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가 세워지기 위해서
현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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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views교회 공동체의 본질과 성도의 책임, 그리고 하나님의 사랑과 성경적인 관계에 관해 살펴보며, 서로 사랑하고 섬기며 건강한 공동체를 세우도록 권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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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 484
고린도 교회는 파당의 문제부터 다양한 의견의 충돌로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 파당의 문제는 교회 내에 적절한 지도자가 없어서 생겼다고 볼 수 있다. 사도 바울은 서신의 끝에 고린도 교회 문제의 실질적인 해결책으로 믿음의 사람을 천거한다.
15-16절: 스데바나는 아가야 지방의 첫 열매이다. 고린도는 아가야 지방의 수도이다. 스데바나는 바울이 고린도 지역에서 전도할 때 제일 먼저 예수님을 영접한 사람이다. 스데바나와 그의 가족 전체가 예수님을 믿었다. 예수님을 믿으면서 성도 섬기기를 작정했고 이 일은 고린도 교인들도 알고 있었다. 자신의 집을 가정교회로 사용했던가, 재산의 상당 부분을 교회를 위해 헌금했을 수 있다. 그의 헌신은 고린도 교회가 세워지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음이 틀림없다.
17절에서 스데바나는 바울에게 고린도교회의 문제를 보고하고 답을 얻기 위해 바울을 방문한 사람 중에 첫 번째로 언급되고 있다. 이를 보면 그는 바울 사도의 권위를 인정하고 관계도 좋았던 것 같다.
바울 사도는 스데바나라면 고린도 교인들도 인정하고 따를만하다 생각하여 천거하고 있다. 자신을 높이지 않고 하나님의 뜻을 행할 사람이라고 인정했다. 스데바나를 말할 때 바울이 흡족해 하며 신뢰하는 걸 느낄 수 있다.
이런 사람들, 그리고 함께 협력하는 사람들에게 복종하라고 명령한다. 복종하는 대상은 다스리는 자리에 있는 사람이다.
교회에 어떤 사람이 세워져야 하는지 알 수 있다. 세워진 사람은 어떤 모습이어야 하는지를 보여준다. 성도를 섬기기로 작정하여 자신을 헌신하는 사람이다. 자기를 세우지 않고 하나님을 높이는 사람이다. 하나님께서 세우신 권위를 인정하여 좋은 관계를 유지하는 사람이다. 우리도 스데바나와 같은 사람이 되어야 한다.
17-18절: 스데바나, 브드나도, 아가이고가 고린도교회에서 에베소에 방문했다. 바울에게 고린도 교회의 문제를 알리고 답을 얻기 위해서다. 이들의 방문으로 바울 사도의 마음이 기뻤다. 바울 사도는 글로에의 집을 통해 분쟁의 소식을 먼저 듣고, 스데바나를 비롯한 이들의 방문으로 교회의 자세한 상황을 알게 되었다. 그들이 전해 준 소식이 좋지 않았지만, 교회의 구체적인 상황을 알고 적절한 조치를 할 수 있었기에 바울의 마음이 시원했다. 바울이 쓴 편지를 가지고 돌아가면 교회는 돌이킬 것이었다. 이들의 수고 때문에 고린도 교인들은 회개하였고 바울 사도와 관계도 회복되었다.
이런 이들을 알아주라고 명령한다. 교회의 어려움을 해결하기 위해 힘쓰는 자들이다. 교회가 어지러워지는 것을 보고 에베소까지 바울을 찾아간 이들의 열정과 헌신을 알아주어야 한다.
교회에 어떤 사람이 세워져야 하고, 어떤 사람이 인정받아야 하는지 말해준다. 성도를 섬기기 위해 헌신하는 사람, 교회의 어려움을 해결하기 위해 힘쓰는 사람이다.
고린도 교회가 어려운 상황에 놓인 이유는 자신을 높이려는 자들이 득세해서다. 경건을 이익의 재료로 삼고, 하나님의 이름을 사용해서 자신이 인정받으려는 자들 때문이었다. 진실한 하나님의 사람이 세워지고 존중될 때 교회는 평안하게 된다.
