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그 영광을 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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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ohn 1:1–14 NKRV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 그가 태초에 하나님과 함께 계셨고 만물이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니 지은 것이 하나도 그가 없이는 된 것이 없느니라 그 안에 생명이 있었으니 이 생명은 사람들의 빛이라 빛이 어둠에 비치되 어둠이 깨닫지 못하더라 하나님께로부터 보내심을 받은 사람이 있으니 그의 이름은 요한이라 그가 증언하러 왔으니 곧 빛에 대하여 증언하고 모든 사람이 자기로 말미암아 믿게 하려 함이라 그는 이 빛이 아니요 이 빛에 대하여 증언하러 온 자라 참 빛 곧 세상에 와서 각 사람에게 비추는 빛이 있었나니 그가 세상에 계셨으며 세상은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되 세상이 그를 알지 못하였고 자기 땅에 오매 자기 백성이 영접하지 아니하였으나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이는 혈통으로나 육정으로나 사람의 뜻으로 나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들이니라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의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
금요일 저녁입니다. 사람들이 어깨를 스치며 지나갑니다. 그런데 서로 눈을 마주치지는 않습니다. 다들 고개를 숙인 채, 손안의 파란 불빛을 들여다보며 걷습니다. 버스를 기다리는 줄에서도, 모두 화면만 봅니다. 이어폰을 꽂고, 각자의 세계 속으로 걸어 들어갑니다. 거리 위로는 불 꺼진 창문들이 층층이 쌓여 있습니다. 손바닥 안에 온 세상이 다 들어와 있는데, 정작 바로 옆 사람의 얼굴은 좀처럼 건너다보지 않습니다. 그런데 오늘 우리가 함께 펼치는 이 성경은, 이 거리를 진단하기 전에 한 분을 선언합니다. 바로 이 거리로 먼저 걸어 들어오신 한 분입니다. 들어 보십시오.
## ② 본문 봉독 (요 1:1, 5, 10–11, 14)
요한복음 1장 말씀입니다.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
요한이 '말씀'이라고 부르는 이분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빛이 어둠에 비치되 어둠이 깨닫지 못하더라."
여기 세례 요한이라는 증인이 잠깐 지나갑니다. 그는 빛이 아니라, 빛을 가리키는 손가락일 뿐입니다.
말씀은 이렇게 이어집니다. "그가 세상에 계셨으며 세상은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되 세상이 그를 알지 못하였고, 자기 땅에 오매 자기 백성이 영접하지 아니하였으나."
그리고 이 장의 심장과 같은 한 절입니다.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의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
## ③ 본론
### 하나, 태초부터 계신 분입니다. (1:1–5)
요한은 예수님 이야기를 마구간에서 시작하지 않습니다. 세상이 생기기도 전, 태초에서 시작합니다.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잘 들으십시오. '계셨다'고 합니다. 만물은 어느 날 '생겨났고', 이 말씀은 시작도 없이 '계셨습니다.' 그리고 성경은 못을 박습니다.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 그러니 이분은 위인 목록에 한 자리 내어 드릴 분이 아닙니다. 훌륭한 스승, 존경받는 성인 가운데 한 사람이 아닙니다. 이 세상을 지으신 바로 그 하나님이십니다. 예수를 '괜찮은 스승 한 분'으로 재기 시작하는 순간, 우리는 이미 본문을 놓친 것입니다.
