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 섞여 하나님을 잊은 자리에서도, 부르짖으면 하나님은 구원자를 세우신다 사사기 3: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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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 나무는 언제 튼튼해지는지 아십니까. 뜻밖에도 바람이 나무를 강하게 만듭니다. 식물학에서 잘 알려진 사실인데, 나무가 바람에 이리저리 흔들리면 그 스트레스에 반응해서 "응력목", 영어로 리액션 우드라고 부르는 특별한 목질을 만들어 냅니다. 이 응력목이 세포 구조를 바꾸어서 나무를 더 단단하게, 스스로의 무게를 견디도록 붙들어 줍니다. 그래서 바람 한 점 없는 온실에서 곱게 자란 나무는 겉으로는 더 빨리 크지만, 정작 다 자라기도 전에 제 무게를 못 이기고 쓰러지는 경우가 있다고 합니다. 흔들림이 없으면, 설 힘도 생기지 않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을 읽으면 하나님이 참 이상한 일을 하십니다. 가나안 땅에 이방 민족을 다 쫓아내지 않으시고 일부러 남겨 두십니다. 1절과 2절에 그 이유가 나옵니다. "가나안의 모든 전쟁들을 알지 못한 이스라엘을 시험하려 하시며, 아직 전쟁을 알지 못하는 자들에게 그것을 가르쳐 알게 하려 하사 남겨 두신 이방 민족들"이라고 합니다. 여기 "시험하다"는 히브리어 나사인데요,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시험하시고 광야에서 이스라엘을 시험하실 때 쓰신 바로 그 단어입니다. 하나님이 몰라서 시험하시는 게 아닙니다. 그 백성 안에 참된 믿음이 있는지를 드러내고, 편하게만 자란 세대에게 언약 백성의 싸움을 가르치시려는 것입니다. 바람을 남겨 두셔서, 다음 세대가 설 힘을 기르게 하신 것입니다.
그런데 이스라엘은 그 시험 앞에서 어떻게 반응했습니까. 5절과 6절을 보십시오. 그들은 가나안 족속과 함께 살면서 그들의 딸을 아내로 맞고, 자기 딸을 그들의 아들에게 주고, 또 그들의 신들을 섬겼습니다. 문제는 함께 산 것이 아니라 그들의 신을 섬긴 것입니다. 세상 한복판에 살라고 하나님이 부르셨지만, 세상의 신을 섬기라고 부르신 것은 아닙니다. 그런데 이스라엘은 어느새 세상과 통혼하고, 세상의 우상에게 무릎을 꿇었습니다. 7절은 그것을 이렇게 요약합니다. "이스라엘 자손이 여호와의 목전에 악을 행하여 자기들의 하나님 여호와를 잊어버리고." 잊어버렸다는 말이 아프게 다가옵니다. 세상에 섞이다 보니, 하나님을 잊어버린 것입니다.
그 결과가 8절입니다. 하나님이 진노하셔서 그들을 메소보다미아 왕 구산 리사다임의 손에 파셨고, 이스라엘은 팔 년을 그를 섬겼습니다. 참 아이러니합니다. 하나님을 섬기지 않겠다던 백성이 결국 이방 왕을 섬기게 됩니다. 하나님을 떠난 자유가 실은 더 무거운 종살이였던 것입니다.
그런데 바로 여기서 복음이 시작됩니다. 9절입니다. "이스라엘 자손이 여호와께 부르짖으매." 본문은 그들이 회개했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그냥 고통 중에 부르짖었다고만 합니다. 완전하지 않은 부르짖음이었는데도, 하나님은 그 소리를 들으십니다. 그리고 "한 구원자를 세워 그들을 구원하게" 하십니다. 이 "구원자"라는 단어가 모시아인데요, 예수님의 이름과 같은 어근에서 나온 말입니다. 그가 바로 갈렙의 아우 그나스의 아들 옷니엘입니다. 10절을 보십시오. "여호와의 영이 그에게 임하셨으므로." 옷니엘이 이긴 것은 그가 전쟁 용사여서가 아니라, 여호와의 영이 그에게 임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구산 리사다임을 그의 손에 넘겨 주시고, 그 땅이 사십 년 동안 평온했습니다. 팔 년 고생에 사십 년 평안. 하나님의 은혜는 언제나 우리의 고난보다 큽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본문이 우리에게 주시는 한 가지 메시지는 이것입니다. 세상에 섞여 하나님을 잊은 자리에서도, 부르짖으면 하나님은 구원자를 세우신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두 가지를 마음에 새기기 원합니다.
첫째, 나도 모르게 세상과 통혼하지 않았는지 살피십시오. 최근 목회데이터연구소 조사에 따르면 담임목사의 91퍼센트, 교인의 81퍼센트가 한국교회가 세속화되었다고 답했습니다. 그 첫째 이유가 성경보다 물질과 세상적 성공을 더 중요하게 여기는 것이었습니다. 이스라엘의 우상은 바알이었지만, 오늘 우리의 우상은 돈과 성공과 비교일 수 있습니다. 가정에서, 일터에서, 학교에서 내 진짜 기준이 무엇인지 오늘 새벽에 정직하게 여쭤 보십시오.
둘째, 다음 세대에게 신앙의 싸움을 가르치십시오. 같은 연구소의 2025년 지표를 보면, 신앙이 약해진 것 같다고 답한 비율이 20대에서 34퍼센트로 가장 높았습니다. 바람 없이 자란 나무처럼, 편하게만 자란 세대가 가장 흔들립니다. 우리가 할 일은 자녀들이 어려움을 피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함께 무릎 꿇고 함께 싸우며 흔들려도 설 수 있는 믿음을 물려주는 것입니다.
옷니엘은 하나님이 세우신 구원자였습니다. 그러나 그는 결국 죽었고, 사십 년의 평안도 끝이 났습니다. 사사기는 이 순환을 반복하며 이렇게 묻습니다. "완전한 구원자는 언제 오시는가." 그 물음의 답이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옷니엘 위에 잠시 임했던 여호와의 영이, 예수님 위에는 한량없이 머무셨습니다. 그분은 메소보다미아 왕이 아니라 죄와 사망과 마귀를 이기셨습니다. 그분은 사십 년이 아니라 영원한 안식을 주십니다.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스스로 구원할 수 없었을 때에, 하나님은 참 구원자 예수를 보내 주셨습니다. 그러니 오늘도 부르짖으십시오. 세상에 섞여 넘어진 자리에서라도, 부르짖는 자를 하나님은 결코 외면하지 않으십니다. 우리에게는 이미 영원한 구원자, 예수 그리스도가 계시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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