여러분은 교회가 어려울 때 어떤 모습을 취하는가? 어떤 사람을 인정하는가? 나와의 관계를 생각하는가? 교회에 어떤 모습으로 헌신하는지를 보는가? 교회는 성도들의 모임이다. 성도들이 가지고 있는 가치관에 따라 지도자가 세워진다. 교회가 더욱 성장하기도 하고 후퇴하기도 한다. 내가 먼저 성도 섬기기를 헌신하고, 교회의 유익을 위해 힘쓰는 자가 되기 바란다. 그리고 그런 사람을 인정하고 가까이하며 세우기 바란다.
19-20절: 아시아의 교회들이 문안한다. 아굴라와 브리스가의 교회가 문안한다. 모든 형제도 문안한다. 아시아의 교회들에는 에베소 교회를 비롯해서 골로새, 라오디게아, 히에라볼리 지역에 있는 교회도 포함된다. 아굴라와 브리스가의 집에 있는 교회는 에베소 지역에 있는 가정교회를 말하는 것으로 보인다. 모든 형제까지 포함한다. 모든 성도가 고린도 교회에 문안한다는 말이다.
지역마다 개교회가 존재하지만, 하나님 안에 우주적 교회로 연결되어 있다. 예수 그리스도는 한 분이시다. 모든 지체가 그분을 머리로 하여 연결되어 있다. 당연히 모든 교회는 예수님의 지체이다. 모든 교회는 연결되어 있다. 고린도 교회에 여러 교회가 문안하는 것은 당연하다. 고린도 교회의 어려움에 다른 교회들이 관심을 가지는 것은 당연하다.
고린도 교회가 회복되어야 할 이유는 지역교회가 존속하는 차원의 문제를 넘어선다. 우주적 교회의 연합의 관점에서 보아야 한다. 한국교회가 어려움을 겪고, 문제가 불거질 때 하나님의 마음을 헤아려야 한다. 한 분 예수님을 머리로 연결된 교회라는 인식이 있어야 한다.
고린도 교회의 회복이 개교회만의 문제가 아니듯이 우리 교회의 회복, 옆 교회의 회복, 한국교회의 회복이 따로 떨어진 별개의 문제가 아니다.
바울 사도가 여러 교회의 안부를 적어 보내는 이유는 고린도 교회가 다른 교회들과 연합하고 연결되기를 바라기 때문이다. 이는 하나님의 마음이다. 우리 교회도 다른 교회들과 연결되어야 한다. 해야 하는 문제가 아니라 우리의 존재가 그런 상황을 요구한다. 예수님께 연결되어있기에 지체 간에 연결은 필연적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신경과 환자 사례를 모은 책 ‘아내를 모자로 착각한 남자’에서 한 남자에 대한 사례가 나온다. 어느날 신경의학자인 올리버 색스가 병원에 도착했을 때 한 환자가 침대 옆의 바닥에 누워서 분노, 공포, 당혹감으로 자신의 한쪽 다리를 보고 있었다. 침대에 올라갈 수 있는지, 도움이 필요한지 묻는 저자에게 남자는 말했다. “전 오늘 아침에 몇 가지 검사를 받으려고 병원에 왔습니다. 아무런 병도 없었는데 신경과 의사들이 내 왼쪽 다리가 ‘둔한’ 것 같다며 나더러 입원하라고 했어요. (...) 하루 종일 기분도 좋았고 저녁에는 잠까지 곤하게 잤어요. 그런데 침대에서 몸을 좀 뒤척거렸더니 ‘누군가의 발’이 있는 거예요. 잘린 다리 말이에요. 얼마나 무서웠다고요! 어찌나 놀랐는지 구역질까지 나고 온 몸이 부들부들 떨렸어요. (...) 아무튼 조심스럽게 다리를 만져봤어요. 진짜 다리였어요. 하지만 ‘좀 이상하고’ 차가웠어요. 바로 그때 뭔가가 떠올랐어요. 무슨 일이 생긴 것인지 짐작이 가더라고요. 그래, 누군가 장난을 친 거야! 좀 무시무시하고 고약하긴 하지만 그대로 꽤 창의적인 장난인걸! 내일이 바로 새해 첫날이라서 다들 들떠 있었거든요. 직원들 중에 반은 술에 취해 있었어요. (...) 분명 짖궃은 간호사 하나가 해부실에서 몰래 들어가 발 하나를 꺼내와서는 내가 곤하게 자고 있는 동안 침대 속에다 집어넣는 장난질을 한거였어요. (...) 하지만 장난질치고는 도가 좀 지나치다는 생각이 들어서 그 지랄 같은 것을 침대 밖으로 내던진 거랍니다.”
