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장 내가 날 떠나 어디로 갈까?

아무도 사랑하고 싶지 않던 밤  •  Sermon  •  Submitted   •  Presen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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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도 사랑하고 싶지 않던 밤 1장 내가 날 떠나 어디로 갈까? - YouTube
https://www.youtube.com/watch?v=HODC0GWzOp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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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01) 어떤 사람은 그것을 일찍 느끼고 또 어떤 사람은 늦게 느낄 뿐입니다. 즐겁고 기쁜 일이 있으면 그 무게를 쉽게 있는 사람이 있고 집하게 느껴지는 무게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저는 어린 나이에 그 무게를 느끼기 시작했습니다. 초등학교 4학년 때쯤 동료를 부르면서 누나가 멀리 떠났다는 가사에 눈물을 흘리기도 했습니다. 제게 누나는 있지도 않았는데 말입니다. 어린 가슴에도 세월이 흐른다는 사실에 오롯이 외로움이 느껴졌던 것입니다. 아마도 흐르는 세월에 이별하게 되고 나만 홀로 남겨진다는 사실이 주는 느낌을 알았나 봅니다.이 이 시대에는이 시대는 우리에게 너무 깊이 생각하지 말라고 합니다.
(00:58) 좀 가벼운 마음으로 인생을 즐 즐겁게 살려고 합니다. 그런데 세계는 그것이 잘 안 되었습니다. 죽는 것이 무겁던 시절을 지내보았고 사는 것이 무섭던 시절도 지내 보았습니다. 사랑이 모든 것을 해결할 줄 해결해 줄 것이라고 생각도 했습니다. 그러다가 해렴한 해세를 담독하면서 죽음만이 해결책이란 결론에 도달하기도 했습니다. >> 네. 아직 인생을 끝까지 살지는 않았지만 깨닫게 된 것이 있습니다. 무거운 생각이 인생을 힘들게 하는 것이 아니라 그 반대라는 사실이었습니다. 생각이 가벼우면 인생이 무겁다. 어린 시절 그 무서운 방황과 그 후로도 계속된 고뇌의 시간들이 부끄럽지 않습니다.
(01:57) 후후에 스럽지도 않습니다. 왜냐면 그것들은 저에게 인생을 더 깊이 생각하게 하는 훈련이었기 때문입니다. 제가 다른 사람들보다 훌륭한 삶을 살고 있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더욱이 제가 인생에 대해 누군가를 가르칠만큼 대단한 사람이라고 여기지도 않습니다. 다만 한 번밖에 없는 나의 인생을 잘 살고 싶을 뿐입니다. 그 사랑과 고뇌는 남을 위한 것이 아니라 그런 소망을 가진 나 자신을 위한 것이었습니다. 그대는 엄숙하만큼 많치 종귀한 존재다. 유리 그릇처럼 깨지기 쉬운 저의 마음을 붙들어 준 명제였습니다. 인간이 조음하다는 사실에는이 일을 제기할 사람이 없지만 왜 그런지를 설명할 수 있는 사람도 많지 않을 것입니다.
(02:55) 이 책은 절망 속에 죽음을 택했던 한 인간이 어떻게 그 사실을 알고 용기를 내서 자기 인생을 살아갈 수 있었는지에 대한 고백입니다. 감당할 수 없는 인생의 무게에 힘겨운 이들, 인생의 벼란 끝에서 삶을 끝내고 싶은 사람들 그리고 혼돈 속에서 왜 사는지도 모른 채 어쩔 수 없이 살아가는 이웃들에게 갖게 해 주고 싶은 한 가지가 있었습니다. 그것은 생각할 용기였습니다. 난 누구인가? 어떻게 살아야 하나? 세계는 무엇인가? 신은 존재하는가? 인생의 답을 찾지 못할 때 막연히 세상에 대해 앙심을 품게 됩니다. 그러한 앙심은 메아리가 되어 자신을 황폐하게 하고 이의 마음은 더욱 거칠러져 가시나무숲같이 되어서 지친 새 한 마리 나라와 앉을 수 없게 됩니다. 누구에게나 사랑이
(04:00) 필요한데 말입니다. 저의 자전적 이야기가 포함된이 글은 한 인간이 죽고 다시 태어나고 살았던 고백입니다. 어디선가 나처럼 아무도 알아주지 않을 인생의 무게 때문에 품속에 잠들고 고독 속에 눈두는 이들을 생각하며 쓴 글입니다.이 글은 시도 아니고 산문도 아닙니다. 저는 장르의 그물에서 빠져나온 글을 쓰고 싶었습니다. 독자들에게 숨 쉬듯 읽히는 글이 되어 저의 슬픔과 기쁨이 공기처럼 빨려 들어가서 희망을 줄 수 있다면 무엇이든지 하고 싶었습니다. 독자들과 같은 시대를 살아가는 한 인간으로서 제게 두려운 것은 두 가지입니다. 생각 없이 사는 것과 무서워하며 사는 것입니다.
