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브라함의 두드림

성령강림(2026)  •  Sermon  •  Submitted   •  Presen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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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고 알려하노라(20-21)

오늘 본문말씀은 하나님께서 소돔과 고모라를 벌하신다고 아브라함에게 말씀해주시고, 또 아브라함은 소돔과 고모라를 위해서 하나님께 기도하는 장면입니다. 먼저 본문말씀 20절 말씀을 보시면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말씀하십니다. “소돔과 고모라에 대한 부르짖는 소리가 크고 또한 그들의 죄악이 심히 무거우니 내가 이제 소돔과 고모라에 내려가서, 그들이 행한 일들이 정말로 내게 부르짖는 소리와 같은지 아닌지 보고 알려고 하노라” 라고 말씀하십니다.
저희가 보통 소돔과 고모라 라고 하면 어떤 이미지를 가지고 있습니까? 아주 악한 도시여서 하나님께서 그들을 벌하셨다, 롯과 가족이 도망치다가 롯의 아내가 뒤를 돌아봐서 소금 기둥이 되었다 정도의 이미지만 가지고 있는데요. 오늘 본문말씀 20-21절에서는 사실 저희가 놓치고 있는 몇 가지 중요한 부분들이 있습니다.
먼저는 하나님께서 소돔과 고모라를 벌하시기로 하신 이유입니다. 가장 먼저 하나님께서는 소돔과 고모라에 대해서 하나님을 향한 “부르짖음이 크다”라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께서 그냥 맘에 안드신다고 소돔과 고모라를 벌하신 것이 아닙니다. 소돔과 고모라에서 죄악이 만연하다면, 반드시 그 죄 때문에 피해를 입고 고통받는 사람들이 있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 죄악 때문에 고통받는 사람들의 목소리를 가장 먼저 들으셨고, 그 목소리 때문에 소돔과 고모라를 벌하시기로 작정하신 것입니다.
둘째는 하나님께서는 아직 소돔과 고모라를 벌하시기로 완전히 확정하신게 아니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21절에 뭐라고 말씀하십니까? 하나님께서 직접 내려가셔서 과연 그 부르짖는 소리, 하나님을 향해서 호소하는 목소리처럼 정말로 소돔과 고모라의 죄악이 큰지 “직접 보러” 가시겠다고 아브라함에게 말씀하시고 계십니다. 정말로 소돔과 고모라가 죄악이 큰 도시인지 하나님께서 직접 보시지 않고서는 알 수 없으니, 하나님께서 직접 보신 이후에 멸망시킬지 아닐지를 판단하신다는 말씀입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을 향해 부르짖는 소리를 반드시 들으십니다. 다윗도 사울 왕으로부터 도망치다가 끝내 하나님께서 건져주신 날에 이렇게 찬양을 했습니다.
Psalm 18:6 NKRV
내가 환난 중에서 여호와께 아뢰며 나의 하나님께 부르짖었더니 그가 그의 성전에서 내 소리를 들으심이여 그의 앞에서 나의 부르짖음이 그의 귀에 들렸도다
이처럼 하나님께서는 환난 중에 부르짖는 이들의 목소리를 들으시고, 문을 두드리는 자들에게 문을 열어주신다는 것을 성경의 아주 많은 사례에서도 살펴볼 수가 있습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말이죠. 하나님께서는 저희가 요구하는 것을 다 들어주시는 분이 아니시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소돔과 고모라에 대해서도 부르짖음을 들으셨다고 바로 그들을 멸망시키신다거나 하시는 것이 아니라 직접 보고 들으신 것을 통해서 판단하신다고 하십니다. 물론 이후에 이어지는 창세기 19장 말씀을 통해서 저희는 그 결과를 익히 잘 알 고 있습니다. 소돔과 고모라가 악을 행하는 곳이었고 하나님께서 롯과 그의 가족들만을 구하시지 그 도시에는 멸망을 내리실 정도로 큰 죄악이 만연해있음을 저희는 짐작해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달리 말하면, 만약에 아브라함이 나중에 하나님께 간청한 것처럼 의인이 10명이라도 있었다면, 하나님께서는 그 뜻을 돌이키실 수도 있었다는 것이죠.
