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통의 순간에 (2)
현식
Sermon • Submitted • Presented
0 ratings
· 2 views죄인을 구원하시는 복음과 하나님의 은혜, 그리고 기도와 참된 예배의 의미에 관해 살펴보며, 복음을 믿고 구원받은 성도답게 살아가도록 권면한다.
Notes
Transcript
찬 429
어느 누구도 고통을 좋아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사람 뿐 아니라 피조물은 모두 고통을 피하고 싶어 합니다. 그러나 우리의 소망과 별개로 삶은 항상 고통의 연속이라는 것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석가모니는 많은 사람들의 삶을 들여다 본 후 “인생은 고다”라고 말했습니다. 상담에서도 사람이 우울증과 같은 심리 병적 현상을 겪는 핵심적인 이유는 고통을 수용하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보는 관점이 있습니다. 관점을 돌려서 내가 겪는 문제가 특별한 것이 아니고 다른 사람도 겪는 문제임을 인식할 때, 그리고 문제와 고통을 부인하거나 피하려하지 않고 직면하여 감당하려는 적극적인 자세를 갖게 될 때 심리적 문제로부터 벗어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주님으로 섬기는 우리에게 고통은 단지 수용하고 겪어 잘 지나가야 할 문제가 아닙니다. 우리 삶의 모든 것은 하나님의 주관 아래 일어나기에 고통은 고통으로 끝나지 않고 언제나 우리에게 유익이 되게 하십니다.
제 말이 여러분에게 오해가 되지 않기를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이 잘못할 때마다 메를 들어 치시고 잘못했다고 손이 발이 되도록 빌면 용서해주시고 그런 분이 아니십니다. 물론 하나님께서 우리의 아버지이시기에 징계를 하실 수 있고, 하시기도 합니다. 하나님을 자기 또는 자신의 육신의 아버지와 빗대어 생각하여 쉽게 화내고, 벌주는 하나님으로 생각하는 부분에 문제가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오래 참으시며 그분의 인내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더욱 풍성하십니다. 실제로 저는 예수님을 믿은 다음부터 지금까지 하나님께 맞은 적이 단 한번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메는 사랑이 넘치는 메였습니다. 너무 쉽게 삶의 고통을 하나님의 메로 생각하시지 마시기 바랍니다. 많은 경우 우리의 죄의 열매이고, 또 많은 경우는 하나님의 인도의 손길입니다. 삶에서 적은 경우만 하나님의 사랑의 메가 주어집니다.
어떤 사람에 대해 ‘참 인격적인 분이야’라고 평가할 때 어떤 모습을 염두하고 말하는가를 생각해보십시오. 다른 사람을 인격으로 대해준다는 뜻이며, 인격으로 대하기 때문에 자기 생각을 강요하지 않고, 상대방의 생각, 감정, 의지를 존중해준다는 말입니다. 자기의 의견이 100% 맞다고 하여도, 자기 아래 사람이라고 하여도, 상대방의 의견을 존중해주기에 권면은 할 수 있지만, 상대가 원하지 않을 때 강요하지 않는 사람을 인격적이라고 말합니다.
하나님께서 인격이시고, 우리를 인격적으로 대하십니다. 때문에 우리가 하나님의 뜻을 따르지 않고 죄를 지을 때 함부로 우리를 억압하지 않으시고 많은 경우에 기다리십니다. 지금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않고 자기 마음대로 하기에 우리의 그런 불순종의 모습까지도 존중하시며 깨달을 수 있도록 도우시며 기다리십니다. 요나서에서 하나님께서 요나를 대하시는 모습이 그런 하나님의 모습을 잘 보여줍니다.
이런 관점을 가지시고 고통에 대해 살펴보고자 합니다. 먼저 고통의 이유에 대해 살펴보고, 고통의 순간에 우리가 취해야 할 태도에 대해 나누겠습니다. 마지막으로 실천적으로 어떻게 하면 되는지 간단한 방법을 알려드리겠습니다.
