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가복음 6장
현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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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views참된 믿음과 제자의 삶, 그리고 죄인을 구원하시는 복음과 하나님의 은혜에 관해 살펴보며, 말씀에 순종하며 성숙한 믿음으로 살아가도록 권면한다.
Notes
Transcript
마가복음 6장의 구조는 다음과 같습니다. 6:1-6a 고향에서 배척받는 예수님, 6:6b-13 열 두 제자의 파송, 6:14-29 세례 요한의 죽음, 6:30-44: 오병이어의 기적, 6:45-52 물 위를 걸으심, 6:53-56 게네사렛에서의 치유 사역입니다.
마가복음 6장은 제자들의 사명과 역할, 하나님의 공급하심, 예수님에 대한 사람들의 다양한 반응 등을 다루고 있습니다.
마가복음 6장의 사건들에서 주시는 메시지들을 부분 부분 살펴보겠습니다.
7절: 예수님께서 12제자를 불러서 2명씩 짝을 지어 전도를 보내십니다. 제자들을 보내실 때 지팡이, 양식, 주머니, 돈 등 아무 것도 가지고 가지 말라고 하십니다. 신발과 옷만 입고 가라고 하십니다. 마태복음에서는 아무 것도 가지고 가지 말라고 하시는 이유를 일꾼이 먹을 것을 받는 것이 마땅하기 때문이라고 하십니다. 예수님께서 일을 맡기신 주인이고, 제자들은 일꾼이기에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삯을 주시는 것이 합당합니다. 예수님께서는 복음을 받아들이는, 제자들을 통해서 도움을 받는 하나님의 사람들을 통해 제자들을 공급하십니다.
예수님께서 아무 것도 가지고 가지 말라고 하셨지만, 주신 것이 하나 있었습니다. 더러운 귀신을 제어하는 권능을 주셨습니다. 마태복음에는 더러운 귀신을 쫓아내며 모든 병과 약한 것을 고치는 권능을 주셨다고 되어 있고, 누가복음에는 모든 귀신을 제어하며 병을 고치는 능력과 권위를 주셨다고 되어 있습니다. 본문 13절에도 귀신을 쫓아내고 병자를 고쳤다는 보고를 통해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귀신을 쫓아내고 병을 고치는 능력을 주신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다른 모든 것을 가지고 가지 말라고 하시면서 이 능력을 주신 이유는 이것이 하나님의 사역에 있어서 아주 필수이기 때문입니다.
12-13절: 예수님의 명령을 따라 보냄 받은 제자들은 두 가지 사역을 했습니다. 하나는 회개하라 전파하는, 복음 전파 사역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사역을 시작하자 마자 선포했던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다는 메시지와 동일합니다. 복음 전파 사역의 핵심은 회개입니다. 죄를 고백하고 마음을 돌이켜 하나님께서 돌아오는 것입니다. 두번째는 귀신을 쫓아내고 병을 고치는 능력 사역입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말이 아니라 능력에 있다고 했습니다. 예수님도 성령을 힘입어 귀신을 쫓아내는 것이며 하나님의 나라가 이미 너희에게 임했다고 하셨습니다. 말씀을 전하는 것은 하나님의 나라를 이곳에 이루기 위한 사역입니다. 사람들에게 어떤 사상을 전달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 나라를 임하게 하기 위한 사역입니다. 그래서 말씀을 선포한다고 합니다. 그리고 말씀 선포를 통해 하나님 나라의 임함은 귀신의 쫓겨남과 직접적인 관련이 있습니다. 귀신을 쫓아냈다고 하면 거라사 광인이나 수로보니게 여인의 딸과 같은 정도로 인격이 귀신에게 사로잡힌 정신병 정도로 증상이라고 여기기 쉽습니다. 그러나 여기서 제자들이 귀신을 많이 쫓아냈다고 합니다. 당시 정신병이 그렇게나 많았다고 보는게 합당할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겉으로는 멀쩡해 보이나 복음이 선포되자 귀신이 드러나고, 귀신을 쫓아낸 것입니다.
마가복음 1장에는 예수님께서 회당에서 가르치신 일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막 1:21 그들이 가버나움에 들어가니라 예수께서 곧 안식일에 회당에 들어가 가르치시매
그때 갑자기 귀신들린 사람이 예수님께 소리지릅니다.
막 1:23 마침 그들의 회당에 더러운 귀신 들린 사람이 있어 소리 질러 이르되
회당에 귀신 들린 사람이 있었고 예수님께 소리 질렀습니다. 거라사 광인처럼 자기 인격이 아닌 사람이 회당에 있을 수 없습니다. 이 사람은 그냥 정상인으로 보였습니다. 빛이신 예수님 앞에서 귀신이 드러난 것입니다. 예수님이 말씀을 선포하자 더 이상 숨어있을 수 없어 드러난 것입니다. 제자들이 전도할 때 귀신들려 이상 행동을 하는 사람이 많은 마을을 골라 전도한 것이 아닙니다. 제자들이 복음을 선포하자 빛 가운데 귀신이 드러나고, 제자들이 예수님께 받은 권능으로 귀신을 쫓아냈습니다. 이것이 사역에 핵심입니다. 하나님 나라를 이 땅에 임하게 하는 것, 그런 통로가 되는 것, 그것이 사역입니다. 그렇기에 복음을 선포하고 귀신을 쫓아내는 것이 분리될 수 없습니다. ‘엑소시스트’ 같은 영화나, 귀신을 소재로 무당을 데리고 제작하는 자극적인 예능 같은 그런 자극적인 상황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런 상황이 펼쳐질 수도 있지만, 귀신이 꼭 그렇게만 쫓겨나는 것은 아닙니다. 사도행전의 귀신을 쫓아내는 권능을 받은 사도들이 사역할 때 드러나게 귀신이 쫓겨나는 사건도 있었지만, 은 5만에 해당하는 마술책을 불태우고, 마술과 우상에서 벗어난 사람들의 이야기도 귀신이 쫓겨난 결과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사역을 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이 권능을 받아야 합니다. 말씀의 능력과 함께 귀신을 쫓아내고 병든 자를 고치는 권능을 받아야 합니다. 이것은 목사와 같은 사역자에게만 해당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사역은 목사만 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모든 성도는 하나님의 사역을 해야 합니다. 이런 능력을 어떻게 받느냐는 의문이 들 수 있겠습니다. 이것은 또 다른 주제이기에 기회가 될 때 나누겠습니다.
