죄에 대하여2
현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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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 views죄인을 구원하시는 복음과 하나님의 은혜, 그리고 하나님의 사랑과 성경적인 관계에 관해 살펴보며, 복음을 믿고 구원받은 성도답게 살아가도록 권면한다.
Notes
Transcript
지난 주에 우리는 창세기 4장 말씀을 본문으로 해서 죄에 속성, 죄가 우리에게 어떻게 들어오는지에 대해 알아보았고 죄를 어떻게 다스려야 하는지에 대해 나누었습니다. 죄는 개념적이고 추상적인 것이 아니라 실제하는 인격이고 마귀입니다. 죄는 우리 안에 들어와 우리를 다스리고자 하는 소원을 가지고 있고, 그 소원을 이루기 위해 우리에게 육신의 정욕, 안목의 정욕, 이생의 자랑이라는 무기로 공격합니다. 말씀에 깨어 있지 못할 때, 죄의 공격을 받은 자는 죄의 유혹을 선택하고 죄는 우리 안에 들어와 우리에 대한 다스림을 확장합니다. 우리가 죄를 선택하고, 죄와의 싸움에서 진만큼 죄의 종이 되어 죄의 도구가 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가 죄의 유혹을 이기고 죄를 다스리기 원하십니다. 하나님께서 죄를 우리의 삶에 허락하신 이유는 우리가 죄의 종이 되는 것을 보고 즐기시려고, 혹은 우리를 골탕 먹이시려고, 우리에게 고통을 더하시려는 그런 이유가 아닙니다. 죄와의 싸움을 통해 하나님을 향한 믿음이 자라게 하시려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배신하고 죄를 선택했을 때의 삶이 어떠한지 깨닫게 하시려는 것입니다. 세상이 얼마나 덧없는지 알게 하시기 위함입니다. 결국 이 세상 어떤 것보다 하나님을 사랑하게 하시기 위함입니다.
우리가 육신에서 떠나 영적인 사람이 될수록 죄에 대해 이기게 되고, 죄에서 자유를 얻게 됩니다. 이는 죄가 흙, 곧 땅에 속한, 육신에 속한 것을 먹고 사는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영에 속하기 위해, 영적인 사람이 되기 위해서는 성령의 인도함을 따라 살아야 합니다.
오늘은 죄와 싸움에서 고민하는 바울의 고백인 본문 말씀을 통해 죄의 근원인 마귀, 사탄에 대응하는 부분인 ‘나’에 대한 부분을 살펴보고자 합니다.
“이제는 그것을 행하는 자가 내가 아니요 내 속에 거하는 죄니라 내 속 곧 내 육신에 선한 것이 거하지 아니하는 줄을 아노니 원함은 내게 있으나 선을 행하는 것은 없노라”(롬 7:17-18)
바울은 죄에 대해 말하면서 죄를 자신 안에 살고 있는, 특히 자신의 육신에 살고 있는 자신의 한 부분으로 묘사하고 있습니다. 본문에서 바울이 깨닫고 고백하는 것은 죄가 자신의 밖에 있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안에 거하는 것이라는 것입니다. 지난 주에는 죄에 대해 우리 밖에서 우리 안에 들어오려는 어떤 존재라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러나 오늘 본문에서 바울은 죄가 밖에 있는 어떤 존재임을 넘어서 내 안에 살고 있는 존재라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이는 우리 존재 자체가 죄라는 인식에서 나오는 고백입니다. 그 이유는 우리의 조상이 죄인이었고, 우리는 그 죄 가운데 잉태되어 죄인의 몸으로 태어났기 때문입니다.
“내가 죄악 중에서 출생하였음이여 어머니가 죄 중에서 나를 잉태하였나이다”(시51:5)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알고 거듭나기 이전에 우리는 하나님과 원수였습니다. 하나님을 단지 알지 못하고, 단지 죄를 짓고 사는 존재를 넘어 우리는 하나님과 원수였습니다. 하나님의 원수, 대적자, opponent는 사탄의 다른 이름들입니다. 사탄, 곧 죄, 하나님의 원수는 바로 우리였습니다.
