 없는 이런 수많은 헌신들을 통해서 오늘 여러분들이 한 순간 예배의 즐거움을 누리고 있는 것입니다. 바로 이런 이름을 알 수 없는 수많은 성도들의 희생의 터 위에 우리들이 하나님을 믿으면서 살아온 것입니다.
(33:46) 여러분들은 여러분 잘 나서 여러분이 하나님을 인격적으로 직접 믿으면서 살아왔다고 생각하지만 그러나 여러분들이 넘어져 있을 때에 수많은 사람들이 이름도 알지 못하는 성도들이 여러분들을 영혼을 자신의 영혼인 것처럼 기도하고 여러분들은 생각지도 않았던 때에 여러분들의 영혼의 유익을 위해서 애쓰고 기도했습니다. 여러분들의 영혼에 일어나는 불행한 일들을 자신이 회개해야 될 일인 것처럼 권해하던 돌보는 목양자들이 있었고 그 일을 위해 헌신하는 수많은 성도들의 물질적인 헌신이 있었고 헤아릴 수 없는 그 희생의 피 위에 오늘 여러분들은 오늘 여러분들이 되어 있는 것입니다. 앞으로도 이런 일들은 계속 될 것입니다.
(34:31) 예전에는 예전에 있는 성도들의 희생의 터 위에 우리가 섰고 앞으로 올 성도들은 오늘 우리의 희생을 통해서 앞으로 올 성도들이 또 이전에 있었던 성도들처럼 다가올 성도들을 섬기게 될 것입니다. 가고 오는 세대에 이 섬김은 계속되고 하나님을 사랑했던 모든 사람들은 그 교회에서 땀과 눈물을 흘리며 자신을 바쳐서 헌신했습니다. 그리고 어떤 사람들은 하나님의 말씀의 은혜를 받고 그리고도 자신을 위해 하나님 자신을 향한 사랑 속에서 살고 그렇게 해서 자신을 희생한 적이 없이 이기적인 마음을 가지고 교회를 자신의 유익을 위해 이용했지만 그런 야비한 삶을 산 사람들이 누구인지 사람은 일일이 기억할 이유가 없지만 하나님께서 모두 알고 계시는 것입니다.
(35:18) 그러므로 이 세상에 하나님을 진정으로 사랑하는 모든 사람들의 마음에는 사랑하는 교회가 있습니다. 사랑할 교회가 있고 내가 사랑할 하나님이 있고 그리고 나와 함께 그리고 나와 함께 그 선하심을 선하신 하나님을 알아갈 구도의 동시자들이 있을 때 우리는 모든 것을 다 가진 것입니다. 모든 것을 다 가진 것입니다. 모든 진리는 그리스도 예수의 중보의 터위에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에 위탁되었기 때문에 교회의 비밀을 알지 못하는 사람들은 복음의 비밀을 터득할 수가 없어요. 사도 바울이 언제 아 깊도다. 지혜에 부요함이며라고 말했습니다. 바로 이 복음의 비밀,
(36:22) 교회의 비밀을 말하다가 깊토다. 지혜의 부여하며 헤아릴 수 없는 하나님의 지혜가 교회를 통해 아 우리에게 다가오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교회와 올바른 관계를 가져야 해요. 그리고 교회를 항상 눈에 보이지 않는 교회를 만지면서 영적으로 만지면서 이것이 예수의 몸이라는 사실을 잊지 말아요. 이것이 예수의 몸이라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해요. 응. 저는 오늘 여러분들을 책망하는 마음이 아니라 마음 가득히 사랑을 가지고
(37:27) 여러분들에게 호소합니다.이 시류를 따라가지 마. 오늘날이 시류 속에 떠밀려 살아가는 많은 그리스도인들은 교회의 비밀을 몰라. 그래서 교회를 마치 무슨 동호인의 클럽 정도로 생각을 해요. 그래서 자기에게 유익을 주는 한도 내에서 교회에 빨대 꽂고 빨아먹다가 진력이 나면 뱉고 다른 교회로 가. 그런 사람들의 마음속에는 그리스도가 계시지 않으셔요. 주님의 몸이에요. 이 세상에 있는 어떤 교회도 하찮게 보지 마. 그리고 그들이 우리와 좀 달라도 그 교회를 깊이 사랑해요. 다른 것은 사람이고 그 교회의 몸은 그리스도 예수의
(38:34) 몸이에요. 얼마나 사랑하시는지 몰라요. 응. 교회 자신이 많은 섬김을 필요로 해요. 오늘 가슴에 손을 얹고 여러분들이 이 교회를 위해서 무슨 일을 하고 있는지 한번 생각해 보세요. 수많은 성도들의 희생을 통해서 주님의 은혜로 이루신 이 교회에서 여러분들이 주님을 만났어요. 그래서 주님의 그 은혜의 부요함을 경험했어요. 그래서 그 크신 사랑을 알았어요. 그러면 무엇인가 그 은혜 안에는 이미 소명이 내포되어 있어요. 그래서 은혜를 주신 이유는 반드시 소명을 주신 이유와 관련됩니다.
