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호와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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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사도신경
1. 사도신경
2. 찬송가 314장 내 구주 예수를 더욱 사랑
2. 찬송가 314장 내 구주 예수를 더욱 사랑
다윗의 시 곧 성전에 올라가는 노래
1 여호와여 내 마음이 교만하지 아니하고 내 눈이 오만하지 아니하오며 내가 큰 일과 감당하지 못할 놀라운 일을 하려고 힘쓰지 아니하나이다
2 실로 내가 내 영혼으로 고요하고 평온하게 하기를 젖 뗀 아이가 그의 어머니 품에 있음 같게 하였나니 내 영혼이 젖 뗀 아이와 같도다
3 이스라엘아 지금부터 영원까지 여호와를 바랄지어다
〔다윗의 시, 성전에 올라가는 순례자의 노래〕
1 주님, 이제 내가 교만한 마음을 버렸습니다. 오만한 길에서 돌아섰습니다. 너무 큰 것을 가지려고 나서지 않으며, 분에 넘치는 놀라운 일을 이루려고도 하지 않습니다.
2 오히려, 내 마음은 고요하고 평온합니다. 젖뗀 아이가 어머니 품에 안겨 있듯이, 내 영혼도 젖뗀 아이와 같습니다.
3 이스라엘아, 이제부터 영원히 오직 주님만을 의지하여라.
A Song of Ascents. Of David.
1 O Lord, my heart is not lifted up, my eyes are not raised too high; I do not occupy myself with things too great and too marvelous for me.
2 But I have calmed and quieted my soul, like a weaned child with its mother; my soul is like the weaned child that is with me.
3 O Israel, hope in the Lord from this time on and forevermore.
여호와를 겸손히 신뢰하며 부르는 노래
1⁕성전으로 올라가면서 부르는 노래. 다윗에게 속한 것.
(기도)
오, 여호와여, 내 마음은 건방지지 않습니다. 내 눈은 높지 않습니다.
나는 나서지 않았습니다, 분에 넘치는 크고도 놀라운 일들에는.
2그러기보다 나는 눕습니다. 이 몸을 진정시킵니다, 어머니 품 안의 젖 뗀 아이처럼.
이 몸, 젖 뗀 아이 같습니다.
(사람에게 하는 말)
3기다리세요, 이스라엘 백성 여러분, 여호와를.
지금부터 영원까지!
설교
시편은 7가지 장르가 있습니다. 감사, 지혜, 왕, 찬송, 신뢰, 찬양, 애가로 장르가 구성되어 있습니다. 그 중에서 120편에서부터 134편까지는 성전에 올라가면서 부르는 노래입니다. 유대인들은 1년에 세 차례 성전에 와야 했습니다. 절기를 지키고, 제사를 드려야 했습니다.
절기가 되어서 성전에 왔을 때 성전을 순례하면서 또는 성전에 올라가면서 부르도록 만들어진 시이자 노래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성전으로 순례하고 오르면서 하나님을 향한 찬송을 부르는 것입니다.
시편은 우리가 하나님을 향하여 찬송을 부를 수 있도록 잘 만들어졌습니다. 기도가 어려울 때, 찬송이 어려울 때 읽으면 가장 좋은 안내서가 되고 가장 좋은 기도와 찬송이 됩니다. 우리가 무엇을 기도해야 하는지, 우리가 무엇을 하나님께 아뢰야 하는지 시편을 통해 알 수 있습니다.
수천년전의 고백이고, 노래이지만 그 인물들의 상황과 처지가 오늘 우리의 상황과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인간의 고백은 여전하고, 인간의 연약함은 동일합니다.
오늘 우리는 시편 131편 각 3절을 보면서 우리가 하나님을 향하여 기도 또는 고백해야 할 말이 무엇인지 말씀 드리겠습니다. 기도는 무언가를 달라고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을 향한 말 자체가 기도입니다.
무언가를 달라고하기보다는 내 자신이 하나님께 ‘이렇게 하겠습니다.’라고 하는 다짐과 고백도 너무나 필요한 기도이자 꼭 해야하는 마음입니다.
제가 일본에 다녀온적이 있습니다. 그곳에서 새벽예배에 한번 참여한 적이 있었습니다. 한인교회였지만 대부분 일본말들이 더 익숙한 분들이고 오래된 교회이고, 대부분 일본어로 생활하시는 분들이어서 설교도 일본어로 했습니다.
그런데 새벽에도 대표기도를 하시는 순서가 있었습니다. 한 여성분이셨는데요. 제가 무슨 말인지는 다 알아듣지는 못하지만 제 귀에 계속 들리는 것이 있었습니다. 무슨 말이냐면 ‘구다사이’였습니다. 구다사이가 무슨 뜻인가요? ‘주세요’입니다.
우리도 생각해보면 기도할 때 ‘주세요’, ‘주옵소서’라는 말을 굉장히 많이 씁니다. 대부분을 차지할 것입니다. 우리가 쓸 때는 몰랐는데 일본어로 들으니까 ‘구다사이’ 굉장히 뭘 달라고 많이 하는 것 같은 느낌이었습니다.
