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떠한 사람이 되어야 마땅하뇨 (2)

현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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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활과 재림의 소망, 그리고 죄를 돌이키는 회개와 거룩한 삶에 관해 살펴보며, 영원한 하나님 나라를 바라보며 깨어 살아가도록 권면한다.

Notes
Transcript
지난 주간에 다니엘 김 선교사님의 설교를 볼 기회가 있었습니다. ‘철인’이라는 책을 통해 많이 알려지게 된 젊은 선교사님입니다. 이분의 선교 사역은 한 지역에 머물러 하는 사역이 아닌 중국을 거점으로 하여서 서쪽으로는 이스라엘까지 동쪽으로는 미국까지 각 나라를 돌아다니며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하는 사역을 하십니다.
다니엘 김 선교사님이 설교 가운데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세계 곳곳에 다니면서 여러 교회를 방문하여 느끼는 공통적인 것은 세계 곳곳에서 동일한 메시지가 선포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다름 아닌 예수님의 재림에 대한 메시지라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예수님 오실 날이 정말 가까웠다고 말씀하시는 것을 들었습니다.
이분의 말씀을 들으면서 다시 제 마음이 주님의 재림에 대한 열망으로 뜨거워지는 것을 느꼈습니다. 맞아. 이렇게 지내면 안 돼. 더 열심을 내야 해. 하나님을 더 사랑하고, 그분을 더 알기 위해 힘쓰고, 더 거룩한 삶을 살기위해 애쓰고, 더 주님과의 교제에 깊이 들어가야 하고, 더! 더 가까이 주님께 가야해! 그것을 위해 내 삶의 모든 시간을 쏟아야 해. 이런 생각이 제 안에서 불일 듯 일어났습니다.
그렇습니다. 지금은 정말로 예수님이 오실 날이 가까웠습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예수님의 재림에 대해 고대해야 하며, 이제는 ‘일어나 너희 머리를 들라. 너희 구속이 가까웠느니라’는 주님에 말씀에 귀 기울여야 합니다. 더 이상 땅에 것에 머리를 쳐밖고 사는 삶에서 벗어나 고개를 들어 주님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재림의 날, 주의 날은 어떤 이에게는 ‘주의 크고 영화로운 날’(행2:30)이 될 것이지만, 어떤 이에게는 ‘여호와의 크고 두려운 날’(욜2:31)이 될 것입니다. 그날이 모든 이에게 기쁨과 영광스러운 날로 다가오지 않을 것입니다.
예수님의 재림의 그 날을 어떻게 영화로운 날로 맞을 수 있을까요? 이에 대해 오늘 본문 말씀을 중심으로 살펴보겠습니다.
먼저 본문의 내용을 간략하게 훑어보며 대략의 내용을 파악한 후 우리가 중심해서 살펴보아야 하는 한 부분을 좀 더 깊히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본문 1-2절 말씀을 읽어보겠습니다.
“사랑하는 자들아 내가 이제 이 둘째 편지를 너희에게 쓰노니 이 두 편지로 너희의 진실한 마음을 일깨워 생각나게 하여 곧 거룩한 선지자들이 예언한 말씀과 주 되신 구주께서 너희의 사도들로 말미암아 명하신 것을 기억하게 하려 하노라”(벧후3:1-2)
‘사랑하는 자들아!’ 베드로의 서신을 받아 보는 형제들에게 전하는 메시지 임을 알 수 있습니다. 성경의 모든 말씀은 모두 믿는 자들에게 주어지는 말씀입니다.
‘내가 이제 이 둘째 편지를 너희에게 쓰노니 이 두 편지로 너희 진실한 마음을 일깨워 생각나게 하여’
이 둘째 편지란 베드로 후서를 이야기합니다. 두 편지라는 것은 전후서를 가리킵니다. 베드로 전후서의 쓴 이유에 대해 말하고 있습니다. 성도들의 진실한 마음을 다시 깨우기 위함이랍니다. 그들이 하나님의 말씀 가운데 행하며 순종하지만, 지금 필요한 것은 다시금 깨워 일으킬 필요가 있다는 것입니다. 조심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무엇에 대해서 입니까?
