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린도전서 11장 (2)
현식
Sermon • Submitted • Presented
0 ratings
· 3 views교회 공동체의 본질과 성도의 책임, 그리고 하나님의 사랑과 성경적인 관계에 관해 살펴보며, 서로 사랑하고 섬기며 건강한 공동체를 세우도록 권면한다.
Notes
Transcript
찬 212장
11~14장까지는 고린도 교회의 예배에 대한 문제에 대해 바울 사도가 지침을 주는 내용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지난 시간에는 예배 때 머리에 쓰는 문제에 대해 다루었습니다. 고린도 교인들은 겸손함을 가지고 권위 아래 있는 표를 지니고 예배를 드려야 했습니다. 그러나 일부 여인들이 하나님께서 구별하신 남녀의 차이를 무시하고 자신을 드러내고 높이려 했습니다. 바울 사도는 이 여자들에 대해 단도직입적으로 머리에 수건을 쓰고 자신이 남자의 권위 아래 있는 자라는 것을 드러내 보이므로 하나님께 순종하라고 명령하였습니다.
17~34절까지는 성만찬에 대한 문제에 대해 다루고 있습니다. 내용의 구조는 17~22절까지가 고린도 교회의 성만찬의 문제점에 대해 지적하는 부분입니다. 23~26절까지는 주님께서 성만찬을 제정하신 의미를 설명합니다. 27~29절은 성만찬의 의미를 무시하는 태도가 죄가 됨을 밝히고 30~32절에 그 결과를 말해줍니다. 33~34절에서 올바른 성만찬을 행하기 위해 우선 고쳐야 할 점을 명령합니다.
먼저 성만찬과 관련해 고린도 교회에 있었던 문제에 대해서 살펴보겠습니다.
18절: 이미 1장에서 고린도 교회에 존재하는 분쟁과 편당에 대한 문제를 언급했습니다. 고린도 교인들은 자신들의 기호와 성향에 따라 편을 만들었습니다. 자신들이 선호하는 사역자를 중심으로 모임이 형성되었고, 서로 분쟁했습니다.
20절: 주의 만찬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못하는 근본적인 이유는 편당의 문제입니다.
21-22절: 편당으로 인해서 성만찬과 관련하여 생긴 구체적인 부작용의 사례를 말하고 있습니다. 성만찬의 자리에 먼저 오는 사람이 있고 늦게 오는 사람이 있었는데, 먼저 오는 사람이 다른 이들을 생각하지 않고 자신이 떡을 먹고 양껏 포도주를 마셨습니다. 심지어는 취할 때까지 마시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편당과 관련하여 이야기한 것을 보면 그 가운데 자신들의 무리들을 먼저 챙기는 문제도 있었던 것 같습니다.
성만찬은 먹기 위한 예식이 아닌데 이들은 먹고 마시는데 집중했습니다. 성만찬은 편당을 강화하는 목적이 아닌데 이들은 성만찬을 통해서 편당을 더욱 강화하였습니다. 스스로는 다른 사람을 챙기면서 사랑으로 섬긴다고 생각했을지 모르지만 교회 안에 편당을 강화했기에 분열을 촉진하는 행위였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그들의 행위를 칭찬하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그 가운데는 가난한 자들의 문제도 결부되어 있었습니다. 그러나 문맥적으로 볼 때 편당이 성만찬에서 핵심적인 걸림이었습니다.
