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무엘하 19장
현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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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views고난 속에서 일하시는 하나님과 주시는 위로, 그리고 부활과 재림의 소망에 관해 살펴보며, 어려움 속에서도 믿음을 지키며 소망하도록 권면한다.
Notes
Transcript
다윗을 반역한 압살롬은 전쟁에서 패하여 죽게 됩니다. 이 소식을 들은 다윗은 마음이 아파서 슬픔을 감추지 못하고 목 놓아 울었습니다. 그러자 다윗을 따르던 백성들이 승리로 인해서 기뻐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1절: 요압에 이런 상황을 듣게 됩니다.
2-3절: 이스라엘 백성도 이 상황을 듣게 되고, 승리가 기쁨이 아니라 슬픔이 되었습니다.
지도자의 언행이 백성에게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치는지 알 수 있습니다.
본문에서는 다윗의 슬픔이 이스라엘 백성의 슬픔이 된 것. 즉 심리적 영향으로 보입니다. 그러나 실제로는 지도자의 영적 상태가 백성에게 직접적으로 영향을 미칩니다.
4절: 다윗은 자신의 반응이 백성들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생각할 겨를이 없었습니다. 너무 슬펐기 때문입니다. 지도자로서 최소한의 행동도 할 수 없는 지경이었던 것입니다.
이런 다윗을 보고 요압을 가만히 있지 않고 다윗을 쫓아가 협박에 가까운 조언을 합니다.
5-7절: 요압의 말을 구구절절 옳았습니다. 다윗 왕과 가족들을 위해 목숨을 걸고 싸운 백성들을 돌아보지 않고, 자신의 아들, 반역자, 다윗을 죽이려고 했던 압삽롬의 죽음을 이렇게 슬퍼하는 상황에 대해 책망합니다. 전쟁에서 한쪽이 죽는 것은 당연한 일인데 당신의 아들이 죽었다고 이렇게 슬퍼하다니, 당신이 아들 대신 우리가 죽었어야 했단 말입니까.
지금 나가사 백성에게 나타내고 백성들의 마음을 위로하십시오. 그렇지 않으면 이제껏 겪었던 어떤 환난보다 큰 환난을 겪게 될 것입니다. 요압은 다윗을 협박하고 있습니다.
지금 다윗의 입지가 견고하지 못했기에 요압이 이렇게 말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다윗이 자신의 말을 듣지 않으면 자신이 백성들을 선동해서 구테타라도 일으키겠다 그런 협박인 것입니다. 다윗은 어쩔 수 없이 요압의 말을 듣고 백성들 앞에 나갑니다. 인간적으로 요압이 너무 합니다. 자신의 죄 때문에 죽은 아들을 슬퍼하지도 못하게 하는 요압이 무자비하게 느껴집니다. 그러나 이것은 하나님의 뜻이기도 했습니다. 압삽롬의 죽은 다윗의 죄에 대한 하나님의 징계입니다. 다윗의 슬픔이 이해는 가지만 하나님의 징계에 대한 온전한 수용이 아닐 수 있습니다. 이런 예는 또 있습니다. 나답과 아비후가 여호와께 다른 불을 드리다가 하나님 앞에서 죽임을 당합니다. 나답과 아비후는 아론의 아들입니다. 모세는 이 사건에 대해 아론과 그의 아들들에게 말합니다. 머리를 풀거나 옷을 찢지 말라. 그리하여 너희가 죽음을 면하라. 무슨 말입니까? 너희 아들이 죽었지만 슬픔을 표현하지 말아라. 그들이 죽은 것은 하나님의 징계이고, 하나님의 징계에 대해 완전히 수긍하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원하시는 순종의 수준, 하나님의 징계 앞에 공순한 태도의 수준이 어느 정도인지 알 수 있습니다. 중심 깊은 곳으로부터 온전히 인정하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얼마나 쉽게 하나님을 원망하는지요.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배역함을 참으시지만 용납하는 것은 아닙니다. 여러분이 하나님을 쉽게 원망하는 모습이 있었다면 두려움 가운데 회개하셔야 합니다.
이제 반역이 평정되었기에 다윗은 귀환을 준비합니다. 이스라엘 족속이 다윗을 모시려고 하는 의논이 있는 것을 알고 다윗은 유다에 말하여 먼저 자신을 왕으로 추대하도록 합니다. 이는 다윗의 정치적인 계산이 있었던 것입니다. 다윗이 유다 족속에 의해 예루살렘으로 돌아오는데 3명의 사람이 다윗에게 나옵니다. 시므이, 므비보셋, 바르실래였습니다.
