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세대인가 다음세대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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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사사기 2:1-10
*타협과 원칙
한 번쯤 도미노를 해보신 경험이 있으실 겁니다. 도미노를 할 때 실수로 하나를 넘어뜨리면 모든 것이 와르르 넘어지는데 이처럼, 세속적인 것들을 분별없이 받아들이면 신앙이 점점 무너지게 되고 결국 신앙의 원칙을 지키지 못하고 타협하다 보면 모든 것이 다 무너지게 되어 있습니다.
*무너짐(분별력 상실, 몸과 마음에 고통이 찾아옴)
사사기 1장을 읽어보면 유다와 시므온 지파가 전쟁에서 승리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시작이 좋습니다. 여호수아 죽음 이후 이스라엘의 신앙에 대해 별 걱정 안 해도 될 것 같습니다.
여호수아가 죽은 뒤에 이스라엘 자손이 주님께 여쭈었습니다. 우리 중에 어느 지파가 먼저 올라가서 가나안과 싸울까요? 주님께서는 유다지파가 먼저 올라가라고 하십니다. 그 때에 유다지파 사람들이 자기들의 형제인 시므온 지파 사람들에게 함께 싸우자고 제안합니다. 그들이 싸우러 올라갔을 때 주님께서 가나안 사람과 브리스 사람을 그들의 손에 넘겨주셔서 전쟁에서 승리하게 하셨습니다. 여호수아는 없었지만 출발이 좋았습니다.
전쟁 전에 먼저 하나님께 여쭤보는 태도와 형제지파와 힘을 합쳐 가나안 사람들을 몰아내는 모습에 칭찬해주고 싶습니다.
그런데 사사기에서 처음으로 가나안 사람들을 쫓아내지 못했다는 말씀이 나옵니다. 1장 19절입니다. ‘주님께서 유다 지파 사람들과 함께 계셨으므로, 그들은 산간지방을 차지 할 수 있었다. 그러나 낮은 지대에 살고 있는 거민들은, 철 병거로 방비하고 있었기 때문에 쫓아내지 못하였다.’
가나안 사람들을 쫓아내지 못한 이유로 그들이 철 병거로 무장하고 있었기 때문이라고 말합니다. 물론 충분히 이해가 됩니다. 광야생활을 힘겹게 마치고 가나안 땅으로 들어가 전쟁을 하게 되는 이스라엘은 이들처럼 강력한 무기가 없었습니다. 철로 만든 무기가 없었기 때문에 철 병거가 있는 군대와 싸우는 것은 당연히 불리합니다.
그런데 21절에서 두 번째로 쫓아내지 못했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베냐민 자손이 예루살렘에 사는 여부스 사람을 쫓아내지 못한 겁니다. 그런데 유다지파와 베냐민 지파가 진짜 가나안을 쫓아내지 못한 이유가 가나안 사람들이 단지 강해서 일까요? 강력한 무기 때문이었을까요? 아니면 상대적으로 이스라엘이 약해서 그랬을까요? 아닙니다.
20절을 보시면 유다지파와 베냐민 지파의 실패 중간에 한 사람을 등장시킵니다. 바로 갈렙 입니다. 20절을 보시면, 모세가 명령한 대로, 헤브론을 갈렙에게 주었는데 갈렙은 거기서 아낙의 세 아들을 쫓아냈다고 말합니다. 아낙 자손하면 기골이 장대한 거인족 입니다. 아낙 자손들은 창세기에 나오는 네피림의 후예입니다. 아낙자손은 여호수아와 갈렙에게 진멸되었고 그 중에 생존한 후손인 골리앗과 그의 형 라흐마 등은 다윗과 그의 부하들에게 죽임을 당하며 아낙 자손은 성경에서 자취를 감추었습니다. 갈렙은 매우 포악한 아낙의 세 아들과의 전쟁에서 승리했습니다. 어쩌면 더 강한 상대라 할 수 있지요.
유다지파가 실패한 것은 단지 철 병거 때문이 아니라 능력이 있으면서도 쫓아내지 않은 것으로 보는 것이 맞습니다. 왜냐하면 여호수아17장18절에서 여호수아는 요셉 지파에게, 가나안 족속이 비록 철 병거를 가졌고 강할지라도 네가 능히 그를 쫓아내리라 라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실제로 사사 드보라는 철병거 9백승을 가진 야 빈 왕을 무찔렀습니다.
