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자가로 행하는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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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십자가로 행하는 삶
제목: 십자가로 행하는 삶
본문: 사도행전 19장 8-10절
본문: 사도행전 19장 8-10절
찬송: 384장 나의 갈길 다 가도록
찬송: 384장 나의 갈길 다 가도록
말씀의 문을 열며
말씀의 문을 열며
우리는 살아가면서 수많은 약속을 주고받으며, 그 약속을 지키기 위해 매일의 일상 속에서 성실하게 힘을 쏟곤 합니다.
오늘 본문의 주인공인 사도 바울 역시 자신이 뱉은 약속을 끝까지 지키키기 위해 온 삶을 기꺼이 바친 가진 신실하고도 책임감 있는 사명자였습니다. 바울은 2차 전도 여행을 마칠 때 에베소 사람들에게 하나님이 허락하시면 반드시 다시 돌아오겠다는 약속을 남겼습니다. 그리고 3차 전도 여행을 시작하자마자 갈라디아 지역을 돌본 다음 지체 없이 에베소로 다시 돌아와 그 약속을 충실하게 지켰습니다.
바울은 에베소에 도착한 후 편안하게 쉬는 길을 택하지 않았습니다. 곧바로 유대인의 회당으로 들어가 죽어가는 영혼들을 살리기 위해 온 힘을 다해 복음을 선포하기 시작했습니다. 이것이 바로 주님께 부름받은 사명자 바울이 멈춤 없이 걸었던 믿음의 길이었습니다.
두란노 서원에서 날마다 이어간 사명
두란노 서원에서 날마다 이어간 사명
에베소에 도착한 바울의 성실함을 본문은 이렇게 말합니다. 8절을 보면 “8 바울이 회당에 들어가 석 달 동안 담대히 하나님 나라에 관하여 강론하며 권면하되”라고 말씀합니다.
바울은 에베소 회당에서 담대히 하나님 나라에 대하여 강론했습니다. 8절의 ‘담대히 강론하다’는 말은 헬라어 성경에서는 미완료형으로 되어 있습니다. 일전에도 말씀을 드렸지만, 헬라어에서 미완료형으로 행동을 표현해 놓은 것은 일회성으로 끝나는 행동이 아니라 지속적이고 반복적인 일을 표현할 때 미완료형을 사용합니다.
바울은 석 달 동안 매주 안식일마다 지속적이고 반복적으로 하나님 나라를 선포했음을 뜻합니다. 바울은 일시적인 감정으로 동족을 불쌍히 여기면서 복음을 전한 것이 아니라 자신의 온 마음과 정성을 다하여 에베소의 유대인들을 설득하고 하나님 나라를 증거하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그러나 복음이 전해지는 길에는 항상 세상의 완고한 거부와 반대가 뒤따르기 마련입니다.
본문 9절을 보면 “9 어떤 사람들은 마음이 굳어 순종하지 않고 무리 앞에서 이 도를 비방하거늘 바울이 그들을 떠나 제자들을 따로 세우고 두란노 서원에서 날마다 강론하니라”고 말씀합니다.
동족을 향한 바울의 간절한 선포에도 불구하고 어떤이들은 오히려 마음이 돌처럼 완악해졌습니다. 여기서 ‘마음이 굳어 순종하지 않았다’는 표현 역시 미완료형입니다. 이들의 불순종과 거역이 한순간의 실수가 아니라, 완고하고 집요하게 지속되었음을 의미합니다. 유대인들은 단순히 말씀을 거부하는 데 그치지 않고, 많은 사람들 앞에서 그리스도의 도를 비방하고(모욕하고) 저주하며 바울의 사역을 조직적으로 훼방했습니다. 바울이 복음을 전할 때 베뢰아, 데살로니가, 고린도 등에서 일어났던 일이 똑같이 에베소에서도 일어난 것입니다.