1. 삶의 고통의 이유
성경에 나타난 내용을 종합해서 살펴보면 고통의 이유에는 크게 3가지가 있습니다. 물론 우리의 지혜로운 하나님께서는 한 가지 이유와 목적으로만 행하시지는 않으시기에 복합적인 부분이 있지만 특별히 3가지 이유 중에 한 부분에 이유가 크게 작용합니다.
1) 첫 번째 이유는 삶에 문제가 있을 때 쉽게 떠올리는 부분입니다. 죄 때문입니다. 죄 중에도 특별히 드러난 죄, 그중에서도 습관적인 죄입니다. 제가 자세히 설명하지 않아도 쉽게 아실 거라 생각합니다. 앞에 말씀드린 데로 죄를 지어서 하나님이 바로 징계하셨다고 보기 보다는 죄를 지어 하나님께로부터 멀어지고, 하나님의 은혜의 공급을 받지 못하기에 영혼이 피폐해지고, 하나님의 은혜로부터 멀어지기에 하나님의 보호도 약해지고, 사탄이 공격할 수 있는 여지가 생깁니다. 또한 죄가 사탄이 치고 들어올 수 있는 통로가 됩니다. 주로 이런 이유 때문에 삶의 고통이 생깁니다.
예를 들어 술을 먹지 말라는 하나님의 감동이 있습니다. 그런데 무시하고 계속 술을 마십니다. 마귀가 그에게 영양을 미치기 시작합니다. 술을 더 많이 먹게 된다거나, 술 자리에서 실수를 한다거나, 회사 생활에 영향을 미친다거나, 가정 관계에 나쁜 영향을 주는 등의 다양한 문제가 일어나도록 서서히 영향을 미칩니다. 깨닫고 돌이키면 좋으나 죄를 계속해서 지을 때 고통은 가중되고 큰 문제가 생길 수도 있습니다.
이 경우에는 특정 죄된 행동을 끊어내면 됩니다. 결단하고 하나님께 은혜를 구하며 행동을 중단하면 됩니다. 혼자 힘으로 어려울 때는 공동체의 도움을 받으면 좀 더 수월합니다. 특정 행동을 중단하면 하나님의 은혜가 다시 회복되고 삶도 차츰 제자리를 찾아가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2) 두 번째 이유는 드러나지 않은 죄 때문인 경우가 있습니다. 드러나지 않은 죄에도 두 가지가로 생각해볼 수 있는데, 드러났지만 자기에게 인식이 되지 않는 죄와 은밀하게 숨겨져 자세히 들여다보기 전에는 죄로 인식되지 않는 경우입니다.
드러나지 않은 죄의 경우에 문제를 통해서 수면 위로 드러나게 됩니다. 첫 번째 경우는 많은 경우에 행동과 관련되어 있지만 드러나지 않는 죄는 좀 더 근본적이고 내면적인 죄와 관련되어 있습니다. 불신, 세상사랑, 우상, 하나님을 대적, 완악, 교만, 욕심 등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를 40년간 방황했던 이유는 이 죄를 처리하기 위한 시간이었습니다. 애굽에서 습관되어 찌들어 있는 죄를 이스라엘 백성에게서 뽑아내고 그들을 하나님의 군대로서 가나안 땅을 심판하고 정복하는 도구로 사용하시기 위한 시간이었습니다.
예를 들어 어떤 사람이 재정적인 문제가 생겼습니다. 너무 불안해서 견딜 수가 없습니다. 돈 생각만 하면 밤에 잠을 잘 수가 없습니다. 어떻게 해야 하는지 밤새 생각하고 뜬 눈으로 지새고 나도 뾰족한 방법이 없습니다. 얼굴에 수심을 떠나지 않습니다. 이런 경우에 겉으로 보이는 문제는 돈인 것 같지만, 사실 하나님의 공급을 믿지 못하는 문제가 드러나게 된 것입니다. 물론 돈이 없다면 누구나 힘들 것입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으로서 하나님의 공급을 믿고 기도하면서 하나님의 방법을 찾기보다 불안함이 자신을 휘감아 믿음도 기도도, 하나님도 잘 보이지 않는다면 분명 문제입니다. 돈이 없어서 불신이 생긴 것이 아니라 평소에 내면에 가라앉아 있던 드러나지 않은 죄인 불신이 드러나게 된 것입니다.
