죄사함을 받으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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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는 가르치실 때에 갈릴리의 각 마을과 유대와 예루살렘에서 온 바리새인과 율법교사들이 앉았는데 병을 고치는 주의 능력이 예수와 함께 하더라
한 중풍병자를 사람들이 침상에 메고 와서 예수 앞에 들여놓고자 하였으나
무리 때문에 메고 들어갈 길을 얻지 못한지라 지붕에 올라가 기와를 벗기고 병자를 침상째 무리 가운데로 예수 앞에 달아 내리니
예수께서 그들의 믿음을 보시고 이르시되 이 사람아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하시니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이 생각하여 이르되 이 신성모독 하는 자가 누구냐 오직 하나님 외에 누가 능히 죄를 사하겠느냐
예수께서 그 생각을 아시고 대답하여 이르시되 너희 마음에 무슨 생각을 하느냐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하는 말과 일어나 걸어가라 하는 말이 어느 것이 쉽겠느냐
그러나 인자가 땅에서 죄를 사하는 권세가 있는 줄을 너희로 알게 하리라 하시고 중풍병자에게 말씀하시되 내가 네게 이르노니 일어나 네 침상을 가지고 집으로 가라 하시매
그 사람이 그들 앞에서 곧 일어나 그 누웠던 것을 가지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자기 집으로 돌아가니
모든 사람이 놀라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심히 두려워하여 이르되 오늘 우리가 놀라운 일을 보았다 하니라
오늘은 여러분에게 동화 이야기 하나를 들려 드리려고 합니다.
이 동화는 “마음을 열어 주는 101가지 이야기”라는 책에 나오는 동홥니다.
하나님을 만나고 싶어 한 어린 소년이 있었습니다.
소년은 하나님이 살고 있는 곳까지 가려면 먼 여행이 되리라는 걸 알았습니다.
그래서 소년은 초콜릿과 음료수 여섯 병을 배낭에 챙겨 들고 여행길에 나섰습니다.
사거리를 세 개쯤 지났을 때 소년은 길에서 한 늙은 할머니를 만났습니다.
그 할머니는 우두커니 비둘기를 바라보며 공원 벤치에 앉아 있었습니다.
소년은 그 할머니 옆에 앉아서 가방을 열었습니다.
음료수를 꺼내 마시려다 말고 소년은 할머니가 배고파 보인다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초콜릿을 꺼내 그 할머니에게 주었습니다.
할머니는 고맙게 그것을 받아들고 소년에게 미소를 지어 보였습니다.
할머니의 미소가 너무도 아름다웠기 때문에 소년은 그 미소를 다시 한 번 보고 싶어서 이번에는 할머니에게 음료수를 건네주었습니다.
할머니는 또다시 소년에게 미소를 지어 보였습니다.
소년은 매우 기뻤습니다.
그들은 그날 오후를 그렇게 먹고 마시고 미소 지으면서 공원의 벤치에 앉아 있었습니다.
그들은 그것밖에는, 다른 말은 한마디도 하지 않았습니다.
날이 어두워지자 소년은 피곤함을 느꼈습니다. 그래서 집에 돌아가려고 배낭을 챙겨 들고 자리에서 일어났습니다.
하지만 몇 걸음 걸어가다 말고 소년은 뒤돌아서서 그 할머니에게로 달려와 그녀를 꼭 껴안아 주었습니다.
할머니는 소년에게 가장 행복한 미소를 지어 보였습니다.
잠시 후 소년이 집안에 들어갔을 때 소년의 어머니가 소년의 얼굴에 나타난 행복한 표정을 보고 놀랐습니다.
어머니가 소년에게 물었습니다. "오늘 무엇을 했기에 넌 이렇게 행복해 보이니?"
소년이 대답했습니다. "오늘 하나님과 함께 점심을 같이 먹었어요."
엄마가 뭐라고 반응을 보이기 전에 소년이 덧붙였습니다. "엄마도 아세요? 하나님은 내가 여태껏 본 것 중에서 가장 아름다운 미소를 가졌다고요."
그러는 동안 그 할머니 역시 기쁨으로 빛나는 얼굴을 하고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할머니의 아들이 그녀의 얼굴에 나타난 평화로운 표정을 보고 놀라서 물었습니다.
"어머니, 오늘 무슨 일이 있었기에 그렇게 행복한 표정이세요?"
그녀가 대답했습니다. "난 오늘 공원에서 하나님과 함께 초콜릿을 먹었단다."
