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이 들리는 사랑의 광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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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세아 2:14-23
호세아 2:14-23
인생의 전원이 꺼진 자리, 광야
인생의 전원이 꺼진 자리, 광야
어제 우리는 우리 인생이 한계에 부딪혀 무너지는 끝자리, 광야에서 비로소 하나님과의 새로운 만남이 시작된다는 말씀을 나눴습니다. 그러면서 우리가 고민하는 질문이 있습니다.
“어쩌다가, 내 삶이 이 광야에까지 이르게 되었는가?”
여러 가지 원인도 찾아보고, 애도 써 보지만 왜 이런 일들이 벌어졌는지에 대해서는 좀처럼 해답을 찾기가 쉽지 않습니다. 하지만 한 가지 확실한 사실은 우리가 하나님의 손을 놓쳤기에 우리 삶이 광야에 서게 될 수 밖에 없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손을 놓친 이유는 간단합니다. 그분의 음성을 놓쳤기 때문입니다. 주변의 소음이 심한 장소에 서게 되면 내 바로 옆에 있는 사람의 말소리도 제대로 분간하기 어려워집니다. 똑같은 말투와 빠르기, 크기를 가지고 이야기해도 좀처럼 속시원하게 들리지 않습니다. 나와 상대방의 문제가 아닙니다. 우리가 서 있는 환경에서 들려오는 잡소리가 너무 많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지금 여러분은 어떤 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걸어가고 있습니까? 하나님의 음성이 또렷하게 들립니까?
사랑의 회복과 선언의 공간, 광야
사랑의 회복과 선언의 공간, 광야
오늘 호세아가 활동하던 이스라엘의 영적인 상태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들의 귀와 눈을 사로잡는 세상의 소리가 너무나도 많았습니다. 그랬기에 그들은 더 자극적이고, 더 현란한 것들을 좇아갔습니다. 그 결과 그들은 모든 생각과 행동이 하나님과 반대되는 것들로 가득 차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범죄를 오랜기간 참고 보고계셨습니다. 하지만 더는 두고볼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기에 하나님은 이스라엘에게 심판을 선언하십니다. 하지만 그 심판의 선언에 대한 이유와 설명이 우리의 생각과 많이 다릅니다.
그러므로 보라 내가 그를 타일러 거친 들로 데리고 가서 말로 위로하고
회복의 이야기가 선포되는 첫 머리는 이렇게 시작합니다. “그러므로”. 많은 신학자들은 이 “그러므로”를 “그럼에도 불구하고”로 바꿔야 올바른 의미 해석이 된다고 말합니다.
버리셔도 되는 이스라엘을 향한 하나님의 애절한 심정이 만들어낸 단어입니다. 분명코 심판하셔야 맞는 상황임에도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단순히 심판하고 징계하고 벌주시기 위해서 광야로 내모시는 것이 아닙니다.
그들은 계약을 일방적으로 파기했으나, 하나님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과 관계를 회복하기 원하셨습니다. 그리고 그 일을 위한 제일 중요한 과정으로 계획하신 것이 바로 ‘광야’에 세우는 것이었습니다.
그 광야에서 무엇을 하시려고 했나요? 14절에 ‘타일러서’라고 나옵니다. 그런데 재미있는 사실이 있습니다. 이 ‘타이르다’는 동사가 들리라가 삼손을 유혹할때에 말로 그를 유혹하는 모습을 나타내는 단어와 같은 단어입니다. 그러면 이런 결론이 내려집니다. 하나님께서 광야에 이스라엘을 세우시고 다시금 구애하시겠다는 뜻입니다. 이목을 끄시겠다는 뜻입니다. 이스라엘의 마음이 하나님께 폭 빠지게 만드시겠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이 얼마나 강력하고도 열정적인지를 보여주는 단어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광야에 서는 것을 두려워하지는 않습니다. 요즘은 그래도 ‘광야’의 개념에 긍정적인 의미가 많다는 것도 어느정도 들어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왜 우리 삶은 매번 제자리일까요? 광야에 서서도 우리가 하나님의 사랑에 관심을 기울이지 않기 때문은 아닐까요? 그분이 내게 주시는 사랑의 신호를 내가 잘 이해하지 못해서는 아닐까요? 오늘 이 밤, 여러분을 향한 하나님의 세레나데가 들리기를 원합니다. 사랑의 노래가 들리기를 원합니다.
토니 에반스는 이렇게 말합니다.
당신은 하나님의 집요한 사랑으로부터 결코 달아날 수 없습니다.