(04:58) 사람답게 살고 싶은 이들 중 누가 그러지 않다고 말할 수 있겠습니까? 저는 불꺼진 방이 무섭지 않게 되었습니다. 어떤 사람에게는 원래 무섭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제게는 기적입니다. 그렇게 되기까지 가혹하리만치 길고 외로운 방황의 시간을 보냈습니다. 그래서 이제 불꺼진 방에 홀로 있어도 무섭지 않게 된 것이 제게는 너무나 놀라운 일입니다. 아우구스 아우구스티스티누스는 기독교 사상가였습니다. 그러나 역사적으로 볼 때 그는 서양 사상의 바다로 나가는 수문이었습니다. 그의 사상은 우주론적이며 통합적입니다. 현대 서구 해체주의 철학자들조차도 그에게서 종합을 배웠기에 해체를 말할 수 있었습니다.
(05:53) 지금으로부터 약 15년 15년쯤 전에 그를 깊이 만났습니다. 그 사람만큼 깊이 있는 철학도 그의 작품만큼 감명 주는 문학도 나는 만나지 못했습니다. 그는 한 인간으로서 잘 살고 싶은 나를 많이 울게 했고 그렇게 살 용기를 주었습니다. 지난날 내가 겪었던 뜨거운 사랑과 외로운 그 의미를 정리해 주었습니다. 그래서 이 책은 특정 종교를 가진 사람들끼리가 아니라 인간으로 살아가는 살아가야 하는 모든 사람들과 나눌 이야기가 되었습니다. 제가 읽은 그의 수십권의 책들 중 깊은 감명을 주었던 여덟 문장을 골랐습니다. 그 여덟 문장을 사다리로 삼아 제 인생의 밤하늘에서 별을 따듯이 의미를 따왔습니다.
(06:47) 마음의 바구니에 담았습니다. 그 여덟 개로 된 별떨기의 빗살을 실삼아 뜨개질를 하듯 한 권의 책을 엮었습니다. 아무도 사랑하고 싶지 않던 밤 어디선가 지난날에 저처럼 불꺼진 방에 홀로 있는 것을 무서하고 있을 그 사람을 위해 작은 촛불을 밝히는 심정으로 저자 김남준. >> 아 전가요? 아닌데. >> 네. 목사님 프롤로그 아 >> 아 저 맞나요? 예. 프롤로그 부탁드립니다. >> 아, 예. 박사민 목사님이 아닌가요? 아, 예. 죄송합니다. 네.

프롤로그

한순간의 시선 사랑은 그렇게 취약된다. 단지 쳐다봤을 뿐인데 사랑은 시작된다. 형성소설의 사랑도 문학사의 길이 남을 작품 속의 사랑도
(07:53) 마찬가지다. 한권책의 인생을 바꿨다고 아니다. 한 문장이 마음을 악채지 않았다면 다 읽지도 못했을 거다. 눈으로 읽었겠지. 하지만 마음으로는 못했을 걸. 그녀의 일대기에 듣고 나서 사랑하기 시작하는 남자는 없다. 한눈에 반한다며 한 문장의 시선을 빼앗긴다. 씨앗이다. 책과의 사랑은 그 열매다. 그 사이 꽃피고 비바람도 맞겠지. 그래서 사연을 간직하게 되는 거다. 여덟 문장. 그대의 인생을 바꿨다고 뻥이지. 튀겼지. 둘 다 아니다. 당자가 성인이 되거나 식인 선교사가 되거나 사기꾼이 법관이 된 것만 상상하지 말라. 그런 식으로 바뀌다는 뜻이 아니다.
