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행전 24장
현식
Sermon • Submitted • Presented
0 ratings
· 2 views부활과 재림의 소망, 그리고 죄인을 구원하시는 복음과 하나님의 은혜에 관해 살펴보며, 영원한 하나님 나라를 바라보며 깨어 살아가도록 권면한다.
Notes
Transcript
23장에서 바울을 죽이려는 음모가 있다는 보고를 받은 천부장 루시아는 군사를 동원하여 바울을 가이사랴로 보냈다. 루시아는 로마 사람인 바울을 보호해야 하고, 또 유대인들의 소요도 막아야 하는 입장에서 바울을 다른 곳에 보내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이라고 생각한 것 같다. 가이사랴에 도착한 바울은 총독 벨릭스를 만났고, 벨릭스는 바울을 헤롯궁에 두었다.
5일이 지나서 대제사장을 비롯한 유대인들이 변호사 더둘로와 함께 가이사랴에 찾아왔다. 예루사렘에서 가이사랴까지는 100Km 거리인데 5일 만에 왔다는 것은 그들이 바울에 관한 문제를 얼마나 심각하게 생각하고 있는지 알 수 있다.
더둘로는 벨릭스 총독에게 바울을 3가지 죄목으로 고소한다. 첫째, 전염성이 있는 사람으로 로마세계에 있는 유대인 공동체를 소요하게 한다. 둘째, 나사렛 이단의 우두머리다. 셋째, 성전을 더럽게 했다.
더둘로의 고소건에 대해 바울은 조목조목 반박한다. 바울은 예루살렘에 돌아간지 12일 밖에 되지 않았다. 성전에서 예배를 드렸을 뿐이지 누군가를 모아 사람들을 동요시키지 않았다. 자신은 하나님을 섬기고, 율법과 선지자를 다 믿고, 부활의 소망을 가진 자로 이단이 아니라고 반박한다. 마지막으로 성전에서 구제 헌금을 전달하고, 나실인의 서원을 한 자들에게 결례의 비용을 지불했을 뿐, 성전에서 아무 일도 하지 않았다고 반박한다.
만약 바울이 성전을 더럽혔다면 바울을 죽이려고 소동을 일으켰던 아시아에서 온 유대인들이 이 자리에서 고소하고 증언해야 했다. 그러나 그들은 이곳에 없기에 3번째 고소도 혐의가 없다. 벨릭스는 유대인들의 고소와 바울의 변론, 천부장 루시아의 보고를 토대로 바울에게 죄가 없다는 것을 알았다. 그러나 유대인들의 마음을 얻기 위해서 바울을 풀어주지 않고 가두어 두었다.
어제 살펴본 사도행전 22장에서 바울은 자신을 고소하는 이들에게 대해 전혀 변론하지 않았으나 오늘은 철저하게 반박한다. 정확한 이유를 말하기는 어려우나 유대인 공동체에게는 분명하게 복음을 전해야 했으나, 지금 자신을 고소하는 대제사장을 비롯한 종교지도자들은 이미 복음을 들었고, 예수님께서 종교지도자들의 회심을 크게 기대하지 않았던 모습과 비슷한 맥락인 것 같다.
바울 사도의 변론 가운데 그의 신앙적 고백이 들어있다. 그 부분을 살펴보겠다.
14-16절: 바울 사도는 조상의 하나님을 섬기고, 율법과 선지자들의 글에 기록된 것을 다 믿으며, 하나님께 향한 소망, 곧 의인과 악인의 부활에 대한 소망을 가졌다.
1) 바울 사도는 조상의 하나님을 섬겼다. 이스라엘 민족이 섬겨온 하나님을 섬겼다. 구약에 기록된 하나님을 섬겼다. 우리 믿음의 시작은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다. 하나님이 우리를 섬기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다. 내가 주인이 아니라 하나님이 주인이시고 왕이시다. 하나님을 섬기는 것은 무엇인가? 주인과 종이 있을 때, 종이 주인을 섬긴다. 어떻게 섬기는가? 주인이 시키는 일을 종이 수행하므로 주인을 섬긴다. 우리가 하나님을 섬긴다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준행하고 순종하는 것이다. 하나님과 우리 관계의 기본이다. 하나님은 우리의 창조주이며, 우리는 피조물이다. 하나님이 주인이고 우리가 종이다. 내가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다. 이것이 신앙의 제일 첫 번째 원칙이다. 하나님이 우리를 보호하시고, 공급하시고, 우리 기도에 응답하시고 이런 부분은 첫 번째 원칙 아래서 이루어지는 것이다.