(39:44) 하나님이 은혜를 주신 이유는 반드시 소명과 관련이 돼요. 소명과 관련이 돼요. 이 이 소명과 관련이 되는 반드시 거기에 소명이 있다. 이유 없이 하나님이 은혜를 주시는 법은 없어요. 하나님이 반드시 그 사람을 쓰시고 싶기 때문에 하나님이 은혜를 주시는 거에요. 그게 소명이에요. 그런 은혜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바로 그 소명의 자리로 돌아가요. 거기서 주님을 향한 사랑의 마음으로 온 마음을 다하여 섬겨야 하는 것이에요. 섬겨야 하는 것입니다. 특별히 특히 이러한 교회의 비밀을 아는 복음의 정신이 여러분과 같은 청년들에게 아주
(40:50) 심각하게 넘쳐나고 있어요. 예. 특히 도시에 있는 이 개인주의적인 정신에 물든 청년들에게 이러한 편의주의적인 신앙생활의 정신이 넘쳐나고 있어요. 미래의 그런 사람들은 조국의 교회의 주인공이 될 수가 없어요. 그래서 우리의 마음속에는 항상 자기가 사랑하는 교회가 있어요. 그리고 그 교회에서 하나님의 진리의 말씀을 통해 사랑을 깨닫고 그리고는 하나님께서 나를 여기에 부르셨고 이 일을 위해서 하나님께서 나를 여기에 세우셨다라고 하는 소명을 느끼고 있어요. 그 생각은 그 소명을 느끼면서 교회를 위해서 희생하고 헌신하고 섬겨서 그래서 다른 많은 사람들이
(41:57) 섬김과 연합을 이루어서 그래서 교회로 하여금 전체적으로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살게 하고 그리스도 예수의 몸인 교회로 하여금 내가 갈 수 없는 곳에까지 가서이 복음이 진리를 전하게 하고 또 이제 이렇게 교회 안에서 변화되지 못한 사람들을 위해서 교회가 헌신할 수 있도록 그렇게 자신의 섬김을 보태야 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모두가 하나님의 교회에서 맡고 있는 사명이 있어야 하고 그리고 자신이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에 대한 인식을 분명하게 해야 돼요. 이러한 자기의 성찰 없이 교회의 무임 승차하고 교회의 생활 그 자체가 무위도식하는 삶이 되게 되면 오늘은 여러분들의 혀끝에 달게 느껴지는 진리의 말씀도 언젠가는 매우 쓰디쓰고 맞대가리 없는 음식처럼 느껴져서 결국은 진리를 향한 싫증으로
(43:02) 미끄러지게 되는 것이에요. 그래서 그리스도를 찾아가는 우리의 삶의 추구는 우리의 전 지성과 온 마음 그리고 온 뜻과 온 삶을 다 바친 총체적인 추구예요. 그 추구를 통해서 하나님께 가까이 다가가고 온전케 나아가는 이런 성도의 삶이 바로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삶이요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표준이 되는 것입니다.
우리들이 신자로서 가장 중요한 것은 주님을 사랑하는 것이죠. 사실 그 이상의 가치는 없습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이 내게 사랑이 없으면 아무것도 아니요라고 말했습니다. 모든 은사는 은혜에 미치지 못합니다. 은사는 우리가 하나님의 일을 잘 할 수
(44:09) 있도록 우리를 갖추게 해 주지만 은혜는 우리의 본성 자체를 변화시켜서 우리를 그 사랑의 감화되게 만들어 주십니다. 그러므로 엄밀히 말하면 사랑은 하나님이 주시는 선물이라는 점에서는 은사지만은 보다 엄밀히 말하면 사실이 은혜 이 하나님의 사랑은 은사라기보다는 은혜예요. 은혜의 산물입니다. 은혜의 가치는 은사의 가치를 능가하는 것이에요. 그 사람 자신을 변화시키는 하나님의 놀라운 사랑의 감화예요. 이것이 바로 은혜의 가치요 비밀이에요. 이 은혜는 우리에게 항상 하나님을 향한 지순한 사랑을 불러일으켜요. 그리고 하나님을 향한 이 지순한 사랑은 우리로 하여금 아 하나님을 섬기면서 살도록 만들어 주어요.
(45:04) 그래서 하나님의 그 큰 사랑이 우리 안에 있는 그것은 우리의 섬김을 통해서 우리 안에 사랑이 있는지 없는지 하는 것이 입증이 되는 것이죠. 만약에 어떤 사람이 하나님의 하나님의 교회에서 사명을 맡았는데 조금 그 일을 하다가 힘드니까 집어쳐 버리고 그리고 제멋대로 자유롭게 살아가 하나님 사랑하지 않는 것이죠. 나쁜 사람입니다. 베드 크리스천이에요. 어떤 사람은 하나님께로부터 사명을 받아서 하나님을 섬기면서 사랑해요. 많은 어려움이 있어요. 인내로 그것을 극복해요. 하나님께 지혜와 슬기를 구하면서 그것들을 극복해 나가 결국은 마지막에 자기에게 맡겨 주신 그 일을 통해서 열매를 맺어요. 굿 크리스천이에요.