아들이 뭐라고 반응을 보이기 전에 그녀는 덧붙였습니다. "너도 아니? 그분은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젊더구나."
여러분, 어떠신가요?
이 이야기를 들으면서 무슨 생각이 드십니까?
저는 이 이야기가 우리가 놓치기 쉬운….일상의 작은 진리를 깨닫게 해주는 이야기라고 생각합니다.
어떤 진리일까요?
우리가 일상에서….누군가에게 베푸는 배려나 희생이 하나님을 경험하는 통로가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 동화에 나오는 소년은
우리가 보기에는 지극히 작은 것이지만…,
자신의 초콜릿과 음료를…공원에서 만난…..이름 모를…할머니에게 나눠주면서…
그가 만나고자 했던 하나님을 만납니다.
할머니의 모습 속에서….자신에게 미소를 짓는 하나님을 만난 것이죠.
그리고 이 이야기가 참 재미있게도요..
할머니 역시, 그 소년의 모습에서 하나님을 만납니다.
자기에게 관심을 가져주고, 자기의 것을 나누어주고, 또 자신을 따듯하게 안아주는…
하나님을 만난 것이죠.
지어낸 이야기지만,
저는 이런 이 이야기가 결코 동화로만 끝나는 이야기가 아닌 줄 믿습니다.
우리의 실제 삶에서도 충분히 경험할 수 있는 이야기라고 믿습니다.
우리의 작은 배려 하나로, 희생 하나로….
우리는 하나님을 경험할 수 있고, 또…누군가에게 하나님을 경험하게 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 이 배려와 희생을....다른 말로….
우리는 사랑이라고 부릅니다.
소년이 할머니에게 보여준 행동…..그것은 다름아닌 사랑입니다.
여러분,
오늘, 본문의 누가복음 말씀이 바로 그런 이야깁니다.
스스로는 몸을 가눌 수 없는 중풍병자를 위해…
그를 침상에 눕혀… 그 침상을 들고 예수님을 찾아간 사람들…
그 사람들의 배려와 희생이 그들 모두에게 하나님을 경험하게 하는... 통로가 되었습니다.
물론, 오늘 말씀 속에 나오는 이 사람들의 배려와 희생은 결코 작지 않습니다.
소년이 할머니에게 초콜릿과 음료를 나눠 준 것보다는 훨씬 큰 것입니다.
그들은 중풍병자를 위해서
무거운 침상째로 예수님께 데려가는 그들의 시간과 수고를 아끼지 않았습니다.
여러분, 조금만 생각해봐도요… 이것은 결코 쉬운 배려와 희생은 아이었습니다.
오늘, 누가복음에는 잘 나오지 않지만…
마가복음에 나오는 이야기를 보면요…
예수님이 모인 이 집에 정말 수많은 사람들이 모였습니다.
아마도, 예수님의 소문을 듣고 모여든 사람들이겠죠.
여러분,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의 소문을 듣고 달려 갔을 것입니다.
어떻게든…다른 사람보다 먼저, 예수님을 만나기 위해,
다른 사람보다 더 가까이서 예수님을 보기 위해...
그들은 자신의 병과 문제를 해결 받기 위해서라도..
다른 사람보다 먼저…더 가까이 예수님을 만나려고 했을 겁니다.
그렇게…많은 사람들이 앞 다투어 예수님께 몰려들 때…
이 사람들은 예수님께 바로 가지 않았습니다.
이들은 중풍병자에게로 갔습니다.
자기보다… 예수님이 더 필요한 중풍병자를 챙기러 간 것입니다.
그런데…중풍병자를 힘들게 데려갔지만, 상황이 만만하지 않습니다.
많은 사람들로 인해….들어 갈 수 없는 상황입니다.
그럼에도….그들은 그 상황에도 낙심하지 않았습니다.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급기야….지붕을 뚫는 수고마저 아끼지 않았습니다.
여러분…이 사람들이 지붕을 뚫었다는데…
그 지붕이 자기 집 지붕 입니까?
아닙니다.
남의 집 지붕입니다. 남의 집 지붕을 허락도 없이 뚫었습니다.
말하자면….그들은 집 주인에게 혼날 각오를 하고서,
또 수리비를 물어낼 각오까지 하면서… 이 일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여기서, 잠시…이 당시 이스라엘 집의 지붕에 대한 이야기를 좀 하고 넘어가겟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이 이야기를 들을 때요,
여기서….지붕을 뚫었다는 말을 너무 쉽고 단순하게 생각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지붕을 뚫었데니까….아….지붕을 뚫었나보다….
