죄에 대하여3
현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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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views죄인을 구원하시는 복음과 하나님의 은혜, 그리고 죄를 돌이키는 회개와 거룩한 삶에 관해 살펴보며, 복음을 믿고 구원받은 성도답게 살아가도록 권면한다.
Notes
Transcript
지난 설교 요약: 죄에 대하여 1, 2
지난 두 번의 수요예배 설교를 통해 우리는 ‘죄’에 대해서 나누었습니다.
첫 번째 시간에는 ‘죄’란 우리 밖에 있는 존재로써 우리를 다스리고 지배하려는 소원을 가진 인격적인 존재임을 살펴보았습니다. ‘죄’는 치밀한 계획을 가지고 우리 안에 들어와 우리를 자신의 종으로 삼으려는 교만한 존재이며 곧 사탄임을 성경을 통해 확인했습니다.
두 번째 시간에는 ‘죄’란 우리 밖에 있는 모든 거짓의 아비인 사탄이면서, 또한 우리의 육신을 가리킨다는 것을 살펴보았습니다. 우리는 사탄의 지배아래 죄인이었으며 우리에게서 나오는 모든 것은 ‘죄’였습니다. 우리가 ‘죄’였으나 하나님의 은혜로 우리의 영이 거듭나 영은 하나님께로 나서 하나님께 속했기에 더 이상 ‘죄’가 아닌 ‘의’이지만 우리의 육신은 여전히 ‘죄’입니다.
오늘 전체 주제 요약
오늘은 죄에 대해 살펴보는 마지막 시간으로 죄와 하나님과의 관계에 대해 살펴보고자 합니다. 물론 이 세 번의 설교로 죄에 대해 다 다루었다고 할 수 없고 제가 죄에 대해 다 설명할 수 있을 만큼 많이 아는 것도 아니지만, 죄에 대한 성경적 접근에 대한 고찰은 오늘로 일단락 하고자 합니다.
1. 죄에 대한 하나님의 태도
(1) 하나님은 거룩하심: 죄를 용납할 수 없으심.
간단히 죄는 사탄이면서, 죄는 우리의 육신입니다. 우리의 육신이 하나님과 원수이기에 어쩌면 이는 같은 말이기도 합니다. 다만 우리가 자신에 대해 좀 관대히 평가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에 따로 꼭 집어 말한 것 뿐입니다.
하나님은 죄에 대해 어떤 태도를 취하실까요? 하나님은 거룩하신 분이십니다. 하나님은 성경 여러 곳에서 자신을 거룩하다고 말씀하십니다. 이 거룩함 이라는 것은 죄와 상관이 없는, 죄를 용납할 수 없는 특성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 죄와 상관이 없다는, 죄를 용납할 수 없다는 말은 우리의 개념과 상상을 초월합니다. 한마디로 완전히, 완벽히, 철저히 죄와 상관이 없으십니다. 죄를 용납하지 못하십니다.
(2) 예1: 사탄이 천사 루시퍼였을 때 그 안에 죄가 생긴 이후 바로 하늘에서 추방 되었음
그 예로 사탄은 타락 이전에 천사 루시퍼였다는 사실을 아실 것입니다. 천사 루시퍼는 이사야 14장과 에스겔 28장의 말씀을 토대로 살펴보면 하나님의 지으신 피조물 중에 으뜸이었다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런 루시퍼도 그 안에 교만이라는 죄가 생겼을 때, 그리하여 하나님을 반역하였을 때, 그 즉시 하늘에서 추방되었습니다.
(3) 예2: 독생자를 주시기 까지 사랑하시는 세상이지만, 죄된 세상은 불로 심판하심
또 다른 예로, 하나님은 세상을 사랑하십니다. 독생자를 주시기까지 세상을 사랑하십니다. 그러나 이 세상이 죄로 물들어 있기에 하나님의 때가 되면, 예수님의 재림 때에 이 세상을 불로써 심판하실 것입니다.
(4) 예3: 하나님의 아들이자 하나님 자신인 예수님 조차 죄가 지워졌을 때 하나님은 그를 버리셨음
가장 결정적인 예는 바로 십자가 사건입니다. 십자가 사건은 하나님의 무한한 사랑이 확실히 드러난 사건이기도 하지만 반대로 하나님의 무한한 공의가 확실히 드러난 사건입니다.
