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린도전서 14장 (2)

현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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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령의 임재와 인도하심, 그리고 기도와 참된 예배의 의미에 관해 살펴보며, 성령을 의지하고 충만한 삶을 살아가도록 권면한다.

Notes
Transcript
찬 197
방언과 예언에 대한 지침을 계속해서 살펴보겠습니다. 본문은 방언을 말할 때 유의해야 할 점을 가르쳐주고 있습니다. 물론 회중 앞에서 방언하고 예언하는 것에 대한 지침은 26~33절에 나옵니다. 그것은 그 부분을 다룰 때 살펴보기로 하고 본문이 방언을 개인의 덕을 위해 사용할 때 유의할 점을 다루기에 그 부분을 살펴보겠습니다.
방언에 대한 지침을 말하기에 앞서 어떻게 방언을 받는지를 먼저 보는게 논리적으로 맞는 순서이겠지요. 물론 새벽기도회에 참여하는 분들은 대부분 방언 기도를 하시는 분들이시겠지만, 여러분이 다른 이들에게 방언 기도를 받을 수 있도록 도와주거나 설명해 줄 때 필요할 것입니다. 물론 불가피한 상황이 아니라면 당연히 사역자에게 연결해주어야 합니다.
방언 뿐 아니라 모든 은사에 대해서 12장에서 살펴본 것과 같이 성령의 나타나심이라는 관점을 놓치면 안 됩니다. 은사를 받는다는 표현은 은사가 은사자의 의지에 종속된 것 같은 부분이 있기에 받는다는 표현을 쓰는 것이 맞습니다. 그러나 본질적으로 은사의 능력의 근원이 성령님이라는 관점에서 은사는 성령의 나타남이 더 맞습니다.
방언도 어떤 새로운 것을 받는다는 관점이 아니라 성령의 나타남의 관점으로 접근해야 합니다. 그러나 방언의 은사를 받은 분들은 자신의 의지를 따라 방언 기도를 할 수도 있고, 안 할 수도 있습니다. 그런 면에서는 받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방언을 포함한 모든 은사는 성령의 나타남의 결과입니다. 따라서 성령께서 내주하시는 성도는 모두 방언을 할 수 있습니다. 성령께서 나타나시도록 하기만 하면 됩니다. 성경에 기록된 최초의 방언의 현상을 기록한 사도행전 2장을 보면 이 부분이 더욱 분명하게 나타납니다.
행 2:1-4
1 오순절 날이 이미 이르매 그들이 다같이 한 곳에 모였더니
2 홀연히 하늘로부터 급하고 강한 바람 같은 소리가 있어 그들이 앉은 온 집에 가득하며
3 마치 불의 혀처럼 갈라지는 것들이 그들에게 보여 각 사람 위에 하나씩 임하여 있더니
4 그들이 다 성령의 충만함을 받고 성령이 말하게 하심을 따라 다른 언어들로 말하기를 시작하니라
개역개정의 바뀐 번역 중에 여러 부분이 마음에 안 들지만 특히 사도행전 2장은 너무나 잘못된 번역이라고 생각합니다. 2장을 번역한 분은 분명히 우리가 방언 기도라고 생각하는 부분과 사도행전의 방언은 다른 것이라고 반박하려는 의도를 나타내는 것 같습니다. 물론 개역한글은 사도행전 2장 4절, 6절, 8절, 11절을 모두 방언으로 번역했습니다. 이것도 바른 번역은 아닙니다. 영어 성경번역본들이 더 바르게 번역했는데 2장 4절과 11절은 tongue으로, 6절과 8절은 languge로 번역했습니다. 원어에서 두 개의 다른 단어가 쓰였기에 다르게 번역했습니다. tongue과 languge가 모두 언어로 번역될 수 있지만 고전 14장에서 은사로서의 방언을 tongue으로 번역한 것을 보아 사도행전 2장 4절과 11절의 방언은 언어가 아니라 방언으로 번역하는게 맞습니다. 그리고 6절과 8절을 언어로 번역해야 하고요. 물론 번역자가 변명할 말은 있겠지요. 개역한글에서 구분 없던 것을 원어에 맞게 구분지었다. 그러나 그 구분에는 분명 의도가 보이는 것은 어쩔 수 없습니다. 사도행전 2장의 성도들이 말한 것은 방언의 은사가 아니라 언어였다고 말하고 싶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듣는 자들이 자기 지역 방언으로 들었다는 것이지요.
사도행전 2장 4절의 ‘언어’로 번역된 단어는 glw'ssa(글로싸)입니다. 이 단어는 고전 12장과 14장에 ‘방언’으로 번역된 단어와 같은 단어로 말, 방언 뿐 아니라 혀라는 의미를 가지고 입니다. 반면에 사도행전 2장 8절의 ‘방언’으로 번역된 단어는 diavlekto" (디알렉토스)로 말, 언어, 방언 등의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사도행전 2장 4절에서 성도들을 통해서 방언의 은사가 처음으로 나타난 것이 분명합니다. 여기서 중요한 부분은 그들이 어떻게 방언을 말하게 되었느냐입니다. 4절이 핵심인데, 성령의 충만함을 받고, 성령의 말하게 하심을 따라 말했습니다. 방언을 말하는 방법이 정확하게 나와있습니다. 성령의 말하게 하심을 따라 말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성령께서 말하게 하는데로 말하려면 성령의 충만함이 동반하지 않고는 어렵습니다. 방언을 해보지 않은 사람이 최초로 방언을 하기 위해서는 강한 힘이 동반되지 않으면 의심하고, 절제하여서 방언하기 어렵기 때문입니다. 대부분의 경우에 처음 방언하기 위해서는 성령의 충만함이 동반되어야 하기에 집회 같은 곳에 받기가 쉽습니다.