(46:01) 좋은 사람이에요. 착하고 충성된 사람이 사람이에요. 그러면 그것이 무엇을 통해 입증되는 것이죠? 앞에 있는 사람은 주님의 일을 했지만 그러나 그가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은 사람. 최소한 한 때는 사랑했으나 시간이 지나면서 그 마음이 변질된 사람이라는 것을 입증하는 것이고요. 뒤에 있는 사람은 끊임없이 하나님의 은혜를 붙들고 그 사랑 안에서 산 사람이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이죠. 물론 여기에는 많은 이유가 있을 수 있을 겁니다. 사람들이 내가 섬기려고 하는데 힘들게 해요. 도와주는 사람이 없어요. 사명을 감당하려고 하는데 우리 가정에서 어려운 일이 일어났어요. 뭐 등등의 이야기들이 많이 있을 수 있습니까? 그 모든 것을 한마디로 요약을 할 때 사랑의 부족이라고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47:05) 사랑은 언제나 오래 참고 사랑은 언제나 온유하며 사랑은 시기하지 아니하며 자랑도 교만도 하지 아니하며 모든 것을 바라고 믿고 진리와 함께 기뻐하며 견디는 것이에요.
저희 아버지는 돌아가셨습니다만는 술을 전혀 못 드시는 분이셨습니다. 당신의 말로는 할아버지께서 워낙 술을 좋아하셔서 가정이 힘들었기 때문에 뜻을 세우고 술을 안 마셨다고 말씀하시지만은 사실이 아닌 거 같아요. 왜냐하면 체질적으로 아버지는 술이 받지 않는 분이셨어요.
(48:10) 한번은 제가 중학교 2학년 때 좀 됐는데 아버님이 대낮에 택시에 실려 오셨어요. 누가 누가 아버님을 그 어 환자 부축하듯이 와어. 왜 웬 일이냐 그랬더니 오이동에 그 아는 분들하고 야유회를 가셨는데 맥주 반컵을 먹고 실신하셔서 실려오셨어. 남들이 보기에는 막 엄청나게 술을 먹고 만취 상태일 거라고 생각할 겁니다. 사실은 맥주 반컵밖에 안 들어갔어.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하는지는 우리 자신도 잘 몰라요. 그래서 사람들은 착각을 많이 하죠. 이 이 사랑은 검증될 필요가 있어요. 그게 뭐냐면 공동체를 위한 섬김 속에서이 사랑은 공동체를 위한 섬김 속에서 이 사랑은
(49:15) 공동체를 위한 검증 속에서 공동체를 위한 섬김 속에서 이 사랑은 진짜 있는지 없는지가 입증이 되는 것이에요. 교회에서 되게 직분을 맡겨 주면 신앙이 아예 없는 사람들은 처음부터 부담스러워하고 그런 거 싫다 그럽니다. 근데 웬만한 사람들은 교회에서 일을 맡겨 주면 안 그런 사람도 있지만 상당수의 사람들은 기분 좋게 받아들이는 사람들이 많습니다.이 일은 매우 중요한 일인데 당신 아니면 할 사람이 없습니다. 아, 그리고 당신이 이 일에 적임자입니다. 그리고 당신이 이 일을 해서 리더가 되십시오라고 하면 대부분 기분 좋게 받아들입니다. 그때까지는 그 사람이 하나님을 향한 사랑이 있는지 없는지 잘 모릅니다.
(50:11) 그러나 이제 위기가 닥칩니다. 어려움이 닥치죠. 그렇게 되면은 자기가 하나님의 일을 위해서 순수한 마음으로 열심히 하나님을 섬기기만 하면 모든 사람들이 칭찬하고 사랑해 주고 존경하고 자기를 도와줄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착각입니다. 그렇지 않습니다. 지금은 돌아가셨는데 제가 아는 목사님 한 분이 28살에 한 교회에 5년 뒤에 담임 목사가 되기로 하고 부목사로 부임을 했습니다. 그래서 한 300명 모이는 교회에 부임을 하셔서 그리고 5년 뒤에는 32살에 그 교회에 당회장이 되셨습니다. 그런데 아 그 목사님은 참 신앙이 좋으신 분이었어요. 그래서 이제 지금은 부목사로 가지만 어쨌든 이 교회가 이제 내가 목회할
(51:16) 교회이니 이제 내가 나의 모든 남은 인생과 내 가족들의 생계까지도 나는 하나님께 맡긴다. 그렇게 하고 자기에게 있던 아버지로부터 받은 유산이나 모든 걸 다 팔아서 정리해서 상당한 금액을 교회에 다 바치고 자기는 빈털털리가 됐어요. 근데 그게 교회에서 문제가 됐어요. 부목사가 얼마나 돈이 많으면 저렇게 엄청나게 감사헌금을 하느냐? 분명히 저 사람 뒤에 뭐가 있다. 그리고 사람들이 손가락질하며 수근기 시작한 겁니다. 세월이 많이 지나고 결국은 그 교회를 떠나셨습니다마는 그때까지도이 이분의 마음 속에서는 그거에 대한 상처가 풀리지를 않았어요. 말하실 때마다 이 분노하는 것이 눈에 보여.