예수님, 곧 하나님의 아들, 하나님 자신인 그분조차도 세상의 죄가 그에게 지워지니 하나님은 예수님을 버리셨습니다. 물론 세상의 죄를 예수님께 지우신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세상을 너무나 사랑하시기에 세상을 심판하실 수 없으신 그분이, 또한 죄를 눈감고 넘어가시기엔 너무 공의로우시기에 세상의 죄를 예수님께 지우고 예수님을 심판하신 것입니다.
이는 하나님께선 하나님의 아들이라도 죄가 있다면 반드시 심판하시는 공의로우신 하나님이라는 사실을 우리에게 확실히 보여줍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십자가를 볼 때에 하나님의 사랑에 감격하는 한편, 죄에 대한 하나님의 마음으로 죄를 미워하고 두려워할 수 있어야 합니다.
(5) 하나님은 죄를 반드시 형벌하심
하나님은 죄를 받드시 형벌하십니다. 그분은 무한히 사랑이시지만, 그분이 무한히 사랑이신만큼, 그분은 무한히 공의이십니다.
2. 믿는 자들이 죄에 대해 가지고 있는 잘못된 생각
(1) 죄에 대한 형벌에 두려움
그리고 믿는 자들은 이런 하나님에 대해 잘 압니다. 물론 말로 조리있게 설명할 수 없을지는 몰라도 그들의 영에는 하나님에 대한 이런 지식을 가지고 있습니다.
따라서 죄라고 정해진 행동을 하게 되면 죄에 대한 하나님의 공의의 성품을 아는 그들은 죄에 따르는 형벌에 대해 두려워하게 됩니다. 간혹 자신의 삶에 있는 어려움, 고난, 경제적 빈곤, 사고 등이 자신의 죄의 결과는 아닐까 두려워하기도 합니다. 자신의 죄로 인해 하나님이 자신을 형벌하신다고 생각하기도 합니다.
예수님이 이미 형벌을 받으심.
하지만 죄에 대한 형벌은 이미 예수님이 받으셨습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리실 그 당시의 하나님의 백성 뿐 아니라 우리를 포함하는 그 후에 있을 모든 하나님의 백성 또한 이전에 있던 모든 하나님의 백성의 죄까지도 그 모든 형벌을 예수님은 몸소 담당하셨습니다. 우리가 받을 형벌은 더 이상 없습니다. 만약 작은 죄에 대한 형벌이라도 우리에게 지워진다면 우리는 감당할 수 없고 온전히 거룩하신 하나님의 눈 앞에 설 수 없을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형벌하지 않으시고 징계하심
우리의 삶에 이루어지는 고통은 그분의 형벌이 아닙니다. 그분의 징계이십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그분의 길로 인도하시기 위한 책망이며 교훈이며, 인도하심입니다.
아이들이 뜨거운 냄비에 손이 닿게 되면 저절로 손을 움츠리고 피하는 것처럼, 그 후엔 연기가 나는 냄비에는 손도 대지 않게 되는 것처럼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시는 교훈이며 훈계이며 징계입니다.
단지 우리의 유익을 위해 우리에게 주시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죄로 인한 형벌을 두려워할 필요가 없습니다.
다시 말합니다. 더 이상 우리는 형벌과 상관없습니다. 예수님이 다 감당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럼 징계에 대해서는 어떻습니까? 징계, 책망 역시 쉽지는 않습니다. 고통입니다. 그러나 이는 우리를 죽이기 위함이 아닌 우리를 살리기 위함이고 우리의 유익을 위함임을 알기에 두렵지 않은 것입니다.
강도가 들고 있는 칼은 두렵고 무섭고 피해야 하지만, 의사가 들고 있는 칼은 아프더라도 기꺼이 받아들입니다.
(2) 죄와 나의 관계
①죄로 정해진 행동을 하였기에 죄인이 된 것인가? 죄인이기에 죄로 정해진 행동을 한 것인가?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시는 고통, 책망, 삶의 여러 문제가 우리의 유익을 위한 의사의 매스와 같은 것이라는 것을 알기 위해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이 좀 더 있습니다.
믿는 이가 죄로 정해진 행동을 하였다면 그 죄로 정해진 행동을 하였기에 그가 죄인이 된 것입니까? 죄인이기에 죄로 정해진 행동을 한 것입니까?
요일3:12에 “가인 같이 하지 말라 그는 악한 자에게 속하여 그 아우를 죽였으니...”라고 증언하고 있습니다. 가인이 아벨을 죽여 악한 자가 된 것이 아니라 악한 자에게 속하여 아우를 죽였다고 말씀합니다.