광야는 하나님만 보게 되는 장소입니다. 광야는 하나님의 음성에만 귀 기울이게 되는 장소입니다.
다시 14절을 보시겠습니다.
그러므로 보라 내가 그를 타일러 거친 들로 데리고 가서 말로 위로하고
히브리어로 광야는 ‘미드바르’라고 말합니다. 재미있는 사실은 ‘말하다’라는 단어는 히브리어로 ‘다바르’입니다. 히브리인들에게 광야는 하나님의 음성만 남고 모든 것이 사라지는 공간입니다. 그러기에 찰스 스펄전은 ‘말로 위로하고’라는 대목을 이렇게 해석합니다.
그녀의 마음에 대고 속삭이다.(Speak to her heart)
하나님은 법조문을 들이대시며 위압감 넘치는 목소리로 잘잘못을 따지시려는게 아닙니다. 광야 한가운데서 쏟아지는 별과 칠흙같은 어두움 안에 하나님과 나, 단 둘만 남은 공간에서 내 마음에 대고 사랑의 고백을 속삭이고 싶으십니다. 그래서 우리를 시끄러운 삶에서 벗어나 광야에 서게 하셨습니다.
내가 무언가 부족해서, 잘 하지 못해서, 이제는 한 번 혼날 때가 되어서. 여러가지 이유를 들으며 우리는 광야를 심판의 장소, 질책의 장소, 징벌의 장소로 만들려 하지만, 하나님은 수 많은 우상들과 세상의 유혹들 한복판에서 우리 손목을 잡아끌어 광야에 이르러 눈물고인 눈으로 바라보시며 말씀하십니다.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그 날에 네가 나를 내 남편이라 일컫고 다시는 내 바알이라 일컫지 아니하리라
바알의 가장 큰 뜻은 ‘주인’입니다. 주인과 종의 관계, 지배자와 피지배자의 관계를 악한 영과 우상들은 원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원하시는 칭호가 따로 있습니다.
당신은 내 남편입니다.
우리 한 번 고백합시다.
하나님! 당신은 내 남편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심지어 그분이 혼수도 장만해오시겠다 합니다.
내가 네게 장가 들어 영원히 살되 공의와 정의와 은총과 긍휼히 여김으로 네게 장가 들며
진실함으로 네게 장가 들리니 네가 여호와를 알리라
다섯 가지입니다. 공의, 정의, 은총, 긍휼, 진실함. 이것들은 하나님의 성품입니다. 하나님께서 이 성품들을 혼인 언약의 예물 삼아 내게 다시 돌아오고 싶다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 그분이 우리에게 돌아오고 싶다고 하십니다. 그러기에 광야는 하나님의 음성만 남는 곳이요, 그 음성에 집중하는 곳이며, 그 음성은 나를 향한 절절한 사랑의 고백임을 기억하기 바랍니다.
우리가 광야에서 하나님과의 관계를 새롭게 할 때에 누리게 될 복들입니다.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그 날에 내가 응답하리라 나는 하늘에 응답하고 하늘은 땅에 응답하고
땅은 곡식과 포도주와 기름에 응답하고 또 이것들은 이스르엘에 응답하리라
내가 나를 위하여 그를 이 땅에 심고 긍휼히 여김을 받지 못하였던 자를 긍휼히 여기며 내 백성 아니었던 자에게 향하여 이르기를 너는 내 백성이라 하리니 그들은 이르기를 주는 내 하나님이시라 하리라 하시니라
곡식, 포도주, 기름 생활 모든 필수품이 살아납니다. 그것들은 이스르엘에 넘치게 됩니다. 이스르엘은 북 이스라엘에 속한 가장 큰 평야이고, 하나님의 진노로 극심한 가뭄을 겪던 땅입니다. 더욱이 이스라엘의 신분이 바뀝니다. 긍휼이 여김이 회복되고, 백성의 칭호가 회복됩니다. 하나님이 이렇게까지 해주시는 이유는 마지막 이 문장 하나 때문입니다.
“주는 내 하나님이시라”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이 밤 이 자리가 광야이길 원합니다. 인생 광야에 서 계시다면 기억하십시오. 그 자리는 하나님의 청혼이 다시 시작되는 자리입니다. 하나님의 음성만 남는 자리입니다. 그 음성은 나를 향한 사랑의 속삭임입니다. 그 음성이 들리면 하나님과 나의 관계는 회복될 것이고, 나는 고백하게 될 것입니다. 주는 내 하나님이시라!
모두 함께 갑시다! 말씀이 들리는 사랑의 광야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