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령께서 하시는 일
현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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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views성령의 임재와 인도하심, 그리고 고난 속에서 일하시는 하나님과 주시는 위로에 관해 살펴보며, 성령을 의지하고 충만한 삶을 살아가도록 권면한다.
Notes
Transcript
찬 195장
우리 교회는 지금 성령강림절에 임하실 성령님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성령님을 맞이 하기 위해서 기도하고, 말씀도 읽고, 어떤 이들은 금식도 합니다. 특별새벽기도회로 서로의 마음을 깨우기 위해 성회로 모이고 있습니다. 이런 모든 일들은 성령께서 친히 감동하시고 교회를 이끌어 가시는 손길이라고 생각됩니다. 하나님의 교회에 성령께서 지금 어떻게 일하시는지 분별하여 그 흐름을 타는 것은 정말로 중요합니다.
성령께서 임하시는 역사가 성령강림절 당일에만 이루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가 마음을 정하고 준비하는 순간부터 성령강림절이 지나고 나서도 성령님의 임하심은 계속되고 증가됩니다. 현재 그런 현상들을 느끼는 분들이 계실 거라 생각합니다.
이 말이 이전에는 우리 교회에 성령님이 계시지 않았다는 말이 아닙니다. 이전과는 다른 차원에서 성령께서 임하실 거라는 말입니다. 더욱 분명하고, 가까이에 임하시고, 그분의 뜻을 뚜렷하게 드러내시며, 그분의 통치를 행사하실 것입니다. 성령께서 임하시면 당연히 우리는 그분께 맞춰야 합니다. 우리가 주인이 아니고 그분이 주인이며, 우리가 하나님이 아니고 그분이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성령님에 대해서 잘 모르는 것 같습니다. 그분이 어떤 분이신지, 그분이 어떤 일을 하시기 위해 오시는지에 대해서 말입니다. 그래서 저는 성령님께서 우리에게 오셔서 어떤 일을 하실지 알아보고자 합니다. 여러분은 이 말씀을 통해서 성령님께서 우리에게 행하실 일들을 기대하시고, 또한 순응하셔야 합니다. 그래야 복이 임합니다. 그분이 통치를 행사하신다고 말할 때는 복만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통치에는 상만 존재해서는 안 되며 벌도 함께 존재해야 되기 때문입니다.
신 18:18-19
18 내가 그들의 형제 중에서 너와 같은 선지자 하나를 그들을 위하여 일으키고 내 말을 그 입에 두리니 내가 그에게 명령하는 것을 그가 무리에게 다 말하리라
19 누구든지 내 이름으로 전하는 내 말을 듣지 아니하는 자는 내게 벌을 받을 것이요
여기서 언급하고 있는 ‘너와 같은 선지자’는 모세 이후에 하나님께서 세워진 모든 선지자를 의미하였지만 모든 선지자는 예수님의 그림자였기에 결국 예수님 의미합니다. 예수님께서 떠나신 후에는 성령께서 그 선지자로 오셨습니다. 따라서 성령님의 명령을 듣지 않는 자에게는 벌이 임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성령께서 어떤 일을 행하는지를 알고 그 뜻에 순종하고 순응하는 것이 우리 삶의 화와 복을 결정하는 사활적으로 중요한 일인 것을 알 수 있으실 겁니다.
본문의 말씀은 예수님께서 잡히시기 전에 제자들에게 말씀하신 가르침입니다. 특히 성령님에 대한 내용이 많은 부분을 차지합니다. 그 이유는 방금 언급한 것과 같이 예수님께서는 이 땅을 떠나시고 성령께서 오시기 때문입니다.
7절:
예수님께서는 실상, 즉 진실, fact를 말하십니다. 진실은 예수님께서 제자들과 함께 있는 것보다 성령께서 함께 하시는 것이 더 유익하다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예수님께서 떠나는 것이 좋은 일입니다. 예수님께서 떠나셔야 성령께서 오시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이 말씀을 통해서 성령께서 우리에게 오시는 것이 얼마나 우리에게 유익한가를 짐작할 수 있습니다. 그러면 성령께서 오셔서 하시는 일이 곧 우리에게 엄청난 유익이 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 유익은 예수님께서 직접 우리와 함께 계셔서 사시는 것보다 더 큰 유익입니다.