대충 …이스라엘 집 지붕은 지푸라기로 되어 있어서 금방 뚫었나보다…이렇게 생각합니다.
혹시, 여러분도 그렇게 생각하십니까?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여기서 지붕을 뚫는 다는 것은….절대로 간단하고 쉬운 작업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전문가들이 말하기를요…….그당시…유대인의 집 지붕을….. 누군가 혼자서 뚫는다면 한 시간 까지도 걸릴 수 있다고 말합니다.
여기서는 장정 네 명이 같이 뚫었으니까요…
혼자 뚫는 것보다는 훨씬 빨랐겠죠.
그래도….시간이 적어도 15분 이상은 걸렸을 거라고…학자들은 말합니다.
지붕을 뚫는 게 쉬운 일이 아니라는 것을 좀더 자세히 설명을 드리겠습니다.
이 당시, 이스라엘 서민들의 집의 지붕은….
보통 4단계 작업으로 만들어진 지붕이었습니다.
1단계: 들보(보들) 얹기: 돌로 세운 벽 위에 일정한 간격으로 굵은 나무 들보를 가로질러 뼈대를 만듭니다.
2단계: 잔가지와 갈대 엮기: 들보 위에 직각 방향으로 갈대, 대나무, 나뭇가지, 혹은 종려나무 잎사귀를 촘촘하게 엮어서 덮습니다. 틈새를 메우는 역할을 합니다.
3단계: 흙과 진흙 바르기: 그 위에 진흙과 석회와 짚을 섞어서 반죽을 만들어 덮습니다.
4단계: 다지기 (방수 처리): 마지막으로 돌로 만든 무거운 롤러(지붕 다지는 돌)를 굴려 흙을 단단하게 다집니다. 비가 올 때 물이 새지 않도록 단단한 평지를 만드는 과정입니다.
그러니까…맨 위의 지붕은….진흙과 석회, 짚을 섞어 롤러로 단단하게 다져놓은 ‘말라붙은 찰흙’ 같은 상태였습니다.
여러분…..한번 생각해 보십시오…
여러분 집의 지붕이…누구나 와서 쉽게 뚫을 수 있다면…. 그런 집에서 살고 싶으시겟습니까?
최소한 집의 지붕이라면….비가 새지 않아야 되고…웬만한 바람에도 해볕에도 견녀내도록 단단하게 만들어야 합니다.
자…그렇다면…이번에는 실제 상황을 한 번 상상해 보도록 하겟습니다.
네 사람의 장정이 침상을 메고 지붕으로 올라갑니다.
그들은 예수님이 계신 위치를 가늠한 뒤, 먼저...단단하게 굳은 맨 위의 짚과 진흙 층을 도구를 사용해서 파내기 시작합니다.
짚과 진흙이 단단해서 손으로 파기는 쉽지 않고요…
짚과 진흙 층을 어느 정도 파고나면….그 다음에는 그 밑에 촘촘히 엮어놓은 갈대와 나뭇가지가 드러낼 겁니다.
여러분, 이들이 뚫는 구멍이 작은 구멍이 아닙니다.
침상이 통과할 만큼 뚫어야 겠죠.
💡 누가복음의 '기와(Tiles)' 표현의 비밀앞서 언급했듯 본래 이스라엘 집은 흙지붕이었지만, 이방인 독자들을 위해 글을 쓴 누가는 그들이 이해하기 쉽도록 헬라-로마 세계에서 흔히 쓰이던 '기와(Tiles)'를 벗겼다고 의역해 표현했습니다. 문화적 배경에 맞춘 친절한 설명이었던 셈입니다.
여러분…이렇게 지붕을 뚫을 때…집 안에 있는 사람들은 어떻겠습니까?
여러분…이렇게 지붕을 뚫는 것은 결코 조용한 작업이 아닙니다.
집 안에서는 꽤 시끄러운 소리가 났을 겁니다.
또…여러분…지붕을 뚫는 데…
집안에 먼지 하나 안 떨어지고 뚫는 게 가능했을까요?
생각보다 많은 먼지, 지푸라기들이 집안에 떨어졌을 겁니다.
여러분…지금, 집 안에는 사람들이 가득하잖아요…
그 말은 집 안에 있는 예수님과 사람들에게 먼지가 떨어졌을 거라는 말입니다.
여러분…이 사람들은 이런 걸 모르고, 지붕을 뚫었을까요?
물론 알았을 겁니다.
