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로새서 14
골로새서 • Sermon • Submitted • Presented
0 ratings
· 4 viewsNotes
Transcript
왜 우리는 성경을 봐야 하는가?
왜 우리는 성경을 봐야 하는가?
세상에는 다양한 종교가 있습니다. 종교는 아주 크게 두개의 카데고리가 있는데, 첫째는 인류가 시작된 뒤로 시작된 종교와 인류 이전부터 존재하던 종교입니다. 첫째에 해당하는 대표적인 종교는 불교 유교가 있고 두번째에 해당하는 종교는 기독교와 캐톨릭 등이 있습니다. 물론 사람의 시각으로 볼 때 모든 종교가 인류 이후에 시작되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모든 종교가 사람을 위해 그리고 사람으로 인해 존재한다고 믿는 분들이 대다수 입니다. 그래서 성경이 중요합니다. 성경을 정말 제대로 읽으신 분들은 믿음을 떠나 기독교가 어떠한 종교인지 분명히 알 수 있기 때문입니다. 믿음 없이도 성경을 볼 수 있고 성경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성경이 주장하는 바를 이해하고 이야기할 수 있습니다. 그 대표적인 예가 AI 입니다. 인공지능은 믿음이 없습니다. 믿음을 가지는 것이 불가능한 존재입니다. 하지만 인공 지능 역시 성경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물어봤더니 이렇게 대답을 하였습니다.
기독교에서 성경(Bible)이 존재하는 목적은 단순히 역사적 기록이나 도덕적인 교훈을 주기 위함이 아닙니다. 성경의 핵심 목적은 하나님이 누구이신지 알리고, 인간을 향한 구원의 계획을 전달하는 것입니다.
기독교에서 성경(Bible)이 존재하는 목적은 단순히 역사적 기록이나 도덕적인 교훈을 주기 위함이 아닙니다. 성경의 핵심 목적은 하나님이 누구이신지 알리고, 인간을 향한 구원의 계획을 전달하는 것입니다.
성경 자체와 기독교 신학에서 말하는 성경의 목적을 가장 핵심적인 4가지로 요약해 드릴게요.
성경 자체와 기독교 신학에서 말하는 성경의 목적을 가장 핵심적인 4가지로 요약해 드릴게요.
1.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구원' (가장 핵심적인 목적)
1.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구원' (가장 핵심적인 목적)
성경의 가장 궁극적인 목적은 인간이 어떻게 죄에서 벗어나 구원을 받고 영원한 생명을 얻을 수 있는지 알려주는 것입니다. 성경은 처음부터 끝까지 예수 그리스도를 향해 있으며, 그를 믿음으로 얻는 구원을 핵심으로 다룹니다.
"오직 이것을 기록함은 너희로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심을 믿게 하려 함이요 또 너희로 믿고 그 이름을 힘입어 생명을 얻게 하려 함이니라" (요한복음 20장 31절)
2. 하나님의 '자기 계시' (하나님이 누구신지 알림)
2. 하나님의 '자기 계시' (하나님이 누구신지 알림)
인간은 스스로의 능력으로 신을 완벽히 알 수 없기 때문에, 하나님은 성경을 통해 자신의 성품, 뜻, 그리고 인류를 향한 사랑을 스스로 나타내셨습니다(이를 '계시'라고 합니다). 즉, 성경은 "하나님은 어떤 분이신가?"에 대한 답을 담고 있습니다.
3. 신앙인의 '삶의 기준과 성숙'
3. 신앙인의 '삶의 기준과 성숙'
성경은 구원받은 기독교인이 이 세상에서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 가이드라인을 제공합니다. 도덕적 지침을 넘어, 하나님의 자녀로서 인격과 삶이 성숙해지도록 훈련하고 바른길로 인도하는 역할을 합니다.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이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하게 하며 모든 선한 일을 행할 능력을 갖추게 하려 함이라" (디모데후서 3장 16~17절)
4. 하나님과의 '관계 회복'과 찬양
4. 하나님과의 '관계 회복'과 찬양
성경은 단절되었던 하나님과 인간의 관계를 예배와 기도를 통해 다시 연결(회복)하도록 돕습니다. 성경의 역사와 시적 고백들은 인간이 삶의 모든 순간에 하나님을 신뢰하고 그분을 찬양하도록 이끕니다.