(52:19) 우리들이 항상 하나님 앞에 선한 일을 위해 애쓴다고 해서 사람들에게 인정받는 것 아니고 또 내가 선한 일을 위해 애쓸 때 다른 사람이 나를 비난하거나 나를 괴롭게 할 때 하나님이 언제나 그 사람들에게 우리를 위해 복수해 주시는 것은 아닙니다. 이때에 하나님을 향한 사랑이 있는 사람은 주님을 생각하면서 그 모든 것을 견디지만 하나님을 향한 사랑이 없거나 부족한 사람들은 그때 견뎌야 할 이유를 발견하지 못하는 거죠. 이것이 바로 하나님께로부터 사명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뒤로 미끄러지는 수많은 사람들의 이유입니다. 끝까지 자신의 자리에서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목숨을 걸고 사명을 감당해 나간 사람들은 항상 대답하는 말이 간단합니다.
(53:19)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였습니다. 그러나 사명을 맡겨 주어도 항상 충성하지 못하고 그 사명의 길에서 이탈하고 불순종했던 사람들에게는 항상 변명과 핑계가 넘쳐납니다.
이렇게 이렇게 자기 자신이 까리따스의 사랑으로 가득 찼을 때 자기를 다 드리는 이러한 섬김이 가능해지게 되는 이유가 무엇 때문이냐 하면은 형제들 안에서 하나님을 발견하기 때문이에요. 저는 지지는 시간에 설교하면서 하나님이 우리를 왜 그렇게 불변하시는 사랑으로 변함없이 우리를 사랑하시느냐라고 질문하면서 우리에게 하나님이 계속해서 아름다움을 발견하시기
(54:25) 때문이라고 말씀을 드렸습니다. 그리고 그 아름다움이 불변하는 종류의 아름다움이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계속해서 영원히 사랑하시는 것이죠. 우리에게서 흠과 티 그리고 불결과 죄악이 발견될 때조차도 그 아름다움이 그 불결과 악을 능가하기 때문에 오래 참고 기다리시면서 우리의 구원을 위해 애쓰시는 분이 바로 하나님이셔요. 그것이 하나님이 우리를 오래 참으시고 사랑하시는 이유예요. 우리가 보이지 않는 그리스도를 까리따스의 사랑으로 사랑하게 되면 그러면 그 사랑으로 우리 자신이 꽉 찰 때 우리의 지성은 아주 명료해지는 순수한 지성의 상태가 되어서 그래서 이 육신의 눈에 의한 욕망과 미움에 의해
(55:32) 현혹되어지지 아니하고 명정한 지식을 가지고 지체들을 볼 수 있게 되는데 그러한 인식 안에서 그들 안에 있는 하나님의 아름다움을 보게 되는 거죠. 그게 바로 하나님의 형상의 아름다움이에요. 그 아름다움을 발견하게 될 때 우리는 형제의 허물과 죄악에도 불구하고 그 형제를 포기하지 아니하시는 하나님의 그 사랑하심을 느낄 수 있고 그래서 까리따스의 사랑 안에서 형제들 속에 있는 아름다움을 발견하게 되는 것이죠. 그 사랑하게 되는 것이죠. 그래서 이런 까리따스의 사랑이 없는 때에는 교회가 온통 추악하고 더러운 죄악의 덩어리로 보이지만은 까리따스의 사랑이 가득하게 될 때 그 한 지체 한 지체를 향한 하나님의 불변하시는 아름다움이 관상돼요.
(56:30) 그래서 그 자체가 아름다움의 덩어리처럼 느껴지는 거죠. 그리고 그 아름다움의 덩어리처럼 느껴지는데 그것 때문에 더러운 것을 못 보는 것이 아니라 더러운 것을 발견하지만은 그 더러운 것보다는 아름다운 것이 훨씬 뛰어나기 때문에 오히려 역설적으로 더러움에 대한 미움을 갖게 되고 더러움에 대한 미움이 결코 영혼과 지체와 그리스도의 몸을 향한 사랑을 방해하지 않는 까리따스 안에 있는 사랑 까리따스의 사랑 안에서 죄의 객관 현상이 나타나게 되는 그래서 그것을 쉽게 사랑하게 되는 겁니다. 이게 바로 죄인들을 향한 하나님의 사랑이에요. 그것을 바로 보여 주는 것이죠. 우리들이 이 세상에서 방황하고 그리고 주님을 멀리 떠나 있을 때 그때도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를
(57:36) 따라왔죠. 선행하는 사랑이 있었기 때문에 우리가 그 사랑의 효과 때문에 우리를 사랑하시는 주님을 알아볼 수 있었고 우리가 그렇게 주님을 사랑하는 것을 고백했을 때 주님이 우리의 죄를 용서해 주셨죠. 그래서 구원받은 모든 성도들은 자신이 구원받기 이전에 자신이 하나님을 사랑하기 이전부터 하나님이 자신을 사랑하고 계셨다는 사실을 자기가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 줄도 모르던 때에부터 사실은 자기가 하나님의 사랑이 사랑의 대상이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는 거죠. 그것이 바로 오늘이 교리 속에서 우리들이 진술하고 있는 봐요. 그러니까 어때요? 자기 안에 하나님을 향한 제일 이런 사랑이 있으면 무엇을 하든지 하나님 때문에 하는 거예요.