사람들에게 피해를 주면서까지..그들은 이 작업을 했습니다.
말하자면…그들은 남들에게 피해 보상을 해줄 각오까지 하고서…이 일을 감당한 것입니다.
이 믿음은 예수님께 나아가는 믿음입니다.
어떻게든 예수님께만 나가면, 이 병자의 문제가 해결될 것이라는 믿음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이 병자의 병이라는 문제도 해결해 주시지만,
더 중요한 것을 해결해 주십니다.
죄의 문제를 해결해 주십니다.
이 병자는 이 친구들은 죄의 문제를 해결해 달라고 하지 않았습니다.
그 문제 때문에 예수님을 찾아간 것이 아닙니다.
그러나, 주님은 그 문제를 해결하십니다.
이것이 주님의 마음입니다.
1.우리는 인생의 문제를 주님께 가지고 나가는 믿음이 필요합니다.
-이 믿음은 어떠한 문제라도 주님께 가지고 가면 해결 받는다는 믿음입니다.
2.더 나아가, 이 믿음은(중풍병자를 데리고 온 자들의 믿음은)….고난을 각오한 믿음(용기있는 믿음), 남을 위해 헌신하는 믿음(사랑과 소망이 함께 작동하는 믿음)
3.어떻게 성전에 가서 제사 드림으로….받는 죄사함이….그리고, 그 당시 대제사장이 일년에 한번 지성소에 들어가는 대속죄일에만 죄가 사해지는데….
설교 제목: 우리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죄사함의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다
설교 제목: 우리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죄사함의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다
본문 말씀: 누가복음 5장 20~26절
[서론] 인생의 본질적인 문제를 꿰뚫어 보시는 주님
[서론] 인생의 본질적인 문제를 꿰뚫어 보시는 주님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우리는 친구들의 도움으로 침상째 무리 가운데를 뚫고 예수님 앞에 달아 내려진 한 중풍 병자의 이야기를 마주합니다. 이들의 필사적인 행동 속에는 말로 다 할 수 없는 간절한 요청이 담겨 있었고, 주님은 그들의 존재 근원에 있는 믿음을 보셨습니다.
그런데 그 치열한 호소를 들으신 주님의 입술에서 나온 첫 선언은 우리의 예상과 사뭇 달랐습니다.
“이 사람아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눅 5:20)
사람들은 늘 눈에 보이는 육신의 질병과 겉으로 나타난 문제만을 해결해 달라고 소리치지만, 인간을 지으신 주님은 병의 근원인 ‘죄의 문제’를 먼저 다루고 싶어 하십니다. 주님은 우리가 단순히 구하는 신체적인 고침을 넘어, 영혼의 해방과 하나님과의 관계 회복이라는 가장 본질적인 선언을 하신 것입니다. 우리 인생에서 가장 시급하고 중요한 것은 바로 이 '죄사함의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주님이 우리의 병을 치유하시는 궁극적인 목적을 오늘 이야기에서 발견할 수 있습니다.
그것은…. 우리 인생의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해 주시기 위함입니다.
그 문제가 무엇입니까?
죄의 문젭니다.
주님은 죄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수단으로 인생의 병의 문제를 고쳐 주십니다.
예수님은 인생의 가장 깊은 곳에 있는 본질적인 암 덩어리(죄의 문제)를 먼저 도려내길 원하셨던 것입니다. 뿌리가 썩었는데 잎사귀만 푸르게 고쳐놓는 것은 의미가 없기 때문입니다. 주님은 우리 삶의 환경적인 문제 이전에, 하나님과의 관계라는 본질을 먼저 고치시는 분입니다.
[본론 1] 병 고침보다 죄사함이 우선인 이유
[본론 1] 병 고침보다 죄사함이 우선인 이유
우리는 흔히 주님을 삶의 불편한 질병이나 고통, 장애만을 제거해 주시는 분으로 제한할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이 이야기의 진짜 핵심은 육신의 ‘병 고침’이 아니라 영혼의 ‘죄 사함’에 있습니다.
왜 죄사함의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병 고침보다 더 우선적이고 중요합니까? 육신의 질병과 고통은 결코 내세까지 따라가지 않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죄로 말미암은 고통은 이 세상에서 우리를 불행하게 만들 뿐만 아니라, 장차 내세에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 설 때도 우리를 무섭게 괴롭힐 것입니다.
