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0705 효신 중고등부 설교문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  •  Sermon  •  Submitted   •  Presen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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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가진 책임은 누구에게 있을까?

본문 : 로마서 5장 12절
로마서 5:12 NKRV
그러므로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죄가 세상에 들어오고 죄로 말미암아 사망이 들어왔나니 이와 같이 모든 사람이 죄를 지었으므로 사망이 모든 사람에게 이르렀느니라

서론 (애초에 지키지도 못할 법을 왜 만드신 거예요?)

여러분, 혹시 이런 생각 해 본 적 있나요?
"하나님은 왜 이렇게 많은 걸 하지 말라고 하실까?" "애초에 지킬 수도 없는 법을 왜 만들어 놓으신 거지?" "어차피 인간은 죄를 짓는 존재라면서, 왜 하나님은 우리한테 완벽함을 요구하시는 걸까?"
특히 교회 오래 다닌 친구들은 이런 고민, 한 번쯤 해 봤을 거예요.
"거짓말하지 말라." "미워하지 말라." "항상 감사하라." "부모님께 순종하라." "음란한 생각도 품지 말라."
이런 말씀들 듣다 보면 머리속에서 이런 생각이 떠올르기도 해요.
"아니, 이걸 누가 다 지켜요?"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거 아니에요?" "애초에 못 지킬 걸 요구하시는 건 너무한 거 아니에요?"
어쩌면 여러분 중에는 이렇게 생각하는 친구도 있을 거예요.
"하나님이 처음부터 인간을 이렇게 약하게 만드셨잖아요." "우리를 죄인으로 만들어 놓고 왜 책임은 우리한테 묻는 거예요?"
이 질문, 사실 새로운 게 아니에요. 수천 년 전부터 사람들이 하나님께 던져 왔던 질문이거든요.
"하나님, 왜 우리를 이렇게 힘들게 하세요?" "왜 이렇게 높은 기준을 세워 놓으셨어요?" "왜 인간은 실패할 수밖에 없게 만드신 거예요?"
그런데 오늘 우리가 함께 살펴볼 말씀은 아주 중요한 사실 하나를 딱 짚어 줘요.
문제는, 하나님이 너무 어려운 법을 만드신 게 아니라는 거예요. 오히려 문제는 이거예요. 하나님은 처음부터 우리에게 충분한 능력을 주셨는데, 그 능력을 스스로 잃어버린 건 인간이었다는 것.
이 차이, 정말 중요해요. 왜냐하면 우리는 죄 이야기만 나오면 자꾸 책임을 다른 곳으로 돌리고 싶어 하거든요.
시험을 망치면 문제 탓, 게임에서 지면 팀원 탓, 혼나면 부모님 탓, 신앙생활이 힘들면 환경 탓, 죄를 지으면 상황 탓.
"어쩔 수 없었어요." "환경이 그랬어요." "쟤가 먼저 그랬어요."
그런데 성경은 오늘, 조금 불편하지만 꼭 들어야 할 진실을 말해 줘요.
망가진 책임은 하나님이 아니라 인간에게 있다.
오늘 우리는 이 질문에 답해 보려고 해요. "도대체 망가진 책임은 누구에게 있을까?" 그리고 이 답을 알게 될 때, 우리는 죄가 얼마나 심각한 문제인지, 왜 예수님이 반드시 필요하신지를 알게 될 줄 믿습니다.