저는 다윗이 왕권을 되찾기 위해 돌아오는 시점에서 나타나느 이들 3명의 모습을 보면서 예수님께서 왕권을 되찾으시는 재림 때에 나타날 3 부류의 사람으로 보였습니다. 물론 다윗의 대처는 예수님이 하실 반응과는 다릅니다. 3부류에게 대할 예수님의 대처는 신약에서 알 수 있습니다.
첫번째는 시므이입니다. 시므이는 다윗이 곤경에 처했을 때 다윗을 저주한 자입니다. 예수님께서 현재 왕권을 온전히 얻지 못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부활 승리하셨지만, 그 승리가 이 땅에 온전히 이루이지지 않았습니다. 사람들은 예수님을 조롱합니다. 예수님은 아직도 자신의 힘을 제한하십니다. 이 때 예수님을 멸시하는 자들이 있습니다. 믿지 않는 자들이 아닙니다. 믿지 않는 자들은 예수님과 아주 상관이 없는 자들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자신이 온전한 왕권을 얻지 못한 이 때에 예수님을 멸시하는 자들에게 어떻게 하실지 알려주셨습니다.
눅 19:27 그리고 내가 왕 됨을 원하지 아니하던 저 원수들을 이리로 끌어다가 내 앞에서 죽이라 하였느니라
예수님의 이 비유에서 귀인을 미워하고 왕 됨을 원하지 않는 자들은 그 백성입니다.
두번째는 므비보셋입니다. 므비보셋은 다윗이 곤경을 당할 때 같이 하지 않았던 자입니다. 므비보셋의 변명에서 자신의 종 시바가 자신을 속여서 왕을 따라갈 수 없었다고 합니다. 처음에 이 구절을 읽을 때 므비보셋이 억울하겠구나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반복해서 읽을수록 석연치가 않습니다. 물론 므비보셋이 다윗이 주는 것을 거부하는 듯한 제스처를 취하지만 정말 그렇게 행동했는지는 알 수 없습니다. 그러나 다윗이 왕궁에서 쫓겨나 목숨이 경각에 달렸을 때 므비보셋이 무엇을 했는지 알 수 있습니다. 24절: 발을 맵시 내지 않고, 수염을 깍지 않고, 옷을 빨지 않았습니다. 이제 뭡니까? 다윗에게 정말 큰 은혜를 받은, 죽어야할 사울의 자손인데 사울의 재산을 다 찾아주고 왕의 상에서 같이 먹고 마시는 은혜를 주었는데. 다윗이 가장 큰 곤경에 처했을 때 이런 반응이라니. 금식한 것도 아닙니다. 므비보셋은 마음은 원이로되 육신이 약하다고 푸념하는 교인들처럼 보입니다. 예수님이 온전한 왕권을 얻지 못하고 세상에서 조롱당하는 이때 적당히 슬퍼하고, 적당히 하는, 예수님의 고난에 참여하기는 원하지 않는 그런 성도로 보입니다. 예수님이 다시 오실 때 어떻게 대우하실까요? 마태복음 25장에 양, 염소 비유에서 왼편의 염소같은 이들입니다. 왼편에 염소는 예수님을 적극적으로 해한 이들이 아닙니다. 예수님이 곤경에 처했을 때 찾아가지 않고 돌보지 않는 자였습니다.
셋째는 바르실래입니다. 바르실래는 다윗이 곤경에 처했을 때 적극적으로 먹을 것과 입을 것을 제공하고 보필했던 사람입니다. 압살롬이 다윗을 처치하고 왕이 되면 큰 어려움을 겪을 수 있는 위험을 무릎쓰고 다윗을 공궤했습니다. 예수님이 온전한 왕권을 얻지 못한 이 때 바르실래같은 성도가 있습니다. 예수님의 고난에 참여하고, 예수님과 함께한 자입니다. 양염소 비유중 오른편의 양과 같은 성도입니다. 이런 자에게 예수님은 상을 주십니다. 예수님의 영원한 나라 천국에서 함께 하게 하십니다.
시므이, 므비보셋, 바르실래 중에 여러분은 어떤 모습에 가깝습니까. 예수님께서 재림하여 왕권을 되찾으실 때 칭찬과 상 받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