17절: 결국 그들의 모임은 유익이 되지 못하고 해가 되는 모임으로 전락하였습니다. 교회에 모이므로 서로의 덕을 세워주고 하나님의 은혜를 나누고 세상에 빛과 소금이 되어야 하는데 오히려 해가 되는, 존재 가치에 의문을 가질 수밖에 없는 모임이 되었습니다. 현재의 한국교회에 대한 평가와 유사하지 않습니까? 한국교회에 대해서 세상 사람들이 그 존재 이유에 대해서 의문을 가지고 있습니다. 저는 하나님도 지금의 한국교회에 대해서 존재 이유에 대해서 의문을 가지실까 두렵습니다. 본문을 통해 볼 때 이렇게 된 핵심적인 이유 중 하나가 교회 안에서의 편당, 즉 끼리끼리의 모임 때문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23-26절:
고린도 교인들이 놓치고 있던 성만찬의 의미를 다시 설명해주고 있습니다. 고린도 교인들도 성만찬에 대해 바울 사도에게 이미 가르침을 받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잊어버렸기에 다시 설명해주고 있습니다. 성만찬은 예수님께서 잡히시기 전날 밤에 십자가에 못 박혀 자신의 몸과 피를 우리를 위해 주시는 그 희생을 위한 예식입니다. 그분의 측량할 수 없는 사랑의 희생을 기억하고 그 희생을 세상에 전하는 것이 성만찬 예식입니다. 단순히 먹고 마시는 것이 아니라 예식을 행하는 것 자체가 그분의 죽으심을 전하는 것이 되며, 또한 성만찬을 통해 받은 은혜로 세상에서 십자가의 능력으로 희생의 삶을 살며 예수님의 죽으심을 전하는 것입니다. 고린도 교인들은 이 중요한 의미를 잊어버렸습니다. 성만찬의 귀한 의미를 단순히 육체의 즐거움으로 전락시켜 버렸습니다.
현대 교회는 어떻습니까? 현대 교회에 속한 우리는 어떻습니까? 성만찬은 너무도 가끔 행하니, 교회의 모임 자체로 확장해서 생각해봅시다. 초대교회에서는 매주 성만찬을 행했기에 모임 자체와 연관시켜도 크게 무리되는 적용은 아닙니다. 교회의 본질과 의미에 대해 잊어버리지 않았습니까. 예수님께서 죽으심으로 우리 각 사람을 구원하시고, 교회로 모으셨습니다. 그래서 교회는 그분의 피로 값주고 샀다고 말합니다. 교회에 모으신 이유는 교회 안에서 그분의 희생의 사랑을 경험하고, 성도 간에 그 사랑으로 연합하고, 세상에서 예수님의 죽으심의 사랑을 전하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언젠가부터 교회가 모임 자체에 집중하다 보니, 사람들을 모으고, 떨어져 나가지 않도록 하는데 집중하다 보니, 그냥 모임이 되어 버린 것 같습니다. 어떤 때는 예배라는 활동 하나를 제외하고 생각해볼 때 동호회랑 다른게 무엇인가?라는 생각이 들때도 있습니다.
사람들의 모임 자체를 중요하게 생각하다 보니 끼리끼리 모이는 편당도 자연스러운 것이 되고, 자기 사람을 만들고 자기 입지를 높이기 위해 자기편을 만드는 것도 자연스러운 것이 되어 버렸습니다. 교회라는 전체의 연합을 생각하기보다 자기와 편한 사람들과 즐겁게 지내는 것을 우선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것이 잘못되었는지도 모릅니다. 교회의 모임이 육적인 모임으로 전락했습니다.
우리가 왜 모였는지를 다시 기억해야 합니다. 마음 맞는 사람들끼리 서로 즐겁게 지내기 위해 우리 스스로 모인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모으셨습니다. 자기를 깎는 고통을 감내하면서 서로 연합하고 하나 되어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공동체로 모으신 것입니다. 교회의 모임을 통해 세상 사람들이 예수님의 희생의 사랑을 보아야 합니다. 삼위일체 하나님의 연합을 보아야 합니다. 그렇지 못하다면 우리의 모임은 없는 것이 더 낳을 것입니다. 왜냐면 유익이 아니라 해가 된다고 했기 때문입니다.
27-29절:
성만찬의 의미를 무시한 채 먹고 마시는 자들은 귀하디 귀한 주의 몸과 피에 죄를 범하는 것이 됩니다. 또한 자기 죄를 먹고 마시는 것이 됩니다. 자기가 하는 행동이 어떤 것인지 돌아보고 회개하고, 바르게 하며 참여해야 합니다. 단순히 참여하는 것 자체가 복이 되지 못합니다. 여러분이 교회 봉사를 하고 직임을 맡은 것으로 복이 된다고 생각할 수 없습니다. 내 행동이 교회에, 하나님의 나라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잘 생각해보셔야 합니다. 봉사를 하면 할수록, 모이면 모일수록 더욱 죄가 될 수도 있습니다.
