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의 비전
현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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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tes
Transcript
오늘 오후찬양예배는 베드로,바나바회 헌신예배입니다. 베드로,바나바회는 신혼부터 45세까지의 남자로 구성되어 있는 선교회로 교회의 가운데 나이 대에 해당합니다. 교회에서 허리와 같이 중심이고, 힘의 역할을 감당하는 선교회라고 할 수 있습니다. 교회의 여러 중요한 일들을 맡으며 교회를 세우는 중요한 역할을 감당하셔야 하는 분들이죠.
오늘 헌신예배를 드리는 이분들께 본문 말씀을 통해 하나님께서 교회에 가지고 계신 비전에 대해 나누고자 합니다. 혹시, 이분들 가운데 현대의 교회의 모습에 대해 실망하시는 분들이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동감합니다. 현대의 교회는 영적인 능력을 많이 잃어버렸습니다. 그럴지라도 성경을 통해 보여주시는 교회에 대한 하나님의 비전은 결코 그렇게 약한 모습이 아닙니다. 그리고 저는 하나님께서 분명히 이 비전대로 교회를 회복시키실 것을 확신합니다.
저에게도 교회의 연약한 모습들이 보입니다. 아니 여러분보다 더 잘 보일 것입니다. 그러나 크게 실망하지 않습니다. 교회를 향한 하나님의 비전을 알고, 하나님께서 그 비전을 이루실 줄 믿기 때문입니다. 함께 예배를 드리는 여러분께도 이 시간에 교회를 향한 하나님의 비전이 깨달아지시기를 원합니다. 그리고 그 비전을 붙드시길 바랍니다. 그래서 믿음으로 말씀을 붙들고 순종하는 바나바, 베드로회 여러분을 통해 우리 경천교회가 말씀대로, 하나님의 뜻대로 세워지길 바랍니다.
이제 하나님께서 교회에 가지고 계신 비전을 성경을 통해 살펴보겠습니다. 그리고 그 비전이 어떻게 이루어지는지 보겠습니다. 마지막으로 우리가 우리의 자리에서 어떻게 행해야 하는지 구체적인 지침을 나누겠습니다.
첫째, 하나님께서는 교회에 비전을 가지고 계십니다.
하나님께서 교회를 세우신 것은 세상을 창조하시듯이 말씀으로만 하신 것이 아니었습니다. 온 우주 만물을 창조하실 때는 말씀으로 창조하셨습니다. 그러나 교회는 그것과는 다른 과정을 거쳐 만드셨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그랬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구약에 나타난 교회의 모형입니다. 그래서 신약에서는 이스라엘 공동체를 광야 교회라는 이름으로 지칭하였습니다.
행 7:38 시내 산에서 말하던 그 천사와 우리 조상들과 함께 광야 교회에 있었고 또 살아 있는 말씀을 받아 우리에게 주던 자가 이 사람이라
이 사람은 모세를 가리킵니다. 모세가 우리 조상들, 즉 이스라엘 백성과 함께 광야 교회에 있었다고 기록합니다. 광야에 있던 이스라엘 백성을 교회라고 지칭하는 것입니다. 영어로는 church in the wilderness입니다. 광야에 있는 교회.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을 교회 공동체로 세우실 때 말씀으로만 하지 않으셨습니다. 애굽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구원하시고, 홍해를 통과하여 광야로 이끄셨습니다. 이때에도 어린양의 피에 의한 대속이 필요하였습니다. 애굽에서 나오는 분리가 필요하였습니다. 홍해를 통과해야 했고, 광야라는 이전에 살던 곳과는 다른 장소가 필요했습니다.
이는 신약의 교회의 모형으로 우리에게 주어진 것입니다. 신약의 교회인 우리들도 예수님의 피로 구속함을 받아, 세상에서 불러내셨습니다. 세례를 받아 이제 세상의 신을 좇아 사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을 나의 주님으로 모시고 그분을 좇아 살겠다고 서약하였습니다. 교회라는 특정한 장소에서 하나님을 예배하게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말씀으로만 아니라 이렇게 심혈을 기울여, 말 그대로 심장과 피를 다 쏟아서 교회를 세우신 대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습니다.
