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놓친 바톤을 이어받으시는 예수님

새벽예배 - 공동체 성경읽기  •  Sermon  •  Submitted   •  Presen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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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 여호수아 14:13-14
Joshua 14:13–14 NKRV
여호수아가 여분네의 아들 갈렙을 위하여 축복하고 헤브론을 그에게 주어 기업을 삼게 하매 헤브론이 그니스 사람 여분네의 아들 갈렙의 기업이 되어 오늘까지 이르렀으니 이는 그가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를 온전히 좇았음이라

Intro (3.5’)

요즘 문득 그리워진 것이 하나 있습니다.
체육대회가 뜬금없이 그립더라고요.
그날 하루는 공부고 뭐고
싹 다 잊어버리고 그저 함께 으쌰으쌰 하는
그 맛에 즐겼던게 체육대회였습니다.
학교마다 체육대회때
다양한 종목을 하지만
체육대회의 꽃은
아무래도 계주일겁니다.
4명이서 계주를 한다고 하면
저는 항상 마지막 주자였습니다.
마지막주자는
제일 빠른 사람이 서는 것이 아니라
승부욕이 가장 강한 사람이 서는 것입니다.
그런데 어쩌다가 제가
3번 주자를 맡은 적이 있었습니다.
그날따라 컨디션이 좋았는지
1,2번 주자 친구들도 너무 잘 달려줬고,
저도 나쁘지 않은 컨디션으로
괜찮게 달렸습니다.
그리고 이제 바톤을 잘 넘겨주면 되는데
바톤을 받는 친구가 잘 넘겨 받지를 못했습니다.
그래서 1등이었던 우리 팀이
갑자기 2등이 되었습니다.
심지어 마지막 주자 친구가 당황했는지
뛰다가 넘어지게 되어서
결국 7개 반 중에서 6등을 하게 되었습니다.
계주는 어쨋든 달리기가 빨라야 승리합니다.
개개인의 역량이 굉장히 중요한 경기입니다.
하지만 결국에는
바톤을 제대로 넘겨주지 못하면
지는 게임입니다.
오늘 여호수아 14장과 15장의 이야기가
실패했던 계주경기에 대한 이야기와
아주 많이 닮아 있습니다.

1. 이미 부어진 은혜로 뛴 사람

여호수아 14장과 15장의 이야기는
땅을 분배하는 이야기입니다.
저는 그 땅을 분배하는 이야기를 쭉 읽으면서
한 사람에게 주목하게 되었습니다.
바로 여호수아의 단짝인 갈렙입니다.
14절 말씀에 갈렙이라는 사람을 이렇게 말합니다.
“이는 그가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를 온전히 좇았음이라”
갈렙은 여호와 하나님을 온전히 좇았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갈렙은 이미 오래 전부터
굉장히 오랜 시간 동안
그의 타협없는 믿음을 유지해왔습니다.
민수기 14장 24절 말씀을
함께 읽겠습니다.
Numbers 14:24 NKRV
그러나 내 종 갈렙은 그 마음이 그들과 달라서 나를 온전히 따랐은즉 그가 갔던 땅으로 내가 그를 인도하여 들이리니 그의 자손이 그 땅을 차지하리라
이때가 무려 45년 전임에도 불구하고
갈렙은 “그 마음이 그들과 다르다”고 했습니다.
이 부분을 히브리어 원문으로 보면,
"다른 영이 그와 함께 있었다"(רוּחַ אַחֶרֶת עִמּוֹ, ruach acheret imo)
라는 뜻입니다.
즉, 갈렙은 하나님의 영이 함께 하고 있었고,
그 다음에
"그가 나를 온전히 좇았다"(מִלֵּא אַחֲרַי, millē acharai, he filled after me)
는 말이 이어집니다.
갈렙이 온전히 하나님을 좇았기 때문에
하나님의 영이 그와 함께 한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영이 먼저 그와 함께 있었고,
그 결과로 갈렙이 하나님을 온전히 좇았던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그에게 하나님의 영을 부어주셨고,
그는 하나님께서 맡겨주신 사명을 따라
여호와 하나님을 온전히 좇았습니다.
"온전히 좇았다"의 히브리어 원어는 מָלֵא (male, to fill, 가득 채우다)입니다.
하나님의 영은 모든 사람과 함께 합니다.
지금도 여전히 우리와 함께 하고 계십니다.
그러나 그 하나님의 영을
내 마음 속에 가득 채울 것인가?
말 것인가?는 각자의 결단이 필요합니다.
그래서 과거에 가나안 땅을 정탐할 때,
열 명의 정탐꾼은 아낙 자손의 크기를 보고
불가능과 두려움으로 자신들의 마음을 채웠습니다.
하지만 갈렙은 가나안 땅으로 인도하신다는
하나님의 약속을 자신의 마음에 가득 채우고
하나님을 온전하게 좇았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십오 년이 지나서도
그는 여전히 가장 험한 산지인 헤브론을
자원하여 나아갑니다.
먼저 받은 것으로 시작된 순종은,
사십오 년이 지나도 흔들리지 않습니다.