(08:45) 여덟 문장 만나기 전에도 후에도나다. 그런데 날 바꿨다니까. 묵은 땅 황소가 그 위를 지나간다. 쟁기가 땅을 파서 뒤집는다. 덩이가 물결친다. 서레로 회집고 세스랑으로 고른다. 붉은 땅이 밭으로 바뀐다. 그런 식으로 내 인생은 바뀌었다. 나는 느낌을 넘어선 과정이 싫다. 평판에도 그닥 마음 쓰지 않는다. 그냥 나의 정 웅달쌤 물 가운데 고이면 금을 넘쳐 흘러가듯 내 글은 흘러간다. 다 알지 못한다. 말은 들어도 좋다. 그런데 부지렁일을 했다. 이야기 듣고 싶지 않다. 그렇게 바뀌었다면서 그것밖에 못 사냐고. 그러면 나는 그래서 요만큼이라도 사는 것이라고 말할 거다. 나는 안다.
(09:42) 내가 아무것도 아니라는 걸. 아구스티누스와 나 1600년에 시간을 넘어 스승과 제자가 되다. 그는 내게 넘을 수 없는 벽이다. 다만 그의 순전한 지성과 불타한 사랑을 담고 싶을 뿐이다. 조금이라도 나은 사람이 되고 싶을 뿐이다. 죽는 날까지. 예. >>

1장 내가 날 떠나 어디로 갈까?

잡지의 표지처럼 통속한 인생이란다. 그러니 무엇이 무서워 떠나냐고 묻지 마라. 버지 울프 때문에 울지 마라. 상심한 별이 가슴에 부서져도 시간은 흘러간다. 그래도 나는 나로 살아야 한다. 그래서 나를 찾아야 한다. 내 마음이 내 내 마음이 내 마음을 피해서 어디로 간다는 말입니까? 내가 내 자신을 떠나 어디로 갈 수 있단 말입니까? 내 자신이 따라오지 못하도록 도망칠 은신처가 그 어디에 있겠나이까? 아구스티누스 고백 4.7.12
(10:50) 하늘은 푸르렀다. 겨울은 빗쟁이한테 붙잡힌 사람처럼 공으로 도도망치지 못했다. 찬바람이 애꾸준 나뭇까지만 흔들고 있었다. 내 나이 14살하고 두 달 일요일 오전 예배당에 가고 있었다. 검정색 교병에 낡은 애투 뺨이 실렸다. 예배당은 걸어서 30분 거리. 경춘선 기체업 지나서 동네 언덕에 있었다. 기차가 지나는 철길 아래를 걸어야 했다. 성경 옆에 끼고 신장로를 걸어간다. 말 눈물이 쏟아졌다. 길옆에는 논밭 철뚝길로 이어진 언덕길이 있었다. 나도 모르게 논두길로 발걸음을 옮겼다. 주저앉아 엎드렸다. 슬픈 자에게 외로움을 선물이라고 했던가? 홍퐁으로었다. 마음이 들으니 가슴팍이 아팠다.
(11:33) 무서웠다. 언제부터일까? 죽음을 생각하지 않는 날이 없었다. 죽는 두렵지 않았다. 사는게 무서웠다. 모두들 남이었다. 하긴 나조차 남 같았으니 누가 내게 나 같았겠는가? 아침마다 눈을 뜬다. 보고 싶은 이도 하고 싶은 것도 가고 싶은데도 없다. 오늘 하루 어떻게 살아야 하나? 깜깜한 어둠 끝없는 우주 침묵의 공간 나올로 던져진 것 같다. 한참 울다 생각했다. 나 왜 울고 있지? 이상하다. 마음은 슬픔에 찢어지는데 이유를 찾을 수 없다. 난 어렵다. 그런데 깨달았다. 나 슬픈 이유네 가지 질문에 맞다 있었다는 걸. 난 누구인가? 어떻게 살아야 하나? 세계는 무엇인가? 신은 존재하는가? 다시 슬픔이 밀려온다.