신 4:5-6
5 내가 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명령하신 대로 규례와 법도를 너희에게 가르쳤나니 이는 너희가 들어가서 기업으로 차지할 땅에서 그대로 행하게 하려 함인즉
6 너희는 지켜 행하라 이것이 여러 민족 앞에서 너희의 지혜요 너희의 지식이라 그들이 이 모든 규례를 듣고 이르기를 이 큰 나라 사람은 과연 지혜와 지식이 있는 백성이로다 하리라
왜 하나님의 명령, 규례, 법도를 가르치셨습니까? 그대로 행하게 하시기 위함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율법에 순종하는 모습을 통해 그들을 둘러싸고 있는 이방 민족이 하나님의 율법을 알게 하고, 하나님을 알게 하시기 위함이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의 증인이며, 하나님의 성품을 세상에 보여주는 통로이자 도구였습니다. 물론 이스라엘 백성들이 그 일을 잘 감당하지 못하고 오히려 하나님의 영광을 썩어질 우상과 바꾸며, 그들 때문에 하나님의 이름이 욕되게 되었습니다. 그 결과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의 심판을 받게 되었지요.
구약교회인 이스라엘 백성을 향한 이 목적은 신약교회인 우리에게도 그대로 적용됩니다.
마 5:16 이같이 너희 빛이 사람 앞에 비치게 하여 그들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
우리의 빛, 곧 착한 행실을 통해 세상 사람들이 하나님의 선하심을 알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하시는 것이 우리를 빛으로 삼으신 하나님의 목적입니다. 여기서 착한 행실이란 하나님 앞에 선한 행실입니다. 하나님의 말씀, 하나님의 뜻에 합당한 행실이겠지요. 다시 얘기하면 사랑의 행실입니다. 결국 사도행전 2장에서 유무상통했던 것과 같은 믿는 자들 간에 사랑의 행실이 풍성하면 이를 통해 세상 사람들이 하나님의 사랑을 보게 된다는 것입니다.
사실 성경에서는 대 사회적 구제 사업 같은 건 별로 얘기하지 않습니다. 대부분 성도 간에 참된 사랑을 말합니다. 성경을 기반으로 바로 판단한다면 세상이 우리를 통해 하나님의 사랑을 보지 못하는 이유는 우리가 사회사업을 하지 않아서라기보다 성도 간에 사랑의 모습이 보이지 않아서라고 할 수 있습니다.
교회를 향한 하나님의 비전은 세상에서 구별된 교회가 하나님의 말씀, 곧 사랑의 계명에 순종함으로 세상에 하나님의 사랑을 보여주는데 있습니다. 우리가 여기까지는 대부분 잘 알고 있습니다. 물론 이대로 순종하느냐는 둘째 문제이지만 말입니다.
그러나 교회론의 정수라고 할 수 있는 에베소서에서는 한 걸음 더 나아갑니다.
엡 1:22-23
22 또 만물을 그의 발 아래에 복종하게 하시고 그를 만물 위에 교회의 머리로 삼으셨느니라
23 교회는 그의 몸이니 만물 안에서 만물을 충만하게 하시는 이의 충만함이니라
하나님께서 십자가에 죽으시고 부활하신 예수님을 교회의 머리로 삼으셨습니다. 그리고 교회는 예수님의 몸으로 삼으셨습니다. 단지 하나님의 율법을 순종하는 공동체로만 삼으신 것이 아니라 예수님의 몸으로 삼으셨습니다. 교회가 하나님이신 예수님과 한 몸, 하나라는 말입니다. 그렇게 삼으신 이유에 대해 만물 안에 계시며, 만물을 충만하게 하시는 그 하나님의 충만함이 교회에 있게 하시기 위함이라고 설명합니다.
예수님은 만물을 충만하게 하시는 분이십니다. 그분의 사랑으로 그분의 능력으로 그분의 자비로 그분의 긍휼로 만물을 충만하게 하시는 분이십니다. 그러나 지금 세상이 그분의 충만함으로 충만하지 못합니다. 그래서 세상에 악이 횡행하고 고통하며 증오하며 죽이고, 하나님의 공의가 서지 못하며, 악을 행하는 자가 칭찬을 받습니다.