(58:39) 만약에 사람 때문에 하는 거면 사람이 자기를 격려하고 기대해 주는 한 할 수 있고 그 사람이 자기를 실망시키면은 집어칠 수 있죠. 그러나 만약에 하나님 때문에 하는 거면 하나님이 자기를 실망시키지 않는 한 자신은 포기할 수 없죠. 근데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죠. 만약에 일어났다면 그것은 자신의 불신앙이지 하나님이 자신을 실망시키는 적은 없습니다. 그러니까 그 하나님을 바라보면서 모든 난관과 시련들을 극복하고 이겨가는 물론 이 일은 너무 어려운 일이에요.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그 길을 택하지 않아요.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누구든지 나를 따르려거든 자기의 십자가를 지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의 십자가를 지고 나를 쫓칠지니라고 말씀하신 것이죠.
(59:39) 두 번째로는 사랑 안에 있는 목표의 일치의 효과요. 주님을 깊이 사랑하게 되면 자신의 인생의 목표가 따로 있고 주님의 목표가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그 주님의 목표가 자신의 목표가 되어 사도 바울이 다메섹으로 가는 길에서 빛으로 나타나신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죠. 주여 뉘신이니까 예수님께서 답변하셨습니다. 나는 네가 핍박하는 예수다. 그랬더니 그다음에 물은 질문이 무엇입니까? 주여 내가 무엇을 하리이까? 물어봤어. 그는 유대인들을 가르치는 선생이었어요. 유대인들에게 무엇을 해야 할지를 가르치는 잘 아는 어떻게 살아야 할지를 가르치는 잘 알고 있는 선생이었어요. 그런데 오늘 예수 그리스도 앞에서 어린아이처럼 내가 무엇을 하리까? 내가 어떻게 해야 됩니까?라고 물었습니다.
(1:00:44) 어떻게 해서 이런 일들이 일어나게 된 것입니까? 어떻게 그 사람은 모든 것을 잘 알고 있는 선생님에도 불구하고 내가 어떻게 해야 합니까? 하고 예수께 물었던 이유는 도대체 무엇이었습니까? 이게 바로 회심 안에 있는 자기 깨어짐의 효과예요. 예전에는 자기가 인생의 목표였어요. 자신의 행복 그것을 위해서 예수가 도움이 되니까 선택을 한 거예요.이 교회가 도움이 되니까 선택을 한 거예요. 어느 한 순간에 도움이 안 돼요. 그러니까 예수도 버릴 수 있고 교회도 버릴 수 있고 지체들도 버릴 수 있는 거예요. 심지어 자신이 자신을 실망시키면 자기도 버릴 수 있잖아요. 예. 이것이 바로 자기 중심, 자기 중심성을 가지고 살아가는 인간들의 모습이에요.
(1:01:40) 자기 중심성을 가지고 살아가는 인간들의 모습이에요. 자기 중심성을 가지고 살아가는 인간들의 모습이에요. 자기 중심성을 가지고 살아가는 인간들의 모습이에요. 이 인간들의 모습이에요. 그런데 하나님 앞에 깊이 깨뜨려지게 되면이 자신의 목표가 사라지는 거예요. 사라지는 거예요. 하나님의 큰 사랑이 밀려와서 죄 가운데 있는 자기를 설복시키고 하나님 앞에 새 사람 되게 할 때 십자가의 사랑 앞에서 펑펑는 신앙의 감격이 있을 때 그는 자신의 목표는 없는 거죠. 혹시 어떤 목표가 있다고 하지라도 그것은 개별적인 것에 불구하고 궁극적으로는 또 다른 목적을
(1:02:43) 위해서 살기 위해서 필요하니까 그 일을 하는 거예요. 그게 뭐예요? 그게 예수 그리스도예요. 하나님의 목적이에.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주어진 창조의 목적, 창조의 목적을 따라 살게 하도록 하나님이 부르신 교회의 목적. 그 교회가 참으로 하나님과 이웃과 자기 자신을 섬기기 위해서 참으로 교회 되기 위해서 하나님이 내게 주신 목적 그것을 따라서 사는 그것이 자신의 인생에서 최고의 관심사가 되는 그거죠.
참회라고 하는 것은 바로 뭐예요? 이렇게 회심을 통해서 목적이 합치되었는데 자꾸 자꾸 자기만의 또 다른 목적을 세우려고 하는 것을 뉘우치고 그걸 깨뜨려서 다시 주님과 합치 합쳐지는 것 이것이 바로 이것이 바로 참회요 자기 깨어짐이에요.