(12:21) 질문은 명료한데 답은 없다. 그것이 내 인생의 마지막 슬픔이었으면 했다. 질문을 모를 땐 슬픔이 손곳으로 찌르는 듯했고 알게 되었을 땐 고통이 창으로 쑤시는 것 같았다. 내 영혼은 새파랗게 질렸다. 하늘은 여전히 푸르었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이꼬리를 타고 찝찝한게 흘러 들어온다. 먼저 흘린 눈물에 차거운 바람이 스친다. 얼굴은 풀먹은 빨래처럼 굳었다. 나중 흘린 눈물엔 증오가 섞였다. 쓰디 쓰다 누가 미었던 걸까? 주먹으로 흐르는 눈물을 닦았다. 마음을 굳쳤다. 그리고 만껏 소리를내어 들어보려고 나는 알리파우즈를 떠나고자 일어났습니다.이는 홀로 >> 어 목사님 >> 홀로 있는 것이 >> 울기에는 더욱 어울릴 것 같아서였습니다.
(13:13) >> 아 네네 아 밑에 부분 읽으셨습니다. 죄송합니다. >> 각주는 안 읽어도 될 거 같은데. 밑에 부분이요? >> 네. 각주 부분은 네. 그냥 >> 알겠습니다. >> 네. >> 네. 이상님. >> 네. 김호 목사님. >> 네.
평생 무실론자로 살자. 신은 없다. 있다고 해도 내 인생에 간섭할 권리 없다. 왜 내가 그렇다자나?이 자식아. 생후 14년 2개월 생애 최초의 인생 선언이었다. 난 그렇게 살기로 했다. 그러자 슬픔은 거짓말처럼 사라졌다. 공유일의 기차가 요란한 소리를 내며 지나간다. 세상 없는 원한을 기적 소리처럼 남긴 채 바람에 근불 헛날린다.
세월은 흘러갔다. 어느 가을이 가을날이었다.
(14:17) 내 마음이 내 마음을 비해서 어디로 간다는 말인가? 아닙니까? 내가 내 자신을 떠나 어디로 갈 수 있단 말입니까? 내 자신이 따라오지 못하도록 도망칠 언가 은신처가 그 어디에 있겠 있겠나이까?이 이 문장은 빡빡 울던 일요일 찬바람 불던 눈뜨의 기억으로 날 불러냈다. 날 잡아 잡아끄는 힘은 어디서 온 걸까? 내 마음 어디 숨었다가 나타난 걸까? 상은 신기하다. 살아온 것들을 되살려 내놓는다. 생산하다. 엎드려 울던 때 옷깃을 수치던 겨울바람 소매 끝에 건불들 꽃끝에 닿은 겨울 냄새 여기저기 얼어붙은 논바닥 기귿히긋
(15:24) 투명한 얼음의 빛깔 그 날카로운 소리끝 반사되어 반짝이던 햇빛까지 아 참 깊고 넓은 기억의 힘이다. 세원은 흘렀다. 나는 기독교에 귀의했다. 그때처럼 내 영혼 진리도록 무섭지 않다. 그런데 어쩜 그 기억 일이 생생할까? 과거가 현재보다 더 현실 같다. 천봉 해문은 전혀 강물에 흔어 뛰어오른다. 잔잔하던 수면 위에 파문이 있다. 뛰어오르던 놈 사라졌어도 물결은 퍼져 간다. 멀리멀리 기억은 물결 그렇게 의식의 수수면을 헤엄친다. 나는 병상에 누워 있었다. 그 애가 주먹진 오른손으로 눈물을 닫고 있다. 손을 뻗었다. 꼭 안아 주었다. 그리고 함께 울었다. 그에는
(16:28) 우는 내 마음 알지 못해도 나는 알았다. 그는 자신 때문에 아팠고 나는 아파는 그 애 때문에 아팠던 거다. 꿈이 아니었다. 단지 기억의 다리 다이어를 한 번 돌렸을 뿐인데 오래된 영화의 한 장면처럼 또렷하다. 이런 아침 나 홀로 있는 방 안나 네트렛코의 솔베이지의 노래가 울려 퍼진다. 나는 답을 찾았다고 믿었다. 하지만 그 답의 영혼까지 익숙해지진 않았던 거다. 예쁠 것도 없는 병실 침대에 누워 천장을 바라본다. 나는 물었다. 그 가엽쓴 소녀에게 무엇이 그 널 그토록 무섭게 했니? 소녀는 말이 없다. 놀이 동산에서 울던 아이 엄마 손을 놓쳤다. 한 손에 풍선을든 채 운다.
