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 사랑
현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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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views하나님의 사랑과 성경적인 관계,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과 진리가 삶을 이끄는 방식에 관해 살펴보며, 용서와 섬김으로 이웃을 사랑하도록 권면한다.
Notes
Transcript
서론
우리 모두 권위자가 있음.
부모님,선생님,목사님, 상사
권위자->기쁘게 하기 원함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기 원함
하나님을 사랑하기 원함
but 하나님 사랑의 진정한 모습 모름
우리는 여러 관계 가운데서 삽니다. 특히 우리 모두에게는 권위자가 있습니다. 부모님이 계시고, 선생님이 계시고, 목사님이 계시고, 직장에선 상사가 있습니다. 자녀들은 부모님에게 인정을 받고 싶어합니다. 부모님을 기쁘게 해드리고 싶어합니다. 학생은 선생님의 칭찬을 원하기에 선생님의 말을 잘 듣기 원합니다. 물론 크면서 삐뚤어지는 경우도 있지만 기본적으로는 그렇습니다. 성도는 목사님의 칭찬을 듣고 싶어하고, 그래서 목사님의 말을 따르고 싶어하는 기본적인 마음이 있습니다. 직장에서 상사에게 인정받고 싶은 것은 당연합니다. 그래서 상사가 시키는 일에 대해 열심히 해내려합니다. 좋은 결과가 나오면 기뻐하고, 열심히 했음에도 인정받지 못하면 낙심하기도 합니다.
이렇게 우리는 권위자를 기쁘게 하고 싶은 마음이 있습니다. 모든 권위의 가장 근원 되시는 하나님께 당연히 우리는 인정받고 싶어합니다. 그분을 기쁘시게 해드리고 싶어합니다. 그분의 사랑을 받기 원합니다. 그리고 그분의 뜻대로 살고 싶고, 그분을 사랑합니다.
하나님의 백성이면서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는 사람은 없습니다. 있다면 그는 하나님의 백성이 아닐 것입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하나님을 사랑하기 위해 여러 모습과 모양으로 애씁니다.
그러나 많은 성도님들이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하고 사랑하기 원하면서도 하나님 사랑의 진정한 모습을 몰라 마음과는 다르게,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드리지 못하는 모습을 보곤 합니다.
본문의 말씀을 통해 하나님을 사랑한다는 것이 무엇인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살펴보겠습니다.
말씀 안에서 하나님의 뜻을 밝히 깨닫고, 순종하는 힘을 얻기를 원합니다. 마음만 하나님을 사랑하고 싶은 것이 아니라 진실로 하나님을 사랑하여 하나님의 기쁨이 되는 성도님들 되기를 간절히 소원합니다.
본문해석1
예수님을 시험하는 율법사
<34-35절 말씀 합독>
예수님은 대적자들과 논쟁 중이십니다. 예수님의 대적자인 바리새인과 사두개인들이 예수님을 말로 올무에 걸리게 하고자 논쟁합니다. 번번이 예수님의 말에 말문이 막힌 그들 앞에 이제 한 율법사가 나섭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정통하다고 자부하는 율법사가 예수님을 율법으로 시험합니다. 이 율법사는 율법 전체를 깊이까지 통달한 사람입니다. 다른 서기관이나 바리새인들처럼 한 구절의 자구에 얽매이는 것이 아니라 구약 전체의 맥락 안에서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아는 자입니다. 율법을 연구하는 가운데 하나님의 마음에 대해 근접해 있는 자입니다. 그래서 자신이 깨달은 것을 예수님이 아실까? 그도 나처럼 율법에 대해 통달할까?라는 생각으로 시험해 본 것입니다. 자신이 답도 모르는 문제를 내는 사람은 없겠지요. 적어도 율법사는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알고 있었습니다.
본문해석2
첫째:하나님사랑(마음,목숨, 뜻)
둘째:이웃사람(내몸같이)
두 계명은 하나
두 계명이 하나인 증거①
두 계명이 하나인 증거②
이해가 아닌 영혼으로 깨달아야 함
<36-40절 말씀 합독>
율법사는 율법 중에 가장 큰 계명이 무엇인지 물었습니다. 예수님은 이에 대해 두 가지로 말씀하셨습니다. 첫째는 마음과 목숨과 뜻을 다해 하나님을 사랑하라. 둘째는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고 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구약의 두 구절을 인용하신 것입니다. 첫째 계명은 신명기 6:5의 “너는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라”는 말씀을 인용하셨습니다. 둘째 계명은 레위기 19:18의 “원수를 갚지 말며 동포를 원망하지 말며 네 이웃 사랑하기를 네 자신과 같이 사랑하라 나는 여호와이니라”는 말씀을 인용하셨습니다.
