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려움의 조건을 내려놓고 그 말씀을 붙들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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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 1415년 프랑스 북부의 아쟁쿠르라는 작은 마을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백년전쟁 중에 영국 왕 헨리 5세의 군대가 프랑스군과 마주쳤습니다. 영국군은 대략 6천 명, 그것도 오랜 행군과 병으로 지칠 대로 지친 상태였습니다. 반면 프랑스군은 역사가들의 추정으로 2만에서 2만5천, 서너 배가 넘었고, 그 핵심은 온몸을 철갑으로 두른 최정예 기사들이었습니다. 누가 봐도 승부는 끝난 것 같았습니다. 그런데 그 전날 밤 비가 내려 갈아엎은 밭이 온통 진흙탕이 되었습니다. 그 무거운 철갑을 두른 기사들이 진흙에 발이 빠져 움직이질 못했습니다. 좁은 지형에 갇혀 그 많은 숫자도 소용이 없었습니다. 결국 그날, 그 압도적이던 철의 군대가 무너졌습니다. 그날 우리가 배우는 건 하나입니다. 철갑이, 숫자가, 눈에 보이는 힘이 결코 승부의 마지막 결정권자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오늘 사사기 4장의 이스라엘이 꼭 그런 자리에 서 있었습니다. 에훗이 죽자 이스라엘은 "또" 악을 행했고, 하나님은 그들을 하솔 왕 야빈의 손에 넘기셨습니다. 그런데 그 군대 장관 시스라에게 철 병거가 무려 구백 대가 있었습니다. 그 시대의 철 병거는 오늘로 치면 최신 탱크입니다. 이스라엘은 철기 기술도 없었습니다. 그런 이스라엘이 이십 년을 심히 학대받았습니다. 이십 년이면 한 세대입니다. 태어나서 그 압제밖에 모르고 자란 아이들이 있었다는 뜻입니다. 완전히 이길 수 없는 현실이었습니다.
그런데 3절에 이스라엘이 여호와께 "부르짖었더라" 합니다. 바로 그 부르짖음에 하나님이 응답하십니다. 여기서 놓치지 말아야 할 게 있습니다. 2절에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야빈의 손에 "파셨다"고 했습니다. 압제도 우연이 아니라 하나님의 손 안에 있었다는 겁니다. 그렇다면 구원도 그분의 손 안에 있습니다. 하나님은 여선지자 드보라를 세우시고, 바락을 부르셔서 이렇게 말씀하게 하십니다. 6절,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같이 명령하지 아니하셨느냐." 그리고 7절, "그를 네 손에 넘겨 주리라." 여러분, 전쟁은 아직 시작도 안 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이미 승리를 약속하고 계십니다. 이미 명령하셨고, 이미 넘겨주겠다 하셨습니다.
그런데 바락의 반응이 좀 이상합니다. 8절. "만일 당신이 나와 함께 가면 내가 가려니와, 만일 함께 가지 아니하면 나도 가지 아니하겠노라." 바락은 조건을 답니다. 눈에 보이는 보증, 드보라라는 확실한 안전장치가 있어야만 가겠다는 겁니다. 하나님의 말씀만으로는 부족했던 것이지요. 물론 하나님은 그를 버리지 않으십니다. 드보라가 함께 가 줍니다. 하지만 9절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네가 이번에 가는 길에서는 영광을 얻지 못하리니, 이는 여호와께서 시스라를 여인의 손에 파실 것임이니라." 참 놀라운 반전입니다. 이스라엘을 원수의 손에 "파셨던" 그 하나님이, 이번엔 그 무시무시한 대장군 시스라를 한 여인의 손에 "파신다"고 하십니다. 결국 뒤에 보면 야엘이라는 여인의 장막 말뚝 하나에 시스라가 쓰러집니다. 철 병거 구백 대의 주인이, 천막 말뚝 하나 앞에 무너지는 겁니다. 하나님은 사람이 자랑할 수 없는 방식으로 일하십니다. 오직 영광을 그분이 받으시려고 말입니다.
그래서 오늘 이 말씀이 우리에게 주는 메시지는 이 한 문장입니다. "하나님이 이미 앞서 가셨으니, 두려움의 조건을 내려놓고 그 말씀을 붙들고 나아가라."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에게도 저마다의 철 병거가 있습니다. 도무지 감당이 안 되는 현실 말입니다. 이번에 국가데이터처가 발표한 「청년 삶의 질 2025」 보고서를 보면, 미래에 대한 기대를 아예 "전혀 실현할 수 없다"고 답한 청년이 2년 사이에 더 늘었고, 우리나라 청년의 삶의 만족도는 OECD 서른여덟 나라 중 서른한 번째였습니다. 교회 안이라고 다르지 않습니다. 목회데이터연구소 조사에서 교회 다니는 성도 다섯 명 중 한 명 이상이 우울과 불안을 안고 살아간다고 했고, 국민일보도 작년 여름 2030 세대에 마음의 적색경보가 켜졌다고 전했습니다. 여러분, 두려움을 억지로 감추지 마십시오. 이스라엘은 부르짖었습니다. 그리고 그 부르짖음이 닿는 곳에, 이미 우리보다 앞서 가신 하나님이 계십니다. 오늘 새벽, 그 철 병거를 하나님 앞에 그대로 내려놓으십시오.
또 하나 있습니다. 우리는 자꾸 바락처럼 조건을 답니다. "만일 이것만 확실하면, 만일 저것만 보장되면 순종하겠습니다." 지금 우리 시대는 아무도 못 믿는 시대입니다. 같은 보고서에서 청년의 대인신뢰도가 10년 새 20퍼센트포인트 넘게 떨어져서, 이제 청년 두 명 중 한 명만 겨우 남을 믿는다고 합니다. 혼자 사는 청년도 넷 중 하나입니다. 이런 각자도생의 세상에서 우리는 손에 안전장치가 쥐어져야만 발을 뗍니다. 하지만 믿음은 보장을 다 확인한 다음에 움직이는 게 아닙니다. 하나님의 말씀 하나를 붙들고 먼저 발을 내딛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미 명령하셨고, 이미 넘겨주겠다 약속하셨습니다. 그러니 조건을 다는 자리에서 순종하는 자리로 나아가십시다.
그렇다면 우리가 어떻게 이 두려움을 넘고, 이 조건을 내려놓을 수 있겠습니까. 여기 복음이 있습니다. 바락에게는 드보라가 함께 가 주어야 나아갈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우리에게는 임마누엘,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신 그 예수 그리스도가 오셨습니다. 시스라가 여인의 손에 넘겨졌던 그 역설처럼, 하나님은 세상이 볼 때 가장 연약한 방식, 곧 십자가에 달리신 한 사람을 통해 죄와 죽음이라는 우리의 진짜 철 병거를 이기셨습니다. 그리고 부활하신 그분이 지금도 우리보다 앞서 가시며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말씀하십니다. 우리를 이기지 못하게 눌렀던 그 모든 철 병거는, 앞서 가시는 이 그리스도 앞에서 이미 패배한 적입니다. 그러니 오늘 새벽, 두려움의 조건을 내려놓고 앞서 가시는 주님의 말씀을 붙들고 담대히 나아가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축원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