②내가 죄인이기에 죄를 지은 것
내가 죄를 지어 죄인이 된 것이 아니라, 죄인이기에 죄를 지은 것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이 이를 아실까요? 모르실까요? 물론 아십니다. 전지 전능하신 하나님은 내가 죄를 짓기 이전에도 내가 그 죄를 지을 죄인임을 아십니다. 그렇기에 내가 그 죄를 짓게 되는 것입니다.
③어떤 사람이 죄를 지을까? 모든 사람은 죄인.
예) 나의 경우
여기서 한 가지 의문이 듭니다. 그러면 모두가 죄인인데 어떤 사람은 어떤 죄를 짓고 어떤 사람은 어떤 죄를 짓지 않을까요? 그의 성향이랄까 환경, 배경 등 여러 요인을 말할 수 있겠지만, 궁극적으로 하나님이 죄로부터 보호하시면 죄를 이길 수 있게 되고 죄를 허락하시면 죄를 짓게 되기 때문입니다.
저의 경우 기도와 말씀 가운데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있었고, 특별히 죄 가운데 있지 않았던 때에 내 바닥을 볼 정도로 화를 낸 적이 있었습니다. 반대로 많이 기도하지 못하고 말씀 가운데 있지 못하던 때에, TV와 같은 오락을 좀 더 즐길 때에 생각지도 않은 타인의 공격을 받고 화내지도 않고, 죄된 마음을 품지도 않은 적도 있습니다.
나의 의로움으로 인해, 나의 경건으로 인해 죄를 짓지 않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보호하심으로 인해 죄를 이길 수 있었다는 것을 부인할 수 없었습니다.
④하나님이 죄로부터 보호하시면 죄를 이김. 죄를 허락하시면 죄를 지음.
결국 하나님이 죄로부터 보호하시면 죄를 이길 수 있게 되고 죄를 허락하시면 죄를 짓게 됩니다. 각각의 다양한 변수가 있을 수 있지만 결국 이유는 모든 것을 주관하시는 하나님께 있습니다.
⑤왜? 죄를 심히 죄되게 하기 위해
그러면 하나님은 우리를 죄로부터 보호하시기만 하면 되지 왜 죄를 허락 하시는가 입니다. 왜 죄를 짓지 않고 하나님의 뜻대로 살려는 우리에게 죄를 허락하셔서 낙심케 하시고, 좌절케 하시느냐입니다.
그 이유는 죄를 심히 죄 되게 하시기 위해서입니다. 우리가 짐승과 다름이 없음을 알게 하시기 위해서입니다. 죄인임을 알게 하시기 위해서입니다. 결국 하나님만 붙들게 하시기 위해서입니다. 자신을 의지하지 않게 하시기 위해서입니다.
3. 나를 죄로부터 구원할 이는 하나님 뿐
간혹 믿는 이들 가운데 자신이 죄를 이길 수 있는 것처럼 행동하는 이들이 있습니다. 자신이 죄와 싸우려고 합니다. 열심히 있는 이들 가운데 이런 이들이 더욱 많습니다. 저도 그런 사람 중 하나였습니다. 죄를 짓지 않으려고 결단하고, 노력하고, 애쓰고, 참고, 누르고, 견디고, 나름대로 무지하게 싸웁니다.
죄를 간신히 잘 이겨내면 그것으로 인해 우쭐해 합니다. 자부심을 가집니다. 그런 죄를 짓는 다른 이들을 보며 조소하고 경멸합니다. 왜 저리 의지가 약할까라며 정죄합니다. 가르치려고 합니다.
그러나 결국 죄를 짓고 맙니다. 그리고 그전보다 더 크게 죄를 짓게 됩니다. 그것이 분노이든, 음란물 시청이든, 쇼핑이든, 도박이든, 술이든 무엇이든 간에 죄가 폭발과 같이 그를 휘몰아치고 지나간 후에 그는 더 큰 자괴감에 빠집니다. 자신을 정죄합니다. 죄를 이기지 못한 것에 대해 애통합니다. 죄를 지은 자신 때문에 애통합니다.
다시 결단합니다. 이제 더 자신을 압박하고 쪼으면서 다시 그런 죄를 짓지 않으리라 다짐합니다. 다시 우쭐합니다. 다시 죄를 짓습니다. 다시 정죄감에 괴로워합니다.