그리고 이 두 계명이 온 율법과 선지자의 강령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NIV 성경에서는 온 율법과 선지자, 곧 구약 전체가 이 두 계명에 달려 있다고 하셨습니다.(All the Law and the Prophets hang on these two commandments.)
다른 많은 계명이 있더라도 이 두 계명에 다 속한다고 주님이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나 사실 이 두 계명은 두 계명이 아닌 한 계명입니다.
<39절 말씀 합독>
둘째는 그와 같으니. 이웃을 사랑하라는 이 두 번째 계명이 첫째 계명과 같다고 하십니다. 본문의 핵심이 여기에 있습니다. 하나님 사랑과 이웃사랑이 하나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두 계명을 다르게 생각했습니다. 나는 하나님은 사랑 하는데 이웃을 사랑하는 건 좀 어려워 그런 말은 있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두 계명이 하나라는 증거를 더 보여드리겠습니다.
<야고보서 2:8 말씀 합독>
이 말씀에서 하나님 사랑에 대한 말씀은 없습니다. 단지 이웃 사랑이 최고의 법이다라고 하십니다. 그러면 하나님 사랑의 계명은 어디 갔습니까? 이웃 사랑과 하나님 사랑이 두 계명이 아닌 한 계명이기에 이웃 사랑 그 하나로 최고의 법인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다면,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으로 하나님께 인정받고 그분을 기쁘시게 해드리기를 원한다면 이 말씀을 깊히 깨달아야 합니다.
단지 머리로 ‘아~ 맞아. 두 계명이 아니라 하나이지, 예수님이 하나라고 하셨으니까, 성경에 이렇게 말씀하셨는지 몰랐네. 이런 말씀이 있었네.’ 이정도의 이해라면 그것은 우리를 진정한 하나님 사랑으로 이끌어 갈 수 없습니다. 이 말씀의 진정한 뜻을 깊히 깨닫고 이 말씀이 우리의 심령에 깊히 스며들어야 합니다. 우리의 온 영과 혼으로 말씀을 깨달아 이것이 참된 진리로 믿어지는 역사가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 당장 순종하지 못해도, 이것이 진리니까 언제든 진리로 가야할 것을 알고, 애쓰고 힘쓸 것이기 때문입니다. 단지 이해한다면, 그 이해한 기억은 금새 희미해질 것입니다. 이해한 기억은 우리를 순종으로 이끌어 갈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이 시간 우리의 영과 혼에 깊히 스며드는 역사가 있기를 원합니다. 잘 박힌 못과 같이 박히길 축원합니다.
본문해석3
25-28절요약
믿음은 행함으로 증명된다
본문의 말씀을 좀 더 자세히 알기 위해 병행구절을 찾아 보겠습니다.
<눅 10:25-37 말씀 교독>
읽은 본문에는 예수님과 율법사의 대화가 좀 더 구체적으로 기록되어 있는 것이 보입니다. 여기에 율법사도 동일하게 예수님을 시험하기 위해 질문합니다. 예수님대신 율법사가 가장 큰 계명에 대해 대답함으로 이 율법사가 구약의 율법에 대해 지식적 앎을 넘어서 깊이 깨닫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예수님이 영생 얻는 법에 대해 묻는 율법사에게 되묻습니다. 영생에 대해 기록된 율법에 무엇이라 기록되어 있는지에 대해서 말입니다. 율법사는 정확히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이 곧 영생에 이르는 길임을 대답합니다.
<28절 말씀 합독>
예수님은 율법사의 대답이 정답임을 확인하며 이를 행하라고 하십니다. 행하면 살리라, 곧 영생을 얻으리라 하십니다. 이상하지요, 믿으면 살리라가 아니라 행하면 살리라 하십니다. 행할 때에 그에게 있는 믿음이 참된 것임이 증명됩니다.
‘이를 행하라’는 예수님의 명령에 대해 깊히 생각하기를 원합니다. 행함으로 우리는 우리의 믿음이 참된 믿음임을 증명하는 것입니다. 물론 하나님은 우리 안에 믿음이 있는 것을 아십니다. 그리고 그 믿음을 보십니다. 그런데 다른 사람은 어떨까요? 우리 안에 믿음이 있는 것을 어떻게 압니까? 하나님 앞에 참소하는 마귀는 또 어떨까요? 우리 안에 있는 믿음에 대해 순순히 인정해 줄까요? 우리 안에 있는 믿음에 대해 행하지도 않는 우리를 인정해 줄까요?
그러면 공의로운 재판장 되신 하나님이 ‘내가 아니까 되었다’고 재판해주실까요? 모든 족속이 하나님 앞에 서는 그날, 하나님의 공의가 드러나는 그 때, 하나님이 근거도 없이 우리의 믿음을 인정해 주시고, 그 믿음으로 우리를 의롭다고 하실까요? 완전히 공의로운 재판장이신 그분은 그렇게 하실 수 없습니다. 우리가 이 땅에서 믿음에 따라 행한 것을 근거로 우리의 믿음을 만민 앞에서 인정해 주실 것입니다.
