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복음 15장
현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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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views죄인을 구원하시는 복음과 하나님의 은혜, 그리고 죄를 돌이키는 회개와 거룩한 삶에 관해 살펴보며, 복음을 믿고 구원받은 성도답게 살아가도록 권면한다.
Notes
Transcript
누가복음 15장은 예수님의 예루살렘 여정 내러티브(누가복음 9:51-19:27) 안에 위치합니다. 이 여정은 예수님의 가르침과 사역이 점차 고조되고, 유대 지도자들과의 갈등이 심화되는 시기를 다룹니다.
누가복음 15장의 직접적인 배경은 1-2절의 바리새인들과 율법학자들이 예수님께서 "죄인들을 영접하고 음식을 같이 먹는다"고 비난한 것입니다. 세 가지 비유는 잃어버린 것을 찾아 기뻐하시는 하나님의 무한한 사랑과 자비를 강조하며, 이는 자신의 죄를 겸손히 인정하고 회개하는 자들에게 조건 없는 영접으로 나타납니다. 동시에 이 비유들은 자기 의에 사로잡혀 다른 사람들을 정죄하고 하나님의 넓은 은혜를 거부하는 교만과 어리석음을 강하게 비판하며, 그러한 태도를 버리고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회개와 환대에 동참할 것을 촉구합니다.
첫 번째 비유를 살펴보겠습니다.
4절: 양이 100마리가 있는 사람이 있습니다. 당시 시대를 볼 때 여유로운 경제 수준으로 볼 수 있습니다. 일반적인 가족이 보통 5마리에서 15마리 정도의 양을 소유하고 있었기에 100마리의 양을 가진 목자는 소규모 목축업을 운영하는 중산층 수준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이 사람이 양 하나를 잃었습니다. 99마리를 들에 두고 잃은 양을 찾을 때까지 찾아다닌다고 합니다. 21세기를 살아가는 우리는 99마리가 있는데, 1마리 정도야..? 생각할 수 있지만, 당시에는 그렇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의 질문에서도 너희 중에 어느 사람이... 찾아다니지 아니하느냐?라는 질문에서 비유의 목자의 행동을 상식적으로 당연한 행동이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양을 잃은 목자의 심정을 잘 이해하는 당시 사람들은 하나님의 마음에 대해 잘 이해했을 것입니다.
애완견을 키우는 주인이 강아지를 잃어버렸을 때 애타게 찾는 마음에 비교할 수 있을까요? 강아지를 잃어버렸다고, 벽보까지 붙이며 계속 찾아다니는 애타는 마음을 이해하는 사람은 죄인에 대한 하나님의 마음을 조금은 공감할 수 있을 것입니다.
목자는 잃은 양을 찾을 때까지 찾아 결국은 찾아냅니다. 잃은 양은 스스로 길을 찾지 못해 덤불에 걸리거나 맹수의 먹잇감이 되기 쉬웠습니다. 길을 헤맸을 양을 찾은 목자는 어깨에 메고 돌아옵니다. 길을 잃었던 양을 탓하기보다, 양이 겪었을 고생을 생각하며 어깨에 메고 돌아옵니다. 잃은 양을 찾은 목자는 너무나 기뻐 그 기쁨은 혼자만 누릴 수 없었습니다. 이웃 사람들을 불러 모으고 기쁨을 나누면서 아마도 작은 파티를 열었을 것입니다.
6절: 이런 목자의 반응은 일반적인 반응은 아니었습니다. 잃은 양을 찾은 목자가 기뻐하는 것은 당연하지만, 그것 때문에 이웃을 불러서 파티를 벌이는 것은 일반적인 반응은 아니었습니다. 예수님의 비유를 들은 사람들은 기쁘긴 하겠지만 저렇게까지?라고 반응했을 것입니다.
여기서 잃어버린 죄인을 향한 하나님의 사랑은 상식을 뛰어넘는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사람들은 양 한 마리 찾았다고 잔치를 벌이지 않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한 영혼이 돌아올 때, 잔치를 열어야 하는 큰 기쁨으로 기뻐하십니다. 우리의 상식으로는 과장처럼 보이는 기쁨이, 하나님께는 너무나 자연스러운 기쁨입니다.
7절: 예수님은 이런 과장된 것처럼 보이는 목자의 기쁨의 반응이 하늘에서는 당연하다고 하십니다. 죄인 하나가 회개하면 하늘에서는 회개할 것 없는 의인 99명으로 인해 기뻐하는 것보다 더하다. 하늘에 일을 아시는 예수님의 증언이니, 이는 사실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죄인이 회개하여 돌아오는 것을 너무나 기뻐하십니다.
