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의 멍에를 메는 우리가 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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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 그리스의 철학자 중
디오게네스라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디오게네스는 어느 날
대낮에 등불을 들고
아테네 거리를 활보했습니다.
사람들이 미쳤냐고 물었습니다.
그러자 ‘참된 사람을 찾고 있다'고 했죠.
굉장히 창의적이고 머리가 좋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다르게 생각해보자면,
디오게네스라는 인물은
“세상에 참된 인간은 없다”는
자신의 가치관을 표현해낸 것입니다.
인간에 대한 자신의 가치관인
냉소와 절망을 증명하기 위해서 했던 행동인거죠.
그런데 오늘 예레미야 5장 말씀을 보면,
우주를 창조하신 하나님께서
마치 디오게네스처럼 예루살렘 거리에서
등불을 들고 누군가를 애타게 찾고 계십니다.
1. 영적 무감각에 빠진 이스라엘 백성들
1. 영적 무감각에 빠진 이스라엘 백성들
본문말씀,
예레미야 5장 1절부터 4절까지 교독하겠습니다.
너희는 예루살렘 거리로 빨리 다니며 그 넓은 거리에서 찾아보고 알라 너희가 만일 정의를 행하며 진리를 구하는 자를 한 사람이라도 찾으면 내가 이 성읍을 용서하리라
그들이 여호와께서 살아 계심을 두고 맹세할지라도 실상은 거짓 맹세니라
여호와여 주의 눈이 진리를 찾지 아니하시나이까 주께서 그들을 치셨을지라도 그들이 아픈 줄을 알지 못하며 그들을 멸하셨을지라도 그들이 징계를 받지 아니하고 그들의 얼굴을 바위보다 굳게 하여 돌아오기를 싫어하므로
내가 말하기를 이 무리는 비천하고 어리석은 것뿐이라 여호와의 길, 자기 하나님의 법을 알지 못하니
저는 1절 말씀을 읽자마자
창세기 말씀을 편줄 알았습니다.
소돔과 고모라 사건때를 떠올리게 하는
안타까운 일이 예레미야 시대때도
동일하게 일어난 것입니다.
당시 유다 백성들, 이스라엘 백성들은
예루살렘에 여호와의 성전이 있으니
절대 망하지 않을 것이라는
거짓된 평안에 심취해있었습니다.
백성들과 지도자들은 영적 무감각에 빠져서
온갖 불의와 음행과 우상숭배를
자행하고 있었습니다.
그들이 죄를 짓는 것도 안타깝지만
더 안타까운 것은
조상들이 했던 그 죄악의 역사를
스스로 반복시킨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3절 말씀에 나와 있는 것처럼
주님께 맞아도 아픈 줄도 모르고
아직까지도 정신을 차리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이렇게 생각했습니다.
요새 유행하는 드라마처럼
아… 이들에게도 참교육이 필요하구나
이들이 올바른 신앙적인 교육을 받지 못했구나
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전혀 아니었습니다.
예레미야 5장 4절과 5절 말씀에 보면
그들은 올바른 신앙적 교육을
받지 못해서 불의와 죄악을
행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부유하고 유식한 사람들,
특별히 하나님의 법에 대해서
일 평생을 공부한 사람들마저도
고삐풀린 망아지마냥
제 갈길로 가고 있었습니다.
대체 뭐가 문제일까요?
31절 말씀에 보면 이렇게 나와 있습니다.
새번역 말씀으로 함께 읽겠습니다.
예언자들은 거짓으로 예언을 하며, 제사장들은 거짓 예언자들이 시키는 대로 다스리며, 나의 백성은 이것을 좋아하니, 마지막 때에 너희가 어떻게 하려느냐?”
율법을 잘 모른다고 해서 죄악의 길로 빠지는 것이 아닙니다.
율법을 잘 안다고 해서 반드시 하나님의 기쁨이 되는
삶을 살아내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내 입맛에 맞는 것들만
골라서 들으려고 할 때
모든 것이 무너지는 겁니다.