우리의 믿음의 선조들도 다 그랬습니다. 자신의 믿음이 참임을 증명하기 위해 핍박도 당하고, 수치를 받으면서도 축복하고, 죽음 앞에서 목숨이 아니라 믿음의 길을 선택한 것입니다.
여러분 생각해 보십시오. 과연 믿음에 걸맞는 행동이, 삶이 없이 어떻게 여러분이 믿음이 진짜라고 증명할 수 있습니까? 하나님은 또 어떻게 증명해 주실 수 있습니까? 성경에는 분명 가짜 믿음도 있다고 증거하고 있는데 말입니다. 행함이 없다면 아무리 내가 믿음이 있다고 주장해도 그것은 가짜입니다. 행해야 합니다. 그 행함은 종교적 몇가지 행위가 아니라 하나님 사랑, 이웃사랑입니다.
본문해석4
사마리안 사람 이야기 요약
예수님의 이웃은 누구인가
계속해서 이 율법사는 자신을 옳게 보이고자 예수님께 누가 자신의 이웃인지 물어봅니다. 그때 우리가 잘 아는 어떤 사마리아 사람에 대해 이야기 해주십니다.
내용은 잘 아시듯이, 어떤 사람이 예루살렘에서 여리고로 내려가다가 강도를 만났습니다. 강도들에게 옷도 빼앗기고, 많이 맞았습니다. 아무것도 없고 죽어가고 있었습니다. 그때 한 제사장이 지나가다가 그 강도 만난 자를 보았으나 그냥 지나갔습니다. 자신도 같은 곤경에 처할까봐 그랬겠지요. 귀찮아서 일 수도 있구요. 다음에 레위인이 지나갔습니다. 그 사람도 역시 그냥 지나갔습니다. 그때 어떤 사마리아 사람이 그 사람을 보고 불쌍히 여기고 도움을 베풉니다. 자신의 기름과 포도주를 사용하고 자신의 돈을 들이고, 그를 돌보아 주고 마음을 씁니다. 그의 고통을 마치 자신의 고통인 것 같이 여기며 최선을 다해 그를 돕습니다.
이야기의 마지막에 예수님이 묻습니다. ‘이 세 사람 중에 누가 강도 만난 자의 이웃이 되겠느냐’ 율법사는 정확하게 ‘자비를 베푼 자입니다.’라고 대답합니다.
율법사는 ‘누가 내 이웃입니까?’ 라고 물었으나 예수님은 ‘누가 강도 만난 자의 이웃이냐?’ 라고 물으셨습니다.
율법사가 ‘내가 무엇을 하여야 영생을 얻으리이까’라고 물었기 때문입니다.
영생을 주시는 분은 예수님이십니다. 누가 내 이웃인가 보다 내가 예수님의 이웃되어야 영생을 얻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말씀인 즉, 여기 강도 만난 자가 곧 예수님이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를 돕는 자라야 그의 이웃입니다.
마25:35-36에서 의인들을 향하여 ‘내가 주릴 때에 너희가 먹을 것을 주었고 목마를 때에 마시게 하였고 나그네 되었을 때에 영접하였고 헐벗었을 때에 옷을 입혔고 병들었을 때에 돌보았고 옥에 갇혔을 때에 와서 보았느니라’ 라고 말씀하시면서, 주린 자, 목마른 자, 나그네 된 자, 헐벗은 자, 병든 자, 옥에 갇힌 자들이 예수님 자신이라고 하셨습니다. 이런 이들에게 사마리아 사람처럼 하는 자, 자비를 베푼 자가 예수님의 이웃입니다.
본문해석5
누가복음의 결론
<27절 말씀 합독>
누가복음의 말씀에서 율법사는 ‘네 마음을 다하며 목숨을 다하며 힘을 다하며 뜻을 다하여 주 너희 하나님을 사랑하고’ 또한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 라고 말함으로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을 별개로 생각하고 있었지만, 예수님은 그 두 계명은 둘이 아니라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곤경에 빠진 이웃에게 자비를 베푸는 것이 곧 예수님, 하나님에게 하는 것이고, 이를 행하는 자라야 영생을 얻을 수 있다고 말씀하십니다.
어려우십니까? 이웃에게 자비를 베풀지 않으면 천국에 못간다는 말이 안 믿어지십니까? 마25장에 양염소 비유가 그것을 말씀해 주고 있지 않습니까?
요한1서가 그것을 말해 주고 있지 않습니까? 성경의 많은 곳에서 이에 대해 증거하고 있습니다.
