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의 일에 더욱 힘써야 할 이유 (2)

현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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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활과 재림의 소망, 그리고 죄인을 구원하시는 복음과 하나님의 은혜에 관해 살펴보며, 영원한 하나님 나라를 바라보며 깨어 살아가도록 권면한다.

Notes
Transcript
서론
천국의 섬(문준경 전도사의 삶에 대한 다큐멘터리)
지난 주간에 ‘천국의 섬’이라는 영상을 보았습니다. 전라남도 신안군 증도 일대에서 사역했던 고 문준경 전도사님에 대한 다큐멘터리였습니다. 17살에 증도로 시집간 문준경의 남편은 결혼하자마자 집을 나가버렸습니다. 그 후 극심한 시집살이에 죽음까지 생각할 정도로 괴로움 가운데 지내다가 부흥회 때 하나님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뜨거운 은혜를 체험하고 신학원에 다니며 전도사가 되어 증도를 중심으로 14개의 섬을 돌며 복음을 전하고 사람들을 찾아다니며 아픈 자들을 위해 기도하고, 없는 자들을 먹여 주고, 모든 박해와 핍박에도 묵묵히 하나님을 바라보며 기도로 이겨낸 전도사님이었습니다. 전도사님의 헌신과 사랑으로 증도는 전체 주민의 90%가 기독교인이 되었고, 개척된 교회 만도 10여개가 넘게 세워졌습니다. 결국은 6.25 때 공산군에 의해 순교 하셨습니다.
이 분에 대해 CCC 총재였던 고 김준곤 목사님을 비롯하여 기독교 치유상담에 권위자인 정태기 목사님, 당시 교인, 선생님, 주일학교 학생 등이었던 지금의 장로, 권사님의 증언에 많이 부끄러웠습니다. 목숨걸고 복음을 전하셨다. 의사였고 목사였고 선생이었고 어머니였다. 쌀 한줌으로 하루 끼니를 견디며 복음을 전하러 다니셨다. 다른 사람이 가면 변화되지 않았지만, 이분이 가면 사람들이 마음을 열고 예수를 믿었다. 이런 증언들을 들으며 많이 부끄러웠습니다.
문준경 전도사님의 이런 헌신은 우리에게 본이 되는 주의 일에 힘쓰는 모습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1)2주간 설교의 요약과 지난 주 설교의 언급
지난 오후예배와 수요예배 설교를 통해 저는 여러분과 주 예수의 은혜로 받는 구원, 좋은 나무에 맺히는 아름다운 열매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나누었습니다. 먼저는 우리의 구원은 예수의 은혜로만 받는 것이며 율법의 어떤 행위와는 상관이 없다는 내용이었고, 다음은 아름다운 열매는 좋은 나무에 맺히는 것이며, 만약 우리가 구원받은 좋은 나무라면 아름다운 열매는 당연히 맺히게 된다는 내용이었습니다.
간단히 말해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받고, 구원받았다면 열매는 맺힌다는 것입니다.
2)문제제기: 왜 순종해야 하는가?
여기서 하나의 질문이 생겨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당연히 알고 있는 진리는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되 힘써서 순종해야 한다는 것인데, 왜 그래야 하느냐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는 것이 쉽지 않고 치열한 영적 전쟁을 치러야 합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받고, 구원받았다면 열매는 맺게 되어있는데, 그렇게까지 수고해가며 하나님 말씀에 순종해야 할 이유가 무엇인가요? 즉, 주의 일에 힘써야 할 이유가 무엇일까요?
지난 수요 예배 설교를 통해 제가 잠깐 언급한 내용이 있었습니다. 열매는 상급과 관련이 있다는 것입니다.
오늘은 이에 대해 좀 더 자세히 살펴보고자 합니다.