(1:03:51) 그러므로 주님을 깊이 사랑하는 성도들에게는 없어요. 자기만의 목표 같은 것이 없어요. 그래서 사도 바울이 빌립보서 뭐라 그래요? 나의 간절한 기대와 소원을 따라 내가 바라는 것이 있는데 그것이 뭐냐면 아 떠나 있으나 아 그 그리스도와 하나 되는 것입니다. 예 그리스도 하나 되는 것입니다. 나의 간절한 소원은 그리스도와 하나 되는 것입니다. 그게 소원이에요. 자기 안에 그리스도의 형상을 이루고 그리스도와 온전히 하나가 되는 것 그것이 자신이 바라는 소원이에요. 이렇게 목표의 합치가 생겨나게 되는 인간의 모든 불행은 자기만의 인생의 목표를 예수 바깥에서 또 다시
(1:04:56) 설정하려고 하는 거죠. 그래서 그리로 달려가려고 하는 거. 거기에서 인간의 모든 불행이 시작이 되는 거예요. 거기서 지성은 욕망에 사로잡혀서 명료함을 상실해요. 마음은 그릇된 것들에 대한 사랑으로 불타서 참된 것들에 대한 사랑을 잊어버려요. 의지는 불결한 사랑에 복종 복속되어서 하나님의 계명에 복종하려고 하지 않아요. 그러면서 지정의 전체가 하나님을 향해 반란을 일으키는 거예요. 그런 속에서 인간은 수많은 모순과 그리고 수많은 혼돈 속으로 들어가게 되는 거 그래서 어떠한 행복도 없는 오늘날 신앙 바깥에서 행복해져 보려고 예수 바깥에서 참으로 복된 인생을 살아보려고 몸부림을 치는 많은 사람들의 결국은 마지막에 불행한 그 끝이 오늘 이미 여러분들에게 다 설명되고 있는 것이에요.
(1:05:56) 자유를 찾아 떠나지만 그러나 막상 자유를 얻고 나면 그 자유는 영혼에 대한 속박이 되어서 다가와요. 그래서 올무에 갇혀 있는 자기 자신의 영혼의 모습을 발견하게 되는 거죠. 언제나 되풀이 되는 일이에요. 이처럼 까리타스 사랑 안에는 자기의 목표를 버리고 그리스도 몸인 교회에 그 목표와 자기를 합치시키는 놀라운 신비한 힘이 있어요.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을 섬기되 우리 각자가 섬기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를 통해서 하나님을 섬기는 거예요. 그렇게하면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길을 매일매일 걸어가는 그것을 통해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는 이것이 신앙생활이에요.
마지막 세 번째는 그 까리따스의 사람 안에는 희생의 욕구가 있어요.
(1:06:57) 희생하고 싶어 하는 것이 이것이 까리따스의 사랑 안에 있는 간절한 욕망이에요.이 이 세상에서 가장 비참한 것은 다른 사람으로부터 미움을 받는 것이 아니라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아무것도 해 주지 못하는 것이에요. 그게 바로 고통이에요. 성도들이 정말 영혼히 변화되고 나면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간절히 갈망하게 되잖아요. 그것이 바로 이런 희생의 욕구가 보여주는 거예요. 왜냐하면 나는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살려고 애를 써. 그러나 나도 부족한 것이 많아. 그렇지만 이 세상을 바라보면 나만큼도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살지 않으려고 하는 냉담한 사람들이 너무나 많은 거예요.
(1:07:52) 그거를 보면서 무엇인가 그들을 위해 희생하고 싶은데 어떻게 내 힘으로는 그들을 위 그렇게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살게 하는 일에 무엇을 그들을 도울 수 있을지 알지 못해. 그런 안타까움에서 흘리는 눈물이 바로 하나님의 영광을 향한 갈망에서 흐르는 눈물이에요. 그때 문서 선교부 가서 야, 요즘 무슨 테입이 잘 팔리냐 그랬더니 이혼을 생각하는 그대가 베스트셀러예요. 그래서 수없이 나갔대요. 그래서 그러면 열린교회 교인들은 다 이혼을 생각하면서 사는 사람들인가? 두 번 생각하는 사람 두 개 사가고 뭐 그러나? 그거 하거라요. 그럼 뭐죠? 자신에게도 도움이 되었을지 모르지만은 그러나 자기와는 상관이 없는 자기는 상관이 없지만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깨닫고 나니까 저렇게 불행해지는 이혼을 생각하며 그렇게함으로써 더 자신이 행복해질 수 있다고 생각하는 어리석은 사람들이 눈앞에 수없이 들어오는 거예요. 그
