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전한 교회의 모습

현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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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 공동체의 본질과 성도의 책임, 그리고 죄를 돌이키는 회개와 거룩한 삶에 관해 살펴보며, 서로 사랑하고 섬기며 건강한 공동체를 세우도록 권면한다.

Notes
Transcript
1. 도입부
하나님의 마음에 있는 교회: 온전한 교회, 천국
하나님의 마음에는 하나님이 원하시는 교회의 모습이 있습니다. 지난 번에 에베소서 말씀을 통해 교회에 대해 나누었을 때 하나님이 결국 이루시는 완전한 교회가 천국이라고 말씀드렸습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마음에는 하나님의 원하시는 온전한 교회의 모습이 있습니다. 그리고 그 교회의 모습을 이 땅에서도 이루시기를 원합니다.
2. 본론 1
본문에 나타난 교회의 모습: 온전한 교회의 모습
오늘 본문에는 신약의 첫 교회의 모습을 보여줍니다. 그리고 이는 하나님이 시작하셨습니다. 하나님이 시작하셨기에 이 땅에서 가질 수 있는 가장 온전한 모습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처음이기에 미숙할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성경에서 하나님이 시작하신 처음은 항상 가장 온전한 모습을 보여 주었습니다.
하나님이 6일간 창조하신 온 세상의 모습은 지금보다 더욱 온전한 모습이었습니다. 하나님이 창조하신 사람도 지금보다 더 온전하였습니다. 하나님이 부르신 이스라엘도 그 처음 모습이 하나님이 앞에 가장 순수하였고 아름다웠다고 예언서에서 하나님은 추억하십니다. 성막도, 성전도 처음이 가장 온전하였습니다. 신약의 교회도 이 처음이 가장 온전한 모습이었고 이를 통해 우리는 하나님의 원하시는 이 땅에서 이룰 수 있는 가장 온전한 교회의 모델을 볼 수 있습니다.
1) 성경에서 말하는 온전함이란?
그러면 성경에서 말하는 온전함은 무엇일까요? 제가 여기서 온전하다고 언급하는 온전함은 무엇일까요? 성경에서는 온전함, 혹은 완전함에 대해 언급할 때에 우리들이 생각하는 완벽의 개념과는 다르게 사용합니다. 어떤 사람이 완벽한 사람은 흠이 없고 점이 없습니다. 자신을 잘 통제하고, 잘 절제하여서 빈틈이 없는 사람입니다.
그러나 성경에서 말하는 온전함이란 성령께 온전히 붙들리는 것, 하나님의 통치가 온전히 이루어지는 것, 그분께 온전히 의지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온전한 사람이 될 수 없지만, 온전한 사람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성령님께 온전히 붙들림을 추구하고 그를 위해 헌신하면 됩니다. 그런 자는 온전함에 점점 더 다가갈 것입니다. 자신의 힘이 아닌 하나님의 능력으로.
2) 본문에 나타난 교회의 모습
그러면 본문에 나타난 교회의 모습, 이 땅에서 이룰 수 있는 온전한 교회에 가장 가까운 모습은 어떤 모습일까요?
①성도들은 하나님을 두려워 함(43절)
첫째로 성도들은 하나님을 두려워 했습니다. 본문 2장 43절에 “사람마다 두려워하는데...”라고 말씀하십니다. 두려워함의 원인은 사도들의 기사와 표적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기적을 보고 그 기적 자체에 대해 두려워 한 것은 아닙니다. 기적을 일으키시는 하나님의 능력 앞에 두려워 한 것입니다. 하나님을 두려워했습니다.
신앙에 있어서 하나님을 두려워 함은 빠질 수 없는 필수 요소입니다. 하나님을 두려워 하는 가운데 섬기는 것, 이것이 하나님을 경외한다는 말의 본 의미입니다. 영어로는 공포, 두려움을 의미하는 fear라는 단어로 번역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두려워해야 합니다. 그분의 능력 앞에, 그분의 거룩하심 앞에, 그분의 전지하심 앞에, 우리는 두려워해야 합니다. 그러나 이는 두려워하기로 했기에 하나님을 두려워 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능력을 보고, 그 분을 알게 됨으로 두려워 한 것입니다.