대지 1. 하나님은 우리에게 원래 지킬 능력을 주셨습니다

오늘 살펴볼 교리는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 제9문이에요. 질문은 이래요.
"하나님께서 사람에게 능력이 없는데도 율법을 지키라고 요구하시는 것은 부당한 것 아닌가?"
우리 생각엔 그럴 수도 있어요. 선생님이 시험 범위를 한 번도 안 알려주고 그냥 시험을 보라고 하면 어떨까요? 아쉽겠죠. 운동을 한 번도 안 가르쳐 주고 갑자기 국가대표급으로 뛰라고 하면 그것도 어이없다고 느낄 거예요. 할 수 없는 걸 시키는 건, 분명 말이 안되는 거예요.
그런데 성경은 하나님이 그런 분이 아니라고 말해요. 하나님은 처음부터 인간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기쁘게 순종할 수 있는 능력을 주셨어요.
하나님이 아담과 하와를 만드셨을 때, 그들은 지금 우리처럼 죄에 이리저리 끌려다니는 존재가 아니었어요. 거짓말하고 싶은 마음도 없었고, 질투도 없었고, 미움도 없었고, 하나님을 싫어하는 마음 같은 것도 없었어요. 하나님을 사랑하는 게 너무나 자연스러웠고,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는 게 오히려 기쁨이었어요.
다시 말하면, 하나님은 인간을 처음부터 실패하도록 설계하신 게 아니에요. 하나님은 인간을 선하게, 온전하게 창조하셨어요. 하나님은 우리에게 "지킬 수 없는 법"을 던져 주신 게 아니라, 충분히 지킬 수 있는 존재에게 그 법을 주신 거예요.
그런데 문제가 생겼어요. 인간이 스스로 하나님을 떠나는 길을 선택한 거예요. 사탄의 유혹이 있었지만, 억지로 끌려간 게 아니었어요. 성경은 인간이 고의로, 자발적으로, 스스로 하나님을 거역했다고 말해요.
"하나님보다 내가 더 잘 알겠어." "내 인생은 내가 결정할게." "내 기준이 더 중요해."
이게 바로 죄의 시작이었어요.
여러분, 이런 상황을 한번 상상해 볼까요? 누군가 최신형 스마트폰을 큰맘 먹고 샀어요. 엄청 비싸고 성능도 최고예요. 제조사에서는 두꺼운 사용 설명서도 챙겨 줬고, 충전은 어떻게 해야 하는지, 물에 젖으면 왜 안 되는지, 안전하게 쓰는 법을 자세하게 다 알려 줬어요.
그런데 이 사람은 설명서를 펼쳐 보지도 않고 이렇게 말해요. "에이, 내가 더 잘 아는데?" 그러고는 궁금하다고 물속에 담가 보고, 재미 삼아 뒷판을 뜯어 보고, 정품 충전기 대신 아무 케이블이나 막 꽂아서 써요. 결국 그 스마트폰은 완전히 망가지고 말아요.
그런데 이 사람, 제조사에 전화해서 오히려 화를 내는 거예요. "왜 이런 제품을 만든 거예요?" "왜 이렇게 쉽게 망가지게 만들었어요?" "이거 만든 회사 책임 아닙니까?"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해요? 제조사가 잘못한 걸까요? 아니죠. 설명도 다 해 줬고, 정상적으로 쓸 수 있게 만들어 줬고, 문제가 생기지 않도록 다 준비해 줬어요. 그런데 사용자가 스스로 그걸 무시하고 자기 방식대로 쓰다가 망가뜨린 거예요. 그러면 책임은 누구한테 있을까요? 사용자한테 있는 거예요.
성경은 인간의 타락도 이와 비슷하다고 말해요. 하나님은 인간을 망가진 상태로 만드신 적이 없어요. 선하게 창조하셨고, 하나님을 사랑할 수 있는 마음도 주셨고, 순종할 능력도 넉넉히 주셨어요. 하지만 인간은 하나님의 말씀보다 자기 생각을 더 믿었어요. 그리고 결국 하나님이 주셨던 그 거룩함을 스스로 잃어버렸어요.
그 결과는 너무나 컸어요. 아담 한 사람에게서 끝난 게 아니에요. 죄는 인류 전체에 흘러 들어왔어요. 우리는 태어날 때부터 하나님보다 나를 더 사랑하는 마음을 가지고 태어나요. 누가 가르쳐 주지 않아도 거짓말을 하고, 누가 알려 주지 않아도 욕심을 내고, 누가 교육하지 않아도 이기적으로 행동해요.
왜 그럴까요? 성경은 말해요. 우리는 처음부터 하나님이 주셨던 그 능력을 이미 잃어버린 상태로 태어난다고요.
그러니까 하나님께 책임을 돌릴 수는 없어요. 하나님은 부당하신 분이 아니에요. 오히려 하나님은 완전하신 분이고, 인간은 하나님께 받은 좋은 것을 스스로 잃어버린 존재예요.
그리고 이게 우리에게 아주 중요한 이유가 있어요. 내가 왜 죄인인지를 제대로 알아야, 예수님이 왜 필요한지도 제대로 알 수 있기 때문이에요.
죄는 그냥 실수 몇 번 한 정도가 아니에요. 죄는 하나님이 주신 좋은 것을 잃어버리고, 하나님 대신 내가 주인이 되겠다고 선언한 반역이에요.
그리고 바로 여기서 우리는 다음 질문을 만나게 돼요. "그렇다면 하나님은 죄를 어떻게 바라보실까?" 하나님이 왜 죄를 그냥 넘어가지 않으시는지, 왜 하나님의 공의가 반드시 드러나야 하는지 함께 살펴보기 원합니다.