58절- 주의 일에 더욱 힘써야 할 이유
1) 육체의 부활이 있기 때문(49절)
2) 육체의 부활에도 차등이 있기 때문
고린도전서 15:58 “그러므로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견실하며 흔들리지 말고 항상 주의 일에 더욱 힘쓰는 자들이 되라 이는 너희 수고가 주 안에서 헛되지 않은 줄 앎이라”
‘그러므로’ 항상 주의 일에 더욱 힘쓰는 자들이 되라고 합니다. 앞의 내용을 알았으니... 그러므로! 입니다. 앞의 내용은 무엇입니까? 부활에 대한 내용입니다. 오늘 봉독한 본문의 부활에 대한 진리입니다.
부활이 있음을 알았으니 주의 일에 힘쓰되 더욱 힘쓰라는 것입니다. 이 땅에서 하나님의 일에 애쓰는 것은 부활과 아주 긴밀하게 관련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앞서 살펴보았듯이 구원은 예수의 은혜로만 되어지며 우리의 행위와는 상관이 없습니다. 여기서 구원이라 함은 죄 사함을 얻고 낙원 갔다가 예수님 재림 시에 육체로 부활하여 천국에 들어가는 일련의 과정을 모두 포함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의 말씀은 이 땅에서의 우리의 수고가 부활과 관련이 있다고 말씀하십니다. 이는 부활을 하고 못하고의 문제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부활의 차등에 대한 말씀입니다.
(39-42절)
더 나은 부활의 육체가 있음
더 큰 영광이 있음
본문 39-42절의 말씀을 보십시오.
“육체는 다 같은 육체가 아니니 하나는 사람의 육체요 하나는 짐승의 육체요 하나는 새의 육체요 하나는 물고기의 육체라 하늘에 속한 형체도 있고 땅에 속한 형체도 있으나 하늘에 속한 것의 영광이 따로 있고 땅에 속한 것의 영광이 따로 있으니 해의 영광이 다르고 달의 영광이 다르며 별의 영광도 다른데 별과 별의 영광이 다르도다 죽은 자의 부활도 그와 같으니 썩을 것으로 심고 썩지 아니할 것으로 다시 살아나며”
육체는 다 같은 육체가 아닙니다. 하나님이 흙으로 사람의 육체도 만드시고 짐승의 육체도 만드시고, 새의 육체도 만드시고 물고기의 육체도 만드셨습니다. 그러나 모든 육체가 같지 않습니다. 사람의 육체는 짐승이나 새, 물고기의 육체보다 더 아름답고 정교하며 완벽합니다.
해, 달, 별이 다 빛을 발하나 그 영광이 다 다릅니다. 해가 달보다 달이 별보다 더 밝게 빛납니다. 또 별과 별의 영광도 다릅니다. 사도 바울은 각 천제의 빛나는 것을 하나님이 주신 영광이라고 말했습니다. 하나님이 각 천체에 얼마나 빛을 낼지를 정해 주셨기 때문이지요. 그리고 결론적으로 죽은 자의 부활도 이와 같다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이 만드신 만물에는 분명히 차등이 있습니다. 죽은 자가 부활할 때도 그 부활이 모두 같지 않습니다. 그 부활의 영광이 분명히 다르다는 것입니다.
(35-38절)
심는 씨로 결정됨
씨-> 이 땅에서의 육체
열매-> 부활의 육체
그리고 이 부활의 육체의 영광의 차이를 결정하는 것은 심는 씨에 의해 결정된다고 단언합니다.
본문 35-38절을 보십시오. “누가 묻기를 죽은 자들이 어떻게 다시 살아나며 어떠한 몸으로 오느냐 하리니 어리석은 자여 네가 뿌리는 씨가 죽지 않으면 살아나지 못하겠고 또 네가 뿌리는 것은 장래의 형체를 뿌리는 것이 아니요 다만 밀이나 다른 것의 알맹이 뿐이로되 하나님이 그 뜻대로 그에게 형체를 주시되 각 종자에게 그 형체를 주시느니라”
부활이 없다고 의심하면서 바울에게 사람이 죽으면 도대체 어떻게 다시 살아나느냐고 힐문하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그들에게 바울은 본문의 말씀과 비유로 답하였습니다.
