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세기 16장
현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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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views고난 속에서 일하시는 하나님과 주시는 위로, 그리고 죄인을 구원하시는 복음과 하나님의 은혜에 관해 살펴보며, 어려움 속에서도 믿음을 지키며 소망하도록 권면한다.
Notes
Transcript
고통의 문제에 대해 본문을 통해 몇 가지 알아보고자 함.
하갈의 삶에 고통이 있었음. 목숨을 걸고 도망칠 정도의 고통이었음.
그럼 고통의 이유가 무엇일까?
하갈의 죄였음. 종이면서도 자신의 주제를 모르고 여주인을 멸시했음.
당시 종의 신분에서 이것은 죽어 마땅한 죄였음.
그러나 하갈은 자신이 왜 이런 고통을 당해야 했는지 몰랐음.
고통의 첫번째 이유는 죄 때문. 때론 내가 아는 죄, 혹은 모르는 죄.
2. 그러나 고통은 죄 때문 만은 아님. 단지 죄 때문이라면 하갈 외에 더 많은 이들이 죄를 짓고 살고 있었던 그 당시에 그들 모두가 그런 고통을 당하진 않았기 때문. 지금도 마찬가지.
죄인이 형통하고 평안하게 살다가 죽는 경우도 허다하게 많음.
이건 삶의 고통이 꼭 죄 때문이라고 할 수 없다는 것을 보여줌.
어떤 사람의 삶에 문제와 고난이 있을 때 죄 때문이지만, 죄 때문이라고 정죄할 수 없음.
왜? 그 사람이나 나나 죄의 경중에 별 차이가 없기에. 우리 안에는 깊이를 알 수 없고, 끊임없이 솟아나는 죄의 샘이 있음. 하나님의 은혜가 더 크기에 은혜에 가리워 죄가 드러나지 않는 것 뿐. 은혜가 사라지면 인간 이하의 모습으로 죄에 끌려 죄를 지을 것. 인간의 악함이란 측량할 수 없는 것. 전쟁 중에 인간이 행하는 악을 볼 때, 짐작할 수 있음. 나도 같은 인간일 뿐.
그러면 어떤 사람의 삶에는 왜 더 큰 고난이 있는가?
그 사람이 복된 자이기 때문임. 하갈, 애굽 여인, 이방여인임에도 하나님께 특별한 복을 받은 자. 물론 구원의 복은 받지 못했음. 그러나 다른 이방인들에 비하면 놀라운 하나님의 은혜를 받은 것.
그러기에 하나님의 계획에 합당하게 준비되어야 했음. 이 때문에 하갈의 삶의 고난이 있었음. 지금 고난 뿐 아니라 앞으로 아브람에게 아들과 같이 쫓겨나는 고난도 받게 됨.
그럼에도 고난은 죄 때문임. 다른 이들은 죄 가운데 그냥 살다가 죽도록 내버려 두시지만, 우리의 죄를 직접 다루셔서 하나님이 쓰시기에 합당하도록 빗으셔야 하기에 고난이 있는 것.
3. 그러나 고통을 겪는 사람의 입장에서는 피하고 싶은 일일 뿐. 복 안 받아도 되고, 하나님께 쓰임 안 받아도 되니 이 문제 없었으면 좋겠다.
그러나 그건 엄청난 교만한 말이다. 내가 나의 삶의 주인인가?
하나님이 나를 그렇게 쓰기 위한 목적으로 만드신 것.
이스마엘은 12절과 같은 삶을 살도록 하나님께서 선택하셨음. 좋아 보이는가?
하갈은 율법을 대표하고 이스마엘은 육신으로 난 자를 대표함. 좋아 보이는가?
그러나 하나님께서 그렇게 쓰시기 위해 택하셨다. 토기장이가 흙으로 자기가 쓰고 싶은 그릇을 만드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나를 하갈이나 이스라엘 같이 쓰시기 위함이 아니라 복의 도구로 만드시기 위해 다른 사람들보다 더 큰 복의 도구로 쓰시기 위해 선택하셨다면 감사해야할 일.
당장 너무 괴롭고 믿어지지 않을 수 있지만, 말씀 안에서, 하나님 그분을 믿는 믿음으로 인내하는 것. 인내하지 않으면 인내하게 된다. 하게 되는 것 보다 자발적으로 하는 것이 더 쉽다.
피조물인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별로 없다. 하나님의 뜻만이 선다.
비인격적인가? 절대 그렇지 않다. 확신하건데 하나님 앞에 서는 날 감사, 감사를 돌릴 것이다. 하나님에게 불평할 수 있는가? 하나님이 좋으신 분이라 그런 것이다. 좋은 아버지가 아들을 훌륭한 사람으로 키우기 위해 힘든 일도 시키고, 때론 책망하고, 어려운 일을 겪게 하여 아들이 훌륭한 사람이 되었다. 그 아버지는 훌륭한 아버지다. 우리는 칭찬한다.
13절: 하나님은 하갈을 감찰하셨다. 그의 고통을 아셨다. 이방여인 하갈에 대해서, 하나님의 자녀의 직임이 아닌 하나님의 자녀를 대적하는 도구로 택함받은 이의 고통도 감찰하셨다.
하나님은 자신이 지으신 피조물에 대해 무관심하지 않으시다. 모든 것을 다 아신다. 천국 뿐 아니라 지옥의 가장 밑바닥까지 모든 것을 속속들이 다 아신다.
우리의 고통도 듣고 알고 감찰하신다. 낙망하지 말자. 하나님을 믿자.
절대 하나님을 원망하거나, 내 삶의 고통에 대해 내가 평가하면서 교만해지지 말아야 한다.
교만하면 고통의 시간 만이 길어질 뿐이다.
이스라엘 백성이 출애굽하고 광야로 나왔다. 가나안 땅으로 바로 들어갈 수도 있었다. 가데스 바네아에서의 반역으로 인해 40년 광야를 돌았다. 만약이란 있을 수 없지만, 모든 것을 하나님께서 알고 계셨겠지만, 그래도 이스라엘 백성이 순종했다면 40년을 허비하지 않았을 것이다.
우리에게 알려진 것보다 감추어진 것이 더 많다. 겸손하게 하나님 앞에 그분의 방법으로 씨름하자. 그분이 되었다고 하실 때까지, 씨름하자. 믿음으로 인내하고 기도로 씨름하고, 소망 안에 감사하자.
성경을 통해, 또 부족한 나의 경험을 통해 알게 된 하나님은 결코 오래 참으시는 분이 아니다.
3 다만 이뿐 아니라 우리가 환난 중에도 즐거워하나니 이는 환난은 인내를,
4 인내는 연단을, 연단은 소망을 이루는 줄 앎이로다
(롬5:3-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