실제로 우리는 기도할 때 무언가를 달라고 많이 합니다. 이거 주세요. 저거 해주세요. ‘이거 구다사이’, ‘저거 구다사이’ . 물론 우리는 부족한 존재들이기 때문에 높으신 하나님께 구하는 자들입니다. ‘구다사이’의 어원을 보면 ‘구다스’입니다.
물건이나 위치를 ‘위에서 아래로 내리다’의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것이 사람에게 쓰이면서 ‘높은 사람이 낮은 사람에게 물건을 건네준다’의 의미로 발전되었습니다. 일본은 위아래를 확실하게 나누는 문화이기 때문에 ‘구다사이’의 어원적 의미로보면
‘당신의 위치에서 내려와 베풀어 주소서’라는 의미입니다. ‘당신의 높은 위치에서 내려와 낮은 나에게 은혜를 베풀어 주소서’라는 의미입니다. 굉장히 성경적이고 하나님과 우리 사이를 보여주는 의미가 있습니다.
일반 사람들 사이에서도 자신보다 높은 사람에게 정중하게 자신의 요구를 부탁하면서
원하는 것을 얻을 수 있도록 한다는 일본 특유의 겸양 문화가 담겨 있습니다.
우리의 기도는 이처럼 높으신 하나님께 구하는 것입니다. 높으신 하나님께서 낮은 나에게 은혜를 베풀어 달라는 의미입니다. 이렇게 보면 ‘구다사이’가 굉장히 은혜로운 말이 됩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런 의미로만 사용하지 않고 나의 이익을 위해 사용하고, 나만을 위해 사용합니다. 높으신 하나님이 낮은 나를 위해 자비를 구하는 것이 아닌 높은 나를 위해 낮으신 하나님께서 내 목표를 이루어 달라고 구하는 기도가 더 많습니다. 내 이익을 위한 기도입니다.
조금더 깊고 넓은 기도를 하기 위해서는 우리가 구하는 기도만이 아닌 다짐과 고백의 기도들도 해야 합니다. 하나님께 내 의지와 결심과 또는 고백들을 하는 것이죠. 기도는 하나님께 하는 모든 말입니다. 구하는 것만이 기도가 아니라 내가 하나님께 무엇을 하겠습니다. 나는 이렇습니다. 라고 하는 결단과 고백이 곧 기도입니다.
첫번째, ‘우리는 놀라운 일을 하려고 애쓰는 자들이 아닙니다.’
우리는 우리가 무언가 대단하고 놀라운 일을 할 수 있는 것만 같지만 오히려 큰 일을 하려는 자들이 큰 일을 저지르는 경우가 많습니다. 우리는 대단한 일을 할 수 있는 자들이 아닙니다.
오히려 우리가 하는 모든 일들, 지극히 작고 사소한 이 모든 일들이 큰 일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래서 우리가 가져야 할 마음은 1절 말씀처럼 교만함을 내려 놓는 것, 오만함을 내려놓는 것입니다. 1절 말씀을 새번역 성경으로 보면 이렇습니다.
“주님, 이제 내가 교만한 마음을 버렸습니다. 오만한 길에서 돌아섰습니다. 너무 큰 것을 가지려고 나서지 않으며, 분에 넘치는 놀라운 일을 이루려고도 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교만한 마음을 버리기를 원하십니다. 오만한 길에서 벗어나기를 원하십니다. 오히려 우리에게 주어진 분부와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작은 일들이라도 성실하게 하시기를 바랍니다. 인류를 위해서 살아가기보다, 지금 내 옆에 있는 가족과 가까이 지내는 사람들에게 잘하기를 바라십니다.
지금 내 옆에서 나와 함께 사는 사람이 전세계다 라고 생각하는 것이 더 옳습니다.
둘째로 우리는 하나님 안에 젖 뗀 아이처럼 머물러야 합니다.
존 볼비(John Bowlby)의 애착 이론에 따르면, 아기의 울음은 주양육자를 자신에게 가까이 끌어당기기 위한 본능적인 서식 행동입니다.
어린 아이는 엄마가 없으면 웁니다. 낯가림이 시작되면 낯선 사람이 안을 때 웁니다. 이것은 어린 아이가 엄마라고 하는 안정을 찾기 위한 본능적인 울음입니다. 새벽에 자다가도 울면서 깨는 아이는 엄마가 안아주고 토닥여주면 다시 평안히 잠이 듭니다.
김정운 심리학자가 이런 말을 했습니다. 남의 말을 잘 못 알아듣는 사람은 어렸을 때 부모와 스킨십이 부족한 사람이라고 말합니다. 그러면서 아저씨들이 말귀를 못알아듣는 이유도 스킨십의 부족, 만져주는 경험이 부족해서라고 말합니다.
