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레미야 31장

현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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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활과 재림의 소망, 그리고 하나님의 사랑과 성경적인 관계에 관해 살펴보며, 영원한 하나님 나라를 바라보며 깨어 살아가도록 권면한다.

Notes
Transcript
예레이먀 30-31장은 위로의 책이라 불리는 부분이다. 앞부분에서 하나님께서 예레미야를 통해 유다의 심판을 예언하셨는데, 30-31장에 회복과 소망의 예언을 하고 있다.
앞부분의 예언과는 확연히 다른 분위기의 말씀이다. 예레미야가 선포한 심판의 말씀을 보겠다.
렘 22:6-8
6 여호와께서 유다 왕의 집에 대하여 이와 같이 말씀하시니라 네가 내게 길르앗 같고 레바논의 머리이나 내가 반드시 너로 광야와 주민이 없는 성읍을 만들 것이라
7 내가 너를 파멸할 자를 준비하리니 그들이 각기 손에 무기를 가지고 네 아름다운 백향목을 찍어 불에 던지리라
8 여러 민족들이 이 성읍으로 지나가며 서로 말하기를 여호와가 이 큰 성읍에 이같이 행함은 어찌 됨인고 하겠고
렘 29:17-18
17 만군의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되 보라 내가 칼과 기근과 전염병을 그들에게 보내어 그들에게 상하여 먹을 수 없는 몹쓸 무화과 같게 하겠고
18 내가 칼과 기근과 전염병으로 그들을 뒤따르게 하며 그들을 세계 여러 나라 가운데에 흩어 학대를 당하게 할 것이며 내가 그들을 쫓아낸 나라들 가운데에서 저주와 경악과 조소와 수모의 대상이 되게 하리라
많은 경우 예언서의 심판의 말씀을 보면서 하나님을 두렵다고 생각한다. 구약과 신약의 하나님을 구분해서 생각하기도 한다. 예언서에 나타난 하나님을 애써 부인하며 대충 넘어가는 태도를 취하는 경우도 많다. 그러나 모두 하나님이시다. 사람의 성격에 다양한 모습이 있고, 피상적인 관계일 때는 알 수 없었던 모습을 관계 깊어지면서 알아가게 된다. 하나님도 다양한 모습이 있다.
앞서 읽은 심판의 말씀은 처참한 상황을 예언하고 있다. 이스라엘을 광야와 주민이 없는 성읍을 만들겠다. 너를 파멸할 자를 준비해서 네 아름다운 백향목을 찍어 불에 던지겠다. 칼과 기근과 전염병을 보내겠다. 세계 여러 나라 가운데에 흩어 학대를 당하게 하겠다. 쫓겨난 나라에서 저주와 경악과 조소와 수모의 대상이 되게 하겠다. 우리는 글로 읽지만 이 일을 실재로 당한다고 생각하면 어떻겠는가? 그 고통과 참담함을 차마 말로 다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런데 31장에서 하나님은 같은 대상 이스라엘에게 이렇게 예언하고 계신다.
1절: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그 때에 내가 이스라엘 모든 종족의 하나님이 되고 그들은 내 백성이 되리라
3-6절
3 옛적에 여호와께서 나에게 나타나사 내가 영원한 사랑으로 너를 사랑하기에 인자함으로 너를 이끌었다 하였노라
4 처녀 이스라엘아 내가 다시 너를 세우리니 네가 세움을 입을 것이요 네가 다시 소고를 들고 즐거워하는 자들과 함께 춤추며 나오리라
5 네가 다시 사마리아 산들에 포도나무들을 심되 심는 자가 그 열매를 따기 시작하리라
6 에브라임 산 위에서 파수꾼이 외치는 날이 있을 것이라 이르기를 너희는 일어나라 우리가 시온에 올라가서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로 나아가자 하리라
이 두 예언 사이의 차이가 너무 커서 사람들은 조화시키려는 노력조차 포기하는 것 같다. 회복의 예언에 집중하고 심판의 예언은 슬쩍 넘어가기도 한다. 어떻게 같은 하나님께서 같은 이스라엘에게 이렇게 다른 메시지를 전하시는 것일까?