뿌리는 씨는 그저 다 비슷해 보이는 씨이지만 그 씨로 인해 나중에 모습이 결정된다는 것입니다. 밀이나 보리나 벼나 혹은 사과나 배의 씨는 겉모습으로는 크게 차이가 나지 않으나 씨가 자랄 때, 그 모습이나 열매는 아주 다른 것이 되는 원리입니다.
44절을 보십시오. “육의 몸으로 심고 신령한 몸으로 다시 살아나나니 육의 몸이 있은즉 또 영의 몸도 있느니라”
육의 몸으로 심어서 신령한 몸으로 살아나게 됩니다. 이 씨는 이 땅에서의 우리의 육체를 말하며, 그 장래의 형체라는 것은 부활하였을 때의 신령한 우리의 몸을 말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사도 바울을 통해 말씀하시는 것은 이렇습니다. 우리가 부활할 터인데 모두 같은 모습으로 부활하는 것이 아니다. 열매가 씨에 의해 결정되듯이, 우리의 부활의 영광과 신령한 몸은 죽어질 우리의 몸에 의해 결정된다. 그러니 주의 일에 더욱 힘쓰는 자가 되라는 것입니다.
공의로우신 하나님- 상벌에도 공의로우심
우리는 막연하게 천국에 들어가고, 부활할 것이라고 생각하며 상급이라는 것은 천국에서 살 큰 집 정도를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우리의 육체는 영혼의 집이라는 측면에서 그렇게 틀린 말도 아닐 수 있으나, 정확하게 우리에게 주어질 상급은 부활의 영광이며 신령한 몸입니다. 하나님이 이 땅에서 하나님을 붙들고 그분을 위해 살기 위해 몸부림치며, 그분의 뜻과 그분의 나라를 위해 세상 즐거움과 명예, 유혹을 뿌리친 사람과, 그저 그렇게 자신이 할 수 있는 만큼만 하나님 일하고 세상의 즐거움이나 이익, 유혹에 부딪힐 때 하나님은 잠깐 잊어버리며 살다가, 또 회개하고 잠깐 하나님 뜻대로 사는 사람을 같이 취급하신다면 하나님이 공의로우신 분이십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공의에는 ‘벌’도 포함하지만 ‘상’도 포함합니다.
부활의 씨인 우리의 몸
하나님은 우리의 몸을 보실 때 우리의 삶을 보심
여기서 부활의 영광과 신령한 몸을 결정하는 우리의 몸에 대해 알아봅시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몸을 보실 때 우리의 삶을 보십니다. 우리는 다른 사람들을 볼 때 그들의 눈, 코, 귀, 입, 덩치는 어떤지, 살이 쪘는지 말랐는지, 키는 큰지 작은지 보지만, 하나님께서는 외모를 보지 않으십니다. 우리 몸을 보실 때, 그 몸으로 무엇을 하며 살았는지 보십니다. 하나님께는 그것이 보입니다.
우리는 육체의 미추와 강약 등으로 그 육체의 등급을 평가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가 어떻게 살았는지에 따라 육체의 등급을 평가하십니다.
롬 6:13
무엇을 위해 살았는가에 의해 몸의 가치가 결정됨.
죄에 드린 몸-> 불의의 병기
하나님께 드린 몸->의의 병기
로마서 6:13 “또한 너희 지체를 불의의 무기로 죄에게 내주지 말고 오직 너희 자신을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난 자 같이 하나님께 드리며 너희 지체를 의의 무기로 하나님께 드리라”
만약 우리가 우리의 몸을 죄에게 내주게 된다면, 우리의 몸은 불의의 무기가 됩니다. 그러나 우리의 몸을 하나님께 드리면 우리 몸은 의의 무기가 됩니다.