‘거룩한 선지자들이 예언한 말씀과 주 되신 구주께서 너희의 사도들로 말미암마 명하신 것’입니다. 선지자들과 사도들을 통해 전해진 하나님의 말씀을 다시금 기억나게 하기 위해 베드로 전후서를 기록하였습니다.
그 말씀의 내용은 3-5절에 언급하고 있습니다. 같이 3-5절 읽어보겠습니다.
“먼저 이것을 알지니 말세에 조롱하는 자들이 와서 자기의 정욕을 따라 행하며 조롱하여 이르되 주께서 강림하신다는 약속이 어디 있느냐 조상들이 잔 후로부터 만물이 처음 창조될 때와 같이 그냥 있다 하니”(벧후 3:3-4)
말세에 조롱하는 자들, 하나님의 말씀을 조롱하는 자들이 나타날 것입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업신여기며 자기의 정욕대로 세상과 짝하며, 세상의 것을 즐기며 삽니다. 그들은 예수님의 재림의 약속에 대해 조롱할 것입니다.
이것에 대해 일깨우기 위해 베드로서신을 기록했다는 것입니다. 그들은 예수님의 재림의 약속을 조롱하며 성도들이 깨어있지 못하게 하고 세상과 짝하여 하나님의 떠나 살도록 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들이 이렇게 말합니다. 세상 모든 것이 예전과 다름이 없다. 그리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예수님이 재림하여 세상을 심판한다는 것은 거짓이다. 아주 먼 미래에나 있을 일이다. 너희와는 상관없다. 이렇게 말할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이 이것은 거짓말입니다. 5-7절을 읽겠습니다.
“이는 하늘이 옛적부터 있는 것과 땅이 물에서 나와 물로 성립된 것도 하나님의 말씀으로 된 것을 그들이 일부러 잊으려 함이로다 이로 말미암아 그 때에 세상은 물이 넘침으로 멸망하였으되 이제 하늘과 땅은 그 동일한 말씀으로 불사르기 위하여 보호하신 바 되어 경건하지 아니한 사람들의 심판과 멸망의 날까지 보존하여 두신 것이니라”(벧후 3:5-7)
하늘은 그저 있지만 땅은 물에서 나와 물로 성립 된 것을 알면서도 일부러 잊으려 한다는 것입니다.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실 때 물이 온 지구를 덮고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물을 궁창위에 물과 궁창 아래에 물로 나누셨습니다. 궁창 아래에 아직도 지구를 덮고 있는 물을 모이라 명하시고 모인 물을 바다라 칭하셨습니다. 드러난 육지를 땅이라 칭하셨습니다. 땅이 물에서 나왔다는 말입니다. 그러나 노아의 홍수 때에 하늘의 물과 땅의 물이 다시 합쳐지며 온 지구를 덮어버렸습니다. 물로 성립되어 심판하셨습니다.
이런 심판에 대해 그들이 알면서도 일부러 잊으려 한다고 합니다. 왜냐면 자신들의 정욕대로 행하고 싶은데 심판이 있다고 생각하면 자신들 마음대로 살 수 없기 때문입니다.
마치 군대에서 고참들이 후임의 개인물품을 가져가며 하는 말과 같습니다. 이건 위치이동이지 훔치는 게 아니야. 우리 소대 물건 없어지면 다른 데서 가져와. 훔치는 것 아니야. 그러나 그것이 훔치는 것이라는 것을 모두 다 압니다. 그 물건이 다른 이에게서 혹은 다른 소대에서 이동해 와서 그들이 당할 불편과 불이익을 생각한다면, 그 물건이 자신들에게 올 때 생기는 편리함과 이익을 생각한다면 그것은 당연히 훔친 것입니다.
