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인은 고난이 많으나

현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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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난 속에서 일하시는 하나님과 주시는 위로, 그리고 부활과 재림의 소망에 관해 살펴보며, 어려움 속에서도 믿음을 지키며 소망하도록 권면한다.

Notes
Transcript
문제제기
예수님을 믿으면 복을 받는가?
여기에 모든 성도님들은 모두 예수님을 믿는다는 분들입니다. 물론 저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고백하고 믿는 것은 예수 믿으면 복 받는다는 사실입니다. 이것은 사실이며 성경에서도 이것을 누차 강조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정말 예수 믿는 자들은 복을 받습니까? 정말 예수 믿지 않고 악하게 사는 이들은 저주를, 심판을 받습니까? 성경은 그렇다고 말합니다.
현실의 예: 김일성, 김정일, 김정은
그러나 우리 주변에 이루어지는 일들을 조금만 보아도 의인이 복을 누리지 못하고 악인이 복을 누리는 듯한 모습을 많이 볼 수 있습니다. 우리 모두가 아는 사실 하나를 예로 들어 보겠습니다.
북한의 김일성, 김정일, 김정은 3대에 이어지는 세습을 볼 때 우리는 하나님의 심판은 언제 시행되는가 하고 의문을 품게 됩니다. 김일성이 죽을 때도, 김정일이 죽을 때도 악인이 당해야 마땅하다고 생각되는 그런 처참한 죽음은 없었습니다. 그저 고통없이 편안하게 죽었습니다. 평생을 남들이 누리지 못하는 영화를 누리며, 수많은 사람들을 죽음으로 내몰고, 그들의 피와 기름으로 자신들의 배를 불리며, 모든 쾌락을 즐기며 살던 그들이 편안하게 죽었습니다. 하나님을 대적하고 예수 믿는 자들을 무참히 죽이고 핍박하는 그들에겐 고통이란 없는 것 같습니다.
오픈도어 선교회는 북한에 대해 “김일성 우상숭배가 강요되고 성경의 소지만으로도 처형당하며 5-6만 명의 크리스천이 정치범 수용소에 갇혀있는 연속 10년째 기독교 박해지수 1위의 지구상 최악의 기독교 박해국가”라고 발표했습니다.
그 모든 하나님을 대적하는 일을 주관하고 지시하는 이들에게 당장 하늘에서 벼락이 떨어져 죽어도 마땅치 않은데 아무런 일도 없이 북한 정권이 언제 끝날지 기약이 없습니다. 오히려 그들은 장수하고, 오히려 그들은 평안한 듯합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복은 무엇이고, 하나님이 행하시는 심판은 과연 무엇일까요? 지금 당장에 하나님이 그들을 심판하셔야 하는 것은 아닌가요? 하나님의 심판이 없기에 오히려 그들이 악을 행하기에 담대한 것은 아닐까요?
본문의 요약: 시편 기자도 같은 고민과 의문의 고통 가운데 하나님께 토로했음.
본문의 시편 기자도 이런 문제로 인해 고민하였고 고통하였습니다. 2절에서 시편 기자는 실족할 뻔하였고, 미끄러질 뻔 하였다고 고백합니다. 하나님을 믿는 믿음을 놓칠 뻔했다고 합니다. 그 이유를 3절 이하에서 기록하고 있습니다.
악인이 형통하고, 고난이 없고 재앙이 없고, 죽을 때도 고통이 없습니다. 그들은 살찌며 소득이 기대했던 것보다 풍부하며, 교만히 행합니다. 하나님을 욕하며 멸시합니다. 그러나 12절에 그들은 항상 평안하고 재물은 늘어만 갑니다.
하지만 시편의 기자는 하나님의 말씀 앞에 마음을 정결하게 지키고 날마다 회개함으로 손을 씻어 하나님 앞에 죄없이 합니다. 그러나 그의 삶에는 재앙이 끊이지 않고 아침마다 또 새로운 죄로 인해 고통합니다. 시편 기자는 이런 현실의 모습으로 인해 고통합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시려는 것은 물질적인 복이 아니라 영적인 복이다.