육신의 병은 고침을 받아도 시간이 흐르면 다시 늙고 병들지만, 죄로 인한 영적인 고통은 우리를 저주 가운데 던져 영원한 파멸에 이르게 합니다. 그렇기에 주님은 무엇보다 먼저 육신의 질병을 치유해 주시기 전에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하고 선포하신 것입니다.
신체적인 치유와 건강은 우리 마음속에 일시적인 만족을 줄지 몰라도 영원한 기쁨의 샘을 터뜨리지는 못합니다. 오직 죄 사함만이 우리 마음을 꽃이 피는 동산으로 바꿀 수 있습니다.
[본론 2] 땅에서 죄 사함을 받아야 하는 엄중함
[본론 2] 땅에서 죄 사함을 받아야 하는 엄중함
이 영광스러운 사죄의 선언 앞에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은 “오직 하나님 외에 누가 능히 죄를 사하겠느냐”라며 마음속으로 불만을 품고 주님을 거역했습니다. 그들의 말 자체는 옳았지만, 죄를 사하시는 예수님이 바로 사람의 모습을 입고 이 땅에 오신 하나님이심을 깨닫지 못했던 것입니다.
예수님은 그들의 악한 생각을 읽으시고, 당신에게 땅에서 죄를 사하는 권세가 있음을 친히 입증하고자 하셨습니다.
“내가 네게 이르노니 일어나 네 침상을 가지고 집으로 가라” (눅 5:24)
이 명령에 중풍 병자가 곧바로 일어나 누웠던 침상을 들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걸어갔습니다. 유대인들의 시각에서 질병이 죄의 결과였음을 감안할 때, 그의 육신이 치유된 사건은 곧 그의 영혼이 죄 사함을 받았다는 확실한 증표였습니다.
여기서 우리가 결코 놓치지 말아야 할 엄중한 사실이 있습니다. 주님은 분명히 “인자가 ‘땅에서’ 죄를 사하는 권세가 있는 줄을 너희로 알게 하리라”고 하셨습니다.
죄를 용서받는 기회는 ‘하늘’이 아니라 오직 우리가 살아 숨 쉬는 ‘이 땅’에서만 주어집니다. 이 땅에서 용서받지 못한 죄는 결코 하늘에서도 용서받을 수 없습니다. 땅에서 풀면 하늘에서도 풀릴 것이요, 땅에서 매이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입니다. 하나님의 아들이 친히 사람이 되어 낮고 낮은 이 땅에 오신 목적은, 바로 이 땅에서 고통당하는 인생들의 죄를 용서해 주시기 위함입니다.
[결론] 지금 여기, 사죄의 감격을 누리는 삶
[결론] 지금 여기, 사죄의 감격을 누리는 삶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여러분의 관심은 어디에 머물고 있습니까? 언젠가는 세상과 함께 끝나 버릴 육신의 고통을 면하고, 세상의 불편함을 해소하는 것이 전부입니까? 주님은 자신의 목숨을 걸고 바리새인들의 증오를 무릅쓰면서까지 우리에게 죄 사함의 은혜를 주고자 하셨습니다. 이 죄 사함의 권세를 알리기 위해 주님은 궁극적으로 십자가의 길을 걸어가셨습니다.
하늘나라는 죄가 없는 사람이 가는 곳이 아니라, 이 땅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죄 사함을 받은 사람’이 들어가는 곳입니다.
오늘 이 시간, 우리 마음속에 육신의 문제보다 죄 사함의 은혜가 가장 소중하다는 영적 고백이 회복되기를 원합니다.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하시는 주님의 음성을 듣고, 해묵은 죄의 침상을 들고 일어나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던 중풍 병자처럼, 우리도 사죄의 기쁨을 마음껏 찬양하며 걸어가는 복된 성도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성도님들의 기도제목을 보았더니, 가족 구원을 위한 기도 제목들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여러분, 구원의 문제는 결국…죄사함의 문제입니다.
여러분의 가족이 구원 받기 위해서는 그들의 죄의 문제가 해결되어야 합니다.
여러분….
죄의 문제는 오직 예수님만 해결해 주실 수 있습니다.
오늘, 본문에서 보여주신 것처럼…
예수님에게는 죄를 사하는 권세가 있으십니다.
이 세상에서 죄를 사하는 권세는 오직…예수님께만 있습니다.
그런데..여러분….이 죄의 문제는 반드시 이 땅에서 해결해야 합니다.
죽고 나서는 해결 할 수가 없습니다.
하늘 나라는 죄가 없는 사람이 가는 곳이 아니라, 이 땅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죄 사함을 받은 사람”이 가는 곳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