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성전건축(왜 변하지 않는가?)
현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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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tes
Transcript
1.서론
1)지난 설교 요약
부임하고 처음 수요예배 설교 때 ‘하나님의 열심, 교회’라는 제목으로 설교했다. 하나님께서는 최초에 에덴동산이라는 성전을 세우셨고, 역사를 통해 지속적으로 하나님의 백성과 교제할 성전을 세우셨다. 마지막에 완전한 성전, 천국을 세워 하나님의 백성과 함께 영원히 살 것이다. 이것이 하나님께서 구원 사역을 행하시는 목적이다. 그리고 이 땅의 교회를 세우는 것은 완전한 교회, 천국, 궁극적 성전을 짓는 일이라고 말했다. 우리는 이 땅에서 성전을 세워야 한다. 이 땅에 속한 우리가 세워야 할 성전은 두 가지가 있다. 교회와 성전 된 내 몸이다. 교회를 세우는 것은 먼저 성전 된 나를 세워가는 것으로부터 시작된다. 오늘은 개인, 성전 된 자신을 어떻게 세워 가는지 나누려고 한다. 다음에 기회가 되면 공동체인 교회가 어떻게 세워지는지도 살펴보겠다.
본문의 기록과 같이 나는 이미 성령께서 거하시는 성전인데, 성전을 짓는다니 무슨 말인가? 우리 안에 성령께서 거하시므로 성전이 되었지만, 우리의 상태는 온전함과는 거리가 멀기 때문이다. 성전이라고 다 같은 성전이 아니다. 솔로몬이 처음 성전을 지었을 때는 하나님의 영광이 성전에 가득하여 제사장이 서 있을 수도 없었지만, 에스겔 선지자 시대에는 성전에서 하나님의 영광이 떠났다. 하나님께서는 예레미야를 통해 이것이 성전이라 하는 거짓말을 믿지 말라고 선포하셨다. 우리도 성령께서 거하시므로 성전이 되었지만, 솔로몬 성전이 지어졌을 때처럼, 모세 성막이 지어졌을 때처럼 하나님의 영광이 충만하게 드러나는 성전이 되어야 한다. 개인 성전 건축이란 성전된 개인이 하나님께서 거하기 적절하게 변화하는 것을 말한다.
2.개인 성전 건축의 의미와 예시
1) 의미
먼저 왜 변화에 대해 말해야만 하는가? 변화는 항상 고통이 따른다. 꼭 변화해야 하는가? 그저 이대로 적당히 지내면 안 되나? 안 된다. 우리 신앙의 목적이 예수님을 닮아가는 것이기에 그렇다. 생명이 있는 자는 생명의 힘으로 반드시 변화되기 때문이다. 변화되지 않으면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라는 것을 증명할 수 없다. 변화가 없다면 내가 그리스도인이 맞는지 의심해봐야 한다. 변화는 선택이 아니라 필수이다. 이 변화를 우리는 성화라고 부른다.
이런 말을 들은 어떤 이는 성화는 성령의 역사라고 반박할 수 있다. 맞다. 그러나 우리 편에서 해야할 일이 분명히 있다. 이 부분에 집중해서 볼 것이다.
그러면 개인성전건축, 즉 성화는 어떤 방향으로 이루어져야 하는가?
출 25:40 너는 삼가 이 산에서 네게 보인 양식대로 할지니라
대상 28:19 다윗이 이르되 여호와의 손이 내게 임하여 이 모든 일의 설계를 그려 나에게 알려 주셨느니라
성전 건축은 하나님의 설계도대로 되어야 한다. 개인 성전 건축도 하나님의 말씀대로 이루어져야 한다. 신약에 우리에게 주신 많은 명령이 곧 성전에 대한 하나님의 설계도이다. 개인성전건축이라 내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기 쉽게 변화되는 것을 말한다.
2) 예시
성경의 많은 믿음의 사람들은 모두 개인성전건축을 했다. 그들 중 아브라함 어떻게 성전으로 지어져 갔는지를 간단히 살펴보자.
① 아브라함
창 12:10-13
10 그 땅에 기근이 들었으므로 아브람이 애굽에 거류하려고 그리로 내려갔으니 이는 그 땅에 기근이 심하였음이라
11 그가 애굽에 가까이 이르렀을 때에 그의 아내 사래에게 말하되 내가 알기에 그대는 아리따운 여인이라
12 애굽 사람이 그대를 볼 때에 이르기를 이는 그의 아내라 하여 나는 죽이고 그대는 살리리니
13 원하건대 그대는 나의 누이라 하라 그러면 내가 그대로 말미암아 안전하고 내 목숨이 그대로 말미암아 보존되리라 하니라
아브람은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따라 가나안에 왔지만, 믿음이 없어 목숨을 잃을까 두려워했다. 자기 나름의 꾀를 생각해내 아내를 누이라 속이고, 아내를 팔아 목숨을 부지하려고 했다. 믿음의 사람이라고 하기에는 너무도 부끄러운 모습이다. 아브라함의 삶에 하나님께서 일하시므로 변화되었다.