그러나 성령 충만한 사람이 안수하므로 성령의 충만함이 전이되어 방언을 말하게 되기도 합니다.
행 19:5-7
5 그들이 듣고 주 예수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으니
6 바울이 그들에게 안수하매 성령이 그들에게 임하시므로 방언도 하고 예언도 하니
7 모두 열두 사람쯤 되니라
사도 바울이 고린도 지역의 신자들에게 세례를 베풀고 안수하므로 방언을 하게 된 사건에 대한 기록입니다. 예수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았습니다. 그리고 바울의 안수를 통해서 성령의 충만함을 받습니다. 성령의 충만이 그들을 통해 나타나니 방언도 하고 예언도 하게 되었습니다. 이때도 역시 성령의 말하게 하심을 따라 방언을 말했을 것은 분명합니다.
정리하자면 방언은 성령의 말하게 하심을 따라 말하는 것입니다. 성령의 말하게 하심을 강하게 느껴서 말하기 위해서는 성령의 충만함이 필요합니다. 그래서 방언 받는 방법에 대해 말할 때 회개를 말하고, 뜨겁게 기도할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성령의 충만함을 구하면서, 혹은 성령의 충만한 상태에서 방언을 구하면 혀, 입술을 성령께서 주장하시려고 하는 것을 느끼게 됩니다. 그럴 때 혀와 입술에 대한 주권을 놓아버리고 속에서 올라오는 어떤 것, 그리고 입과 혀에 머무는 어떤 것, 에너지와 같은 것에 맡기고 입으로 말하면 됩니다. 성령의 말하게 하심을 따라 말하는 것입니다.
방언의 은사가 어떤 것인지, 성도는 누구나 방언으로 말할 수 있다는 성경적인 지식에 기반한 믿음을 가지고 바르게 구하고 말하면 방언을 쉽게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의심이 많고, 두려움이 많은 사람은 그것 때문에 걸림이 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주시지 않는 것이 아닙니다. 사도 바울은 나는 너희가 다 방언 말하기를 원한다고 하였습니다. 이 말은 하나님의 말씀으로 하나님의 뜻입니다.
그러면 개인의 덕을 세우기 위해서 방언을 말할 때 유의할 점에 대해서 살펴보겠습니다. 12장에서 잠시 언급하긴 했으나 좀 더 자세히 살펴보겠습니다.
14-15절:
방언을 어떻게 말해야 하는지 정확하게 지침을 주고 있습니다. 물론 문맥을 따라 보자면 다른 이들에게 축복할 때 방언으로 먼저 기도하고, 다음에 통역하여 그 내용을 알게 하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 내용은 분명 개인 기도에도 적용되는 내용입니다. 특별히 14절에 내가 영으로 기도하면 나의 마음은 열매를 맺지 못한다는 말씀이 그렇습니다. 영으로 기도하는 방언 기도 만으로는 마음이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지 못해서 뜻에 순종할 수 없다는 말입니다. 마음은 영어로 mind로 번역했습니다. 영에 관련된 것이 아니라 혼에 좀 더 가까운 마음입니다. 정신이 좀 더 가까운 뜻입니다.
영으로 기도하고, 우리의 생각으로도 기도하라는 것입니다. 여기서 마음으로 기도하라 한 것은 통역의 은사를 통해서 방언의 뜻을 알고 품고 기도하라는 뜻에 더 가깝습니다. 저도 이 설교를 준비하면서 방언 기도는 통역을 해야 유익이 크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타인을 위해 방언 할 때나 통역하는 줄 알았는데, 본문을 자세히 보니 개인기도 시에도 통역이 필요합니다.
방언 통역의 은사가 임하면 방언을 할 때 마음을 모아 들으면 그 내용이 마음 속에서 떠오릅니다. 그것을 말하기 시작하면 말이 되어서 쭉 나옵니다. 머리로 말을 생각해서 하는 것이 아니라 속에서 말이 솟아나와 풀어지는 것 같은 느낌입니다. 방언 기도를 하는 사람들의 대다수가 통역할 수 있는데 몰라서 사용하지 않는 경우가 많은 것 같습니다. 은사에 대해서 너무 신비롭게 생각하니 오히려 접근이 더 어려운 것 같습니다. 은사는 하나님께서 우리의 유익을 위해 주시는 것이기에 풍성하게 주시는 것이 당연합니다. 방언을 주시면 통역의 은사도 쉽게 주신다고 봐야 합니다.
