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린도전서 4장 (3)
현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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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tes
Transcript
14절: 고린도교인들에게 그들의 교만에 대해 책망한 후 바울은 자신의 의도에 대해 설명하고 있습니다. 고린도교인들을 부끄럽게 하려는 의도가 아니라 그들을 권면하려는 목적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다른 이들의 잘못을 지적하며 부끄럽게 하려는 경우가 있습니다. 치부를 드러내며 자신의 우위를 확인하려는 것입니다. 이것은 교만이 그 주된 동기이기에 어떤 그럴 듯한 말로 포장한다 하여도 결코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일이 아닙니다.
사람들은 종종 교묘하여서 자기 스스로도 속이곤 합니다. 그래서 자신의 본래 나쁜 의도를 자신 스스로도 좋은 의도로 착각하게 만드는 경우들이 있습니다. 자기가 높아지고 싶은 교만이 있는 사람들 중 자기 성찰을 하는 사람들은 그러한 자신의 성향에 대해 인지하고 있을 것입니다. 이런 경우에 자신의 교만의 문제에 대해서는 알고 있는데, 이 말이 타인을 위한 것인지, 자기를 위한 것인지에 대해 구분이 어려울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감동을 구하면 됩니다. 하나님의 감동이 없으면 말하지 않겠다. 그러면 됩니다. 말해서 실수하는 것보다 말하지 않고 실수하지 않는 것, 그리고 남에게 도움이 좀 덜 되는 것이 훨씬 좋습니다. 많은 경우 내가 말하지 않아도 크게 문제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말을 할 때마다 하나님의 감동을 구하는 것이 습관이 되면 말에 실수가 줄어들고, 말의 실수가 줄어들면 소모적이고 불필요한 문제들을 피할 수 있습니다.
바울 사도는 고린도교인들의 죄의 문제를 지적하고 드러내는 것이 그들을 위한 것이라고 분명하게 말합니다. 이런 말씀을 대할 때 어떤 사람들은 어떻게 이렇게 자신에 대해 확신있게 말할 수 있지?라고 의야해 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왜냐면 자신은 자신에 대해 확신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앞에 예를 든 자신의 말의 의도를 정확히 분별하지 못하는 경우와 같은 경우입니다.
그러나 바울 사도의 말이 이상한 것이 결코 아닙니다. 믿음 안에서 성장해 가다보면 눈이 분명하게 열리고, 자신에 대한 인식이 분명해지게 됩니다. 내가 하나님과 어떤 친밀함 가운데 있는지, 나의 영적 상태는 어떤지, 나의 마음의 동기는 무엇인지, 나는 무엇을 원하는지 등등 자신에 대한 인식이 분명해집니다. 그래서 이렇게 말할 수 있습니다. 자신의 동기에 대해 너무 명확하게 알기 때문입니다. 바울 사도가 16절에 하는 말도 그런 맥락에서 진실입니다. 자신의 삶에 대해 너무 객관적으로 알고 있기 때문에 이렇게 말할 수 있는 것입니다. 결코 교만이 아닙니다. 바울 자신의 삶이 성경의 기준에 합당한 모습이기에 고린도교인들도 이렇게 살아야 하기에, 그렇게 살기를 원하기에 분명하게 자신을 본받으라 말하는 것입니다.
바울 사도는 자신의 양심에 거리끼지 않기 위해 최선을 다해 살았던 사람이었고 그래서 분명하게 이렇게 말할 수 있었습니다.
이런 정도가 되면 더 이상 자신의 죄 때문에 씨름하는 단계를 넘어섭니다. 모든 관심과 중심이 다른 사람의 죄를 위해, 다른 사람의 성장을 위해, 예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 맞추어지게 됩니다. 바울 사도가 로마서 7장에서 했던 죄에 대한 탄식은 보통 신앙인들이 겪는 자신의 죄로 인한 갈등과는 조금 다른 우리 안에 거하는 죄 자체, 죄된 본성 자체에 대한 탄식이었습니다. 이런 정도의 믿음의 분량이 바울 사도에게만 허락된 것이 아닙니다. 모든 신앙인들이 이런 수준의 신앙을 누리며 살 수 있습니다. 여기서 더 나아가 예수님과 점점 하나되는 신앙으로 살아갈 수 있습니다. 여러분이 기도의 응답이나, 문제의 해결, 관계적인 괴로움, 결핍, 고통의 해결 정도에 메달리지 않기를 원합니다. 우리에게는 더 높은 수준의 삶이 놓여있습니다. 진정한 자유와 예수님 안에 모든 보화를 누리며, 그분과 친밀한, 그 수준을 넘어 하나되는 삶이 놓여있습니다. 특정한 사람에게만 아니라 모든 그리스도인에게 열려있는 삶입니다. 더 귀하고 더 존귀한 삶을 추구하시기 바랍니다.