요약하자면
성경은 단순한 고전 문학이 아니라, **"하나님이 인간을 너무나 사랑하셔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구원하시고, 그들이 이 땅에서 하나님의 뜻대로 풍성한 삶을 살아가도록 주신 사랑의 편지이자 지침서"**라고 볼 수 있습니다.
이렇듯 상식적인 이해력만 있으면 성경을 읽고 성경이 쓰여진 목적을 알 수 있는데, 대부분의 사람들이 성경을 읽지도 않고 성경의 지식을 남을 통해 받으며 자기 마음대로 해석하고 또 그것을 옳바른 지식이라고 생각해 버립니다. 이걸 전문적인 용어로 ‘착각’ 이라고 합니다. 영어로는 더 뚜렷하게 표현이 되는데 ‘일루젼’ 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이보다 더 위험한 일이 있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이 성경을 읽지 않는 것입니다. 믿지 않는 사람들이야 어떻게 생각하고 어떻게 착각을 해도 괜찮습니다. 하지만 믿음을 가진 사람들이 이 착각을 하기 시작하면 매우 매우 위험해집니다. 그 첫 단계가 성경을 읽지 않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의 말씀이 이 상황을 자세히 이야기해주고 있습니다.
여러분들은 세상의 사고 방식과 텅빈 속임수로 여러분들을 사로잡는지 주의하여 보십시오. 그것들은 인간들의 전통이나 세상의 원초적인 영들로 부터 온것이지 그리스도로 부터 온 것이 아닙니다.
여러분들은 세상의 사고 방식과 텅빈 속임수로 여러분들을 사로잡는지 주의하여 보십시오. 그것들은 인간들의 전통이나 세상의 원초적인 영들로 부터 온것이지 그리스도로 부터 온 것이 아닙니다.
지금 이 편지를 읽는 사람들은 골로새 지역의 새내기 기독교인들입니다. 이들은 평생 세상에서 통용되는 사고 방식과 철학과 상식으로 살아 온 사람들입니다. 기독교 이단들 중 가장한 위험한 이단이 세상의 사고방식과 세상의 상식이 교회 내에서도 통해야 한다고 말하는 사람들입니다. 성경을 보시면 이게 왜 아닌지 분명하게 말해주고 있습니다. 이 말을 들으면 발끈하는 사람들이 분명 있습니다. 아니 교회를 다니는 사람들은 예의도 없고 상식도 없냐고 말할 겁니다. 저는 이렇게 말할 것입니다. 네 없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기준은 이 세상의 기준보다 더 높고 더 숭고합니다. 성경을 제대로 읽은 사람들은 그리고 그 말씀을 진리로 받아들인 사람들은 이세상 사람들이 생각하는 도덕적 가치보다 더 높은 가치를 가지고 살게 되어 있습니다. 우리는 세상의 기준과 가치를 따르지 않습니다. 언제부터? 예수님을 구주로 삼은 이후부터 입니다. 그리고 이제 우리는 성경이 이야기하는 기준으로 살아야 합니다. 다시한번 말씀 드리지만, 성경이 이야기하는 기준과 가치는 세상의 그것보다 더 높고 더 숭고합니다.
