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린도전서 10장 (5)
현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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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views예수 그리스도의 사역과 십자가의 의미, 그리고 죄인을 구원하시는 복음과 하나님의 은혜에 관해 살펴보며, 그리스도를 따르며 복음에 합당하게 살아가도록 권면한다.
Notes
Transcript
찬 251
8장부터 시작된 우상의 제물을 먹는 문제에 대한 논쟁의 결론을 내리는 부분이 본문의 내용입니다.
14절: 그런즉. 이스라엘 백성들이 세례를 받고, 신령한 음식과 음료를 먹었음에도 우상숭배를 비롯한 죄악을 행하다가 광야에서 멸망을 받았다. 그런즉. 우상숭배하는 일을 피하라.
너희도 우상숭배를 하면 이스라엘과 같이 멸망받을 수 있기에 우상숭배를 피하라고 합니다. 사도 바울은 우상의 제물을 먹는 것과 우상숭배를 같은 선상에서 취급하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우상의 제물을 먹는 것이 단지 음식을 먹는 것이 아니라 우상숭배입니다. 우리가 스스로의 이익을 위해 세상과 타협하는 것, 돈을 얻기 위해 하나님의 기준을 버리는 것이 우상숭배에 해당하는 것입니다. 나는 직접 우상에게 절하지 않아, 나는 돈을 섬기고 있지 않아, 괜찮아. 라고 말하여도 중심의 마음은 결국 하나님보다 재물을 더 의지하고 있기에 우상숭배입니다.
바울 사도는 우상의 제물을 먹는 것과 우상숭배를 다른 것이라고 스스로를 속이는 고린도교인들에게 우상의 제물을 먹는 문제가 왜 우상 숭배인지를 한 번 더 논증합니다.
16-17절:
바울 사도는 고린도교인들의 성만찬을 예로 들고 있습니다. 성만찬의 포도주는 예수님의 피를 의미합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흘리신 피, 그분의 생명으로 말미암아 우리가 구원을 받고 하나님께 가까이 나아감을 얻습니다. 성만찬에서 포도주를 마시는 것은 그분의 피 안에 우리가 속하며 그분의 생명을 우리에게 공급해 주신다는 것을 말합니다.
성만찬에서 떼는 떡은 예수님의 몸을 의미합니다. 십자가에서 그분이 몸을 찢어 자신을 주심으로 우리가 그분을 먹어 양식을 얻게 하셨습니다. 그분의 몸을 양식으로 먹어 우리가 살아갈 수 있도록 하셨습니다. 그분의 몸이 내 안에 들어오고 나는 그분 안에 들어가므로 나는 그분과 하나 됩니다. 내가 떡을 먹는 것은 우리가 그분의 몸에 속하고 그분이 공급하시는 양식으로 살아간다는 것을 말합니다.
그분의 피와 몸을 같이 먹는 우리는 모두 한 분 안에 속한 한 몸이 됩니다.
18절:
사도 바울은 자신의 논증을 확장 시키기 위해 이스라엘의 예를 듭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께 제사를 드릴 때, 제사를 드린 제사장은 그 제물을 먹었습니다. 제물을 먹는다는 것은 그가 제사에 참여했다는 증거였습니다. 또한 화목제물의 경우에는 드리는 사람도 제물을 먹었습니다. 그가 제물을 먹는 것으로 제사에 참여했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사무엘상 9장에는 제사에 참여한 자들이 그 제물을 함께 나누어 먹는 장면도 등장합니다.
사도 바울은 16-18절을 통해서 고린도교인들은 예수님의 피와 살을 먹으므로 그들이 예수님의 속죄 제사, 화목 제사에 참여한 자들이라고 증명하고 있습니다.
고린도교인들이 죄가 사해지고, 하나님과 화목을 이룰 수 있던 것은 그들의 어떤 행위가 아니라 예수님의 십자가의 속죄제사와 화목제사를 통해서였습니다. 고린도교인들이 예수님의 제사에 참여하는 것은 그들이 성만찬에 참여함을 통해서 증명되었습니다.
19-20절:
이제 바울은 우상의 제물과 우상에 대해서 분명하게 말합니다. 이방인들이 제사하는 것은 손으로 만들어진 우상에게 제사하는 것이 아닙니다. 우상의 배후에 역사하는 귀신에게 제사하는 것입니다. 앞의 설명한 제상의 원리에 따라 우상의 제물을 먹는 것은 우상에게 드리는 제사에 참여함을 의미하는 것이며, 우상의 제사는 곧 귀신에게 제사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과 귀신을 함께 섬길 수 있습니까? 불가능합니다.
