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스겔 3장

현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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죄를 돌이키는 회개와 거룩한 삶, 그리고 부활과 재림의 소망에 관해 살펴보며, 죄를 버리고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삶을 살도록 권면한다.

Notes
Transcript
에스겔 1장에서 에스겔이 30살 되었을 때, 포로된지 5년째 해에 하나님 보좌의 환상을 봅니다. 하나님께서 친히 그룹들과 함께 에스겔에게 임하십니다. 하나님의 영광은 영광스럽고 위대했으며 두려웠습니다. 에스겔은 하나님의 영광 앞에 엎드러졌습니다.
2-3장에서 하나님은 에스겔에서 사명을 주십니다. 에스겔을 이스라엘의 파수꾼으로 부르신 것입니다. 성벽에서 파수하는 그 파숫꾼인데, 에스겔은 영적 파숫꾼이었습니다. 성벽을 파수하는 파숫꾼은 적이 침공하면 성 안에 사람들에게 경고하여 방비하게 합니다. 영적 파숫꾼이 에스겔은 이스라엘에 영적 위험, 하나님의 심판이 가까이 왔음을 경고하여 사람들에게 방비하게 하는 역할로 부름 받았습니다. 그런데 이상한 부분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에스겔을 보내 이스라엘에게 경고하시는데 그들이 돌이킬 것을 그다지 기대하지 않으십니다.
겔 2:2-5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돌이킬 것을 크게 기대하지 않으십니다. 그들 가운데 선지자가 있음을 알지니라, 곧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에게 끝까지 돌아올 기회를 주셨다는 것, 그것을 알게 하는데 목적이 있습니다.
겔 3:4-7
여기도 마찬가지 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보다 오히려 이방인을 회개시키는 것이 빠르겠다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이 돌이킬 가능성이 별로 없음을 아십니다. 그럼에도 에스겔을 보내 이스라엘에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하는데는 두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하나는 방금 말한 부분입니다. 그들 가운데 선지자가 있음을 알지니라. 하나님께서 끝까지 그들에게 회개의 기회를 주셨다는 것, 하나님의 자비의 시행입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게 끝까지 자비롭게 하므로 하나님의 공의에 대한 근거가 더 확실해집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참으시고, 끝까지 선하게 대할수록 이스라엘의 악은 상대적으로 더 커집니다.
부부가 있습니다. 남편이 가장으로의 의무를 하지 않습니다. 경제적 의무, 남편으로, 아버지로의 의무를 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아내에게 화냅니다. 아내는 참아내며 아이들을 돌보고, 남편의 빈자리를 메꾸기 위해 애씁니다. 아내가 남편에서, 가정에 선을 행하는 만큼 남편의 악함이 더 커집니다.
똑같은 남편이 있습니다. 아내가 남편과 싸우고, 자기도 아이들을 돌보지 않습니다. 가정을 떠나 자기 살길을 찾습니다. 원인 제공이 남편이기에 아내의 반응이 한편 이해되지만, 남편이 악한 만큼 아내도 악합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게 선으로 행할수록 이스라엘의 악함은 더 강조됩니다.
하나님께서 가능성 없어 보이는 이스라엘에게 에스겔을 통해 말씀을 선포하시는 두 번째 이유는 조금이라도 회개의 가능성이 있는 성도의 돌이킴을 기대하시기 때문입니다. 1%의 가능성이라도 있는 이들이 돌이키기를 바라시기 때문입니다. 영화에서 적진에서 나오지 못한 한 명의 군인 때문에 큰 피해가 생길 가능성을 감수하고 기다리고 구하러 돌아가는 모습을 보면서 우리는 감동 받습니다. 현실에는 없을 일입니다. 하나님은 최후의 가능성이라도 놓지 않습니다. 회개의 가능성이 조금이라도 남아있다면 포기하지 않으시고, 돌이키기를 원하시며, 말씀하시고, 경고하시고, 기다리십니다.
그런데 본문에 나타난 대부분의 이스라엘 백성은 회개의 가능성이 없습니다. 하나님의 성소에서 우상을 섬기고,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선지자를 비웃으며, 그의 경고를 받아도 재미롭게 듣고 잊어버립니다. 마음을 굳게 하고, 자신의 욕심을 쫓습니다.