이는 결코 하나님 앞에 의로운 것이 아닙니다. 영적 결벽증과 같은 것입니다. 이것은 오히려 하나님 앞에 가증한 것입니다. 왜냐면 그 시작은 자신으로부터 시작했고, 자신의 의를 세우기 위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나로부터 시작된 모든 것, 곧 육신은 죄임을 이전 시간에 살펴 보았습니다.
죄인인 나는 나를 결코 구원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만이 나를 구원하실 수 있습니다. 계속된 좌절 가운데 결국 깨닫게 되는 것은 나는 죄를 이길 수 없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이것을 깨닫기 원하셔서 우리에게 죄를 허락하십니다. 하나님만이 나를 구원하실 수 있다는 그 사실 말입니다.
만약 내가 나를 죄로부터 구원할 수 있다면 자기 백성을 저희 죄에서 구원할 자이신 예수님은 오실 필요가 없으셨습니다.
1) 이를 아는 것이 죄로부터의 자유의 시작
이것을 아는 것이 죄로부터의 자유의 시작입니다.
2) 죄를 지어도 정죄함이 없음. 단지 하나님의 은혜와 십자가를 헛되게 한 것에 대한 애통함이 있을 뿐.
죄를 지어도 더 이상 정죄함이 없습니다. 자신에 대해 정죄하지 않습니다. 내가 죄인이기에 죄를 지은 것 뿐입니다.
단지 죄에 유혹에 넘어가 하나님 아닌 죄를 선택함으로 하나님의 은혜를, 그분의 십자가를 헛되이 한 것에 대해 애통해 하는 것입니다.
나의 더러움 때문에, 내가 깨끗하지 못해서 애통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를 헛되이 한 것에 대해 마음 아파하며 애통해 하는 것입니다.
3) 죄와 내 힘(육신에 속한 것)으로 싸우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이 주신 믿음으로 싸움. 육신은 죄이기에 육신으로는 죄와 싸워 이길 수 없음.
죄와 내 힘으로 싸우지 않고 하나님의 주신 믿음으로 싸우게 됩니다. 믿음으로 죄를 거부하고, 믿음으로 죄를 밟습니다. 믿음은 하나님께로부터 온 것이기에 생명이고, 죄는 사탄으로부터 온 것이기에 사망입니다. 믿음으로 싸우는 그는 죄를 이기게 됩니다. 생명이 사망을 이깁니다.
육신은 죄이기에 육신으로는 결코 죄와 싸워 이길 수 없습니다. 내 힘, 내 결단, 내 의지로는 결코 죄를 이길 수 없습니다.
물론 죄와 싸우되 피 흘리기까지 싸워야 합니다. 우리의 선한 일을 향한 결단이 불필요하다고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내 힘으로 내 의를 위해 하는 것을 제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힘으로 하나님을 위해 해야 합니다. 죄와 싸우는 것조차도 말입니다.
정리
오늘 말씀을 정리하겠습니다. 하나님은 죄와 상관없으시고 죄를 결코 용납하시지 못하는 거룩하신 분이십니다. 그렇다고 하여 우리가 그분 앞에 정죄감으로 두려워할 필요는 없습니다. 우리의 모든 형벌을 예수님께서 담당하셨기 때문입니다. 단지 그분의 전지하심 앞에 정직하고, 전능하심 앞에 경외함으로 엎드려야 합니다. 그런 두려움만이 우리에게 필요합니다.
우리가 죄를 지을 때 그분이 우리를 징계하시지만 이는 우리의 유익을 위해, 우리를 살리기 위한 그분의 손길이기에 두렵지 않습니다.
그분은 우리를 죄로부터 지키시지만, 우리가 죄인임을, 하나님이 없이는 결코 살 수 없는 존재임을 알게 하시기 위해 죄를 허락하십니다. 그때 우리가 취해야 할 행동은 내가 죄인임을 고백하고 회개하며 다시 그분의 은혜 가운데 거하기를 힘쓰는 것입니다. 우리의 애씀은 그분과 연결되기 위한 애씀 그것으로 족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또한 죄와 싸워야 합니다. 내 육신적인 결단이나 의지가 아닌 하나님이 주신 믿음으로 싸워야 합니다.
하나님께 나의 죄인 됨을 깊히 깨닫게 해달라고 기도하십시오. 나의 죄가 아닌 하나님의 은혜를 헛되게 한 것에 대해 애통해 하십시오. 그분이 주신 믿음으로 싸우는 법과, 믿음으로 사는 것에 대해 밝히 알게 해달라고 기도하십시오.
이런 삶이 그리스도인의 삶이기 때문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