이 시간에는 복종 만이 답입니다. 광야에서 이스라엘 백성을 훈련하고 다루시려고 하셨기에 그들이 문제와 고통 가운데 놓일 때마다 하나님께 복종하지 않고는 넘어갈 수 없었습니다. 불평이나 원망은 고통의 시간을 더욱 늘리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다루시려는 죄가 무엇인지를 인식하고 그 부분을 하나님께 인정하고 은혜를 구하며 복종하는 자세를 가져야 합니다. 그럴 때 하나님의 은혜가 임하여 죄를 처리해주시고, 문제가 풀리게 하십니다. 하나님의 목적은 고통 자체에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죄를 제거하시기 위함이기 때문에 죄의 문제만 해결되면 고통은 더 이상 필요 없기 때문입니다.
3) 세 번째 이유는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고난입니다. 사도행전 5장의 사도들이 복음을 전하기 때문에 채찍을 맞았던 사건이나, 고린도후서 1장에 바울이 언급한 것과 같이 그리스도를 위해 감옥에 갇히거나 욕을 먹거나 핍박을 당하는 등의 경우입니다. 이런 경우에는 고통을 넉넉히 감당할 하나님의 넘치는 위로가 주어집니다. 안타깝게 저는 한 번 경험한 것 같습니다. 교회에서 사역하다가 오해와 누명을 썼었는데, 그 주일 예배에서 특별한 것은 아무 것도 없었는데 감당이 안 되는 은혜를 부어주시는 것을 경험한 적이 있었습니다.
2. 고통의 순간에 공통적으로 취해야 할 태도
고통의 이유를 3가지로 살펴보았지만 그 순간에 우리가 취해야 할 태도는 동일합니다.
1) 회개해야 합니다.
회개는 우리가 하나님 앞에 나아갈 때에 항상 취해야할 기본적인 자세입니다. 우리의 존재는 구원받은 이후에도 죄가 거하는 죄인이기 때문입니다. 고통의 순간에는 더욱 회개의 태도로 나아가야 합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고난당할 때조차도 우리는 자신을 살펴보아야 합니다. ‘내가 혹시 잘못한 것은 없나?’ 자신을 돌아보아야 합니다. ‘나는 떳떳하다, 나는 죄가 없다’는 태도는 죄인인 우리에게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태도이기 때문입니다. 욥기 1장에서 욥이 취한 태도가 고통의 순간에 우리가 하나님 앞에 가져야할 가장 기본적인 태도입니다.
2) 감사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살전 5장에서 ‘범사에 감사하라’고 하셨습니다. 고통의 문제도 범사에 들어갑니다. 하나님께서는 문제로 인해 너무 힘들 때조차도 감사하기를 명령하십니다. 여러분의 고통을 무시하고, 외면하면서 마인 컨트롤 하듯이 ‘나는 좋아, 괜찮아, 좋은 상태야’ 이렇게 자기 암시를 하라는 말이 아닙니다. 믿음으로 반응하라는 말입니다.
고통은 고통입니다. 그 자체로는 기뻐할 수 없고, 감사할 수도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아버지이시며 우리 삶의 주관자이시며 모든 만물의 주인이신 하나님께서 선하시기에 감사할 수 있습니다. 선하신 하나님께서 주시는 것은 모두 좋은 것이며 지금의 고통도 우리의 짧은 시야에서는 좋지 않지만, 하나님께서 반드시 좋게 하실 것을 믿기에 감사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평탄할 때, 잘될 때 하는 감사보다 고통의 순간에 주님께 드리는 감사를 더욱 기뻐하십니다. 앞의 감사는 믿음이 없이도 얼마든지 감사할 수 있으나, 후자의 감사는 믿음을 발동하지 않고는 불가능하기 때문입니다. 굽이 있는 황소를 드림보다 나의 찬양을 더욱 기뻐하신다는 시편의 말씀은 아무 때나 드리는 찬양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고통의 순간에 주님을 찬양하는 그 찬양을 가리킵니다.