자기들이 당해야 하는 불이익을 모면하기 위해 이유가 되지 않는 이유를 말하며 도둑질이라는 것을 일부러 잊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은 분명합니다. 노아시대에 물로써 온 지구를 심판하신 하나님은 이제도 불로써 온 지구를 심판하실 것입니다. 언제까지 하늘과 땅이 지금과 같은 모습으로 존재하는가? ‘경건치 않는 자들의 심판의 날, 멸망의 날’까지만 존재할 것입니다.
그날이 곧 예수님이 재림하시는 날이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왜 이렇게 오래도록 하나님의 심판은 미루어지는가입니다. 8-9절입니다.
“사랑하는 자들아 주께는 하루가 천 년 같고 천 년이 하루 같다는 이 한 가지를 잊지 말라 주의 약속은 어떤 이들이 더디다고 생각하는 것 같이 더딘 것이 아니라 오직 주께서는 너희를 대하여 오래 참으사 아무도 멸망하지 아니하고 다 회개하기에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벧후 3:8-9)
하나님께서 하실 심판이 없기 때문이 아니라, 하나님이 심판하실 능력이 없어서 아니라, 그 약속이 취소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잊으신 것이 아니라. 기다리시고 계십니다. 참으시고 계십니다. 한 사람이라도 회개할 사람이 남아있기에 기다리고 계십니다. 그러나 회개할 사람이 다 회개하면, 이 땅에 더 이상 회개의 가능성이 없게 되면 그때 심판하실 것입니다.
노아의 때에 그러셨습니다. 롯의 때에 그러셨습니다.
그리고 주님의 임하시는 날. 심판의 날은 우리가 상상할 수 없는 두려운 날이 될 것입니다. 10-12절입니다.
“그러나 주의 날이 도둑 같이 오리니 그 날에는 하늘이 큰 소리로 떠나가고 물질이 뜨거운 불에 풀어지고 땅과 그 중에 있는 모든 일이 드러나리로다 이 모든 것이 이렇게 풀어지리니 너희가 어떠한 사람이 되어야 마땅하냐 거룩한 행실과 경건함으로 하나님의 날이 임하기를 바라보고 간절히 사모하라 그 날에 하늘이 불에 타서 풀어지고 물질이 뜨거운 불에 녹아지려니와”(벧후 3:10-12)
주님의 재림이 도둑 같이 올 것입니다. 도둑이 집에 들어오는 것처럼 갑자기, 창졸간에 올 것입니다. 모두가 잠든 밤중에 올 것입니다. 예고없이 올 것입니다. 그 때 하늘이 큰 소리로 떠나갑니다. 물질이, 모든 형체있는 것들이 마치 물에 잉크가 풀어지듯이, 뜨거운 불에 녹아 버릴 것입니다. 땅에서 행해진 모든 일의 진위여부, 숨은 동기가 무엇인지, 선인지 악인지 모든 것이 드러나게 될 것입니다.
여러분의 모든 삶을 한 순간도 놓치지 않고 찍은 CCTV가 세상 모든 사람들 앞에 공개되어진다고 생각해 보십시오. 그리고 그 동기들, 여러분이 머리 속으로 생각했던 바, 하나님 앞에 중심으로 회개하지 않은 모든 죄악들, 모든 것이 다 드러나게 된다고 생각해 보십시오. 드러날 뿐 아니라 그에 대한 심판이 이루어집니다. 정말 두려운 날입니다.
베드로 사도는 계속해서 이렇게 말합니다. ‘이 모든 것이 이렇게 풀어지리니 너희가 어떠한 사람이 되어야 마땅하뇨’
주님의 재림의 날에 모든 것이 다 드러나 심판을 받게 될 것이다. 어떠한 사람이 되어야 마땅하뇨? 현재 어떠한 모습으로 살아야 마땅하뇨? 지금 내 모습이 어떠해야 하뇨?