2) 사도 바울은 율법과 선지자의 글에 기록된 것을 다 믿었다. 사도 바울은 신약의 대부분의 서신을 쓴 사람이다. 그런 바울이 율법과 선지자의 글을 다 믿었다고 한다. 구약을 다 믿었다는 말이다. 이것이 당연함은 당시에는 성경이 구약 밖에 없었고, 성경의 모든 저자는 구약을 기반으로 신약을 썼다. 신약과 구약이 다르지 않다는 말이며, 구약을 모르면 신약을 알기가 어렵다는 말이다. 율법은 신약의 믿음과 배치되지 않으며, 구약의 성도도 하나님을 믿음으로 구원을 받았다. 우리와 같은 믿음, 구원받는 믿음이다. 우리는 율법을 배격하고 믿음을 강조하는 설교를 들은 영향으로 율법이라고 하면 부정적으로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율법도 선지서도 모두 하나님의 말씀이며 우리가 온전히 믿어야 한다. 율법에 나타난 하나님을 경외하고 섬겨야 한다.
3) 바울 사도는 의인과 악인의 부활이 있다는 소망을 가졌다.
부활은 의인만 부활하는 것이 아니다. 악인도 부활한다.
단 12:2 땅의 티끌 가운데에서 자는 자 중에서 많은 사람이 깨어나 영생을 받는 자도 있겠고 수치를 당하여서 영원히 부끄러움을 당할 자도 있을 것이며
요 5:28-29
28 이를 놀랍게 여기지 말라 무덤 속에 있는 자가 다 그의 음성을 들을 때가 오나니
29 선한 일을 행한 자는 생명의 부활로, 악한 일을 행한 자는 심판의 부활로 나오리라
바울 사도는 이것을 분명히 알았고 믿었다. 하나님 앞에서 부활하여 자기 행위에 따라 심판 받게 될 것을 알았다. 바울 사도는 이런 신앙으로 인한 결과 양심을 따라 살았다.
사도행전 24:16 이것으로 말미암아 나도 하나님과 사람에 대하여 항상 양심에 거리낌이 없기를 힘쓰나이다
바울 사도는 하나님과 사람에 대해 항상 양심에 거리낌이 없기를 힘썼다. 하나님을 섬기고, 구약의 모든 말씀을 믿고, 부활과 심판이 있음을 믿었기에 언제나 양심에 거리낌이 없기를 힘썼다.
사도행전 23:1 바울이 공회를 주목하여 이르되 여러분 형제들아 오늘까지 나는 범사에 양심을 따라 하나님을 섬겼노라 하거늘
바울 사도는 공회 앞에서도 이렇게 증언했다. 우리 안에 양심의 소리가 있다. 어떤 이는 예민한 양심을 가진 사람도 있다. 어떤 이는 좀 둔한 양심을 가진 사람도 있다. 사람마다 양심의 예민함에는 차이가 있지만 어떤 사람이 양심의 소리에 귀 기울인다는 것은 하나님 심판대 앞에 서기 위한 삶이다. 그러나 바울 사도가 말한 양심은 일반 사람들의 양심이 아니다. 자기 기준에 옳고 그름을 판단하고 후회하는 그런 양심이 아니다. 율법과 선지자의 글을 다 믿는 사람의 양심이다. 바울 사도가 말한 양심은 하나님의 말씀에 기준한 양심이다. 양심에 거리끼지 않게 살고, 회개하는 것은 하나님 심판대 앞에 설 수 있는 삶이다.
요한1서 3:21 사랑하는 자들아 만일 우리 마음이 우리를 책망할 것이 없으면 하나님 앞에서 담대함을 얻고
사도 바울처럼 조상의 하나님, 믿음의 조상의 하나님을 섬기고, 율법과 선지자, 구약과 신약의 선지자의 글을 다 믿고, 부활을 소망하면서, 양심에 거리끼지 않게 살아가는 삶이 그리스도인의 삶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