사람은 말 이전에 느낌으로 의사소통을 하는 존재인데 그 중에 가장 기본적인 것이 만지는 것을 통한 교류라고 합니다. 혹시 여러분들 집에 말귀를 잘 못알아듣는 남편분이 계시다면 잘 만져주시기 바랍니다. 손도 잡아주시고, 등도 토닥여주시고, 안아주시고 하셔야 의사소통이 잘 됩니다.
이런 어린 아이 같은 마음이 인간에게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우리 사이도 마찬가지입니다. 인간은 창조주가 아니라 피조물이기 때문에, 우리의 창조주 아버지 품에 안겨야 만족과 평안과 안식을 누릴 수 있습니다. 고대 신학자 아우구스티누스는 말합니다. ‘우리는 오로지 주님을 위해 지으심을 받았나니, 우리 영혼은 주님 안에서 쉼을 얻을 때까지 평안을 모릅니다.’
이렇게 말합니다. 우리는 세상의 중심이 아닙니다. 세상을 나에게 맞추려고 하거나, 세상을 이기려고 하면 절대 맞지 않습니다. 오히려 우리 자신을 하나님께 맞추고, 하나님의 질서에 들어가야 비로소 우리는 하나님의 역사의 퍼즐에 들어 맞는 경험을 하게 됩니다.
그러니 우리 기도는 하나님을 나에게 맞추는 기도를 해서는 전혀 이루어질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오히려 하나님께 하나님, 제 교만함을 내려놓겠습니다. 제 오만한 눈을 낮추겠습니다. 대단한 일을 하려고 애쓰지 않겠습니다. 오히려 주님 안에 안기고 거함으로 평안과 고요를 누리겠습니다.
라고 기도하는 것이 맞습니다. 우리는 무언가 행동을 하기 이전에 존재하는 자로써 하나님과의 관계 속에 잠잠히 거하는 자들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는 이런 말을 많이 듣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무언가 하려고 하지 말고 가만히 있어라, 하나님께 맡겨라 하나님께서 알아서 하실 것이다.
이런 말씀들을 듣습니다. 그러나 실제로 우리는 할 일이 많습니다. 가만히 있을 수 없습니다. 그렇다면 이것은 어떤 말씀이냐면 우리가 하나님 안에 거하는 시간을 가지라는 말입니다. 앞서지 말라는 말씀입니다.
여러분은 지금 이 시간 하나님 앞에 먼저 나와 하루를 하나님께 드리며 시작을 합니다. 이 귀한 시간 우리의 시간과 에너지를 쏟아서 하나님께 드립니다. 그런데 잘못된 것을 구하거나, 시간을 낭비한다면 그것만큼 허무하고 아까운 시간이 없을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 안에 거하지 않고, 기도하지 않고, 평안을 누리지 못하는 이유는 그 경험이 부족하기 때문입니다. 이 시간에 나오셨을 때는 오직 하나님만을 생각하며 내가 마치 어린 아이인 것처럼 하나님 품에 안는 마음과 상상을 하셔야 합니다.
기도할 때 수많은 말들로 하기보다 단순하게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며 하나님께 집중하며 나아가는 것이 더 좋은 방법입니다. 하나님께서 나를 둘러싸고 계시며 나를 안으시고 나와 함께 계시다는 믿음을 가지고 기도할 때 우리는 하나님께서 주시는 평안을 누릴 수 있습니다.
셋째로 여호와를 바라시기를 바랍니다.
여기서 “바랄지어다”는 말씀은 믿음과 기다림과 소망에 대한 의미가 담겨 있는 표현입니다. 여호와를 바란다는 것은 하나님을 믿고 의지하고요. 여호와를 바란다는 것은 기다리는 것이고요. 여호와를 바란다는 것은 소망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복을 주시는 분이십니다. 때로는 책망도 하시고, 고난의 시간도 지나게 하시지만 결국 우리에게 주시는 것은 복입니다. 하나님의 분노와 고난은 결국 우리를 회복시키시고 하나님의 사람으로 만드시고 복있는 사람으로 만들어가시기 위함입니다.
이 소망을 굳게 잡고, 믿고, 기다리는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첫번째는, 하나님은 우리가 먼저 하나님과의 관계 속에서 존재자로 머물러 있기를 바라십니다. 행동하기 이전에 하나님과의 관계가 화목하며 친밀하기를 원하십니다.
두번째는, 그 하나님 안에 안기어 평안히 거하기를 바라십니다.
세번째는, 그 하나님께서 우리를 복 있는 사람으로 만들어가심을 믿고 기대하며 바라기를 원하십니다.
우리 모두가 하나님 앞에서 존재자로 서 있기를 바랍니다. 이 기도 시간이 하나님 품 안에 안기는 시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기도를 통해 하나님을 바라보는 귀한 시간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
기도
하나님, 무엇을 하기 전에 주님 앞에 거합니다. 주님 품에 안깁니다. 세상이 줄 수 없는 평안을 주옵소서. 나를 복있는 사람으로 만들어가실 하나님을 지금부터 영원까지 바랍니다. 의지하며 기대합니다.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