여러분은 어떻습니까? 하나님 앞에 자신을 지켜 말씀대로 살고자 애쓰며 하나님의 기쁨을 위해 예수님이 가신 길을 따라가고자 기도하며 간구할 때 눈에 보이는 복이 여러분에게 임하시나요?
아니면 주변의 형통한 악인을 보고 마음이 어렵고, 그로 인해 믿음의 회의가 드시나요?
하나님이 행하시는 심판에 대해, 하나님이 주시는 복에 대해 우리가 물질적인 개념을 가지고 본다면 그것이 맞는 반응일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주시려는 복은 물질적인 것이 아닌 영적인 복입니다. 그분이 우리에게 주시려는 것은 썩어 없어지는 이 땅에 속한 복이 아니라 영원한 복입니다. 영생이며, 천국이며, 하나님이 자신입니다.
그렇기에 물질적인 관점에선 하나님의 심판이 실행되지 않는 것처럼 보입니다. 하나님이 복을 눈을 감고 아무에게나 주시는 것 같아 보입니다.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공의이십니다. 그분은 정확히 벌할 자를 벌하시고, 상줄 자에게 상주십니다.
부자와 나사로의 예
누가복음 16장 19절에 부자와 나사로의 비유를 보겠습니다.
부자는 돈이 많았고, 이 땅에서 평안한 삶을 살았습니다. 좋은 것을 입고 좋은 것을 먹으며 호화로운 삶을 살았습니다. 반면 나사로는 고통스러운 삶을 살았습니다. 하루 먹을 것이 없어 부자의 상에 떨어지는 것을 먹었고, 개들이 와서 다치고 상처난 데를 핥아도 개들을 좇아낼 힘이 나사로에겐 없었습니다.
둘 다 죽어 나사로는 천사들에게 인도되어 낙원에 갔고, 부자는 음부에 떨어졌습니다.
낙원에서 아브라함의 품에 안겨 위로를 받는 나사로는 그가 하나님을 섬기는 자였고 순종하는 삶을 살았고, 의인이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나사로의 이름의 뜻은 하나님의 도움이라는 뜻입니다.
부자는 그가 음부에 있는 결과를 통해 그는 악인이었고, 하나님의 뜻대로 살지 않았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 땅에서는 어땠습니까? 부자는 온갖 좋은 것을 다 누렸습니다. 부자는 아마도 하나님께 복 받은 사람의 모델로 보여졌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도움으로 살았던 나사로는 어땠습니까? 이 땅에서 어쩌면 저주 받는 자의 모델로 사람들에게 비추어졌을 지도 모르겠습니다.
하나님의 심판은 부자는 악인, 나사로는 의인으로 결론이 났습니다. 천국은 분명 의인들의 모임입니다. 그런데 의인이 이 땅에서 어찌 그리 하루 먹을거리도 없이 고통 가운데 있었을까요?
하나님의 뜻을 다 알 수 없고 본문에 그에 대해 자세히 설명되어있지 않기 때문에 더는 알 수 없지만, 분명한 것은 의인이 눈에 보이는 풍요를 누리는 것이 아니고, 악인이 눈에 보이는 심판을 받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아마도 부자는 그의 죽음도 화려했을 것입니다.
나사로는 그냥 죽었다고 표현되지만 부자는 장사지냈다고 씌여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나사로는 영원한 안식과 생명을 얻었지만 부자는 영원한 형벌과 사망을 얻었습니다.
나사로는 낙원에서 이 땅의 고통을 꿈만 같이 기억할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으로 인해 감사할 것입니다. 부자는 음부에서 이 땅에서의 쾌락을 꿈같이 여길 것이며 그것으로 인해 후회할 것입니다.