이런 상태인 세상에 예수님께서 교회에 그분의 충만함으로 충만하게 하시고, 세상에 둘러쌓여 있는 교회를 통해 세상에, 하나님의 충만함이 없는 세상에 하나님의 충만함을 흘려 보내시겠다는 것입니다. 요약하자면, 하나님께서는 먼저 교회를 충만하게 하시고, 교회를 통해 세상을 충만하게 하실 계획을 가지고 계십니다.
몸이 무엇입니까? 몸은 무얼 하기 위해 존재합니까? 머리가 계획하고 생각한 것을 몸으로 이루어내기 위해 존재합니다. 머리이신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이루시고 싶으신 것을 몸인 교회, 우리를 통해 세상에 이루십니다. 그게 단순히 예수님 따로, 우리 따로 있어서 예수님이 명령하면, 우리가 실행하는 정도가 아닙니다. 예수님과 우리가 하나 되어 예수님의 능력, 충만을 우리에게 충만케 하시고, 우리를 통해 세상에 흘려보내시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비전을 가지고 교회를 세우셨습니다. 교회는 구원받은 사람들이 모여서 세상을 떠나기 전까지 서로 위로하며 살다가는 그런 모임 정도가 아닙니다. 교회를 향한 하나님의 비전은 우리의 상상을 초월합니다. 교회를 통해 만물을 충만케 하시려고 합니다. 만물이란 세상의 사람 만이 아니라 피조물까지 포함합니다. 물론 이것은 완성된 교회, 천국의 교회에서 온전히 이루어질 내용이지만, 하나님께서 이 비전을 지상의 교회, 우리 경천교회에서도 기대하시고 계시다는 것은 분명한 사실입니다.
저는 이 비전을 바라봅니다. 어떤 이들은 이 땅의 교회의 현실을 보면서 실망합니다. 비판합니다. 교회에 대한 하나님의 계획이 실패한 것처럼 생각하는 이도 있습니다. 하나님이 교회에 안 계신 것처럼 생각하기도 하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현실이 아무리 암담하여도 하나님께서는 반드시 자신의 뜻을 이루십니다. 저는 교회에 대한 이 비전을 바라봅니다. 그래서 현재 교회가 아무리 이 말씀과 괴리가 있는 것 같아 보여도 실망하지 않습니다. 말씀으로 장래에 이루어질 교회의 모습을 바라봅니다. 그리고 지금 제가 할 일에 충성하고자 애씁니다. 여러분도 이 비전을 같이 꿈꾸며 수고하지 않겠습니까? 만물을 충만케 하는 교회의 모습! 이 비전에 가슴이 뛰지 않습니까? 내 삶을 온전히 던질 만하지 않습니까?
둘째, 그러면 하나님께서 어떤 방법으로 이 비전을 이루어 가실까요?
교회, 즉 예수님의 몸이 처음부터 능력있게 일을 감당하진 못합니다. 우리 몸이 태어나자마자 일하지 못하는 것처럼 교회도 우선 성장하고 자라야 합니다. 오늘 본문에서 바로 교회가 어떻게 성장하는지에 대해 말씀하십니다.
보통 교회와 하나님의 사역에 대해 생각할 때, ‘어떻게 하나님의 일을 해야 하나?’를 먼저 떠올리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교회가 어느 정도 성장해 있나?’를 먼저 생각해야 합니다. 이는 교회의 성도 수나 재정규모를 이야기 하는 것이 아닙니다. 오늘 본문 말씀에 기준한 성장 정도를 말하는 것입니다. 교회가 몸이라고 말씀하셨듯이 유기체이기 때문에 성장하고 자라고 때론 아프기도 하고 약해지기도 합니다. 우리 몸이 어릴 때와 컷을 때, 건강할 때와 병약할 때 각각 다른 일을 감당하고 다른 조취를 취해야하는 것과 같이 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본문 15-16절
15 오직 사랑 안에서 참된 것을 하여 범사에 그에게까지 자랄지라 그는 머리니 곧 그리스도라
16 그에게서 온 몸이 각 마디를 통하여 도움을 받음으로 연결되고 결합되어 각 지체의 분량대로 역사하여 그 몸을 자라게 하며 사랑 안에서 스스로 세우느니라
15, 16절은 같은 내용을 다르게 표현하여 반복한 내용입니다. 15절에 성장하는 방법으로 사랑 안에서 참된 것을 행할 것을 제시합니다. 성장의 목표 혹은 모델은 그리스도입니다. 그리고 16절에서는 15절의 내용을 좀 더 구체적으로 설명합니다. 사랑 안에서 참된 것을 하는 내용이 무엇인지를 설명합니다.
