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는 자들과 함께 울라
현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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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views죄를 돌이키는 회개와 거룩한 삶, 그리고 교회 공동체의 본질과 성도의 책임에 관해 살펴보며, 죄를 버리고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삶을 살도록 권면한다.
Notes
Transcript
로마서 12장- 성도들의 삶에서의 구체적인 생활 지침이 나오는 장.
1-2절: 하나님께 대한 지침
3-13절: 교회에서 성도에게 대한 지침
14-21절: 믿지 않는 자에 대한 지침
1-2절에 하나님께는 우리는 영적 예배에 드려야 한다.
그것은 우리의 몸을 구별해 드리는 것이며, 영적 예배는 이 세대를 따르지 않고,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뜻대로 몸을 사용하는 것이다.
3-13절: 성도에게는 하나님께서 주신 은혜대로, 받은 직분대로 충성하여 섬기는 것이다. 충성과 섬김의 기준은 서로 몸의 지체가 되어 자신의 몸을 아끼듯이 성도를 아끼고 섬기는 것이다. 자기에게 주신 은혜대로, 부르심대로 직분대로 섬기는 것.
그 기본 태도는 악이 없이 사랑과 우애와 존경이다.
영적인 것 뿐 아니라 물질적인 필요까지도 포함한다.
14절부터 본문은 믿지 않는 자 특히 핍박하는 자들에 대한 태도를 말합니다.
15-16절이 대표적인 태도, 즐거워하는 자들과 함께 즐거워하고, 우는 자들과 함께 우는 것.
이것이 믿는 자들에 대해 취해야 할 태도라고 생각했음. 그렇지 않은가?
그러나 이것은 믿지 않는 자, 특히 핍박자를 향한 태도임.
어떻게?
14절- 핍박하는 자에 대해 나온다.
17절- 악하게 대하는 자들에 대한 말씀이 나온다.
14, 15-16절, 17절이 단순한 몇가지 명령의 나열이 아니다. 처음엔 그런 줄 알았다.
그러나 성도에 대한 태도에 대한 말씀은 이미 나왔다.
그리고 14절 핍박자에 대한 말씀, 17절 우리에게 악을 행하는 자들에 대한 말씀, 19-20절 원수에 대한 말씀이 나오는 가운데 15-16절이 들어있다.
14-21절의 본문의 단락은 핍박자, 우리에게 악을 행하는 자, 원수들에게 대한 태도에 대한 지침의 말씀이다.
그런 자들과 함께 즐거워하고, 함께 울라고 한다.
우리는 성도들과도 함께 즐거워하고 함께 울지 못한다.
성도에 대해서는 이런 태도는 말하지 않아도 된다. 왜? 한 몸이기에, 한 지체가 영광을 얻으면 같이 영광을 얻는 것이고, 한 지체가 고통을 당하면 같이 아픈 것이다.
그것은 명령할 문제가 아닌 것이다.
고전 12:26 만일 한 지체가 고통을 받으면 모든 지체가 함께 고통을 받고 한 지체가 영광을 얻으면 모든 지체가 함께 즐거워하느니라
이 말씀이 너무도 어렵다. 불가능해 보인다.
오히려 세상의 사람들과 같은 가치관과 소원함으로 같은 것을 즐거워하고, 같은 종류의 것을 얻지 못해 울 수는 있을 것이다.
어쩌는 우리는 성도들과 함께 마음을 나누는 것보다 그것이 더 쉬워보인다.
그러나 나를 핍박하고, 나에게 악을 행하고, 나의 원수가 즐거워할 때 마음을 같이 하여 즐거워하고, 그들이 아파할 때 마음을 같이하여 운다는 것은. 불가능해 보인다.
16절에 반대로 행하게 된다. 우리의 대적이 즐거운 일이 있거나, 우는 일이 있을 때, 마음을 높이고, 그들을 비난 하거나, 잘 됐다고 쾌재를 부르게 된다. 지혜있는 체 하면서, 하나님께 벌을 받은 것이라고 한다거나, 얼마안가 망할 거라고 할 것이다.