2. 손에 쥐고도 놓아버린 사람들

마찬가지로 하나님의 약속은
갈렙 한 사람만을 위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 모두에게
하나님의 약속이라는 바톤을 넘겨주셨어요.
모든 사람에게 하나님의 영이
함께 하고 있었다는 것이죠.
그런데 문제가 생깁니다.
두 구절을 읽어볼건데요,
여호수아 15장 63절과 사사기 1장 19절 말씀을
이어서 읽어보겠습니다.
Judges 1:19 NKRV
여호와께서 유다와 함께 계셨으므로 그가 산지 주민을 쫓아내었으나 골짜기의 주민들은 철 병거가 있으므로 그들을 쫓아내지 못하였으며
하나님께서는 땅을 정복할때
이미 거주하고 있는 모든 사람들을
완전하게 내쫓고 조금도 타협하지 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나 유다자손들은
오늘 여호수아 15장 63절 말씀에 보면
여부스 족속을 쫓아내지 못했죠.
쫓아내지 못한 이유는 하나입니다.
여부스족속에서 철병거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과연 이 철 병거가 있는 것이
정말 어쩔 수 없었던 것일까요?
아니면 철 병거를 보고 유다자손들이
적당하게 타협을 했던 것일까요?
제가 근육운동을 하는 걸 좋아합니다.
근육운동을 하면서 가장 중요한 원칙은
하기 싫어서 내려놓는 것인가?
진짜 더 이상 할 수 없어서 내려놓아지는 것인가?
입니다.
보통은 힘들고 근육이 아파서
하기 싫어서 내려놓습니다.
내가 왜 이렇게까지 고통 받으면서
운동해야해? 라는 생각으로 내려놓습니다.
하지만 근육운동은 그걸 뛰어넘어서
진짜로 못 움직일때까지
밀어붙여야 합니다.
그러나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연약한 사람인지라
하기 싫다, 안 하고 싶다 라는 생각이
수백번 수천번이고 듭니다.
유다자손들이 딱 그랬어요.
여부스 족속이 가진 철병거를 상대하기가
힘들고 두려웠기에 지레 겁을 먹은거죠.
유다 자손들에게는 분명
하나님의 영이 그들과 함께 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니 하나님의이라는 바톤을 꼭 붙잡고
어떻게 해서든 예루살렘 땅에 거주하는
모든 족속들을 다 쫓아내야 했었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하나님의 약속을 잊어버리고
적당하게 타협해서 함께 살아가는 방법을 선택했습니다.
갈렙이 바톤을 잘 넘겨줬는데,
바톤을 잡고 달려가지를 못한 것입니다.
그래서 여호수아가 다시 한 번
사기를 진작시키죠.
Joshua 17:18 NKRV
그 산지도 네 것이 되리니 비록 삼림이라도 네가 개척하라 그 끝까지 네 것이 되리라 가나안 족속이 비록 철 병거를 가졌고 강할지라도 네가 능히 그를 쫓아내리라 하였더라
여호수아가 이렇게 말했던 것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진짜로 뛰어나서가 아니라
진짜로 뛰어나신 하나님께서 백성들과
약속하셨기 때문이었어요.
즉 이스라엘 백성들은 한계에 부딪힌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냥 핑계를 댄 것이었습니다.
배턴을 놓친 것이 아니라,
손에 쥔 채로 내려놓은 것입니다.
신명기 20장 1절에서 하나님은 이미
말과 병거와 백성이 너보다 많음을 볼지라도
두려워하지 말라고 말씀하셨었습니다.
유다 지파는 이 말씀을 몰랐던 것이 아닙니다.
알면서도 타협했습니다. 유혈을 피하려고, 삶의 편의를 위해서.
갈렙 한 사람의 완주가 굉장히 아름답고 순결한 완주였지만
하나님 보시기에 정말 온전히 하나님을 좇는 자였지만,
그것이 팀 전체의 실격을 막지는 못했습니다.
즉 한 사람의 은혜받은 순종도,
다른 사람의 불신앙을 대신 해결해주지는 못합니다.
우리가 지금 손에 쥐고 있으면서도
하나님께서 나에게 바톤을 쥐어주셨음에도
내려놓고 있는 바톤은 무엇입니까?