16절을 봅시다. 그에게서, 곧 그리스도에게서 교회인 온 몸이 마디를 통해 도움을 받습니다. 온 몸에 해당하는 교회의 각 지체들이 예수님으로부터 도움을 받습니다. 은혜를 받습니다. 그러나 그냥 받는 것이 아니라 마디를 통해 받습니다. 예수님께 마디를 통해 은혜, 도움을 받아서 연결되고 결합됩니다. 몸의 각 지체인 성도들이 하나님의 은혜를 받음으로 연결되고 결합됩니다. 이렇게 연결되고 결합되면 너와 내가 따로가 아닌 한 몸이라는 것을 인식하고 그의 아픔이 내 아픔으로 그의 기쁨이 내 기쁨으로 느껴지게 됩니다. 그리고 나의 아픔이기에 함께 아파하고, 돕고, 나의 기쁨이기에 함께 즐거워합니다. 이렇게 연결되고 결합되는 것이 먼저입니다. 마디를 통해 예수님께로부터 도움을 받음으로.
다음은 연결, 결합되어 각 지체의 분량대로 역사합니다. 일한다는 말입니다. 눈은 눈대로, 손은 손대로, 발은 발대로, 자기의 분량을 따라 일합니다. 각자에게 맡겨진 직임대로, 은사대로, 믿음대로, 하나님의 교회에서 다른 사람을 돌보고 섬기고, 봉사합니다. 그 결과로 몸이 자라게 됩니다. 이것이 하나님께서 제시하신 몸인 교회가 성장하는 방법입니다.
여기서 핵심적인 것은 마디를 통해 예수님께 도움을 받음으로 이 일들이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마디가 무엇인가는 앞 부분에 설명되어 있습니다. 마디는 각 지체에게 예수님의 도움과 은혜를 공급하는 통로, 도구입니다. 마디는 성도들이 자기의 직임을 잘 감당하여 하나님의 교회를 세우는 일을 할 수 있도록 돕습니다.
11-12절
11 그가 어떤 사람은 사도로, 어떤 사람은 선지자로, 어떤 사람은 복음 전하는 자로, 어떤 사람은 목사와 교사로 삼으셨으니
12 이는 성도를 온전하게 하여 봉사의 일을 하게 하며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려 하심이라
하나님께서 어떤 이들을 사도, 선지자, 복음 전하는 자, 목사, 교사로 교회에 선물로 주셨습니다. 이들은 초대교회에서 목회의 특정 부분들을 담당했던 전임 사역자들을 말합니다. 여기 나오는 교사는 교육부의 교사로 봉사하시는 분들을 지칭하는 것이 아니라 제가 지금 하고 있는 것처럼 하나님의 말씀을 풀어 설명하는 설교자를 말합니다. 목사는 목양에 대한 부분이고, 선지자는 교회에 대한 하나님의 마음을 선포했던 자입니다. 복음 전하는 자는 부흥사와 비슷하고, 사도는 선교사와 비슷합니다.
이 직임들을 교회에 주신 이유는 성도를 온전하게 하여 봉사의 일을 하게 하여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기 위함이십니다. 바로 앞에 마디가 감당했던 일입니다. 곧 마디는 교회에 주신 사역자들을 가리킵니다.
하나님께서 교회를 세상에 하나님의 충만을 흘려보내시기 위해 세우셨는데, 그 일은 교회가 예수 그리스도의 분량으로 자라가는 만큼 감당하게 됩니다. 그리고 교회가 자라가는 방법은 교회에 하나님께서 세우신 사역자를 통해 각 성도가 하나님의 은혜를 받고 서로 연결되어 각자의 직임대로 봉사의 일을 감당함으로 세워져 갑니다.
