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리를 따르는 제자의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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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진리를 따르는 제자의 길
제목: 진리를 따르는 제자의 길
본문: 요한복음 18장 28-40절
본문: 요한복음 18장 28-40절
찬송: 431장
찬송: 431장
말씀의 문을 열며
말씀의 문을 열며
세상에서 가장 값지고 고귀한 사랑은 나를 위해 자신의 가장 소중한 목숨까지 아낌없이 내어주는 대속의 사랑입니다. 우리는 한 평생을 살아가면서 이웃과 가족을 통해 수많은 사랑을 경험하며 살아가지만, 타인을 위해 자신의 생명 전체를 내던지는 참된 사랑은 세상 그 어디에서도 쉽게 찾을 수가 없습니다. 인간은 본능적으로 자기 자신의 평안과 안위를 가장 먼저 생각하는 연약한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오늘 우리가 함께 마주하는 요한복음 18장의 법정은 우리를 살리려 스스로 죽음을 선택하신 예수님의 사랑을 보여줍니다. 이 재판정은 단순한 무죄를 다투는 자리가 아니라, 온 우주의 왕이신 주님께서 거짓 가득한 세상 권력 앞에 서신 역사적 사건의 현장입니다. 이 엄숙한 현장에서 우리는 자신의 생명을 다해 진리를 증언하시는 예수님의 모습과, 자신의 이익을 지키기 위해 진리를 비겁하게 외면하고 방관하는 총독 빌라도의 대조를 마주하게 됩니다.
유대 지도자들은 기득권을 지키기 위해 새벽부터 주님을 결박하여 빌라도의 관정으로 끌고 왔습니다. 그들은 이방인의 관정에 들어가면 유월절 잔치를 먹지 못할까 두려워하며 관정 밖에 머무는 이중적인 태도를 보였습니다. 정결 예식은 아끼면서도 하나님의 아들을 죽이려는 죄악에 동참하는 인간의 위선이 고발당하는 순간입니다. 오늘 선포되는 말씀을 통해 우리가 어떤 영적 결단으로 주님의 뒤를 따라야 할지 돌아보기를 소망합니다.
생명을 바쳐 진리를 증언하신 예수님
생명을 바쳐 진리를 증언하신 예수님
진리가 왜곡되고 힘의 논리가 지배하는 세상 법정 한복판에서, 주님은 오직 하나님의 살아 계심과 하늘의 실재만을 온몸으로 증언하셨습니다.
빌라도의 강압적인 심문 앞에서도 주님은 두려움 없이 당당하게 주님의 왕 되심을 선포하셨습니다. 본문 37절에서 주님은 "네 말과 같이 내가 왕이니라 내가 이를 위하여 태어났으며 이를 위하여 세상에 왔나니 곧 진리에 대하여 증언하려 함이로라 무릇 진리에 속한 자는 내 음성을 듣느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단호한 대답은 지배와 군림을 추구하는 세상 방식과 철저히 구별되는, 하나님의 법과 사랑이 다스리는 영적인 나라를 선포하신 것입니다.
주님은 자신이 왕이며 오직 진리를 증언하기 위해 이 땅에 태어났고 이를 위해 세상에 왔다고 분명하게 고백하셨습니다. 여기서 주님이 말씀하신 증언은 입술로만 외치는 일시적인 고백이나 지식의 전달이 아니라, 자신의 온 존재를 드려 십자가에서 피 흘려 죽으심으로 확증하시는 삶의 행동이었습니다.
성경의 원래 언어를 깊이 살펴보면 37절에서 주님이 사용하신 증언이라는 단어인 '마르튀레'는 초대교회의 잔혹한 박해 시대를 지나오면서 자신의 신앙과 주님을 향한 고백을 지키기 위해 기꺼이 목숨을 던진 '순교자(Martyr)'라는 단어의 원형이 되었습니다.
주님에게 진리를 증언하는 삶은 곧 자기 자신을 아낌없이 내어주는 거룩한 순교적 삶과 완벽하게 일치하는 걸음이었습니다.
주님은 포박당한 죄인의 초라한 모습으로 빌라도 앞에 서 계셨지만, 실제로는 빌라도와 온 세상을 하나님의 진리로 심판하시는 참된 왕이셨습니다. 세상의 모든 위협과 타협의 요구 앞에서도 주님은 단 한 걸음도 뒤로 물러서지 않으셨고, 오직 우리를 구원하시려는 하나님의 구원 계획을 성취하시기 위해 묵묵히 고난의 길을 걸어가셨습니다. 우리를 살리시기 위해 목숨까지 아끼지 않으신 이 위대한 증언이 있었기에 오늘 우리가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겨지는 구원의 복을 받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이 사랑의 빚을 진 제자들로서 마땅히 주님의 발자취를 끝까지 신실하게 따라가야 합니다. 세상의 거센 풍파와 영적인 시련이 찾아온다 할지라도, 나를 위해 생명을 버리신 그 주님을 바라보며 믿음의 인내를 끝까지 경주해 나가야 합니다.
우리가 주님의 음성을 듣고 진리에 속한 제자가 된다는 것은 세상의 안락함과 타협하기를 거부하는 용기 있는 믿음을 가졌음을 의미합니다. 세상은 끊임없이 우리에게 적당히 타협하고 손해 보지 않는 길을 선택하라고 유혹하지만, 주님은 생명을 다해 그 진리를 지켜내셨습니다. 우리가 매일의 삶 속에서 주님의 말씀을 붙잡고 작은 희생을 감수할 때, 주님이 베푸신 그 위대한 순교적 사랑이 우리의 삶을 통해 세상에 증거되기 시작합니다.
