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도 응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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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기도 응답
제목: 기도 응답
본문: 누가복음 11장 5-13절
본문: 누가복음 11장 5-13절
찬송: 364장 내 기도하는 그 시간
찬송: 364장 내 기도하는 그 시간
말씀의 문을 열며
말씀의 문을 열며
그리스도인의 삶에서 기도는 단순한 의무나 종교활동이 아니라 영적인 호흡입니다. 호흡이 멈추면 생명이 끝나는 것처럼, 기도가 멈추면 우리의 영혼은 급격히 메마르고 하나님과의 영적 관계도 끊어질 수 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삶을 보게 되면 기도로 온통 채워져 있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신성을 가지신 하나님의 본체이시며 아들이셨지만, 요단 강에서 세례를 받으실 때에 기도(눅 3:21)를 하셨고, 사역의 정점에 이르러 수많은 무리가 몰려올 때 오히려 한적한 곳으로 물러가 기도(눅 5:16)하셨으며, 열두 제자를 세우시기 전에는 밤이 새도록 철야하며 기도(눅 6:12)하습니다.
예수님의 이 간절한 기도의 모범은 기도가 인간의 연약함을 보완하는 단순한 도구가 아니라, 하나님과 우리를 하나로 묶어주는 가장 소중한 은혜의 통로임을 깨우쳐 줍니다.
기도는 이처럼 하나님의 위대한 일에 연약한 우리가 동참하도록 이끄시는 하나님의 거룩한 초대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기도를 들으시고 그 기도를 통해 일하시기를 기뻐하시기 때문에, 우리는 마땅히 기도의 자리에 순종함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그러나 우리의 실제 일상 속에서 기도의 자리를 지켜내는 일은 결코 쉽지 않습니다. 우리는 당장 눈앞에 닥친 바쁜 일들에 마음을 빼앗겨 기도를 뒤로 미루기 일쑤이며, 간절한 마음으로 구했던 기도의 제목들이 즉각적인 응답이 없고 침묵이 길어질 때면 금세 낙심하여 기도의 무릎을 꺾어버리곤 합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 모두가 마주한 솔직한 기도의 모습입니다.
예수님은 바로 이러한 우리의 인간적인 연약함과 한계를 너무나 잘 아셨기에, 제자들에게 기도의 구체적인 내용을 가르쳐 주신 직후에 곧바로 낙심하지 말고 끝까지 기도해야 함을 비유를 통해 우리를 가르쳐 주십니다.
포기하지 않고 매달리는 ‘끈질긴 기도’가 진짜 믿음이다.
포기하지 않고 매달리는 ‘끈질긴 기도’가 진짜 믿음이다.
오늘 본문은 한밤중에 일어난 당혹스러운 이야기로 시작합니다. 여행을 하던 한 사람이 깊은 밤에 갑자기 친구의 집을 찾아왔지만, 친구인 집주인은 자신을 찾아온 그 여행자를 대접할 양식이 전혀 없었습니다.
당시 유대 사회의 문화에서 나그네를 대접하는 것은 가문의 명예이자 거절할 수 없는 절대적인 사회적 책임이었습니다. 집주인은 자신의 배를 채우기 위해서가 아니라, 먼 길을 걸어온 자신의 친구를 굶겨 보낼 수 없다는 간절한 책임감과 사랑 때문에 또 다른 이웃의 집으로 달려갔습니다. 이미 밤이 깊어 이웃집의 문은 굳게 닫혔고 온 가족이 침실에 누워 잠들었음을 알면서도, 집주인이 염치없이 이웃의 문을 두드리며 떡을 구한 이 행동은 내 힘으로는 이 곤경을 결코 해결할 수 없다는 철저한 인간적인 한계와 영적 절박함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본문 8절에서 집주인이 끝내 필요한 떡을 얻어내게 만든 원동력은 바로 ‘간청함’이었습니다. 이 단어는 헬라어로 ‘아나이데이아’라고 하는데, 그 뜻은 ‘체면을 돌보지 않는 뻔뻔함’ 또는 ‘부끄러움을 잊어버린 간절함’입니다.
곤히 잠든 이웃집 문을 세차게 두드리는 행위는 사회적인 체면이나 예의를 모두 내려놓은 부끄러운 행동처럼 보이지만, 그 부끄러움을 뛰어넘을 만큼 눈 앞에 벌어진 일을 해결하는 것이 절박했기에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주님은 우리가 하나님 아버지 앞에 나아갈 때 바로 이러한 태도를 가지기를 원하십니다.