교회가 얼마나 성장했는가를 분별할 때, 이 말씀을 기준으로 본다면 성도 간에 얼마나 긴밀하여 연결되어 있는가? 각자의 분량대로 얼마나 봉사의 일을 잘 감당하고 있는가? 잘 감당한다는 것은 성령의 능력으로 감당하는 걸 말하겠지요. 성도들은 세워진 사역자를 통해 하나님의 은혜를 충분히 공급받고 있는가? 이런 걸로 교회의 성장의 정도를 측정해 볼 수 있습니다.
이제 하나님께서 교회를 향한 비전을 이루기 위해 우리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 분명해졌습니다. 우리는 먼저 다른 무엇보다 하나님의 은혜를 충만히 받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세우신 사역자를 통해서요. 그러려면 사역자가 충만해야겠지요. 사역자 스스로도 힘써야겠지만, 사역자를 위해 기도하시는 것은 필수입니다. 성도들이 사역자를 통해서 은혜를 받지만, 사역자도 성도들의 기도를 통해서 섭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서로 의지하고 도움을 받도록 만드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충만히 받아 다른 이들과 연결되고 결합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충만히 받아서 그대로 나 혼자 세상에서 살아가는 것이 아닙니다. 그건 주유소와 같은 것입니다. 교회는 주유소가 아닙니다. 연료가 떨어지면 와서 채우고 가고, 연료가 떨어지면 다시 와서 채우는 주유소가 아닙니다. 연결되고 결합되어야 합니다. 그러나 오해하지 말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이것이 세상 사람들이 놀고 즐기고 떠들면서 연결되기 위해 애쓰는 것과는 다르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 안에서 연결되고 결합되어야만 합니다. 어떤 때는 당장 연결과 결합이 어려울 수도 있습니다. 설명하기 어려운 여러 이유가 있겠지요. 그럴 때는 간절함으로 기도하며 때를 기다려야 할 경우도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연결과 결합을 위해 힘쓴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충만히 받아 연결과 결합을 위해 힘쓰며, 동시에 하나님께서 내게 맡겨주신 직임에 충성을 다해야 합니다. 기도하며, 성령의 능력으로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 수고해야 합니다.
교회 안에 각 지체가 이렇게 행할 때 교회는 말씀에 기록된 것과 같이 반드시 성장하게 됩니다. 교회 안에 예수님의 충만한 임재가 분명해지고, 성도 한 명, 한 명이 예수님의 성품의 한 부분을 나타내고, 보여주는 역할을 감당합니다. 교회 안에 실족하고 어려운 성도를 다른 성도들이 돌보고 세워주기 위해 힘씁니다. 교회 안에 사랑의 모습이 풍성해집니다. 교회 안에 예수님의 충만함이 충만해지는 만큼 세상에 그 충만함이 흘러가게 됩니다. 이제 우리는 누가 무어라 명령하지 않아도 각 지체가 하나님의 원하시는 뜻이 무엇인지 알게 되고, 한 마음으로 그 뜻을 이루는데 합력하게 됩니다.
셋째, 오늘 예배에 참여하는 여러분이 감당해야할 일 중 특별히 성도 간에 연합과 결합을 위한 구체적 지침을 알아보겠습니다.
성도 간에 연합과 결합을 약하게 만드는 것은 무엇입니까? 왜 연결과 결합의 방법 대신 약하게 만드는 것을 먼저 살펴볼까요? 우리는 이미 한 몸이기 때문입니다. 오전예배 때 성찬식에 참여했듯이, 우리는 한 피, 한 몸을 먹고 마심으로 한 몸 되었습니다. 사실, 우리가 방해하지만 않으면 우리는 한 몸이고, 예수님의 은혜로 더 연결되고 결합될 것입니다.
자, 성도 간에 연합과 결합을 약하게 만드는 것은 무엇입니까? 잘 아시리라 생각합니다. 서로 미워하고, 다투고, 시기하는 등의 일들은 연결을 끊는 아주 확실한 방법입니다. 누구를 미워하면 그를 섬길 수 없고, 은혜를 흘려보는 것은 아예 불가능하게 됩니다. 그러기에 마귀는 교회 안에서 기회만 있으면 서로 불편한 마음을 가지게 하려고 합니다. 서로 논쟁하거나 싸우게 하려고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명령은 분명합니다.