대지 2. 하나님은 죄를 결코 가볍게 여기지 않으십니다

여러분, 이제 두 번째 질문으로 넘어가 볼게요. "그래도 하나님은 사랑의 하나님이시잖아요. 그러면 그냥 용서해 주시면 안 되는 건가요?"
아마 여러분도 한 번쯤 이런 생각 해 봤을 거예요. "하나님이 사랑이시라면 왜 심판이 있어요?" "왜 벌이 있어요?" "왜 지옥이라는 게 존재하는 거예요?" "그냥 다 용서해 주시면 안 되나요?"
이 질문, 사실 굉장히 중요해요. 왜냐하면 우리는 보통 하나님을 이야기할 때 '사랑'은 좋아하면서 '공의'는 부담스러워하거든요. 하지만 성경은 하나님이 사랑이신 것처럼, 동시에 완전히 의로우신 분, 완전히 공의로우신 분이라고 말해요.
오늘 배우는 소요리문답 제10문과 제11문은 이렇게 가르쳐 줘요. 하나님은 모든 죄를 몹시 싫어하신다. 그리고 하나님은 죄를 반드시 심판하시는 의로운 재판장이시다.
여기서 말하는 죄는 두 종류예요.
첫 번째는 원죄예요. 우리가 태어날 때부터 이미 가지고 있는 죄 된 본성이에요. 하나님보다 나를 더 사랑하는 마음, 내 마음대로 살고 싶은 마음, 하나님 없이도 괜찮다고 생각하는 마음이죠.
두 번째는 자범죄예요. 우리가 실제로 살아가면서 짓는 죄들이에요. 거짓말, 미움, 시기, 음란한 생각, 부모님께 대한 불순종, 친구를 상처 주는 말, 대충 드리는 예배, 하나님보다 세상을 더 사랑하는 마음.
하나님은 이 모든 죄를 가볍게 여기지 않으세요. 왜냐하면 죄는 그냥 규칙 몇 개 어긴 문제가 아니기 때문이에요. 죄는 하나님을 향한 반역이에요.
죄는 이렇게 선언하는 거예요. "하나님, 저는 하나님 없이 살겠습니다." "하나님보다 제가 더 중요합니다." "하나님이 왕이 아니라 제가 왕입니다."
여러분, 이렇게 한번 생각해 볼까요? 친구와의 약속을 어기는 것과, 한 나라의 대통령을 대놓고 모욕하는 것은 같은 무게일까요? 아니죠. 대상이 달라지면 죄의 무게도 달라져요. 부모님께 무례하게 말하는 것과 학교 선생님께 욕을 하는 게 똑같지 않은 것처럼요. 상대가 누구냐에 따라 잘못의 크기가 완전히 달라지는 거예요.
그러면 우리 죄는 누구를 향한 걸까요? 우주를 창조하신 분. 우리에게 생명을 주신 분. 지금 이 순간도 우리를 숨 쉬게 하시는 분. 영원히 거룩하신 분. 만왕의 왕이신 하나님을 향한 죄예요.
그래서 죄는 결코 작은 문제가 아니에요. 우리는 죄를 너무 쉽게 생각할 때가 많아요. "한 번쯤은 괜찮겠지." "다들 하는데 뭐." "나는 그렇게 나쁜 사람은 아니잖아." 하지만 하나님은 죄를 보실 때 그렇게 말씀하지 않으세요. 왜냐하면 하나님은 완벽하게 거룩하신 분이시기 때문이에요.
여기서 한 가지만 더 생각해 볼게요. 여러분이 뉴스에서 정말 끔찍한 사건을 봤다고 해 봐요. 누군가 큰 범죄를 저질러서 많은 사람을 아프게 하고, 피해자들의 삶을 완전히 무너뜨렸어요. 그런데 재판장이 법정에서 이렇게 말하는 거예요. "나는 착한 사람이야." "나는 사랑이 많은 사람이니까 그냥 다 용서해 줄게." "벌은 필요 없어."
여러분은 그 재판장을 어떻게 생각할까요? 아마 이렇게 말할 거예요. "그건 정의롭지 않아요." "이상한 판사예요." "그러면 피해자는 어떡해요?" "그건 착한 판사가 아니라 나쁜 판사예요." 왜냐하면 진짜 정의로운 재판장이라면, 죄를 죄라고 분명히 말해야 하기 때문이에요. 죄를 그냥 덮어 버리는 건 사랑이 아니에요. 그건 정의를 무너뜨리는 일이에요.
하나님도 마찬가지예요. 하나님은 사랑이시지만, 동시에 완벽하게 의로우신 분이세요. 그래서 하나님은 죄를 보고도 못 본 척하지 않으세요. "괜찮아." "넘어가자." "이번엔 봐줄게." 이렇게 말씀하시는 분이 아니에요. 하나님은 반드시 죄를 심판하세요. 왜냐하면 하나님은 완전한 재판장이시기 때문이에요.
그런데 여기서 더 놀라운 사실이 있어요. 우리는 종종 죄를 그냥 실수 정도로 생각해요. 하지만 성경은 죄를 우주 최고의 왕을 향한 반역이라고 설명해요. 어떤 사람이 한 나라의 왕에게 대놓고 반역을 일으켰다면, 그건 정말 심각한 범죄가 되겠죠. 그런데 우리의 죄는 인간 왕을 거역한 정도가 아니에요. 온 우주의 창조주이시고 영원하신 하나님을 거역한 거예요. 그러니 죄의 결과가 무거운 건 너무나 당연한 일이에요.
그래서 성경은 죄의 삯은 사망이라고 말해요. 하나님은 이 세상에서도 죄를 심판하시지만, 마지막 날에는 완전한 심판을 행하실 거예요.
이 이야기는 우리를 겁주려고 하는 이야기가 아니에요. 오히려 하나님이 얼마나 거룩하신 분인지 깨닫게 하기 위한 말씀이에요. 그리고 동시에 우리가 얼마나 구원이 필요한 존재인지를 알게 하기 위한 말씀이에요.