성경의 다른 내용들과 비교해봅시오. 우리가 그렇게 답답하게 여기는 사사기에서 이스라엘 백성은 어땠습니까? 하나님의 떠났다가도 이방 나라를 통한 하나님의 징계를 받으면 다시 마음을 돌이키고 하나님을 찾았습니다.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은 어땠습니까? 하나님께 불평하고, 범죄하다가도 하나님의 징계를 받으면 바로 돌이켰습니다.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의 회개는 빨랐습니다. 사사기의 이스라엘 백성의 회개는 오랜 시간 큰 곤경을 겪어야 했습니다. 에스겔, 예레미야 선지자 시대의 멸망이 눈앞에 있는 이스라엘은 회개할 가능성이 거의 없습니다.
악함이 어느 정도 시점을 지나면 회개가 어려워진다는 것입니다. 회개는 아무 때나 내가 원하면 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사람이 모두 죄인이지만, 사람의 마음 상태는 고정되어 있지 않고 변합니다. 마음이 청결한 사람이 있고, 악인의 꾀를 쫓는 사람이 있고, 죄인의 길에 선 사람이 있고, 오만한 자의 자리에 앉은 사람이 있습니다. 양심에 화인 맞은 사람도 있습니다. 청결한 양심을 가진 사람이 있고, 이 양심을 버린 사람이 있습니다.
그러니 회개할 수 있는 은혜가 있을 때 회개에 힘써야 합니다. 물론 우리 하나님은 선하시기에 우리의 심령이 변질되어도 회복의 은혜를 주십니다. 수없이 그런 은혜를 받았습니다. 그러나 조심해야 합니다. 심령이 회복이 내게 달려있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만홀히 여기는 것이 우리에게 허락된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 완고하고 완악하게 행하면 그만한 결과가 따릅니다.
하나님께서 패역한 이스라엘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하는 사명을 주어 보내십니다. 그리고 그에 걸맞는 능력을 함께 부어주십니다. 패역한 이스라엘에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하기 위해 그에게는 단단한 마음, 강인한 의지, 결단력을 주셨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의 완악함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사역을 담대하게 감당할 수 있도록 에스겔의 마음을 강인하게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은혜에는 말씀에 대한 담대함, 강인함, 인내가 되기도 합니다.
또한 하나님께서 에스겔이 이스라엘에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하는 사명을 감당하게 하기 위한 다른 은혜를 주십니다.
2:8-3:3
하나님께서 2:8에 이스라엘 족속같이 패역하지 말고 하나님께서 주시는 두루마리를 먹으라고 하십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심판이 적혀 있는 말씀이었습니다. 이스라엘을 향한 애가와 애곡과 재앙입니다. 에스겔이 이스라엘에 하나님의 심판을 선포하기 위해 먼저 하나님의 심판의 말씀을 먹어야 했고, 심판받지 않을 모습이어야 했습니다. 이스라엘의 패역에서 벗어나야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에스겔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배에 채우라 하셨고, 에스겔이 하나님의 말씀을 내면화해서 말씀의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뜻이었습니다. 이것은 순종이라고 말하기도 하는데, 말씀을 내면화하면 순종은 자연스럽게 따라오는 것입니다. 배에 채우라는 것은 우리 신체의 깊은 곳, 중심 깊은 곳을 말씀으로 채우라는 뜻입니다.
배역한 이스라엘을 향한 말씀의 사역을 감당하기 위해 에스겔은 두 가지 준비를 했습니다. 먼저 이스라엘의 패역을 떠나 하나님의 말씀을 내면에 깊이 채우는 것입니다. 둘째는 말씀에 대한 담대함과 강인함을 하나님께 받는 것이었습니다. 말씀의 사역자는 두 가지 은혜를 받아야 합니다.
그런데 모든 성도는 기본적으로 말씀의 사역자입니다. 저처럼 말씀을 전하는데 집중된 사역자 뿐 아니라 성도들은 세상을 향한 제사장이며, 선지자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삶으로, 입술로 선포해야 합니다. 그러려면 에스겔과 같이 두 가지 은혜를 받아야 합니다.
먼저 세상의 패역을 벗어나 하나님의 말씀을 내면화해야 합니다. 이를 위해 집중적으로 말씀을 읽는 기간이 필요하고, 세상으로부터 거룩한 기간이 필요합니다. 우리가 세상과 단절하고 살 수 없고, 그래서도 안 되지만, 하나님의 쓰임에 준비되는 기간을 거치는 사람은 준비되는 일정 기간 세상과 단절하고 하나님의 말씀에 착념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그런 시간을 갖게 하십니다.