엡 4:1-4
1 그러므로 주 안에서 갇힌 내가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가 부르심을 받은 일에 합당하게 행하여
2 모든 겸손과 온유로 하고 오래 참음으로 사랑 가운데서 서로 용납하고
3 평안의 매는 줄로 성령이 하나 되게 하신 것을 힘써 지키라
4 몸이 하나요 성령도 한 분이시니 이와 같이 너희가 부르심의 한 소망 안에서 부르심을 받았느니라
겸손하며 온유하고 오래 참으며 용납해라. 그래서 성령이 하나 되게 하신 것을 힘써 지키라라고 명령하십니다. 참지 못하고 용납하지 못하고, 겸손하지 않고, 온유하지 않으면, 즉 화내고, 시기하고, 다투고, 교만하고, 거칠게 하면 성령의 하나 되게 하신 것을 지켜내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부르심에 합당하게 행하라. 우리의 부르심은 만물을 충만케 하시려는 하나님의 비전입니다. 우리 사이에 다투고, 시기하는 것이 개인 간의 문제가 아닙니다. 나만의 문제도 아닙니다. 하나님의 비전을 방해하는 일입니다. 하나님의 큰 비전을 보지 않았느냐? 너희 부르심이 그렇게 큰 데, 성령의 하나 되게 하신 것을 힘써 지켜야 하지 않겠느냐? 이런 말입니다.
사람들은 모두 각자가 다릅니다. 살아온 시간이 다르고, 경험이 다르고, 좋아하는 것이 다릅니다. 성별도 다르고 나이도 다르며, 사는 곳, 사는 정도, 학력 정도, 어느 하나 같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이 없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섭리 가운데 큰 은혜이며 계획의 부분입니다. 다르기 때문에 여러 가지 직임을 감당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다르기에 어려움도 있습니다. 이 차이로 인한 어려움은 당연합니다. 이 어려움을 하나님도 아시기에 겸손과 온유로 오래참고 용납함으로 성령님이 하나 되게 하신 것을 힘써 지키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의 큰 비전 아래 우리 개인의 감정, 생각, 판단 같은 것들은 내려 놓을 수 있지 않겠습니까? 하나님의 명령이나 그분의 비전보다 내 감정, 기분, 판단이 더 중요한 것은 아니지 않습니까? 하나님의 비전을 내 앞에 세웁시다.
우리가 모든 것을 하나님께 받았음에도, 하나님께는 어떤 것도 부족한 것이 없으시기에 우리가 그 은혜에 갚을 수 있는 방법이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뜻을 위해 나를 포기하는 것, 이것은 하나님이 받으실 만한 것입니다. 기뻐하십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 교회를 향한 하나님의 비전을 살펴보았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예수님을 교회의 머리로 삼으시고, 교회를 예수님의 몸으로 삼으심으로 하나 되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예수님께 있는 충만함으로 교회를 충만하게 하시고, 그 충만함을 세상에 흘려보내시기로 계획하셨습니다. 이 일을 감당하기 위해 교회는 성장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교회에 세우신 사역자들을 통해 주시는 은혜를 지체된 성도들은 충만히 받아야 합니다. 그래서 성도들 서로 연결되고 결합되어야 합니다. 연결과 결합을 방해하는 모든 시기, 다툼, 분냄 등을 거부하고 겸손, 온유, 오래참음으로 서로 용납함으로 하나 됨을 지켜야 합니다. 각 지체에 맡겨주신 직임대로 수고하고 봉사함으로 교회를 세워가야 합니다.
그 가운데 교회는 하나님께서 바라시는 데로 세상 가운데 하나님의 충만함을 온전히 흘려보내는 역할을 감당하게 될 것입니다. 이는 하나님의 영광이며, 또한 우리의 영광이기도 합니다.
교회를 향한 하나님의 비전을 위해 나를 포기하고 헌신하는 바나바,베드로회 회원분들, 모든 성도님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을 축원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