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태복음 2장
현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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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views기도와 참된 예배의 의미, 그리고 죄인을 구원하시는 복음과 하나님의 은혜에 관해 살펴보며, 하나님을 온전히 예배하며 기도로 나아가도록 권면한다.
Notes
Transcript
찬 179장
1장을 통해 예수님께서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임을 증명했다. 메시아의 첫 번째 조건이 만족하였다. 그러나 메시아는 베들레헴에서 태어나야 하는데, 예수님은 갈릴리 나사렛 출신이라는 문제가 남아있다. 2장에서 대답이 나온다. 예수님이 나사렛 출신이지만 베들레헴에서 태어난 이야기이다.
사람들이 메시아에게 기대하는 모든 것이 어긋난다. 이스라엘은 나라의 독립, 풍요와 같은 현실적인 복을 기대하였으나 예수님은 죄에서 구원하실 분이다. 다윗의 자손의 자손, 혈통으로 기대했으나 입양되었다. 베들레헴에서 나고 자란 베들레헴 출신으로 기대했으나, 베들레헴에서 태어났을 뿐이다. 하나님께서 자신의 말씀에 진실하지만, 우리의 기대와 같지 않다. 우리는 이런 부분에서 실수한다. 하나님께서 이렇게 해주실 거라 기대하고, 기대한 대로 되지 않을 때 실망한다. 하나님께서 우리에 기대를 따라 움직이시는 분이 아니다. 하나님께 기대해야 하지만 어떻게 하실지는 하나님께 달려있다는 걸 인정해야 한다.
본문에 동방의 박사들도 이런 부분에서 실수가 있었다.
동방에서 온 박사들이 어느 나라 사람인지는 알 수 없다. 예루살렘을 기준으로 동쪽으로부터 왔다고 보인다. 16절을 통해서 박사들이 별을 보고 바로 출발했다고 할 때 만 1년~1년 반 이상의 긴 여행을 했다는 걸 알 수 있다. 헤롯 왕이 2살 아래 사내아이를 죽인 판단 기준이 동방 박사들에게 별을 본 시기를 기준으로 했기 때문이다.
2절에서 동방의 박사들이 예루살렘에 도착하자마자 유대인의 왕으로 나신 분을 찾았다. 먼 곳에서 별을 보았을 뿐 아니라 하나님께 계시를 받았음을 알 수 있다.
11절에서 초라한 집에 볼품없는 모습으로 있는 아기에게 경배하는 모습도 그들이 하나님께 계시를 받았다는 증거로 보인다. 경배는 신께 드리는 예배의 행위로 주로 쓰인 단어이다.
동방에서 온 박사들이 어떻게 하나님을 알고 믿었는지는 알 수 없으나 그들은 유대인의 왕을 보기 위해 1년 반의 여행을 감수하였다. 당시로써는 목숨을 건 모험이었다. 외형에 좌우되지 않고 아기 예수께 경배하는 모습은 이들의 믿음이 진짜라는 걸 보여준다.
동방 박사들이 별을 따라 가나안 땅까지 왔다. 하나님의 인도를 따랐다. 그러나 예루살렘에 도착하자 별이 없어졌다. 박사들이 왕은 예루살렘에서 태어났다고 생각하고 예루살렘으로 발길을 옮겼기 때문이다. 베들레헴은 예루살렘에서 가깝다. 10km 떨어진 곳이다. 만약 박사들이 별의 인도를 계속 따랐다면 바로 베들레헴에 도착했을 것이다. 그러나 별의 인도를 받아 오다가 예루살렘 근처 이르러 자신들의 판단을 믿으니 별이 없어졌다. 사람들에게 유대인의 왕이 어디 계시느냐고 묻는다. 그러나 사람들은 알지 못하고 소동한다. 헤롯 왕을 만나고 베들레헴에서 태어나신다는 예언에 대한 말을 듣는다. 도대체 베들레헴 어디에서 나셨을지 짐작하지 못한채 베들레헴 방향으로 출발한다. 예루살렘이라고 확신했던 마음이 사라지고 막막해진다. 그러자 별이 다시 나타나 그들을 인도한다.
9-10절을 보면 박사들이 왕의 말대로 출발하여 가다가 얼마 후에 갑자기 별이 나타나 인도한 상황을 말한다. 예수님께서 태어나신 바로 그 집 위에 머물러 정확한 곳을 알려준다. 10절의 말씀이 예수님이 태어나신 곳에 이르러 기뻐하는 내용이어야 할 것 같지만, 자세히 보면 박사들이 별을 보고 기뻐했다는 말이다. 자신들을 인도하던 별이 나타나서 기뻐했다.
우리는 막막하고 어떻게 해야 할지 알 수 없을 때 낮은 마음으로 하나님의 인도를 구한다. 하나님께서 간구에 응답하시고 우리를 인도하신다. 문제가 어느 정도 해결될 것 같아 보이면 자신의 방법이 나오고, 판단이 앞서곤 한다. 그러면 동방의 박사들이 그랬듯 방향을 잃어버리기 쉽다. 기도, 환상, 감동과 같은 인도만을 따라야 한다는 말로 오해하지 않기를 바란다. 하나님께서는 여러 방법으로 우리를 인도하신다. 우리에게 다가오는 여러 정보, 사람들의 의견, 상황들을 통해서 하나님의 뜻을 분별해야 한다. 동방의 박사들이 별의 인도를 잃어버린 시점이 왕은 당연히 예루살렘에서 태어났을 거라 확신했을 때였다. 그래서 2절과 같이 확신을 하고 물었다. 우리의 선입견은 하나님의 인도를 따르지 못하게 한다. 처음에 말했던 것처럼 하나님은 우리의 기대를 따라 움직이지 않으신다.