“내가 그걸 침대 밖으로 던졌는데 내 몸까지 딸려 내려간 거예요. 게다가 그게 내 몸에 붙어 있어요! 이걸 보세요!”
“이렇게 소름끼치고 무시무시한 것을 본 적이 있나요? 이건 방금 죽은 시체에서 나온 거예요! (...) 이놈이 나한테 달라붙어 있었던 것 같아요!”
그러면서 양손으로 있는 힘껏 다리를 움켜쥐고 몸에서 떼어내려고 애쓰다가 안 되자 미친 듯이 때려댔다. 의사는 다급히 말했다. “진정하세요. 진정하라고요! 다리를 그렇게 때려대면 안 돼요.” “왜 안 되죠?” “당신 다리니까요. 당신 다리라는 걸 모르는 거예요?”
환자는 놀라움과 불신, 공포와 조소가 뒤엉킨 표정으로 의사를 뚫어지게 쳐다봤다.
각 몸의 지체가 고유감각이 있어서 자기 몸이라는 인식이 가능하다. 척수 신경이 어떤 이유로 인해 손상이 생겼을 때 고유감각을 상실하게 되는 드물게 나타나는 증상이다. 문제는 다리가 아니라 내 다리로 느껴지지 않는 데 있다. 이런 비정상적인 일이 있겠느냐 싶지만, 한국교회 안에 일어나는 문제가 이와 비슷하다고 본다.
문제 있는 교회를 하나님의 교회가 아닌 것처럼 비판할 때, 하나님의 교회를 하나님의 교회로 보지 못하는 내가 문제이다. 비판하는 교회가 아니라 내가 머리이신 예수님과 교통에 문제가 생긴 것이다. 죄 지은 성도를 보고 형제가 아닌 듯 비판하고 정죄하고 백안시한다면 그 성도의 문제보다 나에게 더 큰 문제가 있다. 신경 계통의 문제가 생긴 환자처럼 예수님과 교통에 문제가 있는 증거이다.
우리에게 이런 무감각의 증상이 있다면 여러 신앙적인 행위가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머리이신 예수님과 교통이 끊어졌다는 증거인데. 교회가 회복되는 방법은 예수님께 은혜를 공급받는 방법뿐이다. 예수님과 교통에 문제가 있다면 그 부분부터 해결 되어야 교회가 회복된다. 개인에게도 원리는 같다. 다른 성도의 문제에 별 감각이 없다면 예수님과 연결에 문제가 생긴 것이다. 회개하며 연결을 회복하는데 초점을 맞춰야 한다.
한 몸으로 느껴지지 않는 우리의 마음과 상태를 당연하게 여기지 말자. 큰 문제이다. 이대로 두면 더 큰 문제가 일어난다.
주님 우리를 긍휼히 여기소서. 스스로 예수님과 친밀하다 여기지만 예수님과 교통이 끊어져 있습니다. 끊어진 교통을 회복하여 주시고 주님과 친밀하여 성도를 내 몸처럼 여기게 하옵소서. 기도하기 바란다.
찬 484
기도제목
1. 나라와 민족(코로나) 북한, 한국교회(회개의 물결, 대면예배 회복)
2. 수림교회(보호), 연합, 항존직 피택자 교육, 금요기도회, 주일예배
3. 비전 선교사
-이삭 선교사(00국) -데이빗, 에스떼르 선교사(00국) -존 선교사(00국)
-오미드, 마리암 선교사(00국) -바흐럼 선교사(00국)
-할릴 선교사(00국) -샤흐너즈 선교사(00국)
-후만,어뤠즈선교사(00국) -압신, 파르베네선교사(00국)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