바울은 이 새내기 기독교인들에게 세상의 사고 방식과 교묘한 속임수에 넘어가지 말라고 당부합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그리스도의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왜 오늘날 교회가 세상의 놀림거리가 되었냐면 세상과 달라야 하는 교회가 세상을 닮아갔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세상의 나쁜 것은 다 버리고 좋은 것 본 받을 것은 배워야 한다고. 이게 속임수입니다. 이스라엘의 초대왕 사울이 하나님으로부터 분명하게 명령을 받았습니다. 아멜렉을 멸하되 모든 생명을 멸하라고 말입니다. 그런데 사울은 죽어야할 것들 없애야 할것들만 죽이고 자신이 보기에 좋은 것은 살렸습니다. 지금 오늘날 교회들이 사울과 다르다고 말할 수 없습니다. 이 모든 일이 성경을 읽지 않기 때문에 발생하는 일입니다. 성경이 어떤 가치를 가지고 있는 지를 모르니까 세상의 가치를 따를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여러분, 중생 거듭남 이러한 단어들은 새롭게 태어났다는 의미인 것을 다 압니다. 하지만 무엇으로부터 죽어서 무엇으로부터 태어난 것인지를 모르시는 분들이 계십니다. 우리는 세상에 대해 죽고 하나님 나라의 백성으로 새롭게 태어난 것입니다. 그런데 아직도 세상의 가치와 사고 방식에 묶여 산다면 백번 다시 태어난들 무슨 소용이 있단 말입니까? 예수님께서는 우리를 세상으로부터 구원하시기 위해 죽으시고 부활하셔서 우리에게 새 생명을 주셨습니다. 그래서 이제 우리는 예수님의 세상에서 예수님의 방식대로 살아가는 삶인 것입니다. 바울은 골로새의 새내기 교인들에게 이것을 말해주고 있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분에게는 완전한 신성이 육체적으로 거하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그분에게는 완전한 신성이 육체적으로 거하고 있습니다.
바울이 이 말을 골로새 교인들에게 하고 있는 이유가 있습니다. 먼저 이 문장을 단어별로 정리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이 문장은 전 문장과 ‘원인과 결과’ 를 뜻하는 접속사 ‘오티’ 로 연결되어 있습니다. 이 문장이 원인이고 전 문장이 결과 입니다. 지금 이 문장 때문에 전 문장이 설명되는 것입니다. 왜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의 법으로 살아가야 하는가? 왜 우리가 세상의 사고 방식으로 살면 안되는가? 라는 질문의 설명입니다. 그것은 그분, 즉 예수 그리스도 안에 하나님이 육체적으로 살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그 방식이 이렇습니다. 먼저 거한다라는 말은 거주한다 집에서 산다 이런 뜻입니다. 예수님의 육체가 집이고 그 집 안에 하나님의 실체가 사신다는 것입니다. 이것 때문에 육체를 입고 계셨던 예수님께서 놀라운 기적을 행하실 수 있었습니다. 예수님 육체 안에 하나님의 신성이 살고 계셨던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 육체는 집입니다. 예수님의 육체와 우리 육체가 다를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우리 육체 안에 예수님이 거하시는 그 상태가 그리스도인의 정체성입니다. 그렇다고 우리 인성이나 성격이나 기질이 변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냥 우리 육체는 그 상태 그대로의 집인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거하시며 사시게 되니 그 집이 변화하는 것입니다. 집 안에 누가 사느냐가 중요한 겁니다. 아무리 낡고 허름한 집이라도 그 안에 대통령이 살고 있으면 그 집은 대통령의 집입니다. 아무리 크고 좋고 엄청난 집이 있어도 그 안에 도둑과 강도가 살고 있으면 범죄자의 소굴이 됩니다. 집이 변하는 것이 아닙니다. 누가 사느냐가 중요한 것입니다.