21절:
바울은 주의 잔과 귀신의 잔을 함께 마실 수 없고, 주의 상과 귀신의 상에 함께 참여하지 못한다고 단언합니다. 그러면 함께 참여할 수 없는데, 함께 참여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어떤 쪽에 참여하지 못합니까? 하나님 쪽에 자동으로 참여할 수 있으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그러나 귀신의 쪽에 참여하게 됩니다.
이것은 성경 전체에서 나타나는 일관된 원리입니다.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기지 못한다. 무슨 뜻입니까? 재물을 섬기는 것을 중단하지 않으면 아무리 하나님을 섬긴다 하여도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 아니다는 뜻입니다.
한 입에서 찬송과 저주가 나오는도다 내 형제들아 이것이 마땅하지 아니하니라 샘이 한 구멍으로 어찌 단 물과 쓴 물을 내겠느냐. 무슨 뜻입니까? 한 입에서 찬송과 저주가 함께 나오지 못한다. 그런데 말로 찬송도 하고 저주도 한다. 불가능하다. 저주하는 입으로 하는 찬송은 말만 그럴듯할 뿐 찬송이 되지 못한다.
우상의 제물을 먹는 자는 귀신의 제사에 참여하는 자이고, 그런 사람은 주의 제사에 참여하지 못하며, 주의 잔을 마시지 못하고, 주의 몸을 먹지 못합니다. 우상 숭배하는 자는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지 못합니다. 그런 뜻입니다.
22절:
하나님을 노하시게 만들려고 하느냐? 너가 하나님보다 강하냐? 이런 우상숭배는 하나님을 노하시게 하는 행위입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에서 멸망을 받았습니다. 그런 것을 알면서 하나님을 노하시기 만들려고 하느냐?라고 묻는 것입니다. 너가 멸망을 받고 싶은 것이냐? 아니면 너가 하나님보다 강해서 하나님의 진노도 무시하는 것이냐?
바울은 고린도교인들의 이런 행위가 성도로서 결코 가당치 않은, 이치에 맞지 않는 행동이라는 것을 이런 반어법으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우상숭배는 하나님 앞에 가증한 죄입니다. 성경은 우리에게 반복해서 속지 말라고 경고하고 있습니다. 구원받았으면, 교회에 나왔으면 어떤 죄를 지어도 하나님 나라에 들어간다. 이런 거짓에 속지 말라고 경고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어제나 오늘이나 동일하십니다. 구약의 하나님도 하나님이십니다. 구약에서 진노하시는 하나님 그분이 우리 하나님이십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신약에서도 소멸하시는 불이십니다. 신약 시대를 사는 우리도 하나님을 두려워해야 합니다. 구약은 신약의 그림자로 그분의 공의가 더욱 두드러지게 나타났을 뿐입니다. 그러나 구약에서도 그분의 공의 안에 하나님의 사랑이 비쳐 보였습니다. 그분의 하나님의 백성들을 향한 절절한 애끓는 사랑이 비쳐 보였습니다. 신약에서는 하나님의 사랑의 정점인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죽으심을 통해 그분의 사랑이 온전하게 드러났습니다. 신약은 그분의 사랑이 전면에 드러났을 뿐입니다. 그러나 그분의 공의도 사랑의 빛 안에서 계속 비추어 집니다. 신약에서도 하나님의 심판에 대해 경고하고, 그분의 진노에 대해 말합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공의의 하나님, 죄를 소멸하시는 불이신 하나님 앞에 설 수 있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공로 때문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식탁, 그분의 제사에 참여하지 않고, 우상을 섬기면서, 세상을 좇고, 세상과 짝하면서, 어떻게 하나님의 진노에서 벗어날 것을 기대할 수 있습니까. 하나님을 너무도 모르기 때문에 그렇게 행동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여러분이 천국에 소망을 가지신다면 철저하게 우상을 버려야 합니다. 모든 악은 모양이라도 버려야 합니다. 이름도 부르지 말아야 합니다. 예수님의 은혜 안에 머물기 위해서 여러분의 모든 마음과 생각과 뜻을 집중해야 합니다. 그분의 은혜에서 멀어지게 하는 모든 것에서 떠나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구원은 그러고도 남을 만큼 귀한 것입니다. 그러기에 만홀히 여기는 사람은 받을 수 없습니다.
항상 주님의 은혜 안에 있기를 힘쓰는 여러분이 되시기 바랍니다.
기도제목
1. 나라와 민족(코로나), 한국교회(회개의 물결, 대면예배 회복)
2. 수림교회(보호), 부흥, 금요기도회, 성도들의 믿음
3. 비전 선교사
-이삭 선교사(00국) -데이빗, 에스떼르 선교사(00국) -존 선교사(00국)
-오미드, 마리암 선교사(00국) -바흐럼 선교사(00국)
-할릴 선교사(00국) -샤흐너즈 선교사(00국)
-후만,어뤠즈선교사(00국) -압신, 파르베네선교사(00국)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