여러분 지금 우리의 모습은 어떠해야 합니까?
‘거룩한 행실과 경건함으로 하나님의 날이 임하기를 바라보고 간절히 사모하라’
거룩한 행실, 세상과 구별된 행실, 자신의 욕심을 위해 정욕을 위해 일신의 안일을 위해 행복을 위해 사는 세상과 구별되는 행실을 살아라. 나 잘 살기위해 다른 사람 어찌 되든 상관없이 사는 삶이 아닌, 남의 큰 아픔은 아랑곳 하지 않지만, 내 작은 아픔에는 죽을 듯이 소리치는 모습이 아니라, 남의 손해는 나와 관계없으면 관심없지만, 나의 손해는 돈 10만원만 손해나도 벌벌 떠는 모습이 아니라, 하나님의 교회야 어찌 되는 나 좋은 것 먹고 입고 살면서 복 받았다고 자랑하는 삶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이야 땅에 떨어지든 말든 내 명예만 보존되면, 내 이름만 수치 당하지 않으면 되는 삶이 아니라. 거룩한 행실로 살으랍니다.
하나님의 마음으로 하나님의 영광을 먼저 두고, 나보다 다른 사람의 문제에 더 관심을 가지며 살으랍니다.
경건함으로. 세속에 썩은 문화와 가치에 물들지 않고, 과부와 고아를 환난 가운데 돌보는 삶을 살으랍니다(약1:27).
거룩한 행실과 경건함으로, 거룩한 행실과 경건함으로 하나님의 날이 임하기를 바라보고 간절히 사모하랍니다.
본문의 내용은 앞으로 재림이 없다고 하는 자들이 나타날 것이다. 그러나 노아의 홍수가 있었던 것 알지 않느냐? 예수님의 재림이 없는 것이 아니라 회개하기를 기다리시는 것이다. 그날에는 모든 것이 다 드러나 심판을 받을 것이다. 그러니 거룩한 행실과 경건함으로 주의 날을 바라보고 사모해라.는 말씀입니다.
여기서 우리가 좀 자세히 살펴보고자 하는 부분이 하나 있습니다. 왜 거룩한 행실과 경건함을 강조하였는가?입니다. 왜? 14절 말씀에 ‘주 앞에 점도 없고 흠도 없이 평강 가운데 나타나기를 힘쓰라’는 것인가?
그냥 그럭저럭 살아도 예수님 재림하실 때 예수 믿는 나는 들림받고 구원받는 것 아닌가? 주의 이름을 부르니 구원 아닌가?
이렇게 생각하실지 모르겠습니다.
7절 말씀을 다시 한번 읽어보겠습니다.
“이제 하늘과 땅은 그 동일한 말씀으로 불사르기 위하여 보호하신 바 되어 경건하지 아니한 사람들의 심판과 멸망의 날까지 보존하여 두신 것이니라”(벧후 3:7)
이제 하늘과 땅은 동일한 말씀으로 심판을 받을 것이라 하셨습니다. 노아시대 때에 세상을 심판하셨던 그 말씀, 그 기준으로 동일한 말씀으로 이제도 세상을 심판하실 것입니다.
노아의 홍수 때에는 어떠했습니까? 의인이요 당대에 완전한 자였던 노아와 노아를 따른 그의 가족 7명만 구원 받았습니다.
이 구약의 사건은 역사적인 사실이지만 또한 말세에 있을 하나님의 심판을 예표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도 말세의 심판에 대해 말씀하실 때 노아의 홍수와 롯의 시대의 심판에 대해 말씀하시고 계십니다.
완전한 자요 의인인 노아는 예수님을 가리킵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노아를 따라 같이 순종했고, 방주에 들어갔던 자들은 성도들을 가리킵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따라가면 구원받습니다.