결론 — 공의를 알아야 십자가가 놀라워집니다

여러분, 오늘 말씀은 사실 마음을 좀 무겁게 만들 수 있어요. "내가 죄인이구나." "하나님은 죄를 그냥 넘어가시는 분이 아니구나." "내 힘으로는 하나님 앞에 설 수 없겠구나." 이런 생각이 들 수도 있어요.
그런데 이건 절망으로 끝나는 메시지가 아니에요. 오히려 복음을 제대로 이해하기 위한 가장 중요한 출발점이에요. 우리가 하나님의 공의를 모르면, 십자가의 은혜도 제대로 이해할 수 없거든요.
만약 죄가 별거 아니라면, 예수님이 굳이 십자가에 달리실 이유가 없어요. 만약 하나님이 그냥 마음 좋은 분처럼 "다 괜찮아"라고 하실 수 있는 분이라면, 예수님의 피 흘림도 필요 없었을 거예요.
하지만 하나님은 공의로우신 분이에요. 죄는 반드시 심판받아야 해요. 하나님의 정의는 절대로 무너지지 않아요.
그런데 놀라운 게 뭔지 아세요? 바로 그 심판을, 우리가 아니라 예수님이 대신 받으셨다는 거예요. 우리가 받아야 할 형벌을 예수님이 담당하셨고, 우리가 갚을 수 없는 죄값을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다 지불하셨어요.
그래서 다음 주에 배우게 될 복음은 정말 충격적인 이야기예요. 완벽한 공의를 가지신 하나님께서, 완벽한 자비를 베푸셨다. 이게 바로 복음이에요.
그러니까 이번 한 주 동안, 우리 자신을 한번 돌아보면 좋겠어요.
나는 죄를 너무 가볍게 여기고 있지는 않은가? 나는 하나님보다 내 마음을 더 믿으며 살고 있지는 않은가? 나는 하나님 앞에서 겸손한 죄인이라는 사실을 잊고 있지는 않은가?
우리가 죄의 무게를 알아 갈수록, 우리는 더 이상 다른 사람을 쉽게 판단하지 못하게 될 거예요. 그리고 십자가를 볼 때마다 더 깊은 감사와 감격을 경험하게 될 거예요.
이번 한 주는, 하나님 앞에서 겸손히 나 자신을 돌아보는 한 주가 되었으면 좋겠어요.