### 둘, 오셨는데, 문을 열지 않았습니다. (1:9–11)
그런데 본문은 이상한 말을 합니다. 만드신 분이 자기가 만든 세상에 오셨는데, 세상이 그를 알아보지 못했습니다. "세상이 그를 알지 못하였고, 자기 땅에 오매 자기 백성이 영접하지 아니하였으나." 집주인이 자기 집에 돌아왔는데, 집안 사람들이 문을 열어 주지 않은 것입니다. 남의 동네에 쳐들어오신 것이 아닙니다. 자기가 지으신 동네에, 자기 백성에게 오셨습니다. 오늘 이 거리도 다르지 않습니다. 요즘 세 집 중 한 집은 혼자 사는 집입니다. 사람들은 흔히 이렇게 말합니다. "신이 있을지도 모르지. 그런데 나와는 멀어." 이것이 오늘 이 거리의 정직한 고백입니다. 그러나 본문은 우리에게 되묻습니다. 정말 그분이 먼 것입니까, 아니면 우리가 문을 닫아걸은 것입니까? 그분이 오셨는데, 우리가 문을 열지 않은 것입니다. 이것은 먼 옛날의 이야기만이 아닙니다. 오늘 이 골목, 우리 모두의 이야기입니다.
### 셋,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오셨습니다. (1:12–14)
이제 성경이 일부러 낱말을 바꿉니다. 앞에서는 늘 "계셨다"고 하더니, 여기서는 "되셨다"고 합니다. "말씀이 육신이 되어." 시작도 없이 계시던 그분이, 어느 날 사람이 '되셨습니다.' 그것도 '육신'이 되셨습니다. 요한은 점잖게 '사람'이라 하지 않았습니다. 가장 낮고 연약한 말, '살덩이'를 골랐습니다. 배고프고, 피곤하고, 눈물 흘리는 몸으로 오셨다는 뜻입니다. 원격으로 조종하신 것이 아니라, 우리와 똑같은 살과 피로 오셨습니다.
그리고 본문은 말합니다.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이 '거하시매'라는 말은, 원래 '장막을 치셨다'는 말입니다. 하나님이 하늘 궁전에서 우리를 내려다보신 것이 아닙니다. 우리 골목 한복판에 텐트를 치고, 이사를 오신 것입니다. 하나님이 하나님이기를 그만두지 않으신 채, 진짜 사람이 되셨습니다. 그리고 그것은 구경거리가 되시려는 것이 아닙니다. 성경은 이어서 말합니다.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당신을 자녀 삼으시려고, 그렇게 오셨습니다. 그 얼굴에는 은혜와 진리가 가득했습니다.
## ④ 초청 (고정 복음 코다 A + 자녀 됨 + 공동체 + 찬송)
오늘 이 말씀이 가리키는 분은 결국 한 분,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찾아 올라간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우리를 찾아 내려오셨습니다. 그분은 우리 죄를 대신 지시고 십자가에서 죽으셨고,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나셨습니다. 이것이 좋은 소식입니다. 멀리 계시던 그분이 지금 당신 앞에 와 계십니다. 오늘, 선 그 자리에서 조용히 마음으로 말해 보십시오 — "예수님, 저를 받아 주십시오." 그 한마디면 충분합니다. 온종일 내려다보던 화면에서 고개를 드는 오늘이, 바로 그날일 수 있습니다.
영접하는 자에게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성경은 곧이어 한마디를 덧붙입니다. 그 자녀 됨은 우리 핏줄에서 나는 것도 아니고, 우리 결심에서 나는 것도 아닙니다. 오직 하나님께로부터 납니다. 자녀가 된다는 것은, 오늘부터 혼자가 아니라 한 가족 안으로 들어가는 것입니다. 그 하나님의 백성도, 당신의 자리를 비워 두고 기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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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찬송 152장 「귀하신 예수」를 부릅니다.
> 태초에 하나님과 함께 계시던 그 말씀을,
> 독생자로 우리 가운데 보내신 **성부 하나님의 사랑**과,
>
>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장막을 치시고,
> 은혜와 진리로 충만하신**성자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
> 우리를 핏줄이 아니라 하나님께로부터 새로 나게 하시고,
> 그 자녀 됨을 우리 안에서 증언하시는 **성령의 교통하심**이,
>
> 오늘 이 거리에 서 있는 여러분 모두와 함께 영원토록 있을지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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