“곧 우리가 원수 되었을 때에 그의 아들의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화목하게 되었은즉 화목하게 된 자로서는 더욱 그의 살아나심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을 것이니라”(롬 5:10)
그러나 하나님의 은혜로, 예수님의 십자가의 공로로, 하나님의 사랑 때문에 우리는 하나님의 원수에서 하나님과 화해하고, 화목을 얻은 자가 되었습니다. 이것은 단지 하나님이 우리에게 용서할게, 화해하자라고 화해의 손길을 내미는 것이 아니였습니다. 그분의 죽으심으로 우리에게 있던 죄가 실재로 예수님에게 넘겨지고, 우리는 죄로부터 건짐 받게 되었습니다. 이는 우리의 거듭남과 바로 연결되어 우리의 죽었던 영이 하나님 안에 다시 태어나는 거듭남의 역사가 우리 영에 이루어지게 되었습니다. 만약 하나님이 우리의 죄만 사하시고 우리 영에 아무 일도 하지 않으셨다면 우리는 아직도 하나님을 알 수 없었을 것입니다. 하나님은 영이시고 영이 살아나지 않은 사람은 누구도 하나님을 만나뵐 수도, 그분을 알수도, 그분께 찬양드릴수도, 기도할 수도, 예배할 수도 없기 때문입니다. 영이신 그분과 영이 죽은 존재는 교재할 수 없습니다. 죄를 가진 자가 하나님과 교재할 수 없고 또한 영이 죽은 자도 하나님과 교재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거듭남은 무엇이 거듭났다는 것입니까? 영과 혼과 몸이 모두 죽어 죄 가운데 있고 하나님과 교재할 수 없었던 우리의 무엇이 거듭났다는 것입니까? 몸을 포함하는 육신입니까? 우리의 머리색이 바뀌었나요? 눈 색이? 키가? 거듭나면서 외형적인 어떤 변화가 우리에게 있었나요? 아닙니다. 육이 거듭나지 않았습니다. 우리의 혼이 거듭났나요? 거듭난 후에도 우리의 생각은 여전히 믿음의 생각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말씀 안에 순종하고, 그 말씀으로 우리의 생각과 세상의 가치관이 점점 무너지기 전에 우리의 생각과 감정과 의지는 여전히 예전의 나 중심적인 모습일 뿐입니다. 그러면 우리의 영이 거듭났나요? 맞습니다. 우리의 영이 다시 태어났기에 이제 우리는 예배드릴 수 있습니다. 하나님을 알게 되었고 알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분께 기도할 수 있고,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수도 있습니다. 우리의 영이 거듭난 것입니다. 그러기에 우리의 육신에 속한 것은 여전히 죄입니다.
여기서 조심해야 할 것은 몸이 죄라는 말이 아니라 육신이 죄라는 말입니다. 우리의 몸도 타락하였기에 육신에 복종하기가 더 쉽고, 영에 복종하기가 더 어렵습니다. 그렇다고 우리의 몸 자체가 죄는 아닙니다. 육신, 곧 자아, 세상적인 것을 사랑하는 영이 아닌 ‘나’ 가 죄입니다.
우리의 육신은 그대로이기 때문에 여전히 하나님과 원수 관계에 있습니다. 다시 말해, 우리의 육신에 속한 것은 한 두 개, 혹은 몇 개가 잘못된 것이 아니라 그 존재 자체가 죄이고 그 존재 자체가 악입니다. 우리에게 이 인식이 있어야 합니다. 나로부터 시작하는 모든 것이 죄이라는 깨달음입니다.
