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태복음 7장 13-14절
Notes
Transcript
우리가 착각 하는 것 중의 하나가 그리스도인과 그리스도의 제자가 다르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믿으면 그리스도인이 되고, 신앙이 성장하면 꼭 게임에서 레벨업 하듯이 제자가 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그리스도인과 제자는 다르지 않습니다.
모든 그리스도인은 이 땅에서 주님의 제자의 삶을 살아야 합니다.
온 땅의 주인 되신 주님께서 우리에게 사랑한다고 말하시며 자녀 삼으신 것은,
잘먹고 잘 살기 위해 부르신 것이 아니라, 주님의 제자로 살아가기 위해 부르셨음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산상수훈은 예수님이 많은 사람들을 모아놓고 가르치신 도덕책 이 아닙니다.
마태복음 4장에서 공생애 사역을 시작하시면서 가장 먼저 제자들을 부르십니다.
그리고 예수의 제자가 걸어가야 할 목표와 길을 가르쳐 주시는 것이 산상수훈 입니다.
오늘 본문 또한 마찬가지 입니다.
13절 입니다.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 멸망으로 인도하는 문은 크고 그 길이 넓어 그리로 들어가는 자가 많고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는 주님의 권유나 바램이 아닌 명확하고 확고한 명령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제자는 이 명령에 고민이나 선택이 아닌 순종으로 응답해야 합니다.
그렇다면 좁은 문으로 들어가는 것이 왜 제자의 삶 입니까?
그 문으로 들어가는 사람이 아무도 없기 때문입니다.
문의 사이즈가 작고 좁은 것이 아니라, 아무도 그 문을 찾으려 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주님은 두 가지 문과 길에 대하여 극명한 대조를 하십니다.
앞서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 고 명령하신 후 먼저 넓은 문이 무엇인지를 설명하십니다.
다시 13절 입니다.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 멸망으로 인도하는 문은 크고 그 길이 넓어 그리로 들어가는 자가 많고
넓은 문을 어떤 문이라 하십니까?
그 문은 멸망으로 인도하는 문이며, 크고 길이 넓어, 그 곳으로 들어가는 자가 많다고 합니다.
여기서 크고 넓다는 것은 편하다 라는 의미 입니다.
그래서 넓은 문은 자기 중심적인 삶의 길 입니다.
세상이 원하는데로 살고, 내가 원하는 데로 살고, 죄를 죄로 여기지 않는 길 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가기에 편하고 인기 있지만, 결국 멸망으로 인도하는 길 입니다.
그래서 넓은 문은 제자가 가야 할 길이 아닙니다.
14절 입니다.
14.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은 좁고 길이 협착하여 찾는 자가 적음이라
이 문은 생명으로 인도합니다. 하지만 문은 좁고, 길이 협착합니다.
좁다는 것은 걷기 힘들다는 것이며, 협착하는 것은 이 길은 고난과 핍박의 길 입니다.
그래서 이 길을 가는 것이 쉽지 않고, 찾는 이도 적습니다.
이 말씀이 모두에게 선포되지만, 그것을 믿고 따라갈 자는 적습니다.
왜냐하면 다수와는 구별된 삶 이기 때문입니다.
세상은 손해 보지 말라고 하지만, 예수님의 제자는 하나님 나라를 위해 기꺼이 희생하고 순종하는 삶을 살아갑니다.
마태복음 5장에 팔복을 이야기 하시면서 그 이후에 무엇이라 결론을 내리십니까?
마태복음 5장 11-12절 입니다. (함께)
11. 나로 말미암아 너희를 욕하고 박해하고 거짓으로 너희를 거슬러 모든 악한 말을 할 때에는 너희에게 복이 있나니
12. 기뻐하고 즐거워하라 하늘에서 너희의 상이 큼이라 너희 전에 있던 선지자들도 이같이 박해하였느니라
바보처럼 손해보는 것이 아니라, 주님의 나라와 영광을 위하여 참고 버티고 인내하고 손해보는 삶을 살아가는 것이 주님의 길입니다.
그리고는 오히려 그 삶을 기뻐하고 즐거워하라고 말씀하십니다.