무엇보다 쫓아내지 못했다 의 히브리어는 ‘레흐 야레쉬’인데 이 단어는 능력이 없어서가 아니라 능력이 있으면서도 고의적으로 쫓아내지 않은 행위를 말합니다. 유다지파는 골짜기 거민들에게 미리 겁을 먹고 아예 시도를 하지 않은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유다지파와 함께 계셨습니다. 이 실패는 하나님 잘 못이 아닙니다. 문제는 하나님을 믿지 않고 의지 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하나님은 당신의 백성을 존중하십니다.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고 신뢰하지 않는데 나서서 일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저와 여러분들이 기꺼이 그리고 온전히 하나님을 신뢰할 때 그리고 하나님을 의지할 때 일하시는 분이십니다. 이스라엘은 제일 중요한 것을 놓치고 있는 것입니다. 바로 신앙입니다. 이제 사태가 점점 심각해지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 27절에서 므낫세 지파가 주민들을 쫓아내지 못하였다고 말합니다....그리고 가나안 사람들은 그 땅에서 살기로 마음을 굳혔다고 말합니다. 죽이지 않고 괴롭히지 않으니깐 살만하니깐 가나안 사람들이 피난 가지 않고 정착하기로 마음을 정한 것으로 보입니다. 28절에서는 더욱 심각한 상황이 벌어집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강성해진 다음에도 가나안 사람을 모조리 몰아내지 않고 그들을 부역꾼으로 삼았다고 말합니다. 지금 이스라엘은 분별력을 잃어가고 있습니다. 신앙이 무너지면 분별력도 무너집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생각했을 것입니다. 굳이 이 들을 죽일 필요가 있을까? 이들도 사람인데 쫓아내지 말고 우리를 위해 일이나 시키면 좋겠어. 에이 그냥 같이 살자. 좋은 게 좋은 거야. 성도 여러분! 그리스도인은 성경을 기준삼아 세상의 문화와 유행과 사상과 시대에 따라 변하는 세태를 분별할 수 있어야 합니다.
여러분 하나님께서 왜 이 가나안 땅의 사람들을 여호수아에게 붙이셨나요? 하나님은 그들을 처음부터 멸절시키지 않았습니다. 창세기 15장 16절을 보시면, 하나님은 아주 오래전 아브라함에게 말씀하시길 “네 자손이 사 대 만에 이 땅에 돌아올 것인데 이는 아모리 족속의 죄악이 아직 가득 차지 않았기 때문이라” 고 말씀합니다. 이 말은 가나안 땅의 사람들이 죄악이 가득차면 이스라엘을 이곳에 정착시키겠다는 말씀이 됩니다. 이들의 죄악이 가득차서 더 이상 그대로 둘 수 없는 상태가 온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430년 만에 이스라엘은 가나안으로 들어왔습니다. 이 말은 이 땅 사람들의 죄악이 가득 찼다는 말씀이지요. 그래서 지금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 땅 사람들을 쫓아내지 않는다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정면으로 거역하고 있는 것과 같습니다.
34절을 보면 최악의 상황이 발생합니다. 단 지파는 아모리 족속에게 완전히 장악 당하여 낮은 지대로 내려오지도 못하는 상황이 벌어집니다. 왜 이렇게 일이 꼬이고 있지요? 왜 갈수록 이스라엘이 실패하는 거죠? 왜 점점 불안해지는 걸까요? 무엇이 잘 못 되었나요? 바로 이스라엘은 하나님을 향한 믿음의 원칙이 흔들리고 있는 것입니다. 신앙의 원칙이 무너지면 분별력도 동시에 무너지는 것입니다.
1장 후반부를 살펴보면 이제 이스라엘 지파들은 가나안 사람들과 동거하는 것을 싫어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즐기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함께 섞여서 살게 됩니다. 30절, 스불론 지파는 기드론과 나할롤을 쫓아내지 못하매...가나안 족속이 그들 중에 거주하면서 노역을 하였더라. 31-32절, 아세 지파는.... 쫓아내지 못하고... 그 땅의 주민들이 거주하였으니. 33절, 납달리는..... 쫓아내지 못하고... 그 땅의 주민들이 거주하였으나.
이 말은 다른 말로 하면 고의로 쫓아내지 않았고 그들과 섞여 사는 것을 싫어하지 않았다는 말입니다. 왜 이런 일이 발생하게 되었나요? 그들의 신앙의 원칙이 무너졌기 때문입니다. 믿음이 없습니다. 그래서 그들의 분별력도 함께 무너지게 된 것입니다.
사사기 2장으로 넘어가면 주님께서 보김에 나타나셔서 말씀합니다. 직접 주님께서 이스라엘 지파들에게 여호와 경외 신앙을 강조하고 상기시킵니다. 주님께서는 약속을 지킬 것임을 다시 각인시키셨고 우상을 허물어 버릴 것과 순종할 것을 당부하십니다. 그렇지 않으면 큰 고통을 겪게 될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2장3절에, 그들은 결국 너희를 찌르는 가시가 되고, 그들의 신들은 너희에게 우상을 숭배할 수밖에 없도록 옭아매는 올무가 될 것이다.
계속해서 2장 11절 이하에서 성경은 말씀합니다. 이스라엘 자손이 가나안 땅 사람들이 믿는 바알과 아스다롯을 섬김으로 하나님이 그들을 약탈자의 손에 넘겨주셨고 주위의 원수들에게 팔아넘기셨다고 말씀합니다.
2장15절 “그들이 어디로 가든지 여호와의 손이 그들에게 재앙을 내리시니 곧 여호와께서 말씀하신 것과 같고 여호와께서 그들에게 맹세하신 것과 같아서 그들의 괴로움이 심하였더라.” 신앙이 무너지면 결국 고통이 찾아옵니다. 신앙이 무너지면 괴로움이 시작됩니다. 고통은 몸과 마음을 순식간에 병들게 합니다. 영적인 부분이 무너지면 육체적인 부분도 동시에 무너지게 되어있습니다. 결국 다음 세대가 다른 세대가 되어 버린다.