30절:
이러므로, 약한 자와 병든 자가 많고 잠자는 자도 적지 않다고 합니다. 그들이 성만찬을 육적인 행위로 전락시키므로 죄를 지었고 죄를 먹고 마셨기에 병도 걸렸고, 믿음이 약해졌고, 믿음이 잠들어 버렸습니다. 영적인 감각이 없어졌습니다. 이들 중에는 은사를 행하기도 하고 방언으로 기도를 많이 하는 사람도 포함되어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잠자는 자가 되었습니다. 스스로 죄를 먹고 마시면서도 자신을 돌아보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돌아보셔야 합니다. 하나님을 섬긴다고 스스로를 포장하면서 자신의 마음과 자신의 행동의 결과를 정직하게 돌아보지 않을 때 큰 낭패를 겪을 수 있습니다.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한다는 말씀은 성경에만 기록되어 있는 말이 아닙니다. 열심히 신앙생활을 했던 이들 중에 마지막 심판대 앞에서 이런 음성을 들을 이들이 분명 있습니다.
31-32절:
그러나 사도 바울은 약하고, 병들고, 잠자는 것이 그나마 좋은 일이라고 말합니다. 하나님의 심판을 이 땅에서 받는 것은 하나님의 징계이고, 그것은 세상에 최종 심판이 내려질 때 함께 멸망 받지 않게 하기 위한 하나님의 사랑의 손길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몸과 피에 죄를 범하면서도 하나님의 심판을 받지 않는다면 그는 영원한 지옥 형벌을 면치 못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더 좋은 길이 있습니다. 스스로 돌아보고 회개했다면 하나님의 심판을 면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 앞에 긍휼을 구하며 혹시 제가 잘못하고 있는 것은 없습니까. 제 마음이 하나님 앞에 청결하게 해주십시오. 한 점 부끄러움 없이 회개하고 또 회개할 수 있도록 죄를 깨닫게 해주십시오. 하나님 앞에 거룩하기를 사모하고 힘쓰셔야 합니다.
33-34절:
성만찬을 행할 때 서로 기다리라고 합니다. 그들 서로가 하나인 것을 기억하고 기다리라고 명령합니다. 분쟁의 씨앗을 만들만한 여지를 줄이라는 명령입니다. 그 ‘남은 것은’ 이라는 말에서 이것이 근본적인 해결책이 아닌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근본적인 해결책은 편당의 문제를 없애는 것입니다.
우리도 연합하고 사랑 안에 하나 되어야 하지만 단기적으로 문제의 소지를 없앨 수 있는 부분이 있을 것입니다. 너무 고정된 사람하고만 모임을 계속한다면 빈도를 조절하면서 다른 사람들과 만남의 기회를 만들어보는 것도 방법일 것입니다. 모임에서의 분위기가 예수님 안에서 이루어지도록 기도하면서 원망이나 불평의 말들이 생기지 않도록 조심하면서 은혜로운 일들이 있도록 힘써야 할 것입니다. 무엇보다 전체 교회의 연합에 어떤 영향이 있는지를 지속적으로 평가해 보아야 합니다. 모임의 지체들이 교회에 세우신 권위자와의 관계, 다른 성도들과의 관계가 더 좋아지는 흐름이 있어야 합니다. 근본적으로는 교회가 사랑 안에 깊게 연합되어야 하지만 부분적으로 이런 애씀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예수님의 죽으심을 헛되이 하지 않고 그 사랑을 이루시는 여러분이 되시길 바랍니다.
기도제목
1. 나라와 민족(코로나), 한국교회(회개의 물결, 대면예배 회복)
2. 수림교회(보호), 부흥, 금요기도회, 주일 예배, 청년부
3. 비전 선교사
-이삭 선교사(00국) -데이빗, 에스떼르 선교사(00국) -존 선교사(00국)
-오미드, 마리암 선교사(00국) -바흐럼 선교사(00국)
-할릴 선교사(00국) -샤흐너즈 선교사(00국)
-후만,어뤠즈선교사(00국) -압신, 파르베네선교사(00국)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