(17:26) 새파랗게 질린 입술. 두벌엔 눈물이 주를 흐른다. 그때 내가 그랬다. 그제야 알아 알 것 같았다. 아, 인생의 주제가 주체가 되는게 무서웠던 거다. 그런 병실에서의 기억은 뭐였지? 익숙해졌으나 사실은 내가 아닌 것에 껍질을 벗은 거였다. 그 대신 본래 있던 날 만진 거였다. 다시 꼭 안아 준다. 둘 다 울음을 그쳤다. 포근하다. 내가 내 자신을 떠나 어디로 갈 수 있단 말입니까? 아우구스티누스가 흐느끼는 소리를 듣지 않은 적이 없다. 그래, 내가 날 떠날 순 없지. 내 마음이 내 마음을 피해 어디로 가겠는가? 나 자신이 도망쳐 숨을 은신 어디 있겠는가? 내게 가르쳐 주었다. 자를 떠날 수
(18:30) 없다는 걸. 그것을 자기 마음에서 발견했던 거다. 그때 난 어렵고 세월은 흘났다. 나에게 가장 낯선 사람은 나 자신이다. 떠날 수 없는 마음. 그런데도 나와 나 사이 얼마나 뭔가. 살아 있는 나와 진짜 있는 나 사이의 거리만큼 멀다. 사람. 살아 있는 가치는 자유에 있다. 내가 인생의 주체가 돼야 한다. 내가 생각하고 느낀다. 내가 판단하고 행동한다. 내가 책임진다. 거기서 뜻을 찾는 거다. 기쁜 날 있고 슬픈 날도 있을 게다. 거기서 의미를 발견하는게 인생이다. 그런데 그게 참 어렵다. 북쪽 하늘. 북극성은 바다에서 멀다. 어떤 배는 그 별에 도달한 적 없는데 반바다 위
(19:37) 모든 배 그별 보고 항로 잡는다. 내 마음대로 산다고. 그건 자유롭게 사는게 아니다. 맞닥뜨리는 삶의 모든 사태들. 거기서 영원한 의미를 찾을 수 있어야 한다. 의미를 아는 자는 나다. 하지만 의미를 주는 건 내가 아니다. 항로는 내가 정하나 그별 항상 거기 있듯이 살아 있다는 건 운명과 같다. 너무 엄면 변경할 수 없다. 살아 있는 건 들풀이나 짐승도 하는 거다. 그런데 살아가는 건 사람만 할 수 있다. 나는 살아 있는 한 살아가야 한다. 내가 날 떠날 수 없다. 그러니 나는 나로서 살 수밖에 없지 않은가? 나는 누구인가? 기독교의 귀의한 후에도 계속된 질문이었다.
(20:29) 세상이 창조된 걸 알았다. 그분이 날 사랑하는 것도 알았다. 인간이다는 말도 들었다. 그런데 내겐 왜 꼭 남의 신발을 쉬는 것 같았을까? 답이 달리라면 난 건너가기를 주저했다. 왜 그랬을까?
보석가게, 실내 조명이 눈부시다. 한 젊은 부인이 넷째 숟가락을 끼고 있던 반지를 뺀다. 결혼 반지다. 빛나는 다이아몬드. 호중한 기억들을 간직했을 텐데. 하시려고요. 내 힘이 없이 대답한다. 옥소석 지원이 감정용 안경을 낀다. 한찬 동안 유리 요리조리에 본다. 탁칵. 오른쪽 눈에 꼈던 안경을 유리 위에 내려놓으며 말한다. 부인 모주품입니다. 비싼게 가짜도 많다. 명품에만 밀라급 제품이라는게 있다.
