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태복음 8장

현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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죄인을 구원하시는 복음과 하나님의 은혜, 그리고 기도와 참된 예배의 의미에 관해 살펴보며, 복음을 믿고 구원받은 성도답게 살아가도록 권면한다.

Notes
Transcript
찬 312
오늘은 사순절의 시작 재의 수요일입니다. 부활전 전에 주일을 제외한 40일간의 기간이 사순절입니다. 사순절의 첫날을 재의 수요일이라 부르는데, 초대 교회로부터 시작되어 로마 카톨릭에 계속되어 온 관습으로 자신의 죄를 참회하는 상징으로 머리에 재를 뿌리는 의식을 행했습니다.
재의 수요일이라는 명칭에서 우리의 믿음의 선진들은 사순절을 어떻게 시작하고 보냈는지를 알 수 있습니다. 사순절에 금식하는지 알 수 있습니다. 지난번 마태복음 6장에서 금식에 관한 교훈을 살펴볼 때 금식의 의미를 알았습니다. 죄인 됨으로 하나님 앞에 나아가는 것입니다. 사순절에 금식이 그러해야 합니다. 우리가 미디어 금식, 고기 금식 등을 하지만, 성경에서 금식은 철저하게 먹지 않는 것으로 나옵니다. 먹지 않는 행위를 통해 자신의 죄인 됨을 몸으로도 고백하는 것입니다. 그러니 사순절을 어떻게 지내야 하는지 명확하게 알 수 있습니다.
벌써 꽤 오래 전부터 공동체와 함께 절기를 금식으로 지켰습니다. 그런데 절기 당일이 갈까올수록 하나님 앞에 항상 저의 금식이 우리의 금식이 너무 부족합니다. 긍휼히 여겨주옵소서. 기도하게 되었습니다. 물론 원론적인 관점에서 그렇게 고백하는게 합당하지만 정말 부족하게 느껴졌습니다. 금식을 하면서도 영화보고, 취미 생활을 하고, 다투기도 하고, 배고프지 않기 위해 금식 시작 전에 넉넉하게 먹고... 그때는 정확히 무엇이 잘못인지 몰랐습니다.
그러나 금식이 죄인 됨으로 하나님 앞에 서는 것이라면, 사순절의 기간에 나의 죄를 위해 죽으신 주님 앞에 나의 죄 됨을 고백하며 그분의 긍휼을 구하는 모습으로 나아가야 한다면, 그래서 금식하는 것이라면, 금식하면서 오락을 즐기고, 금식하면서 다투고, 금식을 하면서도 배고픔을 피하려 하는 그런 행동은 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금식에 관해 바로 깨닫게 되었으니 이번 사순절에는 다르게 금식해보려 합니다. 정말 죄인된 모습으로 하나님 앞에 서보려고 합니다. 죄인이니까 밥을 먹지 않는 것이니까, 금식하면서 배고픔을 느껴야 마땅하니까, 죄인으로 참회의 심정을 가지니까 겸손하게 누가 뭐라해도 마음을 낮추면서, 참회와 애통의 심정이니까 오락은 멀리하면서... 그렇게 죄인된 모습으로 서보려고 합니다. 40일이란 시간이 짧지 않기에 얼마나 잘 할 수 있을지 잘 모르겠지만 이전과는 다른 마음으로 금식하려 합니다. 금식을 작정하신 분들이 많으실 것입니다. 믿음의 분량을 따라 마음에 감동을 따라 정하셨을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죄인 됨으로 서십시오. 금식하는 이유가 금식을 통해 무엇을 받기 위함이 아니라, 내가 죄인이기에 나의 죄가 예수님을 십자가에 죽였기 때문에 그래서 죄인이기에 금식하는 것입니다.
얼마 전에 하나님 앞에 기도하면서 은혜 가운데 깨닫게 된 것이 있었습니다. 기도를 하면서, 그분을 예배 하면서 효과에 집중하는 저를 보았습니다. 효과를 강조하는 저를 보았습니다. 무언가 크게 잘못된 모습었습니다. 내가 피조물이고, 내가 하나님을 경배해야 하는 자이기에 하나님 앞에 경배하고, 예배하고, 하나님의 종이기에 기도하고 그저 나의 존재가 그러기에 그런 것인데... 어떻게 하면 신앙행위를 통해 더 좋은 효과를 얻을 수 있을까 생각했습니다.