이 말인 즉, 무엇을 위해 살았는가에 의해 몸의 가치가 결정된다는 말입니다. 우리의 육체에 등급이 따로 있습니다. 세상의 기준에 따른 등급도 있지만, 하나님의 기준에 따른 등급도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몸을 보시되 우리가 몸으로 무엇을 위해 살았는지를 보십니다.
우리의 몸은 너무도 중요합니다. 우리가 순종이라고 할 때 순종의 기준을 무엇으로 삼습니까?
하나님께 헌금을 드려야겠다고 마음먹었습니다. 순종입니까? 아닙니다. 실제로 돈을 준비해서 헌금함에 그 돈을 넣어야 순종입니다.
기도해야겠다고 마음먹었습니다. 순종입니까? 아닙니다. 실제로 마음을 모아 하나님을 바라고 그분께 기도를 올려야 순종입니다.
다른 사람이 불쌍하다고 느껴 도와주고 싶다고 느꼈습니다. 순종입니까? 아닙니다. 적어도 그를 위해 기도한다거나 그에게 다가가 말을 건낸다거나 그가 필요한 어떤 필요를 채워주어야만 순종입니다.
롬 12:1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몸이 따로 있음.
로마서 12:1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라 이는 너희가 드릴 영적 예배니라”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라고 말씀하십니다. 우리의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물로 드려야 합니다.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몸이 따로 있습니다. 거룩한 몸이 따로 있습니다. 그것은 타고난 것이 아닙니다.
롬 12:2
이 세대를 본받지 않은 몸, 하나님의 선하시고 온전하신 뜻대로 사는 몸
로마서 12:2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
이 세대를 본받지 않는 몸입니다.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대로 사는 몸입니다.
우리의 몸은 너무도 중요합니다. 그러기에 사도 바울은 우리의 영 혹은 혼 만이 아니라 우리의 영, 혼, 몸이 주 예수께서 강림하실 때 흠 없기를 원한다고 하였습니다.
적용) 몸을 무엇을 위해 사용하는가? 적당한 핑계로 세상과 타협하며 사는가? 세상을 거슬러 핍박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뜻대로 사는가?
여러분은 지금 어떻게 사십니까? 여러분의 몸으로 무엇을 하며 사십니까?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에 여러분의 몸을 드리십니까?
아니면 이 세대의 흐름이 이러니 어쩔 수 없다고 스스로를 위로하며 세상을 쫓아 세상의 원함대로 사십니까? 그것은 불의한 것입니다. 그것은 죄입니다. 그것은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만약 그렇다면 여러분의 몸이 지금 불의의 병기로 쓰이고 있습니다.
지금, 오늘, 현재를 하나님의 뜻대로 사는 삶에 자신을 드리지 않고, 세상과 싸움이 힘겹고 무서워 피하며 적당히 타협하면서도, 부활 때에 좋은 영광을 얻을 것이라 기대하지 마십시오.
하나님은 그저 인심 좋은 옆집 아저씨가 아닙니다. 허허. 웃으면서 그래 그럴 수도 있지, 괜찮아, 네가 잘못한 건 눈감아 줄게.