그러나 통역의 은사를 받지 못한 경우에는 어떻게 방언 기도를 해야겠습니까? 방언으로 기도하면서 우리의 의식을 기도의 대상에게 집중해야 합니다. 의식을 그냥 흘러가도록 두시면 안 됩니다. 의식을 붙들어서 기도의 대상이신 예수님께 집중해야 합니다. 중보기도할 때는 중보 기도 제목을 마음에 새기고 기도하면 됩니다. 중보기도의 대상이 되는 사람을 떠올리고 기도하면 됩니다. 이때도 예수님을 향해 집중된 의식은 기본이어야 합니다.
기도할 때 머리형들의 경우에는 앞으로 할 일들을 생각하기 쉽습니다. 물론 오늘 할 일들을 하나님 앞에 간구하는 것 필요합니다. 어떤 계획에 하나님께서 임하시도록 기도해야 합니다. 그러나 그것과 계획이나 해야 할 일들에 마음을 빼앗기는 것은 다릅니다. 저의 경우는 끝날 시간을 자꾸 생각하기도 합니다. 기도하는 순간에 집중하지 못하고 앞으로 나가 있는 것입니다.
가슴형의 경우는 지난 일들과 관련된 감정을 붙들고 묵상하기 쉽습니다. 지난 일들을 회개도 해야 하고, 그때 풀리지 않았던, 눌러놨던 감정들을 하나님 앞에 풀어야 합니다. 그러나 지난 일들에 마음을 빼앗기는 것과는 다릅니다.
예수님은 현재에 임하십니다. 우리가 현재에 집중할 때 예수님을 만나고 그분의 은혜를 경험합니다. 방언으로 기도하실 때 의식을 현재 여러분과 함께하시는 예수님께 맞추십시오. 1시간 동안 얼마나 자주 여러분의 시선이 현재의 예수님에게서 멀어지는지 살펴보십시오. 그리고 예수님께 집중하는 것이 자연스러워질 때 현재에 머물면서 과거의 일을 회개도 하고, 그때 눌러놨으나 지금 경험되는 감정을 예수님께 드리시면 됩니다.
앞으로의 계획들을 하나님 앞에 아뢰고 지혜를 구하십시오. 그러나 현재의 예수님과의 교제 가운데 그분의 뜻을 물어보셔야 합니다. 그리고 계획은 머리형들이 하는 것처럼 그렇게 많이 필요하지 않습니다. 계획하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할 수 있는 일들을 미리 준비하고 대비하려는 것이 대부분입니다.
감정도 모두 풀지 않아도 됩니다. 대부분은 옛날에 묶여 있는 감정이 머리를 디민 것일 뿐입니다. 물론 그것을 해결해야 하지만 때가 필요하고 하나님의 인도와 은혜가 필요합니다. 한 번에 해결되기 어려운 것이지요.
현재에 임하시는 예수님께 의식을 온전히 집중하시고 방언으로 기도하십시오. 방언의 내용이 알아지면 그 내용을 마음에 품고 감사하십시오. 그러나 모든 기도의 순간에 지금 함께 계시는 예수님께 집중하는 것은 가장 기본입니다. 이것이 자연스러워질수록 현재를 더 잘 누릴 수 있게 될 것입니다. 다른 사람과 자신에 대해서 더 잘 이해하게 될 것입니다. 다른 사람은 더 잘 배려하게 됩니다. 쉽게 분내지 않으며, 쉽게 감정을 따라 흔들리지 않으며 하나님의 뜻에 대해 더욱 자연스러워지게 됩니다.
혹시 예수님께 집중하는 것 자체가 어려울 때는 어떻게 할까요? 눌림이 심할 때, 혹은 기도를 많이 했음에도 해재끼는 식의 기도를 했다면 어려울 수 있습니다. 그럴 때는 무작정 기도를 시작하지 마시고 고요하게 현재에 집중하셔야 합니다.
눌림 때문이라면 몸에 집중해보십시오. 몸의 어떤 부분이 불편한가? 어디에 눌림이 있는가? 혹은 가슴이 아픈가? 머리의 어느 부분이 묵직한가? 아픈가? 무거운가? 감정이 어떤가? 그리고 그 부분에 의식을 집중해서 방언 기도를 하십시오. 그러면서 예수님께 시선을 옮기시면 눌림이 풀리면서 예수님께 집중하기 쉬워질 겁니다.
만약 해재끼는 식의 기도를 해서 집중이 어렵다면, 고요하게 마음을 모으면서 마음 중심에 집중하십시오. 중심에 내주하시는 예수님께 집중하시고, 그분을 찾으십시오. 회개가 필요할 수 있습니다. 그러면 정직하고 정확하게 회개하십시오. 그리고 천천히 방언하면서 예수님께 집중하시면 됩니다. 기도를 정신없이 하시지 말고, 예수님께 집중하여서 바로 기도하는 방법을 찾는게 중요합니다. 기도는 하나님과의 관계에 기반하기 때문입니다.
기도제목
1. 나라와 민족(코로나), 한국교회(회개의 물결, 대면예배 회복)
2. 수림교회(보호), 연합, 항존직 피택자 교육, 금요기도회, 주일예배
3. 비전 선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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