왜 하나님의 말씀의 지침이 우리에게 이리도 힘들까?
3-13절의 성도에 대한 말씀도 마찬가지로 너무 힘들다.
나의 대적자에 대한 태도로 주신 말씀을 성도에게 적용하기도 힘드니 성도에 대해 주신 말씀은 다른 별의 얘기처럼 들린다.
왜인가? 무엇이 잘못되었는가?
우리의 모든 것의 시작은 하나님이다. 우리가 하나님의 백성으로 부름받은 것도 하나님이 부르셨고, 하나님의 백성으로 살 수 있도록 매일 일용할 양식인, 만나, 생명의 떡, 영생하도록 있는 양식, 참된 음료는 하나님이 주신다.
그러기에 모든 문제의 시작은 하나님과의 관계로부터 시작된다.
1-2절이 우리 삶에 이루어지지 않기 때문에 그 나머지 모든 것이 우리에게 불가능해진 것이다.
우리 몸을 살펴보자, 하나님이 기뻐하실 거룩한 재물인가?
흠도 점도 없는가? 우리 몸으로 행하는 것들이 하나님이 기뻐하실 만한 것들인가? 우리 입으로 하는 말이, 우리 머리로 하는 생각이, 우리가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우리 영에 집어 넣는 것들이 우리를 정결하게 할 만한 것들인가?
우리가 부정해졌다면 얼른 씻어 정결하게 하는가?
이 세대, 악한 세대를 본받지 않기 위해 싸우는가? 이 세대에 뒤처지지 않기 위해 부단히 노력하는가? 무엇인가? 마음을 새롭게 하기 위해 애쓰는가? 내가 어떻게 보일지 외모에만 관심이 있고 하나님이 보시는 마음에 대해서는 전혀 관심도 없는가?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기 위해 애쓰는가?
그저 다른 이들 하듯이, 내가 보기 좋은 대로, 내가 원하는 대로, 다른 사람이 인정하는 뜻대로 행하는가?
우리는 진정으로 하나님께 영적 예배를 드리는 삶을 사는가?
하나님은 우리와 제사로 언약하셨다고 하셨다.
시50:5 이르시되 나의 성도를 내 앞에 모으라 곧 제사로 나와 언약한 자니라 하시도다
이 제사는 곧 영적예배, 의로운 삶이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명령하신 삶에 대한 명확한 기준을 가지자.
지금은 그것을 순종하는 것이 불가능해 보여도, 그렇다고 그 말씀 자체를 바꾸지 말자.
어떻게 그렇게 사느냐? 불가능하다. 그런 뜻이 아닌 건 아니냐? 그건 비유적으로 말씀한 것은 아니냐. 그때는 그랬지만, 지금은 시대가 바뀌었으니 적용도 바뀌는 것 아니냐.
이런 저런 말로, 순종못하는 자신을 합리화하며 말씀을 바꾸지 말자. 하나님이 아니라고 한 것을 그렇다고 바꾸려고 하지 말자.
말씀에 나와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받아들이자.
오히려 그렇게 살지 못하는 모습을 회개하자. 긍휼을 구하자.
하나님의 기준을 말씀을 바꾸지 말고, 회개하자. 내가 성도 앞에서, 나를 핍박하는 자에게 어떻게 행해야하는지에 대한 하나님의 기준을 확실히 알자. 받아들이자.
그리고 먼저 하나님 앞에 바로 행하는데 초첨을 맞추자. 다른 이들에게 말씀대로 행하지 못할 때마다 회개하자. 하나님에 온전히 행하고자 애쓰자. 그러는 가운데 하나님께서 은혜로 우리를 바꿔가시고 하나님 말씀에 순종할 수 있도록 하실 것이다.
다만 하나님의 말씀을 바꾸지 말자.
그것은 진정 교만한 모습이다. 오히려 겸손하고 겸허히 하나님 말씀 앞에 회개하자. 긍휼을 입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