창 22:1-3
1 그 일 후에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시험하시려고 그를 부르시되 아브라함아 하시니 그가 이르되 내가 여기 있나이다
2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네 아들 네 사랑하는 독자 이삭을 데리고 모리아 땅으로 가서 내가 네게 일러 준 한 산 거기서 그를 번제로 드리라
3 아브라함이 아침에 일찍이 일어나 나귀에 안장을 지우고 두 종과 그의 아들 이삭을 데리고 번제에 쓸 나무를 쪼개어 가지고 떠나 하나님이 자기에게 일러 주신 곳으로 가더니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 말년에 가장 사랑하는 아들 이삭을 번제로 드리라고 하셨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명령에 두 말 않고 순종했다. 그는 진정 순종의 사람이 되었다. 이삭을 통해 하늘의 별과 같이 많은 자손을 주신다는 하나님의 약속을 담대히 믿고 아들을 바치기를 주저하지 않았다. 하나님께서는 약속을 반드시 이루어신다는 믿음이 있었다. 자신이 하나님의 명령대로 이삭을 죽여도 이삭을 살아야 하나님의 약속이 이루어지기에 이삭이 죽어도 살 것을 믿었다. 하나님의 말씀에 온전히 순종하는 믿음의 사람, 순종의 사람이 되었다. 창세기 12장의 아브람과는 완전히 다른 사람같다.
이외에 우리가 아는 많은 믿음의 사람들, 야곱, 요셉, 모세, 다윗, 여호수아 등 모두가 성령의 손길 아래 온전한 성전으로 지어져갔다. 우리도 자신을 온전한 성전으로 짓는데 성령님과 함께 협력해야 한다.
3.개인 성전 건축의 이해
사람의 변화, 외적인 변화만이 아닌 전인적 변화를 알기 위해서는 사람이 어떻게 구성되는지 아는 것이 필요하다.
1)사람의 구성(영, 혼, 육)
살전 5:23 평강의 하나님이 친히 너희를 온전히 거룩하게 하시고 또 너희의 온 영과 혼과 몸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강림하실 때에 흠 없게 보전되기를 원하노라
데살로니가전서에서 사도 바울은 성도의 영, 혼, 몸이 온전하기를 기도한다. 물론 성경에서 영혼을 하나로 간주하는 구절도 많다. 그래서 사람이 영혼과 몸으로 구분된다고 말하기도 한다. 성경에서 특히 서신서에서 영이 아닌 혼의 변화를 말하는 내용도 나온다. 나는 외면과 내면을 구분할 때는 영혼을 묶어서 말한다고 본다. 내 영혼이 주님을 찬양합니다. 내 영혼이란 표현은 내 안에 있는, 내면의 그것이 하나님을 찬양한다는 의미이다. 우리 인간의 특성으로 내면과 외면을 구분할 수도 있고, 내면을 영과 혼으로 구분할 수도 있다. 상황에 따라 다르게 구분하여 표현하는 것뿐이라고 생각한다. 개인의 경험으로 보면 보통 우리는 혼을 인지하고 살고, 특별히 영이 깨어나고 은혜가 있을 때 영을 감지하는 것 같다.
롬 8:16 성령이 친히 우리의 영과 더불어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인 것을 증언하시나니
성령이 우리 영과 함께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라고 증언한다. 그래서 우리는 내가 하나님의 자녀라고 인지하게 된다. 우리 영의 증언을 듣는 것이다. 거듭난 우리 영은 내가 하나님의 자녀라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해도 영, 혼, 육이 나눠지지는 않는다. 완전히 혼합된 것은 아니지만 나눠지지도 않는다. 설명하기는 어렵지만, 단지 구분해서 말할 수 있을 뿐이다. 영도 나, 혼도 나, 몸도 나이다. 영, 혼, 몸 전체가 또한 나이다. 하나님이 자신의 형상을 따라 사람을 지으셨다는 말이 이런 의미인가 싶다.
2)변화되어야 하는 부분- 혼
여기서 주목할 부분이 생긴다.