(21:28) 거울에 비친 것 같단다. 왜냐 왜냐 해서 웬만해선 구별 못 할 걸. 그래봤자 다 짝퉁이다. 내 안에 베긴 짝퉁이 있다. 명품이 나와 함께 있어 운명처럼 같이 산다. 짝퉁은 명품 때문에 힘들고 명품은 짝퉁 때문에 괴롭다. 둘 다 저 같은 애들끼리 어울려야 재격인데 잘못대로 못하는 짝퉁이나 싸구려 취급받는 명품이나 둘 다 고생이다. 우라가 민다. 대체이 빌어먹을 조합은 어째서 생겨나? 기독교인은 회개라는 걸 합니다. 자신이 잘못한 것에 대한 후회다. 그걸로 인한 슬픔이다. 비참을 자격한다. 자신 믿었던 걸 자책한다. 그래서 그분을 더 의지하게 된다. 가짜인 나의 조종을 받아들이는 걸 깨닫는다. 짝퉁 자기다.
(22:33) 내가 내 밖에서 나를 본다. 그게 자기 반성이다.로 몰로 인생의 의미를 찾아간다. 남북은 내가 정한게 아니다. 그런데 나침판은 내 손에 있다. 내가 나를 떠나 어디로 갈 수 있겠는가? 행복한 일 만나면 기뻐하는 나를 만나고 불행한 일 만나면 슬퍼하는 나를 만나게 될 뿐이니. >> 백성민 무성이. 백성민 무성이 >> 내가 날에서 어디로 숨는다 말인가? 어디로 가면 나 아닌 다른 사람이 될까? 인생 사는게 어렵다. 자기 발견하는게 힘들어서다. 먹고는 기쁨에 마음쓴다고. 그게 좋냐? 프로포펄 같은 거다. 그 속에서 나는 점차 나에게 낯선 존재가 되어간다. 날 만날 기회가 없기에 내가 낯설러진다고.
(23:26) 그럼 내 인생은 누가 사라줘라. 낯선 내가 사는 인생은 누구를 위한 삶인가? 자기를 찾지 않는 상 갚지 못할 어음을 긁는 거다. 세월 흘러가고 나이는 먹는다. 인생 말련. 난바 어 지금 만기가 되어 돌아온다. 가혹한 추신자는 피도 눈물도 없다. 지독교의 계획하기 전 아구스티누스는 마이교에 빠졌다. 당대 지성인들에게 유행처럼 전파되던 종교다. 신비적인 헌합 종교였다. 거기서 선악에 대한 혼란에 빠졌다. 선과학이 우주에서 서로 싸운단다. 인간 안에도 천성과 악성 두 개 영혼이 있단다. 그래서 인간의 마음까지 전쟁처로 삼는단다. 사람이 나쁘게 사는게 이유가 있단다. 자기 속에서 선이 선이 악가의 투쟁에 패배했기 때문이란다.
(24:15) 결국 사람이 악을 행하지만 그 자신도 피해자라는 거다. 나쁘게 살려는 자신에게 신나는 일이겠지. 후일 그는 다음과 같이 고백했다. 그때까지 제 생각에 죄를 저지르는 것은 우리 자신이 아니라 그것에 대해 책임져야 할 우리 안에 있는 어떤 다른 본성이라고 여겨졌습니다. 그는 아직도 자기 자신을 못 찾았던 거다. 인생의 숙제 그것은 참된 자기로의 살아가는 거다. 인생길 그게 누군지 배우는 학교 생활이다. 자신을 떠나 살 수 없다. 나 자신을 찾아야 한다. 내가 인생의 주체로 살지 않는다고 그래서 행복하면 그 행복은 누가 느끼는 건가? 심장 뛰는 소리를 관해 못 박는 소리라고 했던가? 그런 숨쉬는 소리는 화장터의 풀무 소리일게다.
(25:17) 잡지의 표지처럼 통속한 인생이란다. 그러니 무엇이 무서워 떠나냐고 묻지 마라. 버지니아 울프 때문에 울지 마라. 상심한 별이 가슴에 웃어져도 시간은 흘러간다. 그래도 나는 나로 살아야 한다. 그래서 나를 찾아야 한다. 사람은 모두 죽는다. 나는 나로서 잘 살았다. 이런 말을 남길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시간은 흐른다. 우리가 삶을 떠나는게 아니다. 죽음이 우리를 영원 속으로 데려가는 거다. 울고 웃음에 명멸하던 모든 것들도 흘러간다. 나도 흘러간다. 아, 인생이 어찌 이리도 허무한가? 영혼의 틈새에 나타났다. 사라지는 존재. 반디뿌리와 같다. 그게 인생이다. 짧은 인생이다. 자기로 살아가라.