6장의 다른 사건을 하나 더 보겠습니다. 예수님께서 자신을 따르는 무리를 긍휼히 보시고 오병이어의 이적을 행하셨습니다.
34절: 예수님께서는 무리를 불쌍히 여기셨습니다. 그들이 목자 없는 양 같이 이리 저리 헤매며 기진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왜 그들에게 목자가 없었습니다. 바리새인이며, 서기관이며, 율법학자며 하나님의 사역을 한다고 하는 사람들이 많았는데 말입니다. 당시 종교 지도자는 백성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제대로 전하지 않았습니다. 예수님께서 그들의 말은 지키라고 하셨던 것처럼 그들의 성경 해석은 정확했지만, 그들은 하나님과 상관없는 삶을 살았기에 하나님의 백성에게 참된 양식을 공급할 수 없었습니다. 오히려 종교적인 멍에만 지웠습니다. 백성들을 자기 이익의 도구로 삼았습니다. 예수님은 자기 백성을 불쌍히 여기시는 분입니다.
그래서 여러가지로 가르치시고, 또 이적을 행하셔서 먹을 것을 먹이셨습니다. 넉넉히 먹이셨습니다. 42절에 다 배불리 먹고. 우리 하나님은 넉넉하신 분입니다. 인색한 분이 아니십니다. 어떤 분들은 하나님은 딱 필요한 만큼만 주신다고 간증하기도 합니다. 제 경험에 비추어보면 그건 재정을 훈련받는 기간에 그렇게 하십니다. 저의 삶에 대부분의 기간에 하나님은 항상 쓰고 남게 채워주셨습니다. 하나님은 넉넉하신 분입니다.
45절: 예수님은 제자들을 보내시고 무리를 흩으십니다. 요한복음에는 그들이 예수님을 임금 삼으려는 줄 아시고 피하시는 모습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참 이상합니다. 지금 예수님께 모인 사람들이 남자만 5,000명입니다. 최소 2만명은 될 겁니다. 2만명이 모두 예수님을 바라며 따라왔습니다. 2만 명이면 메가처치를 만들 수 있습니다. 당장 교회를 세워야 합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흩으십니다. 우리는 사람이 많이 모여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완전 다르게 행하셨습니다. 2만명을 흩으시고 12명의 제자들을 세우셨습니다. 우리는 많이 모일수록 좋다고 생각합니다. 예수님은 많은 인원을 오히려 불편해 하셨습니다.
예수님과 다른 우리의 생각은 성장주의에 물든 생각입니다. 계속 성장해야만 한다는 자본주의 가치관입니다. 기업이 계속 성장해야 하듯, 교회도 계속 성장해야 합니다. 인원이 계속 늘어야 하고, 헌금이 계속 늘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무슨 문제가 있는 것입니다. 누구의 책임입니다. 그러나 성경은 그렇게 말하지 않습니다.
대구에 대략 1,500~2,000개의 교회가 있습니다. 모든 교회가 매년 10% 인원 성장한다고 가정할 때 25년이면 대구 모든 인구가 교인이 됩니다. 이것은 성경의 진리와 맞지 않습니다. 성경은 구원은 모든 사람의 것이 아니라고 하십니다. 구원 받는 자가 적다고 하십니다. 우리를 적은 무리라고 부르십니다. 생명의 길은 좁은 길이라 찾는 자가 적다고 하십니다. 성경은 우리에게 복음 전파의 임무를 맡기셨지, 모든 사람을 회심하게 하라는 명령을 하시지 않았습니다. 교회를 계속 성장시키라고 명령하시지도 않았습니다. 사도행전에 사도들의 사역을 통해 교인들이 폭발적으로 증가하기도 했지만, 어떤 지역에서는 회심자가 거의 없기도 했습니다. 끊임없는 성장은 성경적 개념이 아닙니다. 우리는 전도해야 하고, 사람을 교회에 데려오려고 해야 합니다. 그러나 우리 가치관이 성장주의가 되면 안 됩니다.
마지막으로 56절에 옷에 손을 대어 나은 사람이 많았습니다. 이는 혈루증 여인의 간증을 듣고, 혹은 소문을 듣고 혈루증 여인과 같은 믿음이 생긴 것입니다. 여러분이 믿음에 앞서 나가면 여러분을 통해 다른 이들이 자극을 받고 믿음의 행동을 하게 됩니다. 56절의 기록은 믿음은 전달된다는 원리를 우리에게 보여줍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에게 사역을 맡기시면서 귀신을 쫓아내는 권능을 주십니다. 복음 전파와 귀신을 쫓아내는 것은 사역의 두 축입니다. 예수님은 결코 성장주의를 요구하지 않으십니다. 세상에서도 성장주의를 쫓아서는 안 되지만, 적어도 교회에서는 성장주의 가치관을 버려야 합니다. 여러분의 믿음의 행동이 여러분 자신만 아니라 공동체에 선한 영향을 끼칩니다. 하나님은 여러분이 있는 가정, 직장, 교회를 여러분을 통해 믿음으로 일깨우기를 원하십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