시편 기자가 깨달은 것
본문의 시편 기자가 그런 고통 가운데 하나님의 성소에 들어가 깨닫게 된 것이 있습니다. 17-18절
지금 보기에는 그들이 형통한 것 같고 잘 되는 것 같지만 하나님께서 그들을 심판하시기 위해 예비하고 계시다는 것을 깨닫게 된 것입니다. 그들이 심판을 받을 때는 그들의 모든 영화와 쾌락과 누리던 모든 것이 꿈과 같이 없어질 것을 깨닫게 된 것입니다. 물론 의인의 고통도 꿈과 같이 기억으로만 남을 것입니다.
자신이 얼마나 무지한지, 하나님의 놀라우신 섭리에 대해 시편기자는 깨닫게 됩니다(22절).
그리고 자신이 하나님 앞에서 말씀에 순종하기 위해 하는 모든 수고가 얼마나 귀한 것인지 깨닫게 됩니다(23-25절).
주변의 예
제가 아는 분들 가운데도 정말 하나님을 중심으로부터 사랑하고 그분 뜻대로 살고자 하시는 분들이 많이 있습니다. 평신도들 가운데도 제가 부끄러울 정도로 하나님 앞에 순전하신 분들이 있습니다.
행함을 떠나 그 중심이, 고난 가운데 하나님을 붙드는 모습이 얼마나 믿음으로 사시는지 짐작하게 합니다.
그런데 그런 분들에게 눈에 보이도록 문제들이 잘 풀리고, 물질이 풍성이 부어진다면 좋겠는데, 그리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더 어려운 일들도 생기는 것을 보며 안타까운 마음을 금할 수 없을 때가 많습니다. 그러면 그분들은 또 믿음으로 하나님을 붙들고 그 문제 가운데 씨름합니다.
의인에게는 고난이 많다.
시편 34:19 “의인은 고난이 많으나 여호와께서 그의 모든 고난에서 건지시는도다”
분명 의인에게 고난이 많다고 하셨습니다. 악인이 아닌 의인에게. 우리가 그저 교회나 왔다 갔다하고 설교 듣고 나름 감동을 받고 삶에서는 내 맘대로 살며, 삶의 여러 선택과 문제 앞에 하나님의 뜻을 구함보다 나의 경험이나 세상의 가치관을 좇아 사람들의 눈을 의식해서 결정한다면, 우리가 교회를 다니고 안 다니고와 별 상관없이 우리 삶에 별로 고난은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진정 하나님을 섬기길 원하고 하나님의 뜻대로 살고자 하며, 날마다 하나님 말씀 가운데 거하며, 하나님의 내게 주신 감동을 따라 순종하는 삶을 살 때 우리에게 분명히 고난이 많게 됩니다.
누가 의인인가? 어떤 사람도 의인이 아닙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믿음으로 행하는 그들은 의인입니다. 좀 더 쉽게 그리스도 안에 거하는 자가 의인입니다.
의인에게 고난이 많은 이유
요한복음 15:19 “너희가 세상에 속하였으면 세상이 자기의 것을 사랑할 것이나 너희는 세상에 속한 자가 아니요 도리어 내가 너희를 세상에서 택하였기 때문에 세상이 너희를 미워하느니라”
그렇습니다. 그리스도 안에 거하는 자들을 미워하는 사탄이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 거하려할 때 믿는 자를 가만 두지 않는 사탄이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그저 교인의 모습만 가지고 살 때에는 사탄에게 별다른 해를 끼치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와 가까이 사는 것이고, 그가 시키는 데로 하고 살게 되기에 우리를 크게 괴롭힐 필요가 없습니다.
적당히 우리가 좋아하는 육적인 쾌락이나 만족을 던져주고 또 적당히 괴롭히게 됩니다.
그러나 우리가 하나님의 뜻대로 살고자 결단하고 믿음으로 행하려 할 때에는 정말 하나님의 뜻대로 살게 되면 사탄에게 얼마나 큰 피해가 오는지 알기 때문에 그렇게 하지 못하도록 온갖 공격을 다 퍼붓습니다.
어떤 사람은 이 공격에서 다시 이전으로 돌아가는 사람도 있고, 끝까지 하나님을 붙드는 사람도 있습니다. 물론 사탄의 공격도 하나님의 허락 안에서 일어나고, 이를 통해 하나님은 우리의 잠든 영혼을 깨우는 일을 하시기도 하십니다.