저희가 살면서 많은 일들에 대해서 하나님께 부르짖고 또 문을 두드릴 때가 많이 있습니다. 경제적인 부분을 하나님께서 지켜주시기를 기도할 때도 있고, 때로는 건강을 허락해달라고 기도할 때도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렇게 문을 두드리는 자에게는 언제든지 문을 열어주시고 또한 저희의 기도를 귀담아들어주십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그 기도를 들으시고 이루시는 방향은 저희의 생각과 다를 수도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공평하신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때로는 저희의 생각과 다른 일이 일어났을 때에 하나님을 향해서 불평이 생길 수도 있습니다. 에스겔 말씀에서도 이것에 대해 다룬 부분이 있습니다.
Ezekiel 18:29–30 NKRV
그런데 이스라엘 족속은 이르기를 주의 길이 공평하지 아니하다 하는도다 이스라엘 족속아 나의 길이 어찌 공평하지 아니하냐 너희 길이 공평하지 아니한 것 아니냐 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이스라엘 족속아 내가 너희 각 사람이 행한 대로 심판할지라 너희는 돌이켜 회개하고 모든 죄에서 떠날지어다 그리한즉 그것이 너희에게 죄악의 걸림돌이 되지 아니하리라
하나님더러 공평하지 않으시다 라고 외치는 사람들을 향해서 에스겔 선지자는 말합니다. 하나님께서는 공평하신데 그 공평이라고 하는 것은 반드시 악인을 심판하시고 의인을 보전하신다는 것입니다. 어느 한 쪽에 치우치지 않으시고 하나님께서 직접 보고 들으신 것을 통해 공정하게 심판하신다고 말씀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저희는 하나님 앞에서 저희 스스로의 길이 치우친 것은 아닌지 저희 스스로를 점검할 필요가 있습니다. 에스겔 선지자는 “왜 저사람이 심판받지 않는거에요? 왜 제가 부르짖는 소리를 듣지 않으시는 거에요?”라고 이야기하지 말고, 스스로가 하나님 앞에 심판받을 악인인지, 아니면 악에서 떠나 하나님의 뜻을 따르고자 하는 의인으로서 살아가는지가 중요하다는 말씀을 전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공평하심을 믿고, 그리고 그 공평하심을 믿는다면 죄에서 떠나 의인으로서 살아가려고 애쓰는 것이 더욱 중요하다 라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저희가 하나님 앞에 부르짖고 또한 문을 두드려야 할 것은 하나님께서 공평하심을 믿고, 또한 그 공평하신대로 저희 각 사람을 살펴보심을 믿으며, 저희 스스로가 의인으로서 살아가는 것입니다. 본문말씀 21절 말씀을 함께 읽겠습니다.
Genesis 18:21 NKRV
내가 이제 내려가서 그 모든 행한 것이 과연 내게 들린 부르짖음과 같은지 그렇지 않은지 내가 보고 알려 하노라
할렐루야! 하나님께서 어느 누구보다도 공평하신 하나님이심을 믿으며, 또한 그 공평하심으로 각 사람의 중심을 살펴보심을 믿고, 죄에서 떠나 하나님 앞에 부끄럽지 않은 의인으로서 살기로 다짐하며 나아가는, 여러분과 제가 될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부당하니이다(22-26)

이어지는 22절말씀을 보시면요, 하나님의 사자들이 실제로 소돔이 어떠한지 알아보기 위해서 떠나고 아브라함은 하나님 앞에 그대로 서 있었다고 이야기합니다. 23절을 보면 하나님께 무엇인가 하나 따지려고 했던 것 같아요. 그 내용을 보니 소돔과 고모라라고 하는 도시 전체를 멸망시키는 것은 부당하다는 겁니다. 왜 부당한가하면 아무리 도시가 악하다고 해도 거기에 의인이 있지 않겠냐는 거예요. 특히 24절 말씀을 보시면 “하나님! 거기에 의인 50명이 있다고 해도 그 도시를 전부 멸하시고 의인을 위해서 용서하지 않으십니까? 이렇게 의인을 악인과 함께 죽이심은 부당합니다! 세상을 심판하시는 공평하신 하나님이신데, 정의를 행하셔야지 의인과 악인을 똑같이 여기시면 안됩니다!”