합심기도

사랑하는 여러분, 오늘 말씀을 들으며 우리 마음속에 떠오르는 모습들이 있을 거예요.
죄를 가볍게 여겼던 모습, 책임을 다른 사람에게 돌렸던 모습, 하나님보다 내 생각과 내 욕심을 더 붙들었던 모습을 하나님 앞에 내려놓기 원해요.
또 하나님이 얼마나 거룩하시고 의로우신 분이신지 깨닫게 해 달라고 함께 기도하면 좋겠어요.
그리고 다음 주 우리가 배우게 될 예수님의 십자가가 얼마나 놀라운 은혜인지 더 깊이 깨닫게 해 달라고 함께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 제 죄를 가볍게 여기지 않게 해 주세요. 하나님 앞에서 겸손한 마음을 주시고, 십자가의 은혜를 더욱 깊이 알게 해 주세요."
이 마음으로 함께 기도하겠습니다.

마침기도

사랑과 은혜가 풍성하신 하나님 아버지.
오늘도 거룩한 주일, 우리를 예배의 자리로 불러 주시고 말씀 앞에 서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 우리 죄가 얼마나 무거운 것인지, 하나님이 얼마나 거룩하시고 공의로우신 분이신지 다시 생각하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죄를 가볍게 여기며 살아왔던 우리의 모습을 용서하여 주시고, 하나님 앞에서 겸손히 자신을 돌아보는 믿음의 사람들이 되게 하여 주옵소서.
오늘 주님께 감사함으로 올려 드린 예물을 기쁘게 받아 주시고, 드리는 손길마다 하나님이 채워 주시는 은혜를 경험하게 하여 주옵소서. 우리의 작은 헌신이 복음의 확장과 교회의 세움을 위해 귀하게 쓰이게 하시고, 드리는 모든 마음 위에 하늘의 기쁨과 감사가 넘치게 하여 주옵소서.
또한 여러 이유로 오늘 예배의 자리를 잃어버린 친구들을 기억하여 주옵소서. 몸이 아픈 친구들, 마음이 지쳐 있는 친구들, 세상의 여러 염려와 유혹 속에 하나님과 멀어져 있는 친구들을 주님이 친히 찾아가 주시고, 다시금 주님의 품으로 돌아오게 하여 주옵소서. 우리 공동체가 그들을 기다리며 사랑으로 품어 주는 공동체가 되게 하여 주옵소서.
늘 보이지 않는 자리에서 중고등부를 위해 기도하며 섬겨 주시는 선생님들을 기억하여 주옵소서. 피곤함 가운데서도 사랑으로 학생들을 돌보게 하시고, 섬김 가운데 낙심하지 않게 하시며, 주님이 주시는 기쁨과 위로와 새 힘으로 채워 주옵소서.
오늘 함께 예배드린 모든 친구들이 새로운 한 주를 살아갈 때에도 하나님을 기억하게 하시고, 학교에서, 가정에서, 친구들 사이에서 그리스도인답게 살아가게 하여 주옵소서. 넘어질 때에는 다시 일어설 용기를 주시고, 유혹 가운데서는 믿음으로 승리하게 하시며, 언제나 예수님을 바라보며 살아가는 한 주가 되게 하여 주옵소서.
다음 주에는 우리를 위해 십자가를 지신 예수님의 놀라운 은혜를 더욱 깊이 깨닫게 하시고, 복음의 감격으로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되게 하여 주옵소서.
우리를 사랑하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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