그리고 바울 역시 그 거친 반대와 인격적인 모욕 앞에서도 사명을 결코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9b절을 보면 바울은 반대자들과 감정적인 말싸움을 벌이며 시간과 에너지를 낭비하지 않았습니다. 한 사람에게라도 더 예수님에 관한 복음을 전하기 위해 회당을 조용히 떠나 제자들을 따로 세웠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예비하신 새로운 터전인 두란노 서원으로 자리를 옮겼습니다.
바울은 두란노 서원에서 새로운 영적 기초를 단단하게 다지기 시작했습니다. 그동안에는 유대인들을 대상으로 복음을 전했기 때문에 유대인들이 회당에 모이는 안식일에만 복음을 전했지만, 이제 두란노로 사역의 무대를 옮기자 ‘날마다 복음을 강론’했습니다.
우리가 아는 것처럼 바울은 자비량 사역을 했던 인물입니다. 사역에 필요한 비용을 교회와 여러 후원자들로부터 받은 것이 아니라 낮에는 일을 하고 그 바쁜 일상 중에 시간을 내어서 복음을 전했습니다.
지중해 지역의 날씨를 고려했을 때 시원한 이른 아침과 늦은 저녁에는 손수 천막을 만드는 고된 육체노동을 묵묵히 감당했고, 하루 중 가장 무더워 모든 일이 멈추고 사람들 위슨 정오 시간에는 두란노 서원에 서서 말씀을 가르쳤습니다. 다른 이들이 편안하게 휴식을 취할 때, 바울은 땀방울을 흘리며 하나님의 말씀을 끊임없이 선포했습니다.
이처럼 하나님이 맡기신 사명은 일시적인 감정이나 열정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바울은 이 복음 강론을 무려 2년이라는 시간동안 하루도 빠짐없이 성실히 행하였습니다. 어떠한 악조건 속에서도 매일 자기가 맡은 바 본분을 묵묵히 수행하는 성실한 장인처럼, 바울은 에베소의 척박한 영적 환경 속에서도 묵묵히 사명의 자리를 채웠습니다. 이처럼 자리를 지키는 성실한 헌신이 있을 때, 비로소 하나님의 살아 있는 역사는 강력하게 시작됩니다.
원수에게도 생명의 향기를 묻히는 향나무 인생
원수에게도 생명의 향기를 묻히는 향나무 인생
바울이 박해에도 굴하지 않고 성실히 2년 동안 두란노 서원에서 복음을 전했을 때, 놀라운 하나님의 구원 섭리가 에베소 전역에서 나타났습니다. 본문 10절을 보면 “10 두 해 동안 이같이 하니 아시아에 사는 자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다 주의 말씀을 듣더라”고 말씀합니다.
바울이 에베소 회당에서 쫓겨남과 거절은 사역의 실패가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복음이 유대인이라는 좁은 울타리를 완전히 벗어나 아시아 전역의 모든 사람에게 흘러가게 만드는 또 다른 신호탄이 되었습니다.
역사 속에서 진리는 세상의 완고한 장벽을 만날 때 한 번도 멈추어 서거나 뒤로 물러선 적이 없으며, 도리어 장벽 너머의 더 넓은 세계를 향해 전진해 왔습니다. 에베소 회당에서 일어난 반대자들의 비방은 바울의 복음 선포를 중단시키는 사탄의 훼방이 아니라, 복음이 회당의 좁은 문을 깨뜨리고 나와 아시아 전역을 살리는 생명의 구원 사건이 되었습니다.
바울이 이토록 지치지 않고 복음을 전할 수 있었던 근본적인 비결은 그의 가슴 깊은 곳에 새겨진 거룩한 복음에 빚진 마음이었습니다. 로마서 1장 14절 에서 바울은 “14 헬라인이나 야만인이나 지혜 있는 자나 어리석은 자에게 다 내가 빚진 자라”고 고백합니다.