3. 마지막 주자 — 모두의 실격을 이어받아 완주하신 분

우리는 모두 연약한 인간이기 때문에
달려가다가 수백번이고 수천번이고
이 바톤을 내려놓으면 편하지 않을까?
충분히 많이 달려오지 않았나?
고작 한 족속 남은건데…
한 족속 쯤이야 괜찮지 않을까?
우리는 이렇게 연약하고
실패할 수밖에 없는 인생을 살고 있습니다.
그런 우리에게 한 줄기 빛이 되어주는
놀라운 복음이 찾아왔습니다.
계주 규정에는 이런 것이 있습니다.
앞 주자가 아무리 실수해도,
마지막 주자의 발이 결승선에 닿는지만 봅니다.
로마서 5:19 은 바로 이 원리를 말합니다.
Romans 5:19 NKRV
한 사람이 순종하지 아니함으로 많은 사람이 죄인 된 것 같이 한 사람이 순종하심으로 많은 사람이 의인이 되리라
예수 그리스도는 갈렙처럼 순종의 배턴을 이어받으신 것이 아니라,
유다 지파가 놓아버린 그 바톤,
우리가 지금도 놓고 있는 그 바톤을 대신 주워 드셨습니다.
그리고 그분의 발이 향한 곳은 약속의 땅이 아니라
골고다 언덕이었습니다.
정복을 향한 발걸음이 아니라,
죽음을 향한 발걸음이었습니다.
바로 그 발걸음이 우리에게 진짜 결승선을 열어주었습니다.
여호수아도, 갈렙도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참된 안식을 넘겨주지 못했습니다.
오직 마지막 주자이신 예수 그리스도만이,
우리가 떨어뜨린 그 모든 배턴을 대신 짊어지고 결승선을 통과하셨고,
우리에게 참된 안식을 주셨습니다.