②유무상통: 영적인 것이 분명해지고 물질에 대한 개념이 약해짐(44-45절)
두 번째로 본문의 교회 안에서는 일명 유무상통이라는 특이한 현상이 일어났습니다. 물론 이 세상의 눈으로 보았을 때 특이한 현상입니다. 자신의 소유를 팔아 다른 이들의 부족함을 채워주었던 것입니다. 그것도 한 두 사람이 아닌 교회의 많은 구성원들이 그리했습니다.
이는 이들이 자선사업을 해야겠다고 결심해서 된 것은 아닙니다. 그들에게 돈에 대한, 소유에 대한, 물질에 대한 개념이 희미해졌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전에는 누구를 주고 싶어도, 불쌍한 사람을 만나도 아까워 주지 못했던 것이 이제는 쉽게 줄 수 있게 된 것입니다. 돈이 그 많은 아깝지 않게 된 것입니다. 이는 하늘 나라가 이 세상 돈의 능력의 분명함과 안 될 정도로 분명해졌던 것이고, 물질적인 것이 별로 크게 느껴지지 않은 것입니다.
그러나 이뿐 만은 아닙니다. 아무리 물질, 소유에 대한 개념이 약해졌다고 해도, 자기에게 덜 중요해진 것이지, 필요없어진 것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이들은 교회 안에 다른 성도들과 이전과는 완전히 다른 관계를 맺게 된 것입니다. 너무도 가까워 자신에게 필요한 것, 주고 나면 불편해지는 것도 크게 개의치 않을 정도로 그들의 삶에 성도들이 중요해진 것입니다. 이는 성도들과 10년, 20년을 같이 생활해서가 아닙니다. 본문의 교회는 생긴지 체 1달도 안 된 교회이기 때문입니다. 성도를 귀히 여기는 하나님의 마음이 그들 안에 충만했기 때문입니다.
③성도들의 연결(46절)
-마음을 같이
-성전에 모이고, 집에서 떡을 떼고: 하나님 안에서 교제
-기쁘고 순전한 마음으로 음식을 먹고: 서로에게 간사함이 없음
셋째로 본문의 교회의 성도들은 깊히 연결되어 있던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마음을 같이 하였습니다. 의견이 하나란 얘기가 아닙니다. 좋아하는 음식이 같았다는 얘기도 아닙니다. 취미가 같았다는 얘기도 아닙니다. 성경이 잘 맞는다는 얘기도 아닙니다. 마음을 같이 하였다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으로 채워진 같은 마음입니다. 다른 영이 아닌 한 영입니다. 그러기에 모두 하나님의 위하고, 하나님의 소망을 품었던 것입니다.
성전에 모이고, 집에서 떡을 떼었습니다. 하나님 안에서 교제한 것입니다. 모일 때 성전에서 모이고, 집에서 모일 때 성찬식을 나누며 주님 안에서 교제하였습니다.
기쁨과 순전한 마음으로 음식을 먹었습니다. 기쁨과 순전한 마음이라는 것은 성도 간에 간사함이 없고 서로에게 정직하며 편했다는 것입니다. 서로를 만나 음식을 나눌 때 하나님 안에서의 기쁨이 있었습니다. 서로에게 대할 때 순전하였습니다. 그러기에 그들의 모임은 평안하고 편안하였을 것입니다. 육체의 편안이 아닌 마음의 편안 말입니다.
3. 본론3
성도들 전부가 하나님 앞에 회개하고 하나님과의 관계가 회복된 상태임(37-41절)
그러면 본문의 교회는 어떻게 이런 모습을 가질 수 있었을까요?
이런 교회의 모습이 좋은 교회, 온전한 교회, 우리가 닮아야 하는 교회의 모습이니 우리 모두 애쓰고 노력합시다. 라는 말을 하고 싶은 것이 아닙니다. 그런 것은 도덕 교과서에도 많이 나와 있습니다.
그런 삶은 자신의 의가 나타나는 삶입니다. 내가 애썼으니까, 내가 노력했으니까, 내가 순종했으니까. 그것이 바로 자기 의에 시작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우리가 순종하려고 애쓸 때, 순종하지 못함을 알게 하십니다. 내가 노력하려고 애쓸 때, 내 노력이 아무 것도 아님을 알게 하십니다. 그렇게 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 답은 성도들 전부가 하나님 앞에 회개하고 하나님과의 관계가 회복된 상태였기에 가능했습니다. 이들의 회개는 우리와 같이 한, 두명씩의 회개가 아닌 집단적인 회개였습니다. 삼천 명이 일시에 회개하고 예수님을 구주로 영접했습니다. 자신의 죄를 토설하고 하나님의 백성이 되었습니다. 모든 성도들이 구원의 감격으로 가득차 있습니다. 그들 가운데 하나님이 충만하셨습니다.