(26:20) 떠날 수 없는 자기에게서 자신에게서 멀어지려 하지 말라. 떠나야 할 자신과 영원히 살 것처럼 붙어 있지도 말라. 그런 인생은 싫다고 해라. 내 인생을 남이 대신 살아주지 않는다. 그러니 속일 수 없이 참된 자신을 찾아라. 익숙한 나와의 이별이 때론 아프리다. 그러나 어찌하랴? 아파도 참된 나를 찾아가는 길이니. 예시인 두고가 그랬단다. 달에서 놀던 사람 떠나보내며 이별은 항상 슬픈 거라고. 사랑하는 사람 죽어서 이별하는 건 울음을 삼켜야 하고 살아서 이별하는 건 언제나 아프도록 슬픈 거라고. 안나 게르에 나 홀로 길을 가내에 쓸쓸한 선율 그렇지 않아도 쓸쓸한 날 나그네로 만든다. 끝이 보이지 않는
(27:26) 벌판 사람도 집도 없다. 인생은 혼자 걷는 걸란다. 황야의 저녁 제빛 하늘 아래 잠드는 대지 자신을 찾지 못하는 외로움 바스락거리는 참나무 잎사기들 흐느끼는 울음소리는 바람에 흩어진다.이 문장은 고백록에 나온다. 사람들이 자기를 잘 모르고 너무 존경하기에 그 책을 썼단다. 자기가 더럽고 비참한 인간이란 걸 알려주려고 썼단다. 그러니 제발 너무 존경하지 말아 달라고. 하지만 실패했다. 그 책을 읽고 더욱 존경하게 αι니까.
내 마음이 내 마음을 피하여 어디로 간다는 말입니까? 내가 내 자신을 떠나 어디로 갈 수 있다는 말입니까? 나는 살기를 피하지 않겠다고
(28:31) 다짐했다. 어떻게 찾았나인가? 그대는 지구상에 남은 마지막 희기종 살아 있는 최후의 개체다. 그것만으로도 사랑받을 가치가 있다. 사람이 자기 지문을 갖고 태어나듯이 자기만의 인생을 자유롭게 살려고 태어난 거다. 지금 살고 있는 나. 이제껏 살아온 나를 만나 뜨겁게 포옹하자. 나 떠날 수 없는 나를 찾을 수 없다고. 그럼 나는 어디서 어디에 있을까? 나와 함께 자기를 찾는 여행을 떠나자. 자, 이제 이제 일어날까? 홀로 걷기에 좋은 겨울밤이잖아. 목사님 마지막에 홀로 걷기라고 적혀 있나요? 아니면은 >> 콜로기에 좋은 겨울밤이잖아. 이렇게 적혀 있어요. >> 아 그래 끝. 저는 걷기에만 적혀.
(29:34) >> 음. >> 아 목사님 그거 몇 년도판이에요? >> 됐어요. 어 2021년 7월 1일. 1판 8세입니다. >> 아 그래요? >> 예. 저는 20년 12 20년 12월 29일 2세 반 1판 2세 발행인데 >> 아 더 오래된 >> 3세부터 바뀌었는가 봐요. 저도 어 2021년 1월 26일 >> 그 저도 저기 광국사님과 같거든요. 걷기에 좋은 >> 교사 >> 아 >> 홀러가 빠졌어. 3판부터 홀로가 빠졌네요. >> 이게 홀로가 있는게 더 문장적으로는 흐름이 맞지 않나요? 아닌가요? >> 네. 더 좋은 거 같습니다. >> 네. 실수로 깎인 거 아닌가? >> 그렇지 않을 겁니다.
(30:35) >> 예.가 원래 판을 찍는 거기 때문에이 >> 없다는 거는 뺀 거죠. 그 어 오늘 이렇게 어 아무도 사랑하고 싶지 않던 밤 1장 함께 나누었 읽었는데요. 잠시 생각해 보시고 예, 소감 나누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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