Outro

말씀을 마무리하겠습니다.
여러분, 이 시간 우리 자신에게
정직하게 물어봤으면 좋겠습니다.
신앙생활을 하다보면,
삶을 살아가다보면 우리가 알면서도 놓고 있는
하나님의 약속이 있을 것입니다.
화해해야 할 관계일 수도, 끊어내야 할 습관일 수도,
미뤄둔 순종의 자리일 수도 있습니다.
알고 있지만 편하고 싶어서, 혹은 무언가가 두려워서
하나님의 약속을 신뢰하지 못하고
내려놓았던 내 삶의 그 무언가
그것을 지금 구체적으로 떠올려보는
오늘 하루가 되었으면 합니다.
그리고 기억하십시오.
하나님의 약속을 다시 쥘 힘은
우리에게서 나오는 것이 아닙니다.
이미 완주하신 그리스도께서
그 발걸음을 여러분 안에서
다시 시작하게 하실 것입니다.
오늘 하루, 그 한 가지 자리에서만이라도
다시 발을 떼십시오.
나머지 길은 이미 완주하신 분이 이끄실 줄 믿습니다.
그런 예수 그리스도를 의지하여
오늘 하루를 주님께 온전히 내어 맡기고
예수님의 길을 좇아가는,
하나님의 약속을 붙드는 우리 모두가 되길
간절히 소망합니다.
말씀을 생각하며 함께 기도하겠습니다.
말씀에 기반한 개인적기도 :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내가 너와 늘 함께 하겠다고 말씀해주셨는데, 내가 두려워서, 내가 내 마음을 불안과 염려로 가득 채워놓느라 놓치고 있었던 것들이 있다면 하나님께서 나와 함께 하심을 다시 기억하고, 갈렙처럼 온전히 하나님을 좇을 수 있는 인생되도록 주님 도와주시옵소서라고 기도하겠습니다.
교회사역을 위한 기도&교회소식 : 오늘은 교회에서 하모니합창단 모임이 있습니다. 덥고 습한 날씨 가운데에도 합창을 준비하시기 위해 교회로 발걸음을 하십니다. 비가와서 길이 미끄러운데 우리 어르신들 다치지 않게 도와주시고, 날씨 때문에 기력이 떨어지기 쉬울텐데 지치지 않게 도와주시옵소서. 그리하여 그들의 삶에서 흘러나오는 그 목소리가 하나님의 이름을 영화롭게 하고, 많은 사람들의 마음에 따뜻한 은혜를 흘려보낼 수 있도록 붙들어주시옵소서.
이 나라와 민족과 사회 및 세계를 위한 기도 : 소비자물가가 30개월만에 가장 큰 폭으로 뛰었습니다. 중동전쟁의 여파로 국제 유가가 오르면서 석유류 가격이 25%가까이 올랐고, 그에 따라 식재료들의 물가도 전반적으로 가장 큰 상승폭을 이루게 되었습니다. 7월에는 안정화될 전망이라고 하지만 계속해서 진행되는 전쟁으로 인해 삶의 다양한 면에서 불안을 느끼며 살아갈 수 밖에 없습니다. 그 가운데에서 유다자손들처럼 두려워하는 삶이 아닌 하나님의 영이 모든 사람들과 함께 하심을 믿고, 두려움없이 살아갈 수 있는 믿음을 모든 이들에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메인 아이디어
하나님을 온전히 좇는 자 (14:8-9, 14:14)
Joshua 14:8–9 NKRV
나와 함께 올라갔던 내 형제들은 백성의 간담을 녹게 하였으나 나는 내 하나님 여호와께 충성하였으므로 그 날에 모세가 맹세하여 이르되 네가 내 하나님 여호와께 충성하였은즉 네 발로 밟는 땅은 영원히 너와 네 자손의 기업이 되리라 하였나이다
Joshua 14:14–15 NKRV
헤브론이 그니스 사람 여분네의 아들 갈렙의 기업이 되어 오늘까지 이르렀으니 이는 그가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를 온전히 좇았음이라 헤브론의 옛 이름은 기럇 아르바라 아르바는 아낙 사람 가운데에서 가장 큰 사람이었더라 그리고 그 땅에 전쟁이 그쳤더라
온전히 좇는다는 것은?
하나님을 철저하게 따른다는 뜻
충성하다 : מָלֵא (male) 칼: 가득차다, 채우다; 피엘: 채워지다 (22) // 조금의 타협도 없이 철저히 순종하는 것
철저하게 따른다는 것
믿음의 눈으로 되어져 갈 일들을 바라보는 사람.
하나님의 약속의 눈으로 무언가를 보는 사람. 똑같은 상황을 목격했음에도 누군가에게는 안 될 것들만 보이고 생각난다. 하지만 하나님을 온전히 좇는 사람은 똑같은 상황을 목격했음에도 하나님의 약속을 붙들고 될 것들을 생각한다. (민 32:12. 신 1:36)