쉬운 말로 하나님의 관계가 아주 좋은 상태입니다. 한두 명이 아닌 성도 전부가 말입니다.
4. 결론
1)교회가 온전한 교회의 모습을 갖추기 위한 모든 열쇠는 하나님
교회가 온전한 교회의 모습을 갖추기 위한 열쇠는 하나님입니다. 그 이유는 교회가 교회인 이유는 하나님이 모으시고 세우셨기 때문입니다. 성도가 성도인 이유는 하나님이 그 안에 계시기 때문입니다.
교회가 온전한 교회가 되는 것은 성도들이 온전한 성도가 되는 만큼 가능해집니다. 성도가 온전한 성도가 되는 것은 하나님이 다스리심이 커지는 만큼 온전해집니다.
2)성도간의 연결보다 하나님과의 연결이 중요
그러기에 성도 간의 연결보다 하나님과의 연결이 훨씬 중요합니다. 성도에게 하나님의 다스리심이 제한되거나 거부되어질 때 성도의 연결을 추구한다면 세상적인 방법, 이미 알고 옛 습관의 방법으로 연결을 도모하게 됩니다. 결국 성도의 연결이라기보다 세상의 친목 단체의 모습에 더 가깝게 되고 성도의 모임의 열매보다 세상 사람의 모임의 열매가 더 많이 맺혀지게 됩니다.
성도는 하나님과 연결이 이루어지는 만큼 성도와 연결되게 됩니다. 하나님과의 연결 가운데 있게 되면 하나님의 통치는 확장되게 됩니다. 하나님이 성도 안에서 하시는 가장 중요한 일은 그 성도를 향한 통치를 확장하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성도 간의 연결이 먼저가 아니라 하나님과의 연결이 먼저입니다.
3)성도가 하나님과 연결을 회복하고 연결을 유지할 수 있는 방법은 회개 뿐
성도가 하나님과 연결을 회복하고 유지할 수 있는 방법은 회개 뿐입니다. 본문의 교회의 성도들도 하나님께 회개하였기에 이런 모습을 보여 줄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과 원수되었던 우리가 하나님과 무엇으로 가까워졌습니까? 예수님의 보혈로 가까워졌습니다. 무엇으로 그 관계를 유지할 수 있습니까? 예수님의 보혈입니다.
죄를 짓고 죄를 품어 하나님과 멀어졌습니다. 무엇으로 관계를 회복할 수 있습니까? 예수님의 보혈을 의지하여 하는 회개입니다.
정 리
우리 교회가 온전한 교회가 되길 원하십니까? 여러분 안에 그 마음이 있다면 좋습니다. 하나님이 주신 마음이니까요? 그런 마음이 있으신 분은, 분명 있을 줄 믿고 압니다. 하나님께 회개하기에 힘쓰십시오. 하나님의 통치가 내 삶에 확장되는데 헌신하십니다. 모든 마음과 생각과 나의 삶의 모든 초첨이 하나님의 통치가 내 삶에 확장되는데 쏟아 부으시라는 말입니다.
하나님 뜻대로 하기를 기도하고, 그 뜻대로 순종하기로 결단하고 순종하십시오. 죄를 보기를 쥐나 바퀴벌레보다 더 징그럽게 보십시오. 죄와 싸우되 피 흘리기까지 싸우십시오.
여러분에게 하나님의 통치가 확장되는 만큼 여러분을 통해 예수가 흘러갈 것입니다. 그리고 여러분 때문에 다른 어떤 이도 여러분과 같은 열망으로 하나님의 통치가 내 삶에 확장되는데 헌신할 것입니다. 여러분이 아니라 여러분 안에 계신 성령님께서 그렇게 하실 것입니다.
우리 교회에 그런 성도들이 많아지는 만큼 우리 교회는 하나님의 마음에 품고 계시는 온전한 교회의 모습에 가까워 질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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