하나님 앞에 나아가면 그분을 예배하며, 기도하며 만나면 은혜를 받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목적이 되면 안 됩니다. 그저 예배 자체가, 기도 자체가 목적이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을 만나는 것 그분을 예배하는 것 그분을 경배하는 것 자체가 목적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가 그런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를 주십니다.
금식을 작정했습니다. 내가 죄인이기에 금식하는 것입니다. 금식을 통해 어떤 효과가 있을까에 집중하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온전한 금식으로 하나님을 섬기십시오. 그러면 하나님께서 기대하지 않은 은혜를 주십니다. 그러나 받을 은혜, 변화가 아니라 내가 죄인이기에 금식한다는 그 사실을 놓치지 마십시오. 그러니 금식을 해서 어떤 변화가 없어도, 어떤 효과가 없어도, 하나님께는 아무 책임도 없고 아무 원망도 있을 수 없습니다. 우리는 그저 죄인으로서 해야할 것을 했을 뿐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런 겸손한 마음으로 나아가는 여러분에게 반드시 은혜를 주십니다.
본문에 문둥병자에게 주신 예수님의 은혜를 살펴봅시다.
예수님께서 산상수훈의 말씀을 마치시고 산에서 내려오시는데 많은 무리가 예수님을 좇았습니다. 그때 한 문둥병자가 예수님께 나아와 절하며 요청합니다. 우선 아시겠지만 문둥병자는 사람들과 격리되어 살아가야 합니다. 문둥병자가 수많은 무리가 따르는 예수님 앞에 나아온 것은 대단한 결심이 있었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그가 예수님 앞에 절했는데, ‘절하다’는 이 단어는 예배하다, 경배하다는 의미를 가진 단어입니다. 하나님, 신에게 쓰이는 단어입니다. 문둥병자가 예수님을 보통 사람으로 알고 나아오지 않았습니다. 예수님 앞에 하나님께나 드릴 경배를 드리고 있습니다. 예수님이 대단한 분인줄 알았기에 사람들에 대한 두려움을 무릅쓰고 나아왔습니다. 그의 말에서도 예수님에 대한 그의 믿음을 알 수 있습니다.
‘주여 원하시면 저를 깨끗하게 하실 수 있나이다.’ 예수님을 주님으로 부릅니다. 예수님의 신적 능력을 인정합니다. 그런데 그에게 부족한 것 한 가지가 있었으니, 예수님께서 나를 치유해 주실 마음이 있는지에 대한 믿음이었습니다. 주여 원하시면! 예수님이 자신을 치유해 주시기 원하실지 알 수 없었습니다. 자신이 문둥병자이고, 천형을 받은 자인데, 저 거룩한 분이 나를 치유해 주고 싶어하실까. 어쩌면 더 죄의 형벌을 지고 살라고 하지 않으실까. 그렇게 걱정했던 것 같습니다.
여러분 중에 사순절에 금식하며 하나님께 나아가자는 목사님의 말씀에 감동을 받으셨을 것입니다. 이번 사순절에 하나님 앞에 제대로 나아가야겠다. 예수님이 나의 해결되지 않는 문제를 해결해주실 수 있지. 예수님에 대한 믿음이 생기셨을 것입니다. 그런데 어쩌면 마음 한편에 정말 나를 고쳐주실까. 내 문제를 해결해주실까. 이제껏 안 되었는지 또 안 되는 건 아닌가. 다른 사람은 해결되는데 나만 안 되면 어쩌나. 이런 생각이 드실 수 있습니다.
본문의 문둥병자에게 예수님이 경배하실 분이며, 그분이 자신의 병을 치유할 능력을 가지신 분이라는 이 믿음을 주신 분이 누구십니까. 하나님이십니다. 다른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좇고, 그가 선지자이네, 엘리야이네, 예레미야이네, 하면서 정작 경배 받으실 하나님이라는 사실은 극소수만 깨달아 알았습니다. 그중에 문둥병자가 속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에게 깨닫게 하셨습니다. 왜 그랬습니까. 예수님 앞에 나아가 그저 퇴짜 맞도록 하기 위해 그러셨습니까. 아니었습니다. 예수님에 대한 믿음을 주신 하나님께서 문둥병자가 예수님을 만나고 예수님을 경험하도록 하시기 위해서 였습니다.