동방박사들이 잠시 하나님의 인도를 놓쳤지만 참 믿음을 가진 그들은 예수님께 경배하는 특권을 누렸다. 먼 곳에서 온 그들은 예수님을 경배했지만, 예수님의 땅 예루살렘에 살던 이들은 전혀 달랐다.
2절의 박사들의 말을 들은 사람들의 반응을 통해 예루살렘 사람들을 세 부류로 나눌 수 있다. 유대인의 왕이 태어났다는 소식을 듣고 헤롯 왕과 온 예루살렘이 소동했다. 각자 다른 이유였다. 헤롯 왕은 이야기를 통해 드러나듯 자신의 왕위에 대한 위협으로 여겼기 때문에 흥분하고 놀랐다. 당시 이스라엘 사람들은 예언된 메시아가 오실 것이라는 기대가 많이 퍼져있었다. 헤롯 왕도 이를 알고 있었고 주시하고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이방인의 행색을 한 지혜로워 보이는 작은 무리가 유대인의 왕이 태어난 별을 봤다는 것이다. 걱정하던 헤롯이 흥분하는 건 당연하다. 헤롯은 박사들에게 소식을 듣자 왕으로 태어난 아이를 죽이려는 마음을 먹었다.
반대로 예루살렘에 사는 모든 백성은 메시아가 태어났으니 로마의 압제에서 벗어나고, 풍요로워지고, 명성을 얻게 될 기대로 흥분했을 것이다. 그러나 실제로 예수님을 찾아 나서지 않을 것을 보면 기대는 잠시였을 뿐 진짜로 믿은 사람은 없었다.
세 번째 부류로 왕이 소집한 대제사장과 서기관이 있다. 메시아가 어디서 태어나는지 정확히 알고 있었다. 메시아가 태어났다는 소식에 별 반응이 없다. 말씀은 알고 있으나 믿지 않았다.
요한복음 1장 11절에 “자기 땅에 오매 자기 백성이 영접하지 아니하였으나”라는 말씀이 이루어졌다. 예수님께서 태어나신 곳에 가장 가까이 있는 이들이 전혀 관심이 없었다. 헤롯 왕은 자신의 위치가 흔들릴까 두려워했다. 백성들은 어떤 이익을 얻을 수 있을까 잠시 흥분했다. 대제사장과 서기관은 말씀을 전혀 믿지 않았기에 관심도 없었다. 이방인인 동방에서 온 박사들만이 예수님께 진정한 관심을 가지고 많은 희생을 치르며, 귀한 것을 드려 경배했다. 박사들은 단지 예수님을 뵙고 경배할 이유만으로 먼 길을 왔다.
우리는 어떤 면에서 물리적으로 예수님과 가까이 있다고 할 수 있다. 본문에 나오는 박사를 포함한 네 부류의 사람 중에 어디에 속하는지 생각해 봐야 한다. 예수님께서 오신다면 우리는 어떻게 반응할 것인가? 헤롯처럼 내가 소유하고 있고, 누리고 있는 것들이 흔들릴까 걱정하며 예수님이 오지 않기를 바라는가. 백성들처럼 힘든 내 삶이 좀 좋아질까 잠시 기대하지만, 기대가 채워지지 않을 것 같기에 금방 관심이 시들어 버리는가. 대제사장과 서기관처럼 말씀의 성취 따위는 믿지 않고 관심도 두지 않겠는가. 아니면 동방의 박사들처럼 희생하고 내 것을 드리면서 예수님을 뵈옵고 경배하는 그 한 가지로 만족하겠는가.
네 부류의 사람들 중 동방의 박사들만 예수님을 만나고 경배했다. 높은 지위에 왕도, 힘든 삶을 사는 백성도, 종교지도자도 아니었다. 개인적인 욕심없이 예수님을 진실한 마음으로 경배하기를 원하는 사람만이 예수님을 만나고 경배할 수 있다. 예수님의 재림이 가까웠다. 모든 것이 우리에게 말해준다. 그전에 부흥이 있을 것이다. 부흥 때에 예수님을 진실로 만나는 사람은 동방의 박사와 같은 사람이다. 물리적으로 교회에 가까이 있는 사람이 아니라 중심이 예수님께 가까운 그 사람이 예수님을 만나고 경배하게 될 것이다. 우리가 그런 사람이 되기를 간절히 바란다.
기도제목
1. 나라와 민족(코로나) 북한, 한국교회(회개의 물결, 대면예배 회복)
2. 수림교회(보호), 연합, 금요기도회, 주일예배, 청년부
3. 비전 선교사
-이삭 선교사(00국) -데이빗, 에스떼르 선교사(00국) -존 선교사(00국)
-오미드, 마리암 선교사(00국) -바흐럼 선교사(00국)
-할릴 선교사(00국) -샤흐너즈 선교사(00국)
-후만,어뤠즈선교사(00국) -압신, 파르베네선교사(00국)
4. 아프칸 사태, 아이티 사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