세상과 타협하는 방관을 버리는 삶
세상과 타협하는 방관을 버리는 삶
우리의 삶이 무너지고 영혼이 메마르는 진짜 이유는, 진리를 몰라서가 아니라 내 이익을 지키기 위해 눈앞의 진리를 애써 외면하고 방관하기 때문입니다.
총독 빌라도는 주님을 신중하게 심문하는 과정에서 주님에게서 아무런 죄가 없다는 사실을 마음속 깊이 명확하게 깨달았습니다. 빌라도는 본문 38절 후반부에서 유대인들에게 나아가 "나는 그에게서 아무 죄도 찾지 못하였노라" 하고 예수가 무죄함을 분명하게 공포했습니다. 그러나 빌라도는 예수님이 무죄한 진리이심을 확실히 알았음에도 불구하고, 군중들의 거친 소요와 압박이 두려워 진리로부터 슬그머니 고개를 돌려버렸습니다. 그는 자신의 높은 정치적 권세를 잃어버릴까 봐 두려웠고, 개인의 안전과 편안한 삶의 유익을 지키기 위해 거짓 진리 앞에 비겁하게 타협하고 방관하는 어두운 길을 선택했습니다.
빌라도는 유월절이면 한 사람을 놓아주는 전례를 이용하여 무죄한 예수님을 조용히 석방해 보려는 얕은 꾀를 냈습니다. 그러나 군중들이 거세게 반발하며 본문 40절 말씀처럼 "그들이 또 소리 질러 이르되 이 사람이 아니라 바라바라 하니 바라바는 강도였더라" 하고 고함을 치자, 빌라도는 결국 대중의 눈치를 보며 주님을 십자가 처형의 자리로 내던져 버렸습니다.
17세기 네덜란드의 위대한 화가 렘브란트는 <세 개의 십자가>라는 유명한 동판화를 남기면서 예수님이 매달리신 그 고통스러운 십자가 주변 어두운 그늘 속에 자기 자신의 얼굴을 몰래 그려 넣었습니다.
이것은 주님을 처형했던 자들이 빌라도나 유대 지도자들뿐만 아니라, 내 유익과 안락함을 지키기 위해 매 순간 진리이신 주님의 말씀을 외면하고 방관하며 살아가는 바로 우리 자신임을 고백하는 참회의 몸짓이었습니다.
우리는 빌라도처럼 세상의 위협과 평안의 유혹 앞에서 너무나 쉽게 입을 닫고 주님을 방관하는 공범으로 살아갈 때가 참 많습니다. 오늘 본문 40절에 등장하는 흉악한 강도 바라바는 다른 사람이 아니라 영적으로 죽을 수밖에 없었던 바로 우리 자신의 진짜 자화상입니다.
주님은 아무런 죄가 없으시면서도 바라바 같은 우리를 대신하여 차가운 쇠사슬에 묶이셨고, 우리가 매달려야 할 저주와 심판의 십자가 자리에 스스로 올라가 못 박으셨습니다. 주님이 내 대신 죽으셨기에 우리가 오늘 이 영생의 자리에서 자유와 평화를 누릴 수 있게 된 것입니다.
이 놀라운 대속의 은혜를 가슴에 새긴 제자들은 더 이상 빌라도처럼 세상을 눈치 보며 방관하는 비겁한 자리에 서 있을 수 없습니다. 우리는 나를 대신해 생명을 주신 주님의 위대한 사랑을 기억하며, 어떠한 삶의 형편 속에서도 오직 주님만을 신실하게 따르는 진짜 제자의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
우리가 처한 삶의 자리에서 예수님의 이름을 부끄러워하거나 손해를 보기 싫어 침묵하는 매 순간이 곧 빌라도의 길을 따르는 것과 다르지 않습니다. 주님은 우리에게 거창한 영웅적 순교를 매일 요구하시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가정과 일터에서 진리의 말씀대로 살아가려는 정직한 순종을 원하십니다. 십자가에서 흘리신 보혈의 공로로 죽음에서 생명으로 건짐을 받은 바라바와 같은 우리이기에, 이제는 그 은혜에 합당한 제자의 삶을 살아가는 결단이 반드시 있어야 합니다.
말씀의 문을 닫으며
말씀의 문을 닫으며
예수님은 우리를 살리시려 가장 소중한 목숨을 십자가 위에서 다 내어주셨습니다.
우리는 내 삶의 평안이나 세상 유익 때문에 주님을 외면하고 방관한 빌라도의 비극적 발자국을 따르지 말아야 합니다. 세월이 흘러 육신이 약해지고 노년의 무게가 삶을 누릴지라도, 나를 위해 생명 주신 예수님의 사랑을 기억하며 끝까지 믿음의 경주를 완수해야 합니다. 날마다 자기를 부인하고 진리이신 주님의 세미한 음성에 귀 기울이며, 세상 풍파 속에서도 언제나 예수님의 편에 서서 전진하는 참된 제자가 되어야 합니다.
주님을 따르는 길에 눈물과 고난이 있을지라도, 주님이 먼저 걸어가신 승리의 길을 힘입어 우리도 넉넉히 이겨낼 수 있습니다. 대속의 가치를 영혼 깊이 새기고 평생 오직 예수님만을 신뢰하며 따라가는 우리 중앙교회 모든 성도님들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