롯의 때의 소돔과 고모라의 심판을 생각해 보십시오. 롯과 그 가족 모두 구원 받은 것이 아닙니다. 롯의 사위들, 롯의 아내는 구원 받지 못했습니다. 롯이 순종했던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지 않아서입니다. 그 말을 농담으로 여겼기 때문입니다.
만약 노아의 가족 중에 노아를 따르지 않는 가족이 있어 함께 방주를 만들지 않고, 마지막에도 방주를 타지 않았다면 그 사람은 구원받지 못했을 것입니다.
노아의 가족들이 노아를 따라 순종하고 방주에 들어감으로 구원받았던 것처럼 동일한 말씀으로 심판하시는 하나님 앞에 예수님을 따라야만 구원받을 수 있습니다.
예수님을 따른다는 것은 무엇입니까?
베드로후서 1:11 말씀 읽어보겠습니다.
“이같이 하면 우리 주 곧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영원한 나라에 들어감을 넉넉히 너희에게 주시리라”(벧후 1:11)
이같이 하면 예수 그리스도의 영원한 나라, 천국에 들어감을 넉넉히 우리에게 주신답니다. 이같이 한다는 것은 5-7절에 나오는 열매를 맺는 삶을 사는 것을 말합니다.
1:9절 말씀 보겠습니다.
“이런 것이 없는 자는 맹인이라 멀리 보지 못하고 그의 옛 죄가 깨끗하게 된 것을 잊었느니라”(벧후 1:9)
이런 것이 없는 자는 옛 죄의 깨끗게 하심을 잊었답니다. 구원의 은혜, 죄사함의 은혜를 놓쳤다는 것입니다.
무엇을 말합니까? 5-7절에 나오는 이런 열매는, 아니 성경에 나오는 모든 선한 열매는 예수님을 따를 때, 그분께 붙어있을 때 맺어지는 열매입니다. 열매가 없다는 것은 예수님께 붙어있지 않다는 말이며 예수님을 따르지 않는다는 말입니다.
예수님을 믿어야 구원받는 것이 아닙니까? 따라야 구원받습니까? 열매를 맺어냐 구원받습니까?
예수님을 따른다는 것은 예수님을 믿은 자의 모습이기에 예수님을 따르지 않는다면 예수님을 믿지 않는 것입니다.
여러분 구원에 대해 잘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예수님의 재림이 가까운 이 때에 무엇보다 우리의 구원에 대해 고심해야 합니다. 너무도 중요한 것이기에 많은 시간을 들여 확인해 봐야 하고 재삼 재사 점검해 보아야 합니다.
무엇이 나를 구원합니까? 무엇이 나를 천국에 들어가게 합니까? 무엇이 나를 지옥에 가지 않게 합니까?
내 믿음이 나를 구원합니까? 아닙니다. 믿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구원하십니다.
내 믿음을 보시고 그 믿음을 근거로, 예수 그리스도의 의를 내게 주시고 나를 의롭다고 하십니다. 하나님이 구원하십니다.
구원자는 하나님이십니다. 내 믿음이 나의 구원자가 아닙니다.
그런데 이 믿음이 거짓이라면 어떻하시겠습니까?
구원의 확신에 대해 많이 말합니다. 맞습니다. 구원의 확신이 중요합니다. 그러면 구원의 확신이 나의 구원을 보장합니까? 나는 구원의 확신이 있으니 당연히 천국간다고 단언할 수 있습니까?
마태복은 7장 21-22절 말씀을 보시겠습니다.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다 천국에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 그 날에 많은 사람이 나더러 이르되 주여 주여 우리가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 하며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 내며 주의 이름으로 많은 권능을 행하지 아니하였나이까 하리니(마 7:21-22)
이 말씀에 등장하는 사람들은 ‘행하지 아니하였나이까?’라고 반문합니다. 예수님께 나에게 왜 이러십니까? 나 아시잖아요? 내가 주님 일 했잖아요? 반문합니다. 자신들은 당연히 천국에 들어갈 줄 알았습니다. 다른 말로 하면 구원의 확신이 있었습니다. 구원의 확신이 있는 분 손드세요. 내 저요! 하고 제일 먼저 손들던 사람들이란 말입니다.