*무너짐의 원인(다음세대가 다른 세대가 된 이유) - 하나님을 알지 못함
그 다음이 오늘 본문의 심장, 2장 10절입니다. 함께 마음에 새겨 보십시오. “그 세대의 사람도 다 그 조상들에게로 돌아갔고, 그 후에 일어난 다른 세대는 여호와를 알지 못하며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을 위하여 행하신 일도 알지 못하였더라.” ‘알지 못하였더라’ — 이 ‘안다’는 히브리어 단어 ‘야다’는 시험 문제 맞히듯 정보를 안다는 뜻이 아닙니다. 사랑하는 사람을 알듯이, 마음으로 사귀어 아는 것을 말합니다. 바로 앞 절 7절은 여호수아 세대가 하나님의 큰 일을 “보았다”고 했어요. 그런데 다음 세대는 “알지 못했다”고 합니다. ‘본 것’과 ‘아는 것’ 사이가, 딱 한 세대 만에 끊어진 겁니다. 여호수아 세대는 기적을 두 눈으로 본 사람들이었어요. 그런데도 그 믿음이 자녀에게 자동으로 복사되지 않았습니다. 믿음은 정보가 아니라 ‘앎’, 곧 살아 있는 관계이기 때문입니다. 규칙은 물려줄 수 있어도,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은 복사되지 않습니다.
사사기는 “여호수아가 죽은 후에” 시작됐습니다. 온 나라의 비극이 무엇이었습니까? 구원자가 죽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사기 전체가 외치고 있어요. ‘죽지 않는 구원자, 우리를 두고 떠나지 않을 구원자가 필요하다!’ 여기서 놀라운 사실 하나. ‘여호수아’라는 이름을 히브리어로 부르면 ‘예슈아’입니다. 그리고 이 이름을 헬라어로 옮기면 — ‘예수’입니다. 여호수아와 예수는 같은 이름이에요. 그 뜻은 “여호와는 구원이시다.” 그래서 천사가 마리아에게 이렇게 말한 겁니다. “이름을 예수라 하라. 이는 그가 자기 백성을 저희 죄에서 구원할 자이심이라.”
사사기의 여호수아는 죽었습니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죽음마저 이기고 다시 살아나신, 죽지 않는 여호수아 — 예수님이 계십니다. 이스라엘이 끝내 쫓아내지 못한 진짜 원수가 무엇이었을까요? 가나안 사람이 아니라, 우리 마음속 죄와 죽음이었습니다. 예수님은 그 원수를 노예로 부려 이득 챙기며 어정쩡하게 남겨두지 않으셨습니다. 십자가에서, 완전히, 뿌리째 쫓아내셨습니다.
사사기는 ‘하나님을 알지 못한 세대’의 이야기였죠. 그런데 복음은 이렇게 말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알기 전에, 하나님이 먼저 우리를 아셨습니다. 이사야 49장에서 하나님은 이렇게 말씀하세요. “여인이 어찌 자기 젖먹이를 잊겠으며… 그들은 혹시 잊을지라도 나는 너를 잊지 아니할 것이라. 보라, 내가 너를 내 손바닥에 새겼고.” 새겼다고 하셨어요. 연필로 적은 게 아니라, 손바닥에 칼로 새긴 이름. 지워지지 않는 이름입니다.
부모님의 믿음은 여러분을 구원하지 못합니다. 여러분 스스로 하나님을 알아야 합니다. 그런데 바로 그것이 가장 좋은 소식이기도 합니다. 이건 억지로 물려받는 가업이 아니라, 여러분 한 사람에게 직접 온 초대이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을 무너뜨린 건, ‘이 정도는 괜찮겠지’ 하며 남겨둔 작은 타협들이었습니다. 오늘 여러분 삶에 남겨둔 작은 가나안이, 내일의 올무가 될 수 있습니다.
다음 세대는 완벽한 부모가 되어야 전해지는 게 아닙니다. ‘하나님을 아는 사람’으로 살아가며, ‘하나님이 하신 일’을 이야기로 들려줄 때 전해집니다. 건물이, 프로그램이, 전통이 믿음을 물려주지 않습니다. 하나님과 여러분 사이에 있었던 실제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당신이 그분을 아는 그 앎이, 다음 세대에게는 지도가 됩니다.
성경은 여호수아보다 오래 산 장로들이 있는 동안 백성이 하나님을 섬겼다고 말합니다. 어르신의 증언이 그만큼 힘이 셉니다. 하나님이 여러분 평생에 행하신 일을, 손주에게, 청년에게 계속 이야기해 주세요. 여러분은 못 볼 세대일지라도, 그 이야기는 손바닥에 새긴 이름처럼 남을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잊어도, 하나님은 우리를 잊지 않으십니다. 그 잊지 않으심을, 우리도 잊지 맙시다. 그리고 다음 세대에게, 지워지지 않는 그 이름을 전합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