약 1:18 그가 그 피조물 중에 우리로 한 첫 열매가 되게 하시려고 자기의 뜻을 따라 진리의 말씀으로 우리를 낳으셨느니라
하나님께서 우리를 낳으셨다. 하나님께서 낳으셨기에 하나님의 자녀이다. 이것을 거듭났다고 말한다. 다시 태어났다는 말이다. 무엇이 다시 태어났는가? 사람이 영, 혼, 몸으로 구분된다고 할 때 무엇이 거듭났는가? 몸은 다시 태어나지 않았다. 예수님을 믿을 때 키나 얼굴 모양이나 신체적인 어떤 부분의 변화를 겪은 사람은 우리 중에 아무도 없을 것이다. 혼은 다시 태어나지 않았다. 경험으로 알 듯 우리의 생각이나 감정이나 욕심은 예수님을 믿어도 큰 변화가 없다. 변화가 있다고 주장할 사람도 어떤 부분에 국한된 변화일 뿐 다시 태어났다고 말할 정도는 결코 아니다. 영은? 영은 다시 태어났다. 하나님을 알지도 못하고, 예수님의 십자가를 믿지 않고, 하나님이 날 사랑하는지도 모르고, 하나님을 대적하고, 믿음도 없고, 영생도 없고, 영에 속한 모든 것이 전혀 없었던 자가 모든 것을 알고 가진 자가 되었다. 영은 진정 다시 태어났다.
영만 거듭나고, 혼과 육은 그대로이다. 여기서 문제가 생긴다. 영은 하나님을 알고, 하나님의 자녀이기에 하나님의 뜻을 행하고 싶다. 모든 자녀가 부모의 말을 따르고 싶은 것처럼 우리의 영은 그렇다. 그런데 혼은 이전과 같다. 변화 되어도 아주 조금 변화되었다. 이전의 가치관과 생각과 욕심과 감정 반응, 상처, 자기중심성, 교만, 불평, 원망하는 습관 등 수많은 악한 습관들이 여전히 혼에 그대로 담겨져 있다. 몸은 그런 혼에 길들여져 있다.
영은 이제 막 태어나서 힘이 약하다. 어떤 일이 일어나겠는가? 이전 습관으로 돌아가는 일이 생긴다. 영이 거듭나서 양심은 이전에 일반 양심과 다른 말씀에 찔림 받는 신앙 양심이 되었기에 죄책감 가운데 회개하고, 돌이키고, 결단하지만 여전히 이전 습관이 많다. 여기서 씨름이 시작된다.
내 안에 계신 성령님께서 내 영과 함께 싸움을 시작하신다. 내 혼에 정복되지 않은 영역들을 하나씩 정복해 가신다. 거짓 가치관, 잘못된 감정 반응 패턴, 욕심, 음란, 교만 등 하나씩 정복해 가신다. 그런데 나와 함께 싸우신다. 내가 성령의 편에 설 때 이 싸움이 승리할 수 있다. 내가 포기하고 성령의 소리를 무시하고 이전에 습관대로 행하면 이 싸움에서 승리할 수 없다. 혼의 변화를 위한 싸움을 하는 사람은 변화한다. 예수님을 닮아간다. 개인의 성전이 잘 지어져간다. 그 사람 안에 성령의 임재가 점점 충만해진다.
그러나 혼의 변화를 위한 싸움을 하지 않는 사람은 변화하지 않는다. 그런 사람들은 자기를 변호하고, 남을 탓하고, 상황을 탓한다. 자기를 사랑하고, 자기감정을 사랑하고, 자기 상처를 사랑한다. 오래 신앙생활을 해도 예수님을 닮은 모습이 잘 나타나지 않고, 개인의 성전이 지어지지 못한다. 성령의 임재는 어떤 특정한 순간에, 특별히 하나님께서 긍휼을 베푸실 때만 나타난다. 이마저도 본인만 느낄 뿐 그를 통해 다른 사람이 변화되기는 어렵다.
4.변화를 위한 제언
사람이 성전으로 지어져가기 위해서는 혼의 변화가 핵심이다. 동시에 영이 힘을 얻어야 한다. 변화된 혼을 따라 몸도 순종에 익숙해져야 한다. 죄를 멀리하는 거룩한 몸이 되어야 한다. 우리의 변화는 전인적인 변화여야 한다. 이런 변화들은 사실 고통을 통해서만 이루어진다. 여러분 스스로도 경험해 봤을 것이다. 주변의 사람들을 보아도 알 수 있을 것이다. 많이 아프던가, 큰 어려움을 겪던가, 재정적인 어려움, 관계의 어려움, 큰 실패 등을 겪으면서 고통을 겪는다. 그 일이 지나고 나면 많이 변한 것을 보게 된다. 하나님께서 고통을 통해 우리를 연단하시고 변화시킨다. 물론 어떤 경우에는 고통을 통해 더 악해지는 경우도 있지만, 논외로 하겠다. 또 다른 주제이다.