8절:
성령께서는 죄, 의, 심판에 대하여 세상을 책망하십니다. 여러분은 성령님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시고 계십니까? 성령께서 오시면 나를 위로하시고, 변호하시고, 나를 치유해주시고, 그렇게 생각하고 있지 않으십니까?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성령께서 책망하신다고 말씀하십니다. 물론 성령께서 위로도 하시고, 치유도 해주십니다. 그러나 성령님이 하시는 일 중 가장 핵심적이고 중요한 일은 책망하는 일이십니다. 여기서 세상을 책망하신다고 하셨으니 나는 아니라고 생각하십니까? 아닙니다. 성령님이 믿지 않는 자들을 책망하십니까? 아닙니다. 믿지 않는 자는 이미 심판을 받았고 그들은 성령님과 전혀 상관이 없습니다. 성령님은 믿는 자들을 책망하십니다. 믿는 자들 안에 아직도 남아있는 그 세상을 책망하십니다. 이생의 자랑, 안목의 정욕, 육신의 정욕, 믿는 자들 속에 계속 남아있는 세상을 책망하십니다. 이것은 성경의 목적과도 일맥상통합니다. 왜 성경을 말하는가 하면 성경은 진리이고, 성령님은 진리의 영이시기 때문입니다.
딤후 3:16-17
16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17 이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하게 하며 모든 선한 일을 행할 능력을 갖추게 하려 함이라
성경의 목적입니다.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합니다. 이것이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뜻입니다. 성령께서 우리에게 행하시는 일과 같습니다.
여러분 제가 우리 교회에서 사역하면서 느낀 바가 있습니다. 내적 치유 사역이 필요하고 긍정적인 효과가 많기에 저도 그 사역을 하고 있지만 부정적인 부분도 있다는 것을 봅니다. 자신의 내면을 돌아보고, 치유에 초점을 맞추다보니 사람들의 자기중심성이 강화될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많을 때는 그런 부분이 많이 상쇄되나 하나님의 은혜가 적은 상태에서 하면 그런 위험이 더욱 커집니다. 이런 위험을 감지하고 청년들 대상으로 가치마치를 진행할 때 내면을 돌아보고, 치유를 하는 이유가 다른 이를 용서하고 하나님을 섬기는데 방해가 되는 것들을 제거하기 위함이라는 것을 반복적으로 강조합니다. 우리의 존재의 목적은 자신의 행복이 아닙니다. 내 상처를 치유하고 문제없는 사람이 되는 것도 아닙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섬기기 위해, 예수님을 위해 존재합니다. 타인을 섬기기 위해 존재합니다.
자기중심성이 강화될 때 하나님 앞에서도 자기를 놓지 못하는 경우가 왕왕 있습니다. 하나님 앞에 나아갈 때도 위로만을 구하고, 자기 상처만 집중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순종하고, 자신의 문제를 보고 고칠 생각을 하지 못합니다. 그러나 성령님은 우리를 책망하시기 위해 오십니다. 이 부분에 대한 생각을 바꾸셔야 합니다. 교회에 나와 예배드릴 때 위로 받기 위해 오시지 마십시오. 회개하러 오셔야 합니다. 하나님과의 관계를 깨뜨리는 죄를 회개하기 위해 말씀을 들으셔야 합니다. 진정한 회개가 이루어질 때 하나님과의 관계가 회복되고 하나님의 복이 임하며 치유와 회복을 경험하게 되는 것입니다. 회개 없이 치유와 회복을 기대하는 것은 하나님을 불의한 분으로 대하는 것입니다. 죄가 있어도 죄를 묵인하는 분이라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이는 하나님을 만홀히 여기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결코 죄를 간과하지 않으십니다.
성령께서 우리에게 임하시는 이유는 우리를 책망하시기 위함입니다. 그분이 우리에게 임할 때 우리는 마음을 열고 그분의 책망을 받아들여야 합니다. 그리고 목숨을 걸고 기도하며 씨름하며 자신을 쳐서 성령님의 책망에 복종해야 합니다. 성령님의 임하심을 기다린다는 것을 그런 성령님의 일하심을 기대한다는 뜻입니다. 여러분 마음이 준비되셨습니까? 성령님께서 여러분 삶의 죄를 비추실 때에 아멘하실 수 있습니까? 너무도 당연한 답인 질문이지만 여러분이 마음을 정하셔야 합니다. 그러면 성령께서 무엇을 책망하시는지 보겠습니다.