길을 잃은 죄인에 대한 애타는 하나님의 마음과 죄인이 하나님께 돌아올 때 하나님의 기쁨의 두 가지를 강조하는 이 비유를 보면서 우리가 생각할 점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죄인을 향해 가지는 애타는 마음이 우리의 상식을 뛰어넘어 너무 크다는 것입니다. 본문 2절에 나오는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은 죄인에 대한 이런 하나님의 마음을 전혀 몰랐습니다. 그들이 하나님과 교제하는 자들이 아니라는 증거입니다. 오히려 그들은 죄인들을 정죄했고, 죄인들을 경원시했습니다. 이는 하나님의 마음이 아니라 사탄의 마음입니다. 예수님께서 요한복음 8장에서 유대인들, 종교지도자들에게 너희 아비는 마귀라고 한 것과 세례 요한이 자신에게 세례받으러 오는 바리새인들에게 독사의 자식들아라고 일갈했던 이유입니다. 우리가 사는 세상에서 외형, 즉 물질에 속한 것은 영적인 것을 명확하게 드러내지 못합니다. 외형으로는 비슷해 보이기 때문입니다. 외형의 미추는 내면의 미추를 정확하게 반영하지 못합니다. 그러나 내면은 영적 세계를 정확하게 반영합니다. 본문의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의 마음은 그들이 하나님이 아닌 사탄에게 속했다는 것을 정확하게 보여주고, 그들의 마음에 따른 정죄의 말들이 그들의 마음을 보여줍니다. 아무리 율법을 근거로 대고, 자신들을 합리화해도 그들이 속해있는 영적인 위치는 그들이 회개하여 마음을 바꾸지 않는 한 바뀔 수 없습니다.
죄인을 볼 때 여러분 마음에는 어떤 반응이 일어납니까? 죄인에 대해서도 세분할 수 있지만, 그것이 주제는 아니니 그냥 죄인으로 통칭해서 얘기하겠습니다. 뉴스에 교회 헌금을 횡령하거나, 간음을 저지른 목사 혹은 장로, 교회 직원 등의 소식을 들으면 어떠십니까? 여러분의 반응은 어떻습니까? 혹은 동성애자를 볼 때 여러분의 반응은 어떠십니까? 교회 안에서 간음한 이들의 죄가 드러날 때 여러분의 반응은 어떠십니까? 물론 죄에 대한 의분이 일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모독하는 그들의 행위, 교회를 핍박하는 그들에 대한 의분이 일어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죄인을 정죄하고, 혐오하고, 심판자가 되는 것은 다릅니다. 성경은 우리에게 다른 이의 죄를 볼 때 이렇게 지침을 줍니다.
갈 6:1 형제들아 사람이 만일 무슨 범죄한 일이 드러나거든 신령한 너희는 온유한 심령으로 그러한 자를 바로잡고 너 자신을 살펴보아 너도 시험을 받을까 두려워하라
누가 죄를 지은 것이 드러나면 나도 저런 죄를 지을 수 있다는 마음으로 겸손하게 자신을 살피며, 그 사람에게 정죄가 아닌 온유한 마음으로 권면하라고 하십니다. 뿐만 아니라 본문에서 나타난 목자의 안타까운 심정으로 그를 바라보아야 합니다. 하나님께 속한 우리는 하나님의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두 번째로 우리는 이 비유를 통해 우리는 죄인이 회개하는 것을 너무나 기뻐하시는 하나님을 알 수 있습니다. 이것을 우리에게 적용하면, 우리가 죄를 짓는 것을 하나님은 미워하시지만, 죄를 지었더라도 회개하는 것을 너무나 기뻐하신다는 것입니다. 양이 여러모로 부족해서 길을 잃을 수 있습니다. 우리가 아직 성장하지 못하고, 힘이 없고, 옛 습관이 있고, 하나님을 적극적으로 대적하는 것이 아니라, 길을 잃은 것이라면, 하나님은 여러 방법을 통해 우리를 찾기를 힘쓰십니다. 그리고 우리가 마음을 돌이키고 다시 하나님께로 나아올 때 하나님은 너무나 기뻐하십니다. 그간의 죄를 되물어 따지고 벌하지 않으십니다. 하나님의 이런 마음을 알 때, 우리는 하나님께 돌아가기를 주저하지 않고, 어떤 실수와 잘못을 저질러도 다시 하나님 앞에 달려갈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마음을 돌이키기를 원하시고, 또한 너무도 기뻐하십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