아무리 예배를 많이 드려도
아무리 말씀을 많이 읽고 알고 있어도,
내 입맛에 맞는 것들을 더 앞세울때
모든 것이 무너지게 되어 있습니다.
이는 이스라엘 백성들만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우리도 잠깐 한 눈 팔면,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삶보다는
그저 나에게 기쁨이 되는 것들을
추구하며 살아가기 바쁜 사람들입니다.
이제는 교회 다닐만큼 다니고
예배도 많이 드려봤고,
설교말씀도 들을만큼 충분히 들어봐서
어차피 그 말씀이 그 말씀이지
내가 다 알아~ 라고 생각하는 순간부터
영적으로 무감각해지기 시작합니다.
그러면서 점점 신앙생활, 하나님의 말씀,
아니 하나님 자체를 내 입맛에 맞게
사용하게 될 수 있습니다.
2. 그럼에도 하나님은 포기하지 않으신다.
2. 그럼에도 하나님은 포기하지 않으신다.
이스라엘 백성들의 삶과 그 역사를 보면
영적으로 무감각해지는 것은
누구든지 사람이라면 거의 피할 수 없는 운명과도 같은
끔찍한 악순환이구나 라는 걸 알 수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벌을 내리시는 것이 참 의미없다고 생각했어요.
어차피 죄를 짓고, 선지자들한테 혼나고,
회개하고, 다시 죄를 짓고...
계속 반복되는데 큰 의미가 있을까?
그냥 다 멸해버리시는게 더 낫지 않을까?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다르셨습니다.
5장 18절 말씀을 새번역으로 읽겠습니다.
“그러나 그럴 때에도, 내가 너희를 완전히 멸망시키지는 않겠다. 나 주의 말이다.
역사를 통해서 검증된 것은
사람은 변하지 않는다는 것이었습니다.
존재 자체로 그 안에 뿌리깊게 박힌 죄악은
징벌을 받는다고 달라지는 것이 아닙니다.
그럼에도 하나님께서 완전히 멸망시키지 않으신 이유는
사람이 자신의 힘으로,
스스로 하나님께로 돌아설 것을
기대하셨기 때문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신실하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언약을 통해
이스라엘 백성들을 절대 버리지 않겠다고 하셨습니다.
어떤 일이 있어도 내가 너희를 버리지 않겠다.
아무리 구제불능의 존재라고 할지라도
너희를 끝까지 포기하지 않겠다고
하나님께서 예레미야를 통해 선포하신 것입니다.
앞서 말씀드렸던 디오게네스라는 인물은
자신의 가치관을 증명하기 위해서
등불을 들고 사람을 찾아다녔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심판 속에서도
우리 모두를 구원할 근거를 필사적으로 찾으시는
아주 고통스럽지만 아주 뜨거운 사랑을
우리에게 보여주신겁니다.
그 하나님의 신실하심이
예레미야 31장 33-34절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33 …내가 나의 법을 그들의 속에 두며 그들의 마음에 기록하여…
34 …다시는 각기 이웃과 형제를 가르쳐 이르기를 너는 여호와를 알라 하지 아니하리니 이는 작은 자로부터 큰 자까지 다 나를 알기 때문이라…
이스라엘 백성들이 돌판에 새겨진
하나님의 말씀을 제대로 듣고 행하지 않자,
아예 그 법을 마음에 새겨주시겠다고,
기록해주겠다고 말씀하십니다.
마치 아이를 가르치는데
아이가 숙제를 하도 안 해오니까
옆에 하루종일 붙어서
이거 외워라 저거 외워라 알려주는 것처럼 말이죠.
하나님은 이렇게까지
우리 모두를 포기하지 않는 분이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진실로 신실하신 분이십니다.
그런데 문득 궁금한 것이 생겼습니다.
우리 마음에 하나님의 거룩한 법을
어떻게 새겨넣어 주신다는 걸까요?