그러나 좀 더 쉬운 방법이 있다. 내가 적극적으로 하나님의 변화의 손길에 동참하는 것이다. 나는 이것을 삶의 고통을 줄이는 방법이라고 설명한다. 성장의 지름길이라 부를 수도 있겠다. 3가지 방법으로 가능한데, 말씀, 기도, 순종이다. 이 중에 제일 중요한 것은 순종이다. 하나씩 살펴보자.
개인의 성전을 건축하는 첫 번째 방법은 말씀 읽기이다.
1)말씀
①말씀을 읽어 생각을 정화
말씀을 읽을 때 생각이 정화된다. 특히 많은 분량의 말씀을 읽을 때 우리 안에 세속적인 생각들이 정화된다. 많은 분량이라는 것은 한 번에 창세기 한 권 정도 읽는 분량을 말한다. 1시간 30분에서 2시간 정도 걸리는 시간을 수 개월간 꾸준히 성경을 읽게 되면 세속적인 생각이 정화된다. 끊이지 않고 떠오르는 생각으로 고통당하는 분들에게 좋은 처방이다. 초대교회에서 성경을 읽는 여러 방법 중에 하나였다.
②말씀을 깨달아 신념이 변화
말씀을 읽다보면 깨달음이 오는 때가 있다. 뭔가 번쩍하면서 하나님이 어떤 분인지, 이 말씀이 어떤 의미인지, 지식적인 이해를 넘어서는 깨달음이라고 밖에 표현할 수 없는 그런 경험을 하게 된다. 그때 신념이 변한다. 사람마다 핵심 신념이라는 것이 있고, 그것으로 세상을 해석하고, 상황을 해석하는데, 그 핵심 신념이 변화된다.
③말씀이 채워져 영이 힘을 얻음
말씀을 꾸준히 읽다보면 자연스레 말씀이 내면을 채우게 된다. 내면을 채운다고 밖에 표현할 수 없는데, 예수님께서 영의 양식이라 하신 말씀이 내면을 채우면 영이 힘을 얻게 된다. 영이 힘을 얻는 것은 변화나 성장과는 좀 다른데, 혼이 이전 습관대로 나를 끌어가려 할 때 저항할 힘이 생긴다는 말이다.
말씀을 읽는 것이 혼의 변화에 얼마나 중요한지 알 수 있다. 꾸준히 말씀을 읽지 않고 성화를 기대할 수 없다.
2)기도
개인의 성전 건축을 위한 두 번째 방법은 기도이다.
①기도를 통해 예수님을 만남
기도의 제일 목적은 예수님을 만나는 것이다. 예수님을 만나는 가운데 영에 모든 좋은 일이 이루어진다. 예수님의 사랑을 공급받고, 안식을 누리고, 위로 받고, 회개 하고, 영의 양식을 공급받는다. 그분의 음성, 곧 말씀을 듣는다. 말씀을 통해서도 예수님을 만날 수 있지만, 말씀이 내면화 되고, 말씀으로 정화될수록 기도 가운데 예수님을 더욱 분명하게 만나게 된다.
②기도를 통해 순종의 힘을 얻음
말씀을 통해 영이 양식을 먹어 힘을 얻는다. 기도를 통해서도 영이 힘을 공급받는다. 말씀과 기도를 통해서 힘을 공급받을 때 결과적으로 영이 힘을 얻는 것은 같지만, 공급되는 은혜가 조금 다르다. 말씀을 통해 공급받는 은혜는 말씀을 물로 비유했듯 차가운 느낌이다. 깨우침, 돌이킴, 인도, 지도, 결단과 같은 은혜이다. 죄의 유혹 앞에서 내면에 힘이 된 말씀이 깨우치는 것이다. 그것은 안 된다. 그 길로 가는 것은 죄이다. 그리고 돌아설 수 있게 해준다. 그러나 기도 가운데 받는 은혜는 주로 불로 표현되는 것처럼 힘이고 열정이다. 우리가 갖는 선한 의지를 행할 수 있게 해준다. 그래서 기도를 통해서 힘을 얻어야 선한 의지를 행하는 순종이 쉽다. 기도를 통해 순종의 힘을 얻는다.