사실 한국어 성경에서는 부당하다! 라고 하는 굉장히 강렬한 언어로 표현이 되긴 했는데요, 좀더 원문에 가까운 번역을 하자면 “하나님께서 하실 일이 아닐 줄 압니다”라고 하는 좀더 예의를 차려서 하는 문장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결정에 반대되는 이야기를 하고 있다는 것 만큼은 확실합니다. “하나님은 그런 분이 아니시잖아요!”라고 하면서 소돔과 고모라를 의인과 함께 멸망시키지 말아달라고 하는 간청을 하고 있습니다.
거기에 하나님께서 어떻게 말씀하시죠? 26절에 보시면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의 간청대로 소돔에서 의인 오십명을 찾으면 그들을 위해서 온 지역을 용서하시겠다고 말씀하십니다. 어떻게 보면 아브라함의 간청은 하나님의 원래 계획, 소돔과 고모라를 멸망시키시지만 일단 정말로 그러한지 하나님께서 확인하러 가시는 것, 그리고 사람들의 부르짖음대로 소돔과 고모라가 악한 도시가 아니라면 멸망시키지 않는 것에 포함된다고 보일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사실 아브라함의 간청은요 아예 하나님의 계획에 근본부터 바꿔달라고 간청하는 것입니다. 소돔과 고모라를 멸망시키냐 아니냐의 문제보다는 소돔과 고모라를 하나님께서 멸망시키시는 이유부터가 바뀌는 겁니다. 하나님께서는 다수의 악인으로 말미암아서 소돔과 고모라를 멸망시키려고 하시는 것인데, 아브라함이 하나님께 간청한 내용은요 소수의 의인으로 말미암아서 도시 전체를 구원해주실 수 없냐는 것입니다. 다시 말씀드리면 다수의 악인과 소수의 의인이 있는데, 하나님의 계획은 다수 때문에 멸망시키시는 것이라면 아브라함의 간청은 소수로 인해서 구원해주시기를 바란다는 것입니다.
그럼 누가 옳은 것일까요? 하나님께서 옳은 것일까요? 아브라함이 옳은 것일까요? 정말 놀랍게도 성경 말씀은 하나님의 원래 계획과, 아브라함의 간청이 모두 하나님 앞에서 옳은 것임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먼저 하나님의 계획은요 악인들을 멸하시겠다고 의인까지 멸하시는 것이 아니었어요. 실제로 19장 말씀에 보시면 하나님의 사자를 극진히 대접하고 환대했던 롯과 그의 가족들, 즉 하나님이 보시기에 의로운 사람들은 하나님께서 따로 멸망으로부터 구원해주셨음을 볼 수가 있습니다. 또한 아브라함의 경우에도 소수의 의인으로 말미암아서 다수의 악인들도 구원해주시는 내용에 대해서는 저희가 이미 모세의 찾음에 대해서 알아볼때 말씀드린바가 있습니다. 그렇게 보면 하나님께서는 악인들로부터 의인들을 구원해주시는 계획을 세우신 것이고, 아브라함은 의인들로 인해서 그 도시 전체를 구원해주시기를 간청했다는 것을 알 수가 있죠.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의 계획과 아브라함의 간청이 모두 하나님 보시기에 옳은 것, 의로운 것, 정의를 행하는 것임을 알 수가 있습니다. 둘 다 하나님의 정의인데, 여기서는 상반된 방식으로 나타나고 있는 것입니다.