“육신의 생각은 하나님과 원수가 되나니 이는 하나님의 법에 굴복하지 아니할 뿐 아니라 할 수도 없음이라”(롬8:7)
여기서 육신의 생각이라는 것은 육신으로부터 나오는 모든 것을 의미합니다. 육신의 생각은 하나님과 원수입니다. 우리의 육신은 죄입니다. 죄 덩어리입니다. 그러나 우리의 영이 거듭났습니다. 여기서 충돌이 있습니다. 우리의 거듭난 영과 우리의 육신 사이의 갈등입니다. 그리고 사탄은 이 육신을 통해 우리를 공격하고 우리의 지체인 이 몸을 육신의 지배아래 두려고 합니다. 그러면 사탄은 우리를 자신의 뜻대로 종으로 삼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내 속사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즐거워하되 내 지체 속에서 한 다른 법이 내 마음의 법과 싸워 내 지체 속에 있는 죄의 법으로 나를 사로잡는 것을 보는도다”(롬 7:22-23)
우리가 거듭나기 전에는 영이 죽어 있고 육신 만이 살아있기에 갈등에 요소가 별로 없었습니다. 물론 우리 안에 양심이라는 것이 있었지만, 그 양심도 자신이 기준이었기에 큰 갈등이 없고, 하나님과 큰 상관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거듭나고 우리 안에 영이 살아나게 됨으로 이제 육신과 큰 갈등에 놓이게 됩니다. 치열한 전쟁이 시작되는 것입니다. 이는 ‘나’라는 전인적인 존재를 두고 영과 육신의 싸움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누가 이깁니까? 싸움에서 누가 이깁니까? 강한 자가 이깁니다. 영이 강하면 영이 이기고 육신이 강하면 육신이 이깁니다. 영이 강하면 하나님의 뜻대로 순종하고 그분의 뜻을 이루게 되고 육신이 강하면 하나님의 뜻에 불순종하고 그분의 일을 방해합니다. 그분의 이름을 훼방하게 됩니다. 거듭난 하나님의 백성이면서도요. 좀 더 다른 말로 바꾸어 말하면 믿음이 자라고 강건해 질수록 죄에 대해 이기게 됩니다.
그러면 어떻게 이길 수 있을까요?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롬8:2)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우리를 해방하였다고 증언합니다. 생명의 성령의 법과 죄와 사망의 법이 대비 되어 나타납니다. 생명의 성령, 바로 그분의 법이 죄의 법, 사망의 법에서 우리를 해방합니다. 법이라는 것은 구속력이 있습니다. 헌법이든, 율법이든, 교회법이든 일단 법이 재정되면 그 법은 사람을 구속합니다. 그 법이 정한 테두리 안에 가두어 둡니다. 그 테두리를 벗어날 때 어떤 형태로든 그 테두리 안에 있게 하기 위해 제재를 가합니다. 세상의 헌법이나 율법은 그것이 형벌, 벌금 등으로 나타납니다. 그러나 생명의 성령의 법은 우리를 구속하고, 우리가 그 테두리를 벗어날 때 다시 그 안으로 들어오게 하기 위해 제재를 가하는데 은혜로 제재를 가합니다. 그러기에 생명의 성령입니다. 우리는 죄인이고 죄의 형벌은 사망입니다. 죄를 지음으로 죽을 수 밖에 없습니다. 죄의 법과 사망의 법 아래 있다면.
그러나 성령의 법 아래 있다면 죄를 지어도 은혜로 구속함을 받습니다. 그러기에 살 수 있습니다. 성령의 법 아래 있을 때, 곳 성령께 구속될 때 우리는 죄에서 해방됩니다. 정죄함으로부터 해방됩니다. 사망, 영벌의 두려움에서 해방됩니다.
이것은 또한 영으로 행하는 우리에게 율법의 요구가 이루어지게 합니다. 은혜의 법이 우리에게 주어지기 위해 이미 예수 그리스도께서 그 죄의 값을 지불하셨기 때문입니다. 누구에게? 사탄에게? 아닙니다. 사탄은 그럴 권한이 없습니다. 율법에게 그 값을 지불하셨습니다. 율법이 우리를 죄인으로 정죄하고 사망을 선고하였지만, 그 죄의 값을 예수 그리스도께서 지불하셨습니다.