(1:08:57) 청년들도 가서 사 가지고 어디론가 그것을 보내는 거죠. 예. 그게 바로 뭐예요? 그게 바로 무엇인가 하나님의 까리타스의 사랑에 감화되고 나면 이런 사랑을 알지 못하는 사람들을 위해서 도움을 주고 싶다라고 하는 희생의 욕구들이 생겨나게 되는 그런 간절한 욕구들이 이 마음속에서 생겨나게 되는 그래서 그 사람들에게 그것을 나누어 주고 전해 주고자 하는 아주 간절한 갈망이 생겨나게 되는 생겨나게 교회에서 하나님을 섬기고 헌신하며 살아야 되는 것은 이것은 강요적인 것이나 조직적인 그런 방식으로 여러분들에게 주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이건 인격적이고 자발적인 헌신이어야
나는 오늘 여러분들에게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1:09:57) 여러분들에게 세 가지를 묻고 싶습니다. 이게 살아 있는 신자는이 세 가지 질문에 답할 수 있어야. 첫째, 요새 무슨 진리가 여러분들의 마음을 뜨겁게 하고 있습니까? 어떤 진리가 여러분들을 사로잡고 있습니까? 그 진리 때문에 눈물이 나고 그 진리 때문에 가슴이 따뜻하고 그 진리 때문에 엎드려졌던 자리에서 다시 용기를 얻고 일어나고 그러는 그 진리가 뭡니까? 두 번째 질문할까요? 기도할 때마다 마음이 미어지게 만드는 기도의 제목이 있습니까? 그게 뭡니까? 뭡니까? 어떤 기도의 제목들이 무릎을 꿇고 기도할 때마다 가슴이 미어지게 만들고 그리고 하나님 앞에 자신이 얼마나 비참하고 주님의 도움을 받지 않으면은 안 될 것 같은 그런 사모함을 불러일으키는
(1:11:03) 그런 기도의 제목이 여러분들에게 있습니까? 마지막 세 번째는 여러분들로 하여금 자신을 다 바치게 하는 하나님의 일이 무엇입니까? 눈을 감으면 그 일이 잘 되고 있는지 근심이 되고 아침에 눈을 뜨고 나면 그 일을 잘해야 될 텐데 한낮에 생활을 하다가 두어 기도를 하면 그 일이 잘 되기를 간구하지 않을 수 없는 그 사명이 여러분들에게 있느냐 얘기예요. 이 이 세 가지가 살아 있는 신자의 신자임을 점검하는 아주 기본적인 질문입니다.
만약에 진리의 빛이 무엇인가에 묻는데 다답이
(1:12:07) 없다면 여러분들의 영혼은 어둠 속으로 들어가고 있어요. 마음을 쏟아붙는 기도가 뭐냐는 질문에 대답이었으면 요즘 여러분들은 기도 안 하고 있는 거죠. 그렇게 초점을 찾을 수 없는 기도 생활은 초점을 잃어버린 삶을 반영하는 것이죠. 마지막으로 그렇게 여러분들이 권해하는 일이 무엇이냐고 물을 때 여러분들에게 그렇게 대답할 일이 없다면 여러분들은 무의도식하는 신앙생활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것은 영적인 실증과 그리고 육체적인 게으름 속에서 살아가는 삶입니다. 이름으로는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지만 몸은 침대에서 뒹구는 사람들입니다. 이런 게으르고 그리고 실증난 영혼을 가지고 할 수 있는 일은 정욕의 노예가 되는 것밖에는 아무것도 할 일이 없는 것입니다.
(1:13:09) 우리에게 얼마 남지 않은 이 바람같이 짧은 인생을 어떻게 살아야 할까? 정말 잘 살다가 죽어야 할 텐데 어떻게 사는 것이 잘 사는 것일까요? 우리는 지금 잘 살고 있는 것일까요? 이렇게 걸어가도 어느 순간 죽음의 휘장이 우리를 드리울 때 우리는 주님 앞에서 주 예수여 내 영혼을 받으소서라고 말할 수 있을까요? 일평생을 향하여이 길을 달려왔나이다. 주여 내가 여기 있습니다. 나를 받으소서.라고 말할 수 있을까요? 무엇이든지
(1:14:15) 하나님 앞에 기도해 보십시오. 하나님 나같이 늘러넘어짓고 쓰러지는이 쓰레기 같은 인간도 하나님이 필요하셔서 창조하셨죠. 이
이 생명도 달라시면 십자가에 놓겠으니
허울뿐인 육신 속에 [음악] 참빛을 심게 하시고
가식뿐인 (1:15:21) 세상에서 밀알로 썩게 하소서.