두번째로 예수님 육체 안에 하나님의 신성이 어떻게 거했는지를 볼 필요가 있습니다. 첫 단어가 ‘판’ 이라는 단어인데, 이 단어는 완전한 수량, 즉 정량을 정확히 채운 이라는 뜻을 가집니다. 있어야 할 모든 분량이 제대로 채워진 상태입니다. 두번째 단어는 ‘플레로마’ 라는 단어인데 완성된 이라는 뜻으로 퍼즐을 완전히 맞춘 이라는 뜻이 있습니다. 모든 단계와 절차를 정확히 따른 완성형인 것입니다. 정량을 채우고 모든 단계를 제대로 거쳐 완성된 완성품이라는 뜻입니다. 하나님께서 예수님 안에 사셨을 때는 잠시 거하시려고 임시적으로 거하신 것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완전히 거하시려고 완전한 이사를 하신 것입니다. 모든 법적 절차를 걸치고 필요한 가구들을 다 채워 넣어서 완전한 자신의 집으로 삼으셨다는 말입니다. 그리고 그 똑같은 일이 지금 바로 우리 육체에 일어나고 있다는 말입니다. 그러므로 이 문장을 이해한 사람은 내 안에 어떤 존재가 살고 있는지 알아야 합니다. 내가 중요한 것이 아니고 내 육체가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지금 내 안에 사시는 그분이 중요합니다. 이걸 모르기 때문에 우리 삶이 엉망진창이 되는 것입니다. 아직도 내가 중요하고 나를 증명해야 하고 내 뜻이 중요한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이 되었다는 말은, 내 육체 안에 나를 집으로 삼으신 예수님께서 실소유자, 집주인이 되었다는 뜻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세상의 사고 방식과 상식과 전통대로 살 수 없습니다. 불가능한 일입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우리는 그 불가능을 가능하게 살고 있지는 않습니까? 이 모든 것이 성경을 읽지 않고 하나님의 뜻을 모르기로 결정한 결과입니다.
(그리고) 여러분들은 이미 모든 통치와 권위의 머리이신 그분 안에서 충만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여러분들은 이미 모든 통치와 권위의 머리이신 그분 안에서 충만하게 되었습니다.
바울은 골로새 교인들에게 쐐기를 박는 선언을 합니다. 이미 여러분들은 예수님 안에서 충만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충만하게 되었다는 단어는 9절의 완전한 신성의 그 단어와 동일한 단어입니다. 그러므로 바울은 골로새 교인들이 예수님 안에서 완성이 되었다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제 예수님을 만난지 얼마 되지 않은 골로새 교인들이 어떻게 완성이 될 수 있습니까? 이것이 바로 바울이 이야기하고자 하는 지점이자 핵심입니다. 건물을 지으려면 도면이 필요합니다. 아직 건물이 하나도 지어지지 않은 상태에서 도면은 완성된 건물을 그려냅니다. 건축을 하시는 분들은 아주 치밀하게 계산하고 꼼꼼히 따져서 도면을 완성합니다. 부족한 부분은 건물을 지으면서 고치면 되지가 도면에서는 허용되지 않습니다. 우리는 이미 완성이 되었다는 말은 내 안에 거하시는 예수님께서 완성된 나의 모습을 그려 놓으셨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 인간의 시간은 아무 의미가 없습니다. 그분은 결론을 이미 보시고 계시는 분이십니다. 그러므로 그분이 완성이 되었다면 그분은 완성된 것을 보시고 계시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분이 어떤 분이시냐면 모든 통치와 권위의 머리가 되신 분이십니다. 다른 말로 그분 위에 그 어떤 것도 존재하지 않는다는 말입니다. 최종 결재권을 가지신 그분이 결정하시고 하신다고 한 것이 그대로 되는 것입니다. 그분이 하시겠다고 결정하면 그 어떤 것도 막을 수 없다는 말입니다. 그분이 하신 결정이 바로 우리가 그분 안에서 완성된 존재가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아무도 그것을 막을 수 없다는 말입니다. 우리에게는 미래일 수 있지만 예수님께는 현재인 완성형으로 우리는 살아가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기쁜 소식입니다.
그분 안에서 여러분들은 손으로 하지 않은 할례로 인치심을 입었습니다. 그것은 육체의 몸을 제한 것이 아닌 그리스도의 할례입니다.
그분 안에서 여러분들은 손으로 하지 않은 할례로 인치심을 입었습니다. 그것은 육체의 몸을 제한 것이 아닌 그리스도의 할례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