내 힘과 능력으로 내 삶의 결핍을 채울 수 없다는 우리의 철저한 한계를 솔직하게 인정하고, 겉만 요란한 종교적인 형식을 내려놓은 채 오직 하나님께만 매달리는 영적 절박함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이처럼 체면을 내려놓은 간절함이 마음속에 가득할 때, 비로소 주님이 말씀하신 구하고, 찾고, 문을 두드리는 지속적인 기도의 여정을 시작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이 우리에게 명하신 “구하라, 찾으라, 문을 두드리라”는 말씀은 단 한 번의 시도로 기도를 끝내는 것이 아니라, 문이 열리고 응답을 받을 때까지 멈추지 말고 계속해서 기도의 자리로 나아가야 함을 강조합니다.
어둠의 세력은 우리를 낙심시키고 기도의 자리에서 끌어내리기 위해 포기하지 않고 끊임없이 우리를 공격합니다. 그러므로 구원받은 성도인 우리 역시 결코 기도의 끈을 놓지 않고 기도의 호흡을 유지해야 합니다.
1960년 인도네시아 한 지역에서 대형 산불로 인해 큰 산이 민둥산이 되어버리자, 가뭄과 산사태로 농사를 지을 수 없게 된 사람들은 모두 마을을 떠났습니다. 그러다 1997년, 45세였던 사디만 씨는 이 산을 다시 복원하겠다고 결심합니다. 그는 쓸데없는 짓을 한다며 조롱하고 방해하는 동네 사람들의 멸시에도 굴하지 않고, 자신의 전 재산을 털어 수십 년 동안 무려 만 그루가 넘는 나무를 꾸준히 심었습니다. 그 결과 황폐했던 산은 점차 울창한 숲으로 변했고, 땅이 물을 머금게 되면서 1년에 삼모작이 가능한 비옥한 지역으로 탈바꿈했습니다. 떠났던 사람들이 다시 몰려들고 생태계가 회복되었으며, 사디만 씨는 그 공로로 상을 받으며 ‘숲을 만드는 사람’이라는 칭호를 얻게 되었습니다.
이처럼 세상 사람들도 자기 이루고자 하는 것이 있으면 포기하지 않고 끈질기게 도전합니다. 하물며 온 우주의 주인이신 하나님 아버지를 바라보며 올려드리는 성도의 끈기있는 기도는 당연히 응답의 열매를 맺을 수 밖에 없습니다.
끈질긴 기도가 반드시 응답받는 이유는 ‘기도가 우리의 믿음을 증명’하기 때문이다.
끈질긴 기도가 반드시 응답받는 이유는 ‘기도가 우리의 믿음을 증명’하기 때문이다.
예수님은 본문 9-10절에서
9 내가 또 너희에게 이르노니 구하라 그러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찾으라 그러면 찾아낼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그러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니
10 구하는 이마다 받을 것이요 찾는 이는 찾아낼 것이요 두드리는 이에게는 열릴 것이니라
라고 말씀하십니다.
주님의 이 말씀은 기도의 한 두 번 시도가 아닌, 끈질긴 기도가 결국 하나님의 약속을 믿는 진짜 믿음의 증거임을 보여줍니다.
우리가 기도를 하다 중간에 포기하는 것은 하나님의 역사하심에 대한 확신이 약해졌거나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지 않으신다는 오해에서 비롯됩니다. 반대로 응답이 더디고 상황이 여전히 캄캄할지라도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기도의 자리를 지키는 무릎은 하나님의 전지전능하심과 신실하신 사랑을 삶으로 입증하는 확실한 믿음의 고백이 됩니다.
세상 사람들은 인디언들이 기우제를 지낼 때 비가 올 때까지 멈추지 않는 모습을 이야기하며 끈기있는 기도를 합니다. 그러나 세상이 말하는 이러한 것은 기도가 아니라 집념입니다. 이 집념은 내가 원하는 결과를 내 힘과 고집으로 기어이 짜내고야 말겠다는 자기 중심의 억지에 불과합니다.
성도의 끈질긴 기도는 이런 기도와 본질적으로 다릅니다. 우리는 소원이 이루어질 때까지 떼를 쓰는 고집을 피우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기도를 들으시는 하나님이 살아 계시며, 가장 선한 때에 가장 좋은 것을 주실 것을 믿고, 끝까지 버텨내는 깊은 관계적 신뢰가 깔려 있는 기도입니다.
예레미야 35장에 레갑 족속이 바로 이러한 거룩한 신뢰의 끈기가 무엇인지를 잘 보여줍니다. 레갑 족속은 거룩과 순전한 믿음을 지키기 위해 세상 유행과 풍조에 타협하지 않고, 오직 조상 요나답의 명령에 순종하여 수백년 동안 포도주를 입에 대지 않고, 집과 토지도 소유하지 않고, 오직 장막에서만 살았습니다.