3절: 예수님께서 문둥병자에게 손을 내밀어 대시면서 내가 원하노니 깨끗함을 받으라 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문둥병자의 의심에 답하셨습니다. 내가 원한다. 내가 너를 고치기를 원한다. 그러니 받으라. 깨끗함을 받으라. 그러자 문둥병자의 병이 즉시 깨끗해졌습니다.
전에도 말씀드렸듯이 예수님께 나아가는 자들은 믿음의 유무와 상관없이 모두 병고침을 받았습니다. 그러면 우리에게 복잡한 생각이 떠오릅니다. 그러면 그동안 기도했는데 왜 고쳐지지 않았지? 그동안 예수님 앞에 나아갔는데 왜 고쳐주시지 않았지? 그리곤 예수님이 나를 고쳐주기 원하지 않는다고 쉽게 결론 내립니다. 그러나 우리가 겪는 일들이 그렇게 단순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계획은 우리가 알 수 없습니다. 그분이 고쳐주고 싶으나 그렇게 하실 수 없는 이유가 있습니다. 지금은 알지 못하나 후에는 알 수 있습니다. 그러니 하나님께서 여러분에게 주신 믿음으로 그분을 믿으십시오.
예수님은 문둥병자에게 예수님의 마음을 알려주신 것입니다. 내가 원한다. 내가 너를 고치기를 원한다. 꺠끗함을 받으라. 문둥병자는 예수님의 말씀을 받아들였고 그래서 고침을 받았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지금도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이 사순절 기간을 통해 예수님께 나아오라 초청하십니다. 예수님께서 겸손하신 그분께서 우리에게 너가 죄인이니까 죄인답게 굴어라 안 그러면 아무 것도 없다. 그렇게 말씀하시는게 아닙니다. 그분이 겸손하게 십자가를 지셨습니다. 그분이 자신을 낮추셨습니다. 죄인된 우리를 위해 그렇게 하셨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죄인이 아니라면 그분의 십자가와 상관없습니다. 우리가 죄인 됨으로 겸손히 낮추지 않으면 결코 그분을 만날 수 없습니다. 여러분이 임재의 어떤 느낌, 기도의 어떤 느낌들 하나님을 만나는 것이지만, 진정한 의미에서 깊은 주님과의 만남은 겸손과 죄인 됨의 철저한 인정 없이는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이번 사순절 기간에 금식하며 자신을 낮추어 예수님계신 낮은 자리로 나아가십시오. 그곳에서 예수님을 만나십시오.
내가 원하노니 깨끗함을 받으라 하시는 주님의 음성을 들으십시오. 그리고 치유 받으십시오. 그러나 치유가 아니가 죄인이기에 겸손히 자신을 낮추는 것입니다. 그것을 잊는 순간 겸손을 잃어버립니다. 예수님께서 원하십니다. 여러분의 회복을, 여러분의 치유를 여러분 자신보다 더 원하십니다. 그분의 마음을 알고 그분 계신 곳에 나아가길 힘쓰는 사순절 기간이 되길 간절히 바랍니다.
기도제목
1. 나라와 민족(코로나, 대선) 북한, 한국교회(회개의 물결, 대면예배 회복)
2. 수림교회(보호), 연합, 사순절, 수요기도회, 코로나 확진 가정
3. 비전 선교사
-이삭 선교사(00국) -데이빗, 에스떼르 선교사(00국) -존 선교사(00국)
-오미드, 마리암 선교사(00국) -바흐럼 선교사(00국)
-할릴 선교사(00국) -샤흐너즈 선교사(00국)
-후만,어뤠즈선교사(00국) -압신, 파르베네선교사(00국)
-허디, 후스니에 선교사 -마후무드, 파리 선교사
-아민, 에스맛 선교사 -아만, 바허레 선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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