15절: 바울 사도는 자신이 고린도교인들을 복음으로 낳았다고 말합니다.
15절과 같이 그리스도 안에서 스승은 많습니다. 그러나 아비는 많지 않습니다. 스승의 자리에 서는 것이 귀한 일이지만 그래도 수월합니다. 스승은 가르침과 관련이 있습니다. 이렇게 사는 것이 잘 사는 것이고, 이렇게 하면 어떻게 되고, 알려주는 사람입니다. 그런 관계입니다. 저는 여러분 앞에 지금 스승과 같은 입장으로 서있습니다.
그런데 아비는 다릅니다. 아들을 책임집니다. 그가 성장하는데 필요한 것이라면 구분하지 않고 모두 공급합니다. 그의 성장에 필요한 고통을 함께 감당합니다. 어려움을 함께 집니다. 넘어지면 일어설 수 있도록 일으켜줍니다. 거리를 두고 이렇게 저렇게 하면 되니까 해봐. 라고 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아비는 많지 않습니다.
아비는 그만큼 많은 책임과 많은 희생이 따릅니다. 어느 정도 성장하지 않고는 아비의 책임을 감당할 수 없습니다. 여러분에게 이런 영적 아버지가 있기를 축원합니다. 또한 여러분이 성장하여 누군가의 영적 아버지가 되시기 바랍니다.
무엇보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아버지 이십니다. 그러나 우리는 땅에서도 아버지가 필요합니다. 직접적으로 우리가 일어설 수 있도록 도와줄 사람이 필요합니다. 우리의 고통 가운데 함께 고통하며 해산의 수고를 해주는 누군가가 필요합니다.
바울 사도가 이렇게 행할 수 있었던 비결이 있었습니다.
빌 1:8 내가 예수 그리스도의 심장으로 너희 무리를 어떻게 사모하는지 하나님이 내 증인이시라
고후 5:14 그리스도의 사랑이 우리를 강권하시는도다 우리가 생각하건대 한 사람이 모든 사람을 대신하여 죽었은즉 모든 사람이 죽은 것이라
예수님의 마음과 심장에 그에게 있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기본적으로 죄인이고 이기적인 자들이기에 예수님의 마음이 아니면, 그분의 사랑이 아니면 누구를 위해 이렇게 행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으로 누군가의 성장을 위해 힘쓰고 수고하고 애쓰면서, 아무것도 바라지 않고 육의 아버지보다 더 진심으로 성장을 기뻐하는 자리에 있을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것이 바로 우리의 상급이 됩니다.
살전 2:19 우리의 소망이나 기쁨이나 자랑의 면류관이 무엇이냐 그가 강림하실 때 우리 주 예수 앞에 너희가 아니냐
성장을 위해 힘쓰십시오. 그래서 영혼을 위해 수고하는 아비가 되시기 바랍니다. 여러분들도 성장을 원하실 거라 생각합니다. 그러나 여러분이 성장을 원할 때, 개인적인 유익을 위해서 성장을 원할 수 있습니다. 좀 더 편해지기 위해, 평안해지기 위해, 마음의 고통에서 놓이기 위해, 자유롭기 위해... 다 좋습니다. 그러나 이런 것이 첫번째 이유라면 여러분은 실망하시기 될 겁니다. 왜냐면 성장하고 나면 그것은 또 그냥 그렇기 때문입니다. 분명 여러분이 원하는 모든 것을 얻게 되지만, 너무 귀하고 좋은 것이지만 그것은 그냥 그래집니다. 마치 병이 들었을 때 너무도 병이 낫기를 원하지만, 나으면 몇일새 그냥 그래지는 것과 같습니다. 여러분이 성장을 추구할 때 그 목표가 예수님의 마음을 얻기 위해, 그분을 얻기 위해, 그분과 더 가까워지기 위해, 그래서 그분이 원하는 삶과 사역에 합당하기 위해, 그 일을 감당하기 위해.. 이런 동기일 때, 여러분은 결코 실망하지 않게 됩니다. 그분을 얻어도 더 깊기에, 알아도 더 알아야 하기에, 예수님과의 관계, 연합에서 오는 만족은 결코 익숙해질 수 없기에, 매일 새롭고 더 깊은 은혜가 있기에 그렇습니다.
성장하십시오. 그리고 섬기십시오. 여러분이 경험하지 못한 새로운 차원의 삶이 여러분에게 예비되어 있습니다. 영원히 남아 칭찬이 될 귀한 삶입니다.
기도
1.코로나, 차별금지법
2.교회(보호), 사역자, 금요기도회, 청년부 부흥
3.환우 – 강길용 집사 아버지. 중환자실. 가정 보호.
김정옥집사(허리수술 회복), 김애연사모(허리 디스크 회복), 이민희자매(신장 회복), 전경애집사(암수술 회복), 홍세은어린이(난치병 회복),최혜림집사(빈혈), 배구연집사(허리 디스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