백성의 간담을 녹게하지 않는 사람은 하나님을 철저하게 따르는 사람이 아니다.
움직여보지도 않고 이미 모든 일의 결론을 부정적으로 결론짓는 사람은 하나님을 온전히 좇는 사람이 아니다.
약속의 땅을 받는 순간에도 하나님을 철저히 의지한다 (제비뽑기)
근데 갈렙은 왜 헤브론을 요구했을까? // 가장 정복하기 어려운 땅이지만 온전한 믿음을 가진 자였기에 기쁨으로 자원한 것이다. 하나님이 함께 하시면 이길 수 있다고 믿었기에
Numbers 32:12 NKSV
다만 그나스 사람 여분네의 아들 갈렙과 눈의 아들 여호수아는, 나 주를 철저히 따랐으므로 예외이다.’
Deuteronomy 1:36 NKSV
다만 여분네의 아들 갈렙만이 그 땅을 볼 것이다. 그가 정성을 다 기울여 나 주를 따랐으므로, 나는 그와 그 자손에게 그가 밟은 땅을 주겠다’ 하셨습니다.
2. 그렇지만 인간의 온전한 순종에는 반드시 한계가 있다.
여부스 사람을 쫓아내지 못하였고, 그들과 함께 살았다. (63절)
왜일까?
인간의 한계 때문이었다. 병행본문인 사사기 1:19에 보면 여부스족속이 철 병거로 방비하고 있었기 때문에 두려워했음을 알 수 있다.
Judges 1:19 NKSV
주님께서 유다 지파 사람들과 함께 계셨으므로, 그들은 산간지방을 차지할 수 있었다. 그러나 낮은 지대에 살고 있는 거민들은, 철 병거로 방비하고 있었기 때문에 쫓아내지 못하였다.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거룩한 전쟁의 대원칙은 말과 병거와 백성이 우리보다 많음을 볼지라도 두려워하지 말고, 온전하게 다 내쫓아야 한다는 것이다.
Deuteronomy 20:1 NKRV
네가 나가서 적군과 싸우려 할 때에 말과 병거와 백성이 너보다 많음을 볼지라도 그들을 두려워하지 말라 애굽 땅에서 너를 인도하여 내신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와 함께 하시느니라
그들과 함께 살았다는 말 자체가 이미 타협한 것이다. 그것도 말씀이 기록되는 순간까지고 함께 살았다는 건, 하나님의 말씀대로 완전하게 내쫓지 않은 것이다. 더 이상의 유혈사태를 피하기 위해서 적절하게 타협을 본 것이다.
하나님과의 언약에 대한 신뢰의 부족이었다.
갈렙과 극명하게 대비되는 유다지파 전체의 불완전한 순종이다. 하나님의 말씀에는 타협이 없어야 한다.
약속의 땅에 결국 들어가긴 했지만, 적당한 타협 때문에 그들은 하나님의 선물을 완전하게, 그 안식을 온전하게 누리지 못했다.
여호수아조차 공동체 전체의 내면적 불순종을 고쳐 완전한 안식을 줄 수는 없었습니다(히 4:8). 옛 언약의 중보자와 인간 영웅의 한계입니다.
Hebrews 4:8–9 NKRV
만일 여호수아가 그들에게 안식을 주었더라면 그 후에 다른 날을 말씀하지 아니하셨으리라 그런즉 안식할 때가 하나님의 백성에게 남아 있도다
한 사람의 완전하고 타협없는 믿음도 누군가를 구원해낼 수 있는 묘책이 될 수가 없다.
3. 그러나 완전한 단 한 사람의 순종은 모두를 구원해낼 수 있다.
갈렙의 온전함(male)은 예루살렘의 실패를 막지 못했지만, 참된 갈렙이시며 새 언약의 대표자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온전한 순종(롬 5:19)은 우리 공동체 전체의 실패와 죄악(여부스)을 대속하시고 완전한 안식을 완성하십니다.
Romans 5:19 NKRV
한 사람이 순종하지 아니함으로 많은 사람이 죄인 된 것 같이 한 사람이 순종하심으로 많은 사람이 의인이 되리라
여호수아도 갈렙도 그들의 믿음을 통해 이뤄졌던 안식은 영원한 안식의 그림자였을 뿐이었다.
오직 참된 여호수아이신 예수 그리스도만이 십자가의 대속을 통해 우리의 모든 실패를 덮으시고, 우리 영혼에 흔들리지 않는 영원한 안식을 주십니다(히 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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