9절:
죄에 대하여라 함은 저희가 나를 믿지 아니함이요. 성령께서 죄에 대하여 책망하시는데 그 내용은 예수님을 믿지 않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이 예수님을 믿지 않았던 그때에 성령께서 오셔서 여러분이 예수님을 믿지 않는 것을 책망하셨습니다. 그 책망을 받아들이고 예수님을 주님으로 영접하셨습니다. 그러나 성령님의 죄에 대한 책망의 사역은 일회로 끝나지 않습니다. 우리가 믿음을 가진 후에도 예수님을 믿지 못하는 경우가 너무도 많기 때문입니다.
성경에서 죄의 기준은 명확합니다. 믿음으로 하지 않는 모든 것이 죄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을 믿지 않는 이 죄를 성령께서는 책망하십니다.
10절:
의에 대하여라 함은 내가 아버지께로 가니 너희가 다시 나를 보지 못함이요
예수님께서 이 땅에 계실 때에는 예수님께서 의의 본이 되셨습니다. 제자들이 예수님을 보면 어떤 삶이 의의 삶인지를 명확하게 알 수 있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의 율법을 완전하게 순종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이 땅을 떠나셨습니다. 의의 기준이 없어졌습니다. 사람들 가운데 신앙적으로 성숙한 경우가 있지만 의의 본이 되기에는 너무도 부족합니다. 성령께서 오셔서 의에 대해서 책망하십니다. 이 길이 의의 길이다. 그 길은 불의한 길이다. 성령께서 우리에게 지도합니다.
사 30:20-21
20 주께서 너희에게 환난의 떡과 고생의 물을 주시나 네 스승은 다시 숨기지 아니하시리니 네 눈이 네 스승을 볼 것이며
21 너희가 오른쪽으로 치우치든지 왼쪽으로 치우치든지 네 뒤에서 말소리가 네 귀에 들려 이르기를 이것이 바른 길이니 너희는 이리로 가라 할 것이며
성령님이 의에 대해서 책망하시는 이 소리에 귀 기울이고 순종할 때에 여러분은 하나님의 은혜 아래서 복을 누리며 안전할 수 있습니다. 성령께서는 우리에게 의가 아닌 것을 책망하시고 의에 대해서 깨우쳐 주십니다.
11절:
심판에 대해서 책망하십니다. 이유는 이 세상 임금이 심판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성령께서는 반복해서 심판이 있음을 우리에게 깨우쳐 주십니다. 세상의 유혹 가운데 죄를 지으려는 순간에 우리의 결정과 행위에 대해서 하나님께서 심판하실 것을 깨우쳐 주시므로 그 유혹을 벗어나게 하십니다. 심판에 대해서 말하실 수 있는 이유는 이 세상 임금인 사탄이 이미 심판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사탄의 유혹을 따라가면 그와 함께 멸망하게 된다는 것을 깨닫게 해주십니다. 세상에 속한 육신의 정욕, 안목의 정욕, 이생의 자랑을 쫓고자 할 때에 심판에 대한 두려움이 마음에 생겨야 합니다. 그렇지 않고 세상의 유혹을 좇게 되면 아간이 멸망할 아이성의 물건을 탐하다가 함께 멸망한 것과 같은 일을 겪게 됩니다.
여러분 성령께서 임하셔서 이런 일들을 이루실 것입니다. 이 말이 무슨 의미인지 아시겠습니까? 그동안 삶에서 예수님을 믿지 않고 행했던 부분에 대해 민감한 양심이 된다는 말입니다. 어떤 결정을 할 때마다 의가 아닌 것에 대해 민감한 양심이 된다는 말입니다. 세상의 유혹 가운데 민감한 양심이 된다는 말입니다. 내 맘대로 했던 부분들이 이제는 맘 놓고 하지 못하게 된다는 말입니다. 성령께서 여러분의 양심을 통해 하시는 말씀을 거절하면 하나님의 징계가 임하게 된다는 말입니다. 처음에는 불편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하나님이 우리의 진정한 복이라는 것을 알기에, 하나님을 떠나서는 결코 생명이 없다는 것을 알기에 그분의 임하심을 기뻐합니다.
이 시간에 성령님의 일하심을 사모하는 마음을 구합시다. 우리를 책망하여 주옵소서. 우리의 헛된 행실과 무익한 삶의 모습들을 책망하여 주옵소서. 제가 하나님께 온전한 모습을 변화되기 원합니다. 내가 괜찮은 사람이 되기 위해서가 아니라, 누구의 칭찬을 구해서가 아니라, 하나님의 자녀로서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낼 자가 되기 위해서 변화되기 원합니다. 그렇게 기도합시다.
교회의 연합, 성령님의 임하심, 항존직 선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