하나님이 행하시는 일
이 가운데 하나님은 의인을 고난 가운데서 건지시는 일을 하십니다. 의인이 하나님을 붙들고 살고자 할 때 그의 삶에 생기는 수많은 고난과 문제 가운데서 하나님은 의인을 지키십니다.
우리가 잘 아는 믿음의 선진들의 삶을 보십시오. 그들의 삶은 많은 고난과 문제들도 점철되어 있었습니다. 다니엘은 포로로 잡혀가는 큰 고통을 겪었으며, 애매하게 누명을 쓰고 사자굴에 던져지기도 했습니다. 다니엘의 세 친구는 하나님의 제1계명을 어기지 않으려 했다가 풀무불에 던져졌습니다. 요셉도 마찬가지입니다. 바울도, 베드로도, 사도들도, 예수님의 제자들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들의 삶에 많은 고난이 핍박이 있었지만, 그 가운데 하나님은 항상 그들을 지키셨고, 고난 가운데 건지셨으며 그 일을 통해 영광 받으셨습니다.
물론 믿음의 선진들도 다 죽었습니다. 때론 붙잡혀 죽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들을 건지셔서 천국으로 인도하셨습니다.
근본적인 문제
근본적인 문제는 우리 삶에 고난이 있느냐 없느냐가 아닙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하느냐 아니냐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그분께 순종하고 그분을 더 알고자 하면 할수록, 우리 삶에는 더 큰 고난이 오게 됩니다.
그 고난보다 하나님을 더 사랑하느냐입니다. 나보다 하나님을 더 사랑하느냐 하는 문제에 봉착하게 됩니다.
나를 더 사랑하는 사람은 고난의 앞에서 타협하고 믿음의 길에서 돌아서게 됩니다. 하나님을 더 사랑하면 어려울수록, 괴로울수록 더 하나님께 가게 됩니다.
걸림돌이 되는 ‘나’
우리가 신앙 생활을 할 때, 하나님이 우리에게 하시려고 하는 것, 또는 우리가 해결해야 할 가장 중요한 문제는 ‘나’를 죽이는 것입니다. 우리는 신앙 조차도 ‘나’가 이유가 됩니다.
하나님은 ‘나’를 천국으로 인도하시는 분이기 때문에, 하나님은 ‘나’를 사랑하시기 때문에, 하나님은 ‘나’를 위해 죽으신 분이기에, 하나님은 ‘나’에게 복 주시는 분이기에, 하나님은 ‘나’에게 평안을 주시기에.
그러나 신앙의 깊이에 들어가다 보면 이 ‘나’라는 주체가 없어져야 함을 알 수 있습니다.
고후 5:15 “그가 모든 사람을 대신하여 죽으심은 살아 있는 자들로 하여금 다시는 그들 자신을 위하여 살지 않고 오직 그들을 대신하여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신 이를 위하여 살게 하려 함이라”
근본적인 해결책
하나님이 아무 계산 없이 단지 ‘나’이기에 사랑하시고 생명을 주신 것처럼 우리도 아무 계산이나 이유없이 ‘하나님’이기에 사랑하고 생명을 드리기 원하십니다.
고난을 통해 ‘나’가 죽어집니다. 고난을 통해 ‘나’가 아니라 ‘하나님’ 임을 점점 깨닫게 됩니다. 그렇기에 하나님을 더욱 사랑하면 할수록 고난이 많습니다. 의인에게 고난이 많습니다.
“내 주를 가까이 하게 함은 십자가 짐 같은 고생이나 내 일생 소원은 늘 찬송하면서 주께 더 나가기 원합니다.”
의인에게는 고난이 많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그 모든 고난으로부터 건지십니다. 건지실 뿐 아니라 가장 큰 복인 하나님을 가까이 함을 주십니다.
시편 73:28 “하나님께 가까이 함이 내게 복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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