3)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택하신 이유에 대해서 엡1장에서는 하나님의 영광과 찬송이 되게 하시기 위해서라고 말씀하십니다. 고통을 통해 우리를 변화시키시고 우리가 하나님의 영광과 찬송이 되게 하십니다. 단번에 이루어지지 않으나 우리가 겪는 고통은 우리를 그렇게 변하시켜 가시는 손길입니다. 하나님의 궁극적인 뜻대로 그분께 영광을 돌릴 때 하나님께 문제 가운데 하나님의 뜻을 나타내시고 영광 받으십니다. 그분이 영광 받으실 때 우리도 영광받습니다.
3. 실천적 방법
고통의 이유와 우리가 취해야 할 태도에 대해서 살펴보았습니다. 이런 내용을 들었다고 해도 삶에 적용하기란 여간 쉽지 않습니다. 잊어버리기도 하고 구체적으로 어떻게 해야 할지 모호한 경우도 있기 때문입니다.
제가 예전에 배운 간단한 방법이 있습니다. 우리가 취해야 할 태도는 간단한 기도로 만들어 수시로 기도하는 것입니다.
주의 보혈 능력있도다. 주여 감사합니다. 주여 영광받으소서.
주의 보혈 능력있도다 라고 할 때는 회개하는 마음을 가지고 예수님의 보혈로 나를, 그리고 문제를 믿음으로 덮습니다. 보혈로 덮을 때 하나님의 것으로 구별되고, 마귀가 손을 대지 못합니다.
주여 감사합니다 할 때는 앞의 말씀드린데로 하나님께서 이 문제를 통해서도 선을 이루실 줄 믿는 믿음으로 고백합니다. 믿음을 동반한 감사의 고백은 우리의 마음에 방패가 되어 악한 자의 불화살을 막아줍니다.
주여 영광 받으소서 할 때는 내 뜻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져 하나님께서 영광 받으시기를 구하는 마음으로 고백합니다.
일상생활을 하면서 수시로 기도하면 됩니다. 특히 문제가 생각날 때 반복해서 마음이 편해질 때까지 고백하면 됩니다. 눈을 뜨고 해도 됩니다. 일을 하면서 해도 됩니다. 대중교통을 타고 다니면서 해도 됩니다. 소리가 나가지 않게 조용히 중얼 거리면서 해도 됩니다. 의식을 하나님께 고정시키고 하시면 됩니다.
제가 이 기도의 방법을 배운 후에 많은 문제의 순간에 이렇게 기도했고, 그때마다 문제가 해결되고, 또 문제되지 않고 넘어가곤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고통을 허락하시는 이유는 그분의 본심이 아니십니다. 우리를 긍휼히 여기십니다. 고통을 겪으시더라도 너무 길어지지 않고, 하나님의 선하신 뜻이 이루어질 만큼만 겪으셨으면 좋겠습니다. 우리 삶에 고통이 없을 수는 없으나 필요 이상으로 많이 겪을 필요는 없습니다. 야곱도, 이삭도 고통을 겪었지만, 야곱처럼 많은 고통을 겪지 않는게 나은 것 같습니다. 하나님의 풍부하신 자비와 긍휼이 넘치기를 축원합니다.
찬 429
기도제목
1. 나라와 민족(코로나), 한국교회(회개의 물결, 대면예배 회복)
2. 수림교회(보호), 성도들의 믿음, 청년부
3. 비전 선교사
-이삭 선교사(00국) -데이빗, 에스떼르 선교사(00국) -존 선교사(00국)
-오미드, 마리암 선교사(00국) -바흐럼 선교사(00국)
-할릴 선교사(00국) -샤흐너즈 선교사(00국)
-후만,어뤠즈선교사(00국) -압신, 파르베네선교사(00국)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