이는 우리에게도 중요한 질문이 된다. 우리는 신앙생활 가운데 하나님의 인자를 경험하기도 하고, 하나님의 엄위를 경험하기도 하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을 심판하시는 이유는 무엇인가? 이스라엘의 왕과 백성의 죄 때문이다. 이스라엘 백성이 우상을 섬기고, 가난한 자를 압제하며, 하나님의 말씀을 무시하며 죄를 범했기 때문이다. 이스라엘 백성이 죄를 범한 이유는 무엇인가? 그들이 죄인이기 때문이다.
하나님과 이스라엘 백성 사이의 갈등은 여기서 시작된다. 하나님은 의로우시고, 죄를 차마 보지 못하시는데, 이스라엘 백성은 죄인이다. 둘의 동거는 애초에 불가능한 것이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이스라엘과 동거하기로 작정하셨고, 이스라엘의 구원이 가능했지만, 하나님의 선택 때문에 이스라엘과의 갈등도 시작되었다. 하나님의 선택과 구원은 너무도 감사하지만, 좋은 일만 있을 수 없는 이유이다.
그러나 하나님의 심판이 너무 혹독한 것 아닌가. 하나님의 의로우심이 완전하기에 어쩔 수 없는 부분이다. 죄인 된 이스라엘이 의로울 수 있는 기회를 버리고 죄를 택해 전적으로 타락했기에 의로우신 하나님은 그들을 철저하게 심판해야 했다. 그래서 하나님을 깊게 대면하신 분들은 ‘하나님이 정말 무서우시더라.’는 신앙 고백을 하는 것을 종종 본다. 죄인 된 인간으로 하나님의 공의를 대면했던 경험이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그렇게 고백한다.
심판을 말하셨던 하나님이 이제 31장에서 소망과 회복을 말씀하신다. 예레미야가 예언하는 순간의 이스라엘이 아니라 연단을 받아 죄가 벗어진 이스라엘을 바라보며 하시는 말씀이다. 하나님의 근본 마음은 이스라엘을 사랑하신다. 이스라엘을 심판하실 때도 완전한 파멸이 아니라 연단과 정결하게 하는 과정으로의 심판이다. 단지 죄 때문에 이스라엘에게 사랑으로 대할 수 없을 뿐이다. 심판을 통해 정결해진 이스라엘을 이제는 온전히 사랑하는 것이 당연하다. 그리고 그 사랑은 이스라엘을 구원하기 위해 행하신 일, 셀 수 없이 많은 순간과 오랜 시간 이스라엘을 거듭 용서하고 인내하고 기다리셨던 하나님의 사랑이다.
하나님을 잘 알지 못할 때, 그리고 내 고통에만 집중할 때 우리는 종종 하나님을 원망한다. 하나님을 향한 원망은 언제든 합당하지 않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얼마나 사랑하시는지 너무나 분명하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해 행하신 일, 십자가만 보아도 하나님의 사랑을 의심할 수 없다. 사랑은 불의를 행하지 않는다. 사랑은 악한 것을 생각하지 않는다. 사랑은 자기의 유익을 구하지 않는다.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신다. 우리가 죄인이기에, 하나님과 동거하기가 적절하지 않을 뿐이다. 어떤 사람은 하나님의 연단을 받을 것이다.
어떤 사람은 하나님의 심판에 준하는 징계를 받을 것이다. 어떤 사람은 하나님의 긍휼의 다루심을 받을 것이다. 경중의 차이는 있으나 모두 고통을 통해 죄를 벗게 되고, 하나님의 사람으로 빗어져 간다.
우리가 하나님의 사람이 되어갈수록 하나님의 사랑은 우리에게 사랑으로 다가오게 된다. 하나님은 우리를 측량할 수 없이 사랑하시며, 그 사랑만큼 우리를 사랑하고 싶으시기 때문이다. 사랑할수만 있다면 넘치도록 아끼지 않고 사랑하신다. 본문의 말씀은 사랑할 수 있게 된 이스라엘을 거리낌 없이 사랑하시려는 하나님의 마음이다. 하나님의 이 마음은 천국에서 온전히 표현되고 성취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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