이들의 끈기는 고집이 아니라 하나님을 향한 깊은 신뢰가 밖으로 흘러나온 거룩한 삶의 방식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이들의 신실한 순종과 끈기를 보시고 “레갑의 아들 요나답에게서 내 앞에 설 사람이 영원히 끊어지지 아니하리라”는 영원한 축복을 선물로 주셨습니다.
하나님 앞에 선다는 것은 하나님과 영원히 함께 하는 특권을 누리는 것이며, 하나님께 존귀하게 쓰임받는 것을 뜻합니다. 우리의 끈질긴 기도는 내 뜻을 강요하는 어거지가 아니라, 하나님 아버지가 가장 좋으신 분임을 믿기에 끝까지 하나님을 떠나지 않고 기도의 자리를 지켜내어 마침내 그 믿음을 인정받고 축복을 누리게 해줍니다.
끈질긴 기도가 반드시 응답받는 또 다른 이유는 ‘성령께서 우리의 기도를 ‘온전하게 변화시키기 때문’이다.
끈질긴 기도가 반드시 응답받는 또 다른 이유는 ‘성령께서 우리의 기도를 ‘온전하게 변화시키기 때문’이다.
우리가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기도할 때 하나님이 반드시 응답하시는 또 다른 이유는, 기도의 과정 속에서 성령님이 개입하셔서 우리의 서툴고 이기적인 기도를 완전히 새롭게 빚어주시기 때문입니다.
오늘 본문 13절은 기도의 가장 위대한 결론이자 응답의 핵심을 가르쳐 줍니다.
13 너희가 악할지라도 좋은 것을 자식에게 줄 줄 알거든 하물며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성령을 주시지 않겠느냐 하시니라
마태복음에서 예수님은 구하는 자에게 단순히 좋은 것을 주신다고 말씀하셨지만, 오늘 본문에서는 그 가장 좋은 것을 구체적으로 ‘성령’이라고 콕 집어서 말씀하십니다.
우리가 처음 기도의 자리에 나아갈 때는 대게 우리의 육적인 욕망이나 세상의 안위, 그러니까 물질적인 결핍을 채우기 위한 어설프고도 이기적인 기도로 시작하는 경우도 많습니다. 내 생각과 뜻을 하나님께 관철시키고자 하는 욕심이 하나님의 뜻보다 앞서기도 합니다.
그러나 낙심하지 않고 계속해서 무릎을 꿇고 엎드려 기도의 자리를 버텨내다 보면, 어느덧 기도의 주권이 나에게서 성령님께로 조용히 이동하는 놀라운 경험을 하게 됩니다. 내 생각의 한계에 갇혀 부르짖던 기도가 기도의 호흡이 깊어짐에 따라 점차 성령의 말할 수 없는 탄식과 인도하심에 동화되기 시작합니다.
결국 성령님께서 우리의 이기적인 기도를 하나님 나라와 그분의 의를 구하는 온전한 기도로 고쳐주십니다. 내 생각보다 훨씬 크고 넓은신 하나님의 뜻에 우리의 기도가 온전히 일치하게 되기 때문에, 성령으로 변화된 그 기도는 응답의 문이 활짝 열리게 되는 필연적인 역사를 경험하게 됩니다.
말씀의 문을 닫으며
말씀의 문을 닫으며
이제 말씀을 맺겠습니다.
때때로 우리는 간절한 기도가 거절당하는 것처럼 느껴지고, 기다리던 응답의 새벽은 오지 않고 어둠속에 덩그러니 홀로 버려진 것처럼 느낄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바라보고 믿는 하나님 아버지는 사랑하는 자녀에게 해롭고 악한 것을 주시는 분이 절대 아니십니다. 구하는 자에게 가장 선하고 완전한 선물인 성령을 아낌없이 부어주시는 참 좋으신 하늘 아버지이십니다.
우리 교회의 올해 표어는 “기도의 능력으로 소망을 누리는 교회”입니다. 이 세상의 환경이나 인간의 조건 속에는 우리의 참된 소망이 존재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누려야 할 진짜 소망은 오직 기도의 능력을 통해 하나님께로부터 우리에게 주어지는 영원한 소망입니다.
낙심함으로 인해 기도의 무릎이 약해지고 흔들렸던 우리의 연약한 모습을 주님 앞에 솔직하게 내어놓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우리를 결코 포기하지 않으시고 끝까지 붙드시는 하나님의 신실하신 사랑을 의지하여 다시 일어서기를 바랍니다.
그리하여 2026년 남은 6개월의 시간동안 끈질긴 기도의 자리로 나아가 하나님 안에서 모든 소망을 이루고 누리며 살아가는 우리 중앙교회 모든 성도님들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