바울은 일평생동안 자신이 복음에 빚진자라는 것을 한 순간도 잊은 적이 없습니다. 한때 교회를 박해하고 예수 믿는 자들을 잡아 가두던 완악한 훼방꾼이었던 바울이었지만, 다메섹 도상에서 자신을 살려주신 예수님의 그 큰 사랑에 완전히 압도되어 예수님만을 위해서 살았습니다.
세상의 계산법은 철저히 돈의 속성을 따라 움직입니다. 돈은 끊임없이 사람을 지배하려 하고 결국에는 가장 비참하게 배신하지만, 주님의 사랑은 결코 신의를 저버리지 않으며 도리어 스스로 낮아져 사람을 섬깁니다. 바울은 이 차갑고 냉혹한 세상의 계산법을 완전히 뒤로하고, 오직 하나님의 거룩한 사랑에 압도되어 평생 복음의 은혜에 빚진 자로 살아가기를 선택했습니다.
복음의 빚진 자로 살았던 바울의 삶은 온 세상 속에서 생명의 향기를 전하는 그리스도의 움직이는 편지였습니다. 향나무는 자신을 찍는 도끼날에게마저 향기를 묻혀 보냅니다. 바울의 삶이 바로 그러했습니다. 자신을 비방하고 모욕하는 에베소의 거친 도끼날 앞에서도, 바울은 원망의 가시를 품지 않고 오히려 그리스도의 은혜와 사랑이라는 생명의 향기를 묻혀 보냈습니다.
우리 역시 아무런 공로 없이 십자가 대속의 은혜로 구원받은 거룩한 복음의 빚진자들입니다. 우리의 시간과 물질, 건강과 재능은 우리 혼자 편안하게 누리라고 주신 것이 아닙니다. 바울처럼 세상 속에 생명의 향기를 전하며 복음의 빚을 갚는 사명자로 살아가라고 주님께서 우리에게 맡기신 영적인 선물입니다. 우리의 삶의 자리가 비록 척박하고 힘들지라도, 은혜에 빚진 자의 마음으로 날마다 예배의 자리를 지키고 기도의 무릎을 꿇을 때 우리를 통해 하나님의 살아 있는 생명의 향기가 온 이웃과 일터에 아름답게 흘러가게 됩니다.
말씀의 문을 닫으며
말씀의 문을 닫으며
오늘 본문의 사도 바울은 반대자들의 거친 훼방 속에서도 낙심하지 않고 끝까지 사명의 자리를 성실하게 지켰습니다. 바울은 십자가를 삶으로 지기 위해 두란노 서원에서 2년 동안 날마다 눈물의 기도를 드리며 사역을 감당했습니다. 주님께 받은 은혜의 빚을 세상 속에 생명의 향기로 갚아내기 위해 자신의 온 생을 아낌없이 던졌습니다.
우리의 일상도 결코 가볍지 않은 영적 전쟁터입니다. 때로는 우리의 헌신이 거절당하고, 믿음의 가정이 조롱받는 것처럼 보일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 자리가 바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맡기신 두란노 서원이며, 우리가 지켜내야 할 소명의 자리입니다.
남편의 자리, 아내의 자리, 부모의 자리, 그리스도인의 자리를 지키지 않고는 주님의 신비로운 섭리가 이어지지 않습니다. 말씀으로 우리의 생각이 바뀌면 영적인 습관이 바뀌고, 결국 주님께서 쓰시는 능력의 성품과 실력을 갖추게 됩니다.
바울이 품었던 그 은혜의 빚진 마음을 우리도 회복하여, 우리의 가정과 일터에서 묵묵히 움직이는 십자가가 되어 생명의 향기를 유통하는 귀한 사명자로 굳건히 서 가야 합니다. 그리하여 이 세상의 죽음의 악취를 완전히 지우고 주님의 푸른 생명의 계절을 이끌어가는 우리 중앙교회 모든 성도님들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