③기도를 통해 죄가 드러남
기도를 통해 죄가 드러난다. 우리는 문제와 갈등의 순간에 죄가 드러난다. 불신, 분노, 불안, 절망, 판단 등의 죄들이 평소에는 잠잠하다가 문제와 갈등의 순간에 드러난다. 그래서 고통은 우리의 죄를 드러내고, 자신을 보게하고, 우리를 회개로 이끌어 변화하게 한다. 그러나 문제를 통해 고통을 겪지 않아도 기도를 통해 죄를 드러낼 수 있다. 특히 강한 기도를 통해 내면의 죄가 드러나고, 이를 하나님 앞에 회개하고, 기도할 때 죄의 영향력을 줄일 수 있다.
3)순종
개인의 성전 건축을 위한 세 번째 방법은 순종이다.
①순종을 통해 성령이 충만해짐
순종하면 성령 충만해진다. 우리가 순종할 때 우리는 하나님을 인정하는 것이고, 성령께서는 우리의 의지를 따라 우리 안에서 충만해지신다. 성령이 충만해지면 성령의 음성이 또렷해지고 순종하기 쉬워진다. 그러나 반대로 불순종을 통해 우리 안에 성령을 소멸할 수도 있다. 성령께서 우리 안에서 없어진다는 뜻이 아니라 불이 꺼지듯 사그라진다는 뜻이다.
②순종을 통해 말씀이 내면화 됨
성령께서 깨닫게 하시는 말씀에 순종하므로 말씀이 내 안에 더 깊이 들어와 자리한다. 이전에 자리하고 있던 말씀에 반대되는 것들이 줄어든다. 거기에는 생각과 감정과 의지의 영역에 자리한 악한 것들이다. 악한 생각, 악한 감정, 악한 의지다. 이것들의 공통점은 자기중심성이고, 안목의 정욕, 이생의 자랑, 육신의 정욕의 표현이다. 순종을 통해 말씀이, 성령께서 내면에 깊이 들어올수록 혼에 자리했던 악함이 줄어든다. 이 과정이 반복되어야 한다. 중간에 실수해서 넘어질 수도 있지만, 중단하지 않고 계속해야 한다. 말씀과 기도는 결국 순종을 위한 것이다. 순종해야 결과를 볼 수 있다.
③결정적인 순간의 순종을 통해 어둠이 쫓겨남
이런 모든 과정 가운데 가장 중요한 단계가 남았다. 나는 이것을 결정적 순간의 순종이라고 부른다. 결정적 순간이라는 것은 우리가 순종과 불순종을 선택할 수 있는 그 순간을 말한다. 이전에는 죄의 습관 때문에 순종을 선택하기가 어려웠다. 이후에는 성령의 인도함 때문에 불순종을 선택하기가 어렵다. 그런데 그 중간, 내 안에 죄도, 성령도 아닌 나의 선택이 가장 큰 영향을 끼치는 그 순간에 어떤 선택을 하느냐가 정말 중요하다.
그때 성령님을 선택하는 것은 내가 이제 그 죄와는 결별했다는 결정적인 증거이다. 이런 순종을 통해서 내 안에 어둠은 크게 힘을 잃게 된다. 특정 종류의 죄, 분노, 음란, 자기 비하 등과 같은 큰 죄도 몇 번의 결정적인 순종을 통해 거의 사라지게 된다. 물론 결정적인 순간의 순종은 말처럼 쉽지는 않다. 그러나 말씀과 기도 안에서 성령님을 의지한다면 누구나 가능하다. 어둠의 힘이 강한 것은 사실이지만, 우리 성령께서는 전능하신 하나님이시기 때문이다.
5.결론
개인성전건축에 대해 살펴보았다. 개인성전건축에 필수는 말씀과 기도의 경건생활이며, 그에 따르는 순종이다. 이 모든 것은 성령의 도움으로 가능하다. 꾸준하고 충분한 경건생활 가운데 혼의 어둠과 싸우고, 영의 강건함을 위해 매일 하나님께 은혜를 받아 순종하면 우리의 성전은 하나님의 설계도대로 온전히 지어져간다. 교회사에 나타난 믿음의 영웅들처럼 하나님의 영광이 충만하게 나타나는 성전이 될 것이다. 이것은 성전인 교회를 세우는 일과 연결되고, 결국 천국 성전을 건축하는 일과 연결된다.
다른 어떤 것보다도 자신의 성전을 건축하는 일에 힘쓰는 우리가 되기를 간절히 축원한다.
찬204 주의 말씀 듣고서
나의 맘 받으소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