제가 성이 순흥 안씨 인데, 이 순흥 안씨에는 두 명의 아주 대표적인 독립운동가 두 분이 계십니다. 먼저는 안창호 선생이시구요, 다른 한 분은 안중근 의사이십니다. 이 두분 모두 대한민국의 독립을 위해서 힘쓰신 분들이신데 그 방식을 보면 완전히 서로 상반되는 내용이기도 했습니다. 안창호 선생의 경우에는 신민회 같은 조직을 구성해서 애국계몽운동을 하고, 대한민국 정부 수립 등 굉장히 온건한 방식으로 독립을 추진했던 반면에, 안중근 의사의 경우에는 이토 히로부미 암살과 같이 일본의 중진들을 공격하는 방식으로 독립을 추진했습니다. 오늘날에 저희들은 이 두 사람을 바라볼 때에 누가 옳다, 누가 그르다 라고 딱 정하지 않습니다. 둘다 대한민국의 독립이라고 하는 공통의 목표가 있지만 그 방식에 큰 차이가 있었던 것 뿐이죠.
오늘 본문말씀 역시 마찬가지 입니다. 의인을 구원하는 것, 하나님의 정의라고 하는 목표는 같지만 그 방식에 큰 차이가 있을 뿐이라는 것이죠. 그리고 이렇게 같은 하나님의 정의가 있지만 방식이 다를 때, 아브라함은 어떻게 했습니까? 본문말씀 25절 말씀을 함께 읽겠습니다.
Genesis 18:25 NKRV
주께서 이같이 하사 의인을 악인과 함께 죽이심은 부당하오며 의인과 악인을 같이 하심도 부당하니이다 세상을 심판하시는 이가 정의를 행하실 것이 아니니이까
아브라함은 하나님을 향해서 “하나님께서 이렇게 하실 분이 아닐 줄 압니다!”라고 하면서 하나님께 문을 두드렸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돌이키기 위해서 문을 두드렸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공의에 반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공의를 위해서 문을 두드리는 것입니다. 다만 거기서 그 방식이 충돌했을 때에, 우리가 문을 두드릴 때가 있는 것입니다.
할렐루야! 하나님의 공의에 반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하나님의 공의를 위해서 문을 두드릴 때에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해서 문을 열어주시는 분인 줄 믿으며, 아브라함과 같이 하나님을 향해 간청하고 또한 기도하며 나아갈 수 있는 여러분과 제가 될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계속된 두드림(27-33)

마지막으로 27절 이후에는 여러분도 잘 아시는 구절일 겁니다. 아브라함이 처음에는 50명을 이야기하다가 45명, 40명, 30명, 20명, 그리고 마지막으로는 열 명까지 구원을 위해 필요한 의인의 수를 자꾸 낮추는 장면이 등장합니다. 거기에 또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이 간청하는 대로 정말 구원을 위해서 필요한 의인의 수를 낮춰주세요. 그 중간에 아브라함이 계속해서 하나님께 부탁드리다보니까 “주님 제발 화내지 마시고 한번만 더 말씀드려볼게요~”라고 말하기는 했지만 하나님께 계속해서 간청하는 아브라함의 모습이 드러나는 장면입니다.
사실 결과만 놓고 보면 어찌보면 아브라함의 간청은 무의미한 것이 아니었나 하고 생각할 수가 있습니다. 실제로 소돔과 고모라에는 의로운 사람이 10명 조차도 되지 않았고 끝내 소돔과 고모라가 멸망하지 않았습니까? 아무리 하나님 앞에 문을 열심히 두드린다고 한들 의미 없는 것이 아닌가 하고 생각이 들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 과정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그렇지 않습니다. 아브라함이 24절부터 32절까지 계속해서 하나님께 의인 50명만, 45명만, 40명만, 30명만, 20명, 열 명만 있어도 소돔과 고모라를 멸망시키겠습니까 하고 계속해서 문을 두드린 결과는, 하나님께서 의인을 구원하시는 결과를 이끌어냈습니다.