중고등부 찬양시간 중 / 중3 남자아이가 찬양인도 하는 데
주의 자녀로 산다는 것은..
[가사1]
주의 자녀로 산다는 것은 불 가운데로 걸어가는 것
그 속에서 신실하게 날 지키시는 그 손길을 경험하는 것
주의 자녀로 산다는 것은 바다 위로 걸어 가는 것
내 온몸을 덮쳐 오는 폭풍 속에서 잠잠히 주 바라보는 것
[후렴]
때론 불 가운데 휩싸일 때도
폭풍 가운데 무너질 때도
주님 내 곁에 함께 하시네
가장 가까이에 함께 하시네
정말 충격적이지 않습니까?
이 찬양을 부를까 했는데 잘 모르기도 한데 가사도 충격적이라 다음에 부르려고 함
이 찬양 부르는 아이들을 보면서 과연 이 가사의 의미가 뭔줄 알고 부르고 있는건지..
우리 아들 벨소리도 이 찬양의 후렴구
가사를 묵상 해 보면
아무도 가지 않지만, 주님을 위해 걸어가는 불길과 폭풍 속에서 우리는 주님의 함께 하심을 누릴 수 있습니다.
그래서 제자의 삶은 달라야 합니다.
세상보다 좀 더 나은 의를 가지고 사는 것이 아니라, 세상이 감당하지 못하는 전혀 다른 하나님의 의로움을 가지고 살아야 합니다.
완전히 뒤집어진, 역전된 삶을 살아야 합니다.
주님은 지금 하나님 나라를 위해 기꺼이 좁은 문을 선택하는 그리스도인, 예수의 제자를 찾고 계십니다.
오늘 이 시간 말씀과 명령에 순종하는 참된 제자의 길을 선택하고 걸어 가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소원합니다.
말씀을 정리하겠습니다.
좁은 문과 넓은 문은 나란히 서 있지 않습니다.
이 두 가지 문은 서로 반대편에 있습니다.
하나를 선택하면 반드시 하나를 버려야 합니다.
하나님과 물질을 동시에 선택할 수 없고, 사랑과 용서와 미움과 시기를 동시에 할 수 없습니다.
이런 것들은 항상 반대편, 대척점에 서 있습니다.
방향이 다르기에 목적이 다르고, 동시 선택이 불가능 합니다.
그런데 우리는 하나님과 세상, 제자의 삶과 멸망의 삶을 동시에 선택하기 위한
쓸때없고 답을 찾을 수 없는 고민 가운데, 삶 가운데 있지 않습니까?
주님은 우리 때문에 십자가의 고통을 지셔야 했습니다.
주님이 걸어가신 그 십자가의 길이 좁은 문, 좁은 길입니다.
나같은 자 때문에 생명을 내어 놓으셔야 했습니다.
이 땅에 오셔서 고난을 받으시는 큰 손해를 보셔야 했습니다.
하지만 주님은 한번도 그 길을 불평하거나 돌아가가려고 하지 않으셨습니다.
왜냐하면 이 십자가의 길을 하나님이 걸어 가기를 원하셨기 때문 입니다.
우리도 주님이 먼저 가신 그 길을 주와 함께 걸어가는 자 입니다.
오늘은 금요일 저녁입니다.
세상은 이 날을 불금이라고 이야기 합니다.
그들에게 불타는 금요일은 술에, 쾌락에 취한 날이지만
그리스도인들에게 불금은 성령에 불타는 기도의 시간 입니다.
이 자리에 우리의 다음세대들도 있습니다.
세상의 불금을 버리고 뜨거운 기도의 자리를 지키는 이들 또한
좁은 길 좁은 문으로 가는 자들이 되도록 기도해야 합니다.
우리도 마찬가지 입니다.
세상의 즐거움을 내려놓고 주님을 찾는 기도의 자리로 나아갑시다.
하나님 나라와 주의 영광을 위해 기꺼이 좁은 문, 좁은 길을 걸어 가기를 결단하는
우리 모두에게 주시는 은혜와 기쁨을 경험하는 기도의 시간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 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