내가 가진 구원의 확신이 거짓이라면 어찌 하시겠습니까?
우리의 믿음이, 그리고 우리의 확신이 진짜라면 열매가 있습니다. 열매가 없을 수 없습니다. 당연히 열매가 있을 수 밖에 없습니다. 열매가 없다면 가찌니까 열매가 없는 것입니다. 미혹되었기 때문에 가짜를 진짜로 알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만약 천국이 있다는 걸 진짜 믿는다면, 천국의 그 무한하고 놀라운 영광과 영원함을 진짜 믿는다면, 천국과 비교할 때 똥보다 못한 이 땅의 부귀와 명예에 목숨 걸겠습니까?
만약 기도하면 하나님 들으신다는 걸 진짜 믿는다면 기도 안할 수가 있겠습니까? 기도하지 말라고 말려도 할 것입니다.
하나님께 예배드리면 만왕의 왕이시고 온 우주의 통치자이신 하나님께서 우리의 예배를 받으신다는 것을 믿는다면 예배를 대충 드릴 수 있겠습니까?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해서 그러면서도 송구스러워하며 죄송한 마음으로 더해 드릴 수 없음을 안타까워하며 예배를 드릴 것입니다.
만약 예수님께서 나의 죄를 위해 죽으셨다는 것을 진짜 믿는다면, 죄의 유혹에 고민하며 죄가 주는 즐거움을 즐길 수 있겠습니까? 나의 죄 때문에 하나님이 죽으셨는데, 그 죄가 주는 정욕적이고 순간적인 쾌락을 즐기며 좋아할 수 있겠습니까?
부활이 있다는 것을 진짜 믿는다면 하나님을 위해 죽는 것을 두려워하겠습니까?
우리 믿음이 진짜라면 신앙을 강요할 필요가 없겠지요. 우리 믿음이 진짜라면 하나님의 일을 억지로 한다는 것이 불가능한 일일 것입니다. 누가 핍박해도, 하지 말라고 해도, 욕해도, 조롱해도. 멈출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의 믿음의 선조들은 그들의 진짜 믿음 때문에 죽을 수 있었고, 핍박을 견디고, 죽인다고 해도 예배드리러 가고 갖은 핍박 가운데도 우상 숭배를 하지 않았습니다.
내 믿음은 진짜입니까? 상상력입니까?
나는 옛 죄의 깨끗게 하심을 잊은 자는 아닙니까? 수년 째 열매없이, 삶의 변화없이, 성품에 성령의 열매의 맺히는 모습없이 지내고 있는 것은 아닙니까?
거짓 확신도 거짓 믿음도 확신이고 믿음이기에 당사자는 알지 못합니다. 가라지와 알곡이 구분이 안되는 것처럼, 거짓 믿음과 거짓 확신도 당사자도 주위 사람들도 잘 알지 못합니다. 그러나 주의 재림의 때에는 하나님께서 알곡과 쭉정이를 갈라내시고 드러내십니다.
내 열심이 되게 하는 것은 아니지만 하나님을 간절히 찾고 그 은헤를 구하는 자에게, 은혜를 귀히 여기는 자에게 하나님은 더 부으십니다.
예수님의 재림이 가까운 이때에 우리는 우리의 믿음이 어떠한지 우리가 믿음 안에 있는가? 내가 주 안에 있는가? 자신을 시험하고 확증해야 합니다. 심판 날에 우리를 심판하실 하나님의 말씀 앞에 나를 시험하고 확증해야 합니다.
주의 재림이 가까웠다는 것을 진짜 믿음으로 바라보며 거룩한 행실과 경건함으로 그 날이 임하기를 간절히 사모하는 우리 모두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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