우리가 연약하기에 율법의 요구를 이룰 수 없습니다. 어떤 법이든 하나만 범해도 모든 율법을 법하는 것이 되는 그 율법의 요구를 이룰 수 없습니다. 죄없이 지음 받은 온전한 사람이었던 아담도, 하와도 실패했습니다. 죄인으로 태어난 우리에게 가능성이란 1%도 없습니다. 이런 우리를 구원하기 위해 하나님의 뜻을 따라 예수 그리스도께서 율법이 요구하는 완전한 흠없는 순종을 행하셨고, 그의 육신에 우리의 죄를 지우셨고, 우리에게 내려져야 할 사망의 형벌, 하나님께 버림받음의 영벌을 받으셨습니다. 우리가 영, 곧 하나님을 좇아 행할 때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루신 율법의 요구, 곧 예수님의 의는 우리에게 전가됩니다. 따라서 영을 좇아 행할 때에만 율법의 요구를 만족시킬 수 있습니다. 율법의 요구를 만족시킨 자만이 의인이고 천국의 바로 의인의 회중(모임)입니다. 만약 우리가 영을 좇아 행하지 아니한다면 아무리 열심히 무언가를 해도 우리는 천국에 갈 수 없습니다. 우리의 의는 다 낡은 옷과 같기 때문입니다.
“율법이 육신으로 말미암아 연약하여 할 수 없는 그것을 하나님은 하시나니 곧 죄로 말미암아 자기 아들을 죄 있는 육신의 모양으로 보내어 육신에 죄를 정하사 육신을 따르지 않고 그 영을 따라 행하는 우리에게 율법의 요구가 이루어지게 하려 하심이니라”(롬8:3-4)
때문에 하나님께서 우리가 육신에 행할 때에 우리가 영을 좇아 행하도록 하십니다. 바로 우리의 육신을 죽이시기 위해 우리에게 고난을 허락하십니다. 고난을 통해 사람들은 육신적인, 세상적인 것, 나를 높이는 것, 내 눈에 보기에 좋은 데로 행하는 것, 내 감정대로 편한대로 하는 것이 그리 유익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됩니다. 육신의 고난을 통해 서서히 육신이 죽게 되고 영이 살아나게 됩니다. 그러면 이것은 우리의 죄에 따른 형벌이냐? 그렇지 않습니다. 우리의 죄, 하나님의 말씀을 어기고 하나님을 배반한 죄는 사망입니다. 죄의 삯은 사망일 뿐입니다. 우리 육신의 고난은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우리에게 사망을 내리셔도 그분의 공의에 아무 문제가 없는데, 오히려 그것이 합당한 것인데, 우리를 우리 죄의 값을 따라 형벌하지 않으시고, 단지 육신에 적은 고난을 통해 영이 살도록 하시는 것입니다. 우리의 체질을 따라, 성향을 따라, 살아온 삶의 모습을 따라 각 사람에 맞게 자비로운 손길로 우리를 다루십니다. 이는 하나님의 측량할 수 없는 은혜입니다.
“그리스도께서 이미 육체의 고난을 받으셨으니 너희도 같은 마음으로 갑옷을 삼으라 이는 육체의 고난을 받은 자는 죄를 그쳤음이니 그 후로는 다시 사람의 정욕을 따르지 않고 하나님의 뜻을 따라 육체의 남은 때를 살게 하려 함이라”(벧전 4:1-2)
말씀을 정리하겠습니다. 죄란 사탄 자체를 의미하기도 하지만, 하나님과 원수되고 타락한 우리의 육신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물론 하나님의 말씀에 반대되어 행하는 우리의 행위 자체를 말하기도 합니다. 오늘은 우리 안에 살고 있는 육신의 죄에 대해 나누었습니다. 우리가 거듭난 것은 우리의 영이기에 우리의 육신은 여전히 죄이고 하나님과 원수입니다. 우리가 육신 아래 산다면 결코 죄에서 자유할 수 없고, 하나님과 화목할 수도 없습니다. 성령의 법 아래 살 때에만 율법의 요구가 이루어지고, 은혜로 하나님과 화목하여 하나님의 뜻을 이루며 살아갈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 모든 것들을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다 이루셨습니다. 그저 이것들을 믿고 그때 그때 하나님의 감동과 육신의 소욕 사이에 하나님을 선택하는 것이 우리가 해야할 일입니다. 이것에 충실하고 이 싸움에서 이기면 하나님의 충만한 은혜가 항상 마르지 않을 것이며, 그 은혜가 나를 통해 흘러감으로 주변 사람을 가정을 교회를 심지어 나라를 살리는 하나님의 은혜의 도구가 될 것입니다. 여기 모인 우리 모두 이런 하니님의 의의 도구가 되길 간절히 소망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