주입식으로 막 외워라 외워라
가르쳐주시는 걸까요?
돌판에 무언가를 새기려면
망치를 들고 정을 들어서
돌을 깨야죠, 상처를 내야죠.
우리의 마음에 하나님의 법을 새기려면
누군가는 깨져야하고, 상처를 받아야 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그의 아들 예수그리스도를
깨뜨리셨고 상처입히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를 대신해서 깨지고 상처받는 것을
아주 기쁨으로 감당해내셨습니다.
이로 말미암아 그는 새 언약의 중보자시니 이는 첫 언약 때에 범한 죄에서 속량하려고 죽으사 부르심을 입은 자로 하여금 영원한 기업의 약속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의 법을 억압이자 멍에라고 생각하고
다 부숴버렸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우리가 스스로 부러뜨린 멍에를
묵묵히 주워 모아서
십자가라는 멍에를 만들어
대신 짊어지셨습니다.
그런 예수님과 함께면
아무리 구제 불능인 우리도,
틈만나면 죄의 길로 걸어가려는
연약하고 무지한 우리도
하나님의 자녀로써 살아갈 수 있습니다.
이 얼마나 놀라운 사랑이고,
이 얼마나 놀라운 의지입니까
그리고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회복된 의지와 마음을 가지고
기꺼이 그리스도의 멍에에 복종하는
순종의 자리로 나아가야 합니다.
오늘 하루,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로써,
하나님의 기쁨이 되어 살아갈 수 있도록
우리를 인도하시는 예수님을 만나는
귀한 하루 되시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또한 그런 예수님과 함께
그리스도의 멍에를 지고
매일의 삶을 순종의 자리로 나아가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말씀 한 구절 읽고 오늘 말씀을 마치겠습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리하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
말씀에 기반한 개인적기도 : 우리가 늘 하나님의 기쁨이 되는 하나님의 자녀로써의 삶을 살아내기 원합니다. 그러나 주님, 이스라엘 백성들이 그랬던 것처럼 우리의 힘으로는 도저히 거룩한 삶을 살아낼 수가 없습니다. 그렇기에 날마다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서 피 흘리신 주님을 의지합니다. 항상 겸손하게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앞으로 나아가는 우리가 될 수 있도록 도와주시옵소서.
교회사역을 위한 기도&교회소식 : 오늘과 내일 교회에서 이루어질 사역들을 위해 함께 기도하길 소망합니다. 특별히 이번 주일에는 목자의 삶이 진행됩니다. 목자님들이 모여서 은혜를 나누기도하고 목자로써의 고충과 어려움들을 나누기도합니다. 그 가운데 은혜가 넘치게 하시고, 목자님들의 가정과 삶이 주님의 은혜 안에 든든하게 세워질 수 있도록, 목자로써 맡겨진 영혼들을 사랑과 충성으로 섬길 수 있도록, 각 목장을 통하여 회복과 위로와 전도의 열매가 풍성하게 맺힐 수 있도록 참여하시는 목자님들 가운데 성령의 기름을 가득 부어주시옵소서라고
이 나라와 민족과 사회 및 세계를 위한 기도 : AI 시대가 본격적으로 열리기 시작하면서 정부도 앞장서서 우주항공을 비롯한 첨단제조사업의 거점이 될 만한 곳에 막대한 투자를 하기 시작했습니다. 이미 국민들은 정부에서 어떤 정책을 펼쳐놓든지 자신들의 정치적 색깔로 찬성과 반대로 나뉘어 싸우고 다투고 갈등하기 바쁩니다. 국가가 발빠르게 성장하고 발전하는 것은 감사할 일입니다. 하지만 그 이전에 이 나라의 위정자들과 모든 국민들이 하나님 앞에 먼저 서게 하여 주시옵소서. 갈등과 분열보다는 화합과 배려와 그리고 어쨋든 세워진 지도자를 향해 기도하는 나라로 세워주시옵소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