이어지는 19장에 등장하는 말씀인데요,
Genesis 19:15–16 NKRV
동틀 때에 천사가 롯을 재촉하여 이르되 일어나 여기 있는 네 아내와 두 딸을 이끌어 내라 이 성의 죄악 중에 함께 멸망할까 하노라 그러나 롯이 지체하매 그 사람들이 롯의 손과 그 아내의 손과 두 딸의 손을 잡아 인도하여 성 밖에 두니 여호와께서 그에게 자비를 더하심이었더라
천사가 롯의 집에 방문했다가 롯과 그의 가족으로 하여금 어서 성밖으로 도망쳐라라고 이야기하는 장면인데요, 롯이 지체를 하니까 아예 천사들이 롯과 아내와 두 딸들을 아예 잡아 끌어서 성 밖으로 데리고 나왔다 라고 이야기합니다. 하나님께서 천사, 곧 나그네의 모습으로 나타났던 이들을 열심히 환대해준 롯과 그의 가족들을 어떻게든 구원하시기 위해서 애쓰시는 모습을 살펴볼 수 있습니다.
또한 19장에 20-21절 말씀을 보시면,
Genesis 19:20–22 NKRV
보소서 저 성읍은 도망하기에 가깝고 작기도 하오니 나를 그 곳으로 도망하게 하소서 이는 작은 성읍이 아니니이까 내 생명이 보존되리이다 그가 그에게 이르되 내가 이 일에도 네 소원을 들었은즉 네가 말하는 그 성읍을 멸하지 아니하리니 그리로 속히 도망하라 네가 거기 이르기까지는 내가 아무 일도 행할 수 없노라 하였더라 그러므로 그 성읍 이름을 소알이라 불렀더라
원래는 천사들이 산으로 아주 멀리 도망치라고 말했는데, 롯이 산은 너무 멀어서 가다가 죽을 수도 있겠다 싶어서 근처에 “눈에 보일 정도로 가까운” 성읍 하나로 도망치게 해달라고 이야기합니다. 이 성읍은 작다 라고 하는 뜻을 가진 소알이라는 이름의 성읍이었는데 소돔과 고모라라고하는 하나의 도시 국가의 멸망을 막지는 못했지만 이 롯이 도망친 바로 근처에 있는 이 소알이라고 하는 성읍은 롯이 거기로 갔다는 이유로 구원을 받게 됩니다. 특히 천사들이 그 성읍을 멸하지 않겠다 라고 할 정도면, 소돔과 고모라라고 하는 나라에 속했던 성읍이 아니었을까, 즉 원래는 두 도시와 함께 멸망했어야 하는 성읍인데 롯이 들어간 것을 통해서 살아남게된 도시가 아니었을까 생각해볼 수가 있습니다.
비록 아브라함이 원했던 형태, 의인 10명을 통해서 소돔과 고모라 전체가 구원받는 일은 일어나지 않았지만, 아브라함의 조카인 롯의 선한 행동으로 말미암아서 함께 멸망당했어야할 소알이라고 하는 도시의 구원을 저희는 알아볼 수가 있습니다. 아브라함이 계속해서 하나님 앞에 문을 두드렸던 행위는 무의미한 것이 아니라, 조금은 다른 형태지만 하나님께서 선하게 인도하시는 길로 이루어진 것입니다.
저희가 기도할 때도 마찬가지 입니다. 몇날며칠을 같은 기도제목으로 하나님 앞에 구해도 이루어지지 않는 기도 제목들이 너무나도 많이 있습니다. 아무리 문을 부술 듯이 두드리는 것처럼 기도한다고 한들 하나님께서는 기도를 들으시지 않는다고 생각될 때가 많이 있습니다.
하지만 아브라함의 두드림을 하나님께서 무시하시는게 아니라 결국 그를 통해서 더 좋은 방향으로 소알이라는 도시를 구하신 것처럼,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기도를 들으시고 또한 우리가 원하고 바랬던 모습 그대로는 아닐지 몰라도 하나님께서 더욱 선한 방향으로 이끌어주심을 믿습니다.
본문말씀 32절말씀을 함께 읽어볼까요?
Genesis 18:32 NKRV
아브라함이 또 이르되 주는 노하지 마옵소서 내가 이번만 더 아뢰리이다 거기서 십 명을 찾으시면 어찌 하려 하시나이까 이르시되 내가 십 명으로 말미암아 멸하지 아니하리라
할렐루야! 하나님 앞에 끊임없이 문을 두드리며 기도할 때에 하나님께서 더 좋은 길로 인도해주시며 또한 선하게 이루어나가심을 믿는 여러분과 제가 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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