두 번째로 말씀에 대한 담대한 마음, 강인한 마음을 받아야 합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주시는 은혜입니다. 말씀을 내면화하고, 세상과 구별되어 훈련을 받는 동안 하나님께서는 그의 마음에 말씀에 대한 담대함을 주십니다. 하나님의 사역을 위해 준비되어 가며 어느 순간 말씀에 대한 담대함이 마음에 차는 것을 스스로 느끼게 됩니다. 하나님의 말씀이라면 문제 없는, 남들이 뭐라 말해도 하나님의 말씀을 전했다면 두렵지 않는 담대함이 생기게 됩니다.
이렇게 준비되면 세상을 향한 하나님 말씀의 사역자로 쓰십니다. 그때 그가 해야 임무는 말씀의 종입니다. 사람을 회개시키는 것이 아니라 말씀에 섬기는 종이 되는 것입니다.
3장 16-21절에 하나님께서 에스겔에게 사명에 대해 엄하게 경고하시는 것이 무엇입니까. 그가 악인에게든, 의인에게든 하나님의 말씀을 전할 것을 말씀하십니다. 그들이 돌이키고 돌이키지 않고는 에스겔의 책임이 아닙니다. 에스겔의 능력 밖의 일입니다. 그들의 선택이고, 하나님의 은혜의 결과입니다. 그러나 에스겔은 말씀의 사역자로, 말씀의 종이 되어 말씀을 전하는 역할을 해야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에스겔에게 사명을 명령하시면서 에스겔에게 약속하신 것이 있습니다. 평안한 삶이 아니고, 명예도 아니고, 돈도 아니고, 소원 성취도 아닙니다. 하나님께서는 에스겔에게 너의 생명을 보존하리라(19절), 네 영혼을 보존하리라(21절)라고 말씀하십니다. 에스겔이 패역한 이스라엘에게 선지자의 사역을 하면서 얼마나 큰 희생을 치뤘는지 우리는 압니다. 아내가 죽었고, 400일이 넘는 기간동안 한쪽으로 누워자면서 제대로 먹지도 못했습니다. 이스라엘에게 조롱받았습니다. 그가 사역을 감당하며 치룬 희생이 엄청난데, 하나님께서 그에게 약속하신 것을 보면, 고작?! 이렇게 생각이 들 수 있습니다. 이건 하나님과 우리의 시각이 엄청난 차이가 있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첫째, 에스겔은 하나님의 종으로 하나님의 명령을 수행하는 것은 잘하는 것이 아니라 당연한 일입니다. 이것이 우리와 다른 시각입니다. 예수님도 말씀하셨습니다. 이 모든 일을 행한 후에 나는 무익한 종이라 하라고 하셨습니다. 종이 일을 하고 돌아왔다고 종에게 먼저 먹으라고 할 주인이 있는가? 주인의 것을 먼저 차리고 수종들고 나서 먹으라고 하지 않느냐? 주인과 종의 차이를 극명하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종입니다. 하나님의 일을 하고 무슨 대가를 기대한다는 것은 자신이 종이라고 생각하지 않는 증거입니다.
둘째, 하나님께서는 에스겔의 영혼을 보존해주시는 것이 가장 큰 상급입니다. 영혼을 보존하는 것, 심판의 때에 심판을 피하는 것, 그것이 가장 큰 보상입니다. 이것이 우리에게 크게 여겨지지 않는다면 우리가 천국에 들어가는 것을 너무 쉽게 생각한다는 것이며, 또한 우리가 천국을 귀히 여기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이런 말씀을 대할 때 하나님과 우리의 차이를 여실히 느끼게 됩니다. 시각의 차이는 영의 차이를 반영하며, 영의 차이는 하나님과 우리의 거리를 나타냅니다.
하나님께서 에스겔에게 사명을 주시는 장면을 통해
첫째로, 회개하지 않을 이스라엘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하는 두 가지 이유를 살펴보았습니다. 하나님 공의에 따른 행동이며 마지막까지 자비를 베푸시는 하나님의 인자 때문입니다.
두번째로, 회개는 내가 하고 싶을 때 언제가 가능한 것이 아닙니다. 죄가 어느 수준을 넘어서면 회개가 쉽지 않으며, 하나님의 특별한 은혜가 없이는 회개도 되지 않습니다.
세번째로, 말씀을 선포해야 하는 사명을 가진 성도에게 하나님은 두 가지 말씀을 내면화하는 은혜와 말씀 선포에 대한 담대한 마음을 주십니다.
네번째로, 하나님의 사역을 강당하는 것은 종으로서 우리에게 당연한 것이며, 대가를 기대하는 마음은 종의 마음이 아닙니다. 또한 하나님께서 우리 영혼을 보존해주는 것이 가장 큰 은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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