아닙니다. 하나님은 공의로운 심판장이십니다. 온 우주의 왕이십니다. 우리를 너무도 사랑하셔서 아들의 죽음으로 우리를 구원하셨지만, 이제 주님을 위해 살라고 명령하셨습니다. 더 이상 자신을 위해 살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더 이상 죄와 타협하지 말고 피 흘리기까지 싸우라고 명령하셨습니다. 하나님의 그 귀한 은혜를 절대로 헛된 것들과 바꾸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각 사람이 행한 대로 갚아주신다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삶->부활의 영광이 더 큼. 반대인 사람-> 구원 받지만 부활의 영광은 그들의 삶에 따라 결정됨.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삶을 사는 자에게 부활의 영광이 더 클 것입니다. 힘들고 괴롭지만, 세상의 조롱과 핍박 가운데도, 시험과 유혹이 올 때에도 하나님을 사랑하기 때문에 그 모든 것을 이겨내고 견디고 거부하면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그 뜻을 좇아 순종하는 사람에게는 분명 더 큰 부활의 영광이 기다립니다. 그리고 그것은 마지막 심판 때에 모든 사람들에게 드러날 것이며, 삶의 선택의 순간마다 하나님의 기쁘신 뜻을 선택하지 않았던 사람들은 자신의 잘못된 선택에 대해 부끄러워할 것입니다. 물론 예수님의 보혈로 구원받겠지요. 그러나 부활의 영광은 그들의 삶에 따라 결정될 것입니다.
히 11:35 더 좋은 부활을 얻고자 하여..
히브리서 11:35 “여자들은 자기의 죽은 자들을 부활로 받아들이기도 하며 또 어떤 이들은 더 좋은 부활을 얻고자 하여 심한 고문을 받되 구차히 풀려나기를 원하지 아니하였으며 ”
더 좋은 부활을 얻고자 하여 구차히 풀려나기를 원하지 않았습니다. 잠시 어쩔 수 없어서 고문 때문에 예수님을 부인했다고 해서 구원이 취소될 것이라 생각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이들은 오히려 구차히 풀려나느니 고문 받기를 원했습니다. 더 좋은 부활이 있는 줄 알았기 때문입니다.
예) 문준경 전도사
설교의 처음 부분에서 저는 고 문준경 전도사님의 삶에 대해 이야기 했습니다. 그분은 어떻게 그렇게 살 수 있었을까요? 일신의 안일은 전혀 상관없고, 어떤 명예나, 돈이나, 육적인 편안함 등과는 전혀 상관없는 삶을 왜 살았을까요? 하루 한 끼니도 제대로 먹지 못하면서 복음을 전하려고 14개의 섬을 돌면서 사람들을 돌보며, 기도하고, 복음 전하는 이 일을 그분은 왜 감당한 것일까요? 그리고 죽었습니다. 처참하게 공산군에 의해 순교하셨습니다. 세상이 대단하다고 생각하는, 혹은 우리가 대단하다고 생각하는 삶과는 전혀 다른 삶을 살았습니다. 왜? 그렇게 산 것일까요?
부활이 있음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상급이 있음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 상급은 이 땅의 영화나 즐거움, 명예 등과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크고 놀라운 것이라는 것을 전도사님은 아셨던 것입니다.
부활을 믿는 자의 삶- 이 땅의 것에 초연한 삶,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삶.
부활을 믿는다면 그렇게 살아야 합니다. 하늘의 영광이 이 땅의 것과 비교 되지 않게 중요하다면 그렇게 살아야 합니다. 부활의 영광에 대해 안다면 이렇게 살지 않을 것입니다. 다시 산다는 것을 안다면 죽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겠지요.
지금 우리는 무엇을 위해 살고 있습니까? 지금 우리의 머리에는 무슨 생각으로 가득 차 있습니까? 우리는 정말로 부활을 믿고 있는 것은 맞습니까? 예수님이 다시 오신다는 것을 기다리고 있는 건가요? 아니 우리는 크리스천이 맞는가요?
부활의 영광은 이 땅의 영광과는 도저히 저울질 할 수 없을 정도로 놀라울 것입니다. 그리고 그 영광은, 이 땅의 잠시 간에 없어질 영광과는 비교도 안 되는 영원한 부활의 영광은 이 땅에서의 삶에 의해 결정됩니다.
에콰도르의 아우카 인디언에게 복음을 전하다 순교한 짐 엘리엇의 말을 인용함으로 말씀을 맺겠습니다.
“영원한 것을 얻고자 영원할 수 없는 것을 버리는 자는 바보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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