지난 주간에도 묵상을 하면서 여러 차 여러 차례 그 영혼들의 얼굴이 떠올랐습니다. 아무 희망이 없는 적막감이 감는 그 농촌 마을에 마치 죽기 위해서 태어난 사람들은 숙명적인 무지와 마음의 굳어짐 속에서 살아가는 많은 사람들 도시에는 하나님의 말씀이 넘쳐나도 그것이 싫어서 미끄러지고 하나님의 말씀을 거부하는 사람들이 가득한데 하나님이 날 여기에 남겨 두셨을까? 지금이라도 하나님이 나를 그런 동네를
(1:16:30) 순회하며 주님의 말씀을 전하는 사람으로 부르신다면 얼마나 자유로울까? 그중에 어떤 사람들은 우리가 들었던 복음을 그들도 들었더라면 우리보다 훨씬 충성스럽게 하나님을 섬겼을 사람들 주님이 조금만 붙잡아 주어도 곧 깨셔서 흔들리지 않고 예수를 따르려고 애었을 사람들 하나님이 그들에게는 아직 복음 전하는 사람이 없어서 어둠 속에 살게 하시고 우리 같이 말씀에 실내고 하나님의 사랑의 면역이 되는 사람들에게 그렇게 권고하시고 사랑하시면서 참된 신앙의 길을 따라 걸어가도록 우리를 부르고 계시는데
(1:17:37) 우리가 이 사랑의 깊이와 넓이를 알고 있습니까? 선택받은 사람들 아닙니까? 눈을 감으면은 우리가 아직 가지 못한 곳에 있는 수많은 영혼들 그리고 아직 우리가 섬기지 못했기 때문에 버려진 채로 남아 있는 수많은 영혼들과 병든 교회들이 떠오르지 않습니까? 어떻게 살아야 합니까? 어떻게 살아야 하지만 주님이 오실 때 잘했다. 그래, 넌 정말 잘했구나. 정말 내가 너에게 주는 은혜를 배반하지 아니하고 그리고 충성스럽게 살았구나. 이렇게 이런 칭찬을 주님께 받을 수 있을까요? 나는 여러분들에게 섬김을 구걸하지
(1:18:51) 않습니다. 저를 섬기라는 이야기가 아니고 주님을 섬기면서 살라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이 며칠만 무릎을 꿇고 하나님 나 같은 사람도 쓰시렵니까? 하나님이 내게 주신 은혜가 큰데 난 무엇을 섬겨야 할까요? 하고 물어보면 여쭤보면 하나님이 며칠 안에 여러분들이 얼마나 간절히 필요한 사람들인지를 보여 주십니다. 그래서 그 자리로 돌아가세요. 아주 작은 것이라도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사랑이 여러분의 마음 안에 있는 것을 온전히 드러내며 그렇게 살아보세요. 그러면 하나님이 더 큰 축복을 여러분들에게 주실 것입니다.
기도하겠습니다.이 시간에 우리 같이 기도할 때
(1:19:59) 하나님 오늘도 우리에게 은혜를 내려 주시옵소서. 하나님께서 우리 같은 사람들을 택하셔서 주의 자녀 삼으시고 하나님이 여기까지 이르게 하셨는데 내 온 마음을 다해서 그리스도의 남은 권난을 우리의 육체에 채우며 주님이 내게 은혜 주신 대로 사명의 자리에서 이름없이 빛없이 괴로울 때나 고난을 당할 때나 주님을 묵상함으로 섬기고 또 섬길 수 있도록 우리에게 은혜를 달라고 우리 같이 기도하겠습니다.
[음악] 자비로우신 아버지 하나님 오늘이 시간에도 기도합니다. 부족한 저희들을 주님께서 사랑해 주시고 [음악]
(1:21:13) 은혜를를 [음악] 주님을 생각하며이 길을 걸어갈 수 있도록 도와주시고 주님이 아프셨으니 우리도 아픈 그 길을 걷는 것이 너무나 당연하지 않습니까? 주님이 우리를 위해 고난을 당하셨으니 우리도 주님의 몸과 함께 아파합니다. 주님이 우리를 위해 희생하셨습니다. 우리도 주님의 몸과 함께 희생합니다. 하나님 아버지 우리는 죽고 우리 안에 주님은 사시옵소서. 그래서 저희들이 아버지 앞에기에 비트려져 우리 자신을 드리고 우리의 생명까지도 드려서 우리는 죽고 우리 안에 주님을 살기 그렇게 살 수 있도록 도와
(1:22:18) 주시옵소서. 하나님 아버지 잠시만이 세상에서 우리의 소망을 오로지하게 하시고 그래서 마음 주님 마음 주님을 사랑하며 아버지의 뜻대로 살아갈 수 있는 저희들이 되도록 은혜를 내려 주시고 붙들어 주시기를 원하옵나이다. 사랑이 만드신 아버지 하나님 오늘이 시간에도 간구하고 기도합나이다. 주여 우리에게 은혜를 누려 주시옵소서. 우리가 주님의 마음을 알게 해주시고 그래서 아버지 하나님 저희들이 주님의 그 마음을 나누어 가지고이 고난으로 가득차는 세상 우리는 만물의 짓기와 같이 여김을 될지라도 주님은 우리 안에 사시고 우리 때문에 새로워지시는 주님의 영을 인하여 우리들이 기뻐하도록 도와
(1:23:24) 주시옵소서. 우리 가야 할 길이 아직도 멀리 남아 있으니 우리에게 소망을 주시고 우리에게 은혜를 주셔서 우리에게 맡긴이 길을 기쁨으로 걸어가게 하시고 그 안에 영생의 소망을 발견하며 걸어갈 수 있는 저희들이 되도록 하나님 우리에게 은혜를 내려 주시옵소서 우리의 마음에는 눈물이 가득하도록 주여 우리를 언제나 여기에 있게 마시고 주님의 사랑으로 우리를 채워 주셔서 아버지 앞에 살 수 있도록 주께서 역사해 주시고 은혜를 내려 주시기를 간절히 합나이다. 주여 도와주시옵소서. 우리에게 은혜를 내려 주시기를 간절히 원합니다. 주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1:24:32) 하나님 아버지의 크신 사랑과 우리 성령 하나님의 교통하심이 사랑스러운 자녀들 위해 이제로부터 영원히 함께 있지다. 아멘. [음악] [음악]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