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태복음 5장
현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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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views참된 믿음과 제자의 삶, 그리고 죄인을 구원하시는 복음과 하나님의 은혜에 관해 살펴보며, 말씀에 순종하며 성숙한 믿음으로 살아가도록 권면한다.
Notes
Transcript
찬 407
23-25절에 예수님께서 갈릴리 지역에서 행하신 사역을 요약했다. 가르치고, 전파하고, 고치시는 사역이다. 가르치고 전파하는 말씀 사역에 대한 주요 내용이 마5-7장의 산상수훈이다.
산상수훈은 성경 교리의 엑기스이며 예수님이 전하신 말씀에 핵심이다. 구약 뿐 아니라 신약의 서신서까지 해석의 기초를 산상수훈에 두어야 한다.
딤전 6:3 누구든지 다른 교훈을 하며 바른 말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과 경건에 관한 교훈을 따르지 아니하면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과 경건에 관한 교훈이 바른 말이라고 증거한다. 예수님의 말씀을 따르지 않는 자를 교만하고 악한 자라고 정죄한다. 바울 사도는 예수님의 말씀과 교훈에 기초하여 서신서를 기록하고 복음을 전했다. 서신서를 해석할 때 산상수훈에 기초하여 해석해야 하는 이유이다.
1절: 예수님께서 무리를 보시고 산에 올라가 앉으셨다.
구약 성경에서 산은 하나님께서 임하시는 곳으로 나타난다. 본문은 출애굽기에서 시내산에 하나님께서 강림하여 말씀을 선포하신 장면을 떠올리게 한다. 하나님이신 예수님께서 산에 올라가 앉으시고 말씀은 전하신다.
산에 올라가 앉으신 예수님 앞에 제자들이 나아온다. 25절에서 허다한 무리가 예수님을 따르는 상황이었다. 예수님 앞에 가까이 나아간 이들은 제자들이었다. 이 또한 출애굽기에 나타난 시내산 강림 시에 백성들이 있고, 70장로, 여호수아, 모세가 각각 하나님께 나아가는 정도가 달랐던 것과 비슷한 모습을 보여준다.
예수님 앞에 가까이 나아간 이들은 제자였다. 무리는 그저 예수님을 멀리서 바라보았을 뿐이다. 어떤 사람은 제자들에게만 말씀이 선포되었다고 해석하기도 하는데 그렇지는 않다. 7:28에 ‘무리가 그 가르치심에 놀랐다’는 묘사에서 무리들도 하나님의 말씀을 들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예수님께 가까이 나아가 개인적인 관계를 가진 이는 제자였다. 무리는 예수님과 개인적인 관계가 없었다. 예수님은 무리를 알지 못하고, 그들의 바람을 기뻐하지도 않으셨다. 복음서에서 예수님은 무리를 피하셨고, 무리를 좇아내기까지 하셨다. 제자만 예수님의 사람이다. 제자가 아니고서도 예수님의 사람일 수 있다는 생각은 우리의 착각이다. 제자가 되어 예수님을 따르지 않는 사람은 예수님께 합당하지 않다. 구별된 무리인 성도는 곧 제자이다.
2절: 예수님의 가르침이 시작된다.
먼저 팔복의 말씀을 선포하신다. 팔복에 대해 여러 각도로 생각할 수 있다. 하나님께서 어떤 이들에게 어떤 복을 주시는 분인지에 대한 설명이다. 하나님의 백성, 천국시 민은 어떤 특성을 가지는지를 설명한다. 어떻게 보면 신앙이 성장하는 모습으로 보이기도 한다. 모두 가능하다.
그러나 주의를 놓치지 말아야 할 점이 있다. 예수님은 영에 관해 말씀하고 계신다. 그리고 무엇을 하면 이런 복을 주신다는 말씀이 아니라 복을 받을 마음의 상태에 대해 말씀하고 있다.
하나님과의 관계는 어떤 행동에 좌우되지 않다. 교재란 존재를 통해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사람과의 교재도 서로 잘 모르는 얕은 단계에서는 표정, 행동, 말투가 중요하게 작용하지만, 관계가 깊어지면 상대가 어떤 사람인지가 중요해진다. 착한 사람인지, 사심이 없는지, 인간적인 매력이 있는지, 성품은 어떤지, 어떤 가치관을 가지고 있는지, 관심사가 나와 비슷한지...
하나님은 우리를 전부 보신다. 얕은 단계란 없다. 하나님과 교재는 존재의 상태가 전부를 좌우한다. 그래서 우리가 거듭나 하나님의 자녀가 되지 않으면 교재가 시작도 안 된다. 하나님을 거역하는 악한 상태에서는 아무리 선을 행하고자 꾸며도 하나님과 교재가 안 된다. 그런데 자녀로 거듭나도 우리가 어떻게 사느냐에 따라 우리의 존재의 상태가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상태가 되기도 하고, 반대가 되기도 한다. 우리가 하는 행동이 우리의 존재 상태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우리가 헷갈리는 부분이 여기에 있다. 행동이 하나님과의 관계를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행동이 존재 상태에 영향을 미치면 하나님과의 관계가 달라진다. 무엇을 해서 복을 받는다기보다 복을 받을 상태에서 그에 걸맞는 행동을 하므로 자신의 상태를 확증하고 하나님께 복을 받는다. 무엇을 해서 징계를 받는다기보다는 작은 행동들을 통해 불순종의 상태로 변화되고 어떤 특정 행동을 통해서 자신의 상태를 확증하고 징계를 받는다.