본문해석6
하나님사랑:보이지 않는 것으로
이웃사랑:
몸으로
둘이 아니라 하나의 계명
<마태복음 22:37-29절 말씀 합독>
하나님 사랑에 대해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해서 사랑하라 하셨습니다. 영어로는 마음을 다하고, 혼을 다하고, 생각을 다해서(with all your heart and with all your soul and with all your mind)라고 번역되어 있습니다. 보이지 않는 하나님에 대해서 보이지 않는 것으로 섬깁니다. 우리의 중심을 다해 하나님을 섬기고 사랑해야 합니다.
하나님을 섬기고 사랑하실 때, 중심으로부터 섬기십시오. 기쁨으로 감사함으로 선한 뜻으로, 선한 생각을 품고, 그분을 섬기십시오. 하나님 앞에 서는 중심에 항상 조심하며, 회개하는 마음으로 겸손한 마음으로 그분 앞에 서십시오. 그러나 그것이 다가 아닙니다.
이웃을 사랑하는 것은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 하셨습니다. 보이는 이웃에게는 보이는 행동으로 사랑을 나타냅니다. 몸으로 그를 위해 기도하고, 몸으로 그를 돌보고, 그의 마음을 돌보고, 그의 몸을 돌보고, 시간 들여, 마음 들여, 물질 들여, 수고하여 사랑하는 것입니다. 아직도 두 가지 계명 같습니까? 그러나 한 계명입니다.
적용
이웃에게 행하는 것이 하나님께 하는 것
하나님께 긍휼을 구합시다
이웃을 사랑하는 것은 겉으로 드러납니다. 그래서 내가 이웃 사랑을 얼마나 실천하는지 가늠하기가 어렵지 않습니다. 누가 어려움을 겪을 때 외면하고 있다면 나는 이웃을 사랑하지 않는 것이겠지요. 누구를 미워하고 있다면 더더군다나 아니겠지요. 누구를 시기하고 험담하고 있다면 이웃 사랑의 계명을 대적하고 있는 것이겠지요.
그러나 하나님 사랑은 잘 드러나지 않습니다. 그래서 나는 그럭저럭 하나님을 사랑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예수님은 두 계명이 하나라고 분명히 말씀하셨습니다.
좀 더 분명히 말하자면,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이웃에게 행하는 것이 곧 하나님께 행하는 것입니다. 이웃 사랑은 차치 하고라도 우리에게 주신 이에게 행하는 그것이 하나님에게 행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 사랑에 대해 보이지 않아 정확히 모를 뿐, 우리가 이웃에게 행하는 그 모습이 곧 하나님께 행하는 그 모습입니다.
여러분이 남편에게, 아내에게 하는 모습이 하나님께 하는 모습입니다. 자녀에게 행하는 모습이 하나님께 하는 모습입니다. 상사를 욕한다면, 옆집에 이웃을 욕한다면, 남편을 무시한다면, 아내를 무시한다면, 자녀에게 무례히 행한다면 그것이 곧 하나님을 대하는 나의 실제의 모습입니다. 성도에게 행하는 것이 바로 하나님 그분께 행하는 것입니다. 특히 힘없는 자에게 곤경에 처한 자에게 행하는 것이, 곤경에 처한 자를 도와주지 않고 오히려 비난하며, 더 짓밟으려 한다면 그것은 우리가 하나님을 비난하고 짓밟는 것입니다. 아무리 하나님을 섬길 때 마음을 조심한다고 해도, 이웃을 대하는 나의 태도가 하나님을 대하는 태도입니다. 단지 하나님 앞에 서는 내 모습을 내가 볼 수 없기 때문에 모를 뿐입니다. 아니라고 하고 싶지만 그것이 우리의 실체입니다.
하나님 앞에 나는 하나님을 잘 섬기고 있어요. 하나님을 사랑해요가 아니라 내가 이웃에게 하는 그 모습이 내가 하나님을 대하는 모습이라고 자백하고 인정하며 회개하기 원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사랑할 수 있도록, 이웃을 사랑할 수 있도록, 곤경에 처한 자를 도울 수 있도록 우리에게 은혜를 달라고 기도합시다. 우리의 이웃이 하나님으로 보이게 해달라고 기도합시다. 그리고 하나님 말씀에 깊이 뿌리 내리며 하나님 말씀대로 행합시다. 이웃을 볼 때 하나님으로 대하며, 그들을 섬깁시다. 어려운 이웃을 볼 때 절대로 그냥 넘기지 맙시다. 어떤 사마리아 사람처럼 내가 가진 것으로 어떻게든 도웁시다. 하나님을 돕는 것임을 알고 외면하지 말고 성심을 다합시다. 내 몸 아끼듯이 사랑합시다. 예수님이 내 앞에 오셨다는 생각으로 아낍시다. 실제로 그는 예수님이십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