팔복은 복을 받을 상태,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마음의 상태를 말하고 있다. 물론 마음을 지킬 수 있는 사람은 없다. 처음 주신 하나님의 마음과 사랑을 귀히 여기며 지켜가고 하나님의 마음에 따른 감동을 순종할 때 더욱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마음의 상태가 된다. 팔복의 단계가 성장의 단계처럼 보이는 이유이다.
3절:
팔복의 첫 번째는 심령이 가난한 자에 대한 복이다.
첫 번째에서 심령에 대해 말하고 있다. 팔복 전체가 영에 관련된 복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심령이 가난한 사람이 복이 있다. 심령이 가난한 사람은 어떤 사람일까? 영이 가난한 사람... 여기서 가난한 사람은 절대적 빈곤에 처하여 남의 도움이 없이는 살 수 없는 사람을 말한다. 영이 가난한 사람은 영이 자신의 힘으로는 살 수 없는 사람이다.
시편 119:69-70
69 교만한 자들이 거짓을 지어 나를 치려 하였사오나 나는 전심으로 주의 법도들을 지키리이다
70 그들의 마음은 살져서 기름덩이 같으나 나는 주의 법을 즐거워하나이다
반대의 사람은 마음이 살쪄 기름덩이 같은 사람이다. 그들은 교만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않는 사람이다. 자기 힘으로 살 수 있다고 여기는 사람들이다. 남의 도움이 필요없는 사람이다. 하나님의 말씀도 은혜도 주어지면 그만이고 아니어도 그만이다.
그러나 심령이 가난한 사람은 하나님의 도움이 없이는 죽는 사람이다. 영이 견딜 수 없는 사람이다. 그래서 하나님 앞에 날마다 도움을 구할 수밖에 없다. 이들은 겸손하다. 하나님의 도움을 귀히 여긴다. 어떻게든 도움을 얻고자 찾고 구한다.
신대원 때 그리고 사역 초기에 영적으로 너무 힘들었다. 공격도 많이 받고, 느껴지기도 하는데, 이길 힘이 없다. 중보기도도 없다. 죽을 것 같았다. 그러다가 영적인 도움을 받을 수 있는 분과 교회를 만났다. 일주일에 한 번씩 편도 4시간이 넘는 거리를 한 번의 기도회에 참석하고 기도 받기 위해 오갔다.
몸은 힘들었고, 영적 싸움도 고단하고 지난했지만 하나님이 가까이 계셨다.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다. 천국이 그의 것이기 때문이다. 자기 영의 가난함을 알고 하나님의 도움을 간절히 구하는 자에게 하나님의 가까이하신다. 그를 기뻐하신다. 그에게 천국을 약속하신다.
눅 17:21 또 여기 있다 저기 있다고도 못하리니 하나님의 나라는 너희 안에 있느니라
어디 먼 곳을 찾아가야 한다는 말이 아니다. 그때는 나의 간절함이 그런 모습으로 표현되었다. 지금은 어디를 찾아가지 않아도 하나님 앞에 나아가는 방법을 배웠다. 날마다 하나님 앞에서 그분의 은혜를 간구한다. 하루라도 기도하지 않으면 살 수 없는 자신의 가난함을 알기에 하나님께 나아간다.
자기 영이 가난하다는 사실을 아는가? 하나님의 도움이 없이는 하루도 살 수 없다는 것을 아는가? 하나님 앞에 나아갈 때마다 살려달라는 마음으로, 큰 죄인 복 받아 살 길을 얻었네... 예수님이 살 길이라는 걸 알고 간절함으로 나아가는가?
나는 심령이 가난한 자의 상태인가? 그렇지 않다면 천국이 멀게 느껴질 것이다. 천국이 있겠구나 싶고, 가겠지라고 막연히 생각할지언정 지금 경험하지는 못할 것이다. 천국을 누리는 복은 심령이 가난한 자에게 주어지기 때문이다.
기도제목
1. 나라와 민족(코로나) 북한, 한국교회(회개의 물결, 대면예배 회복)
2. 수림교회(보호), 연합, 금요기도회, 주일예배, 청년부
3. 비전 선교사
-이삭 선교사(00국) -데이빗, 에스떼르 선교사(00국) -존 선교사(00국)
-오미드, 마리암 선교사(00국) -바흐럼 선교사(00국)
-할릴 선교사(00국) -샤흐너즈 선교사(00국)
-후만,어뤠즈선교사(00국) -압신, 파르베네선교사(00국)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