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회 황제 스펄전의 목사론 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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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트 2 목회자와 성장

07 목회자와 개인기도

1.목회자는 기도의 사람이어야 한다.

목회자는 탁월한 기도의 사람이어야 한다.
설교자는 무엇보다 탁월한 기도의 사람이어야 합니다. 설교자는 평신도와 마찬가지로 기도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외식하는 자에 불과합니다. 설교자는 평신도보다 더 많이 기도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자신이 맡은 직분에 합당치 않습니다. 베 베르나르스는 말했습니다. 사람의 직분은 높은데 영혼은 비천한 것 지위는 일등인데 삶은 꼴등인 것이야말로 참으로 창편 일이다. 자신과 관련된 모든 일에 있어서 훌륭하게 자기 책임을 다하는 목회자는 주위의 빛을 바라게 됩니다. 또한 주님께 신실한 목회자는 매사에 남달리 기도하 열심을 냅니다.
한 시민으로서 그는 기도로 조국의 유익을 줍니다. 한 이웃으로서 그는 자신이 돌보는 사람들을 늘 기억하며 간구합니다. 그는 한 남편과 한 아버지로서 기도합니다. 자신의 가족의 경건 생활이 양떼에게 모범이 되도록 노력합니다. 하나님의 제단이이 땅 어디선가 타오른다면 그곳은 하나님이 택하신 종의 집일 것입니다. 그가 밤낮으로 희생 제사를 드여하는 것을 거룩하게 하는데 주의를 기울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그 기도의 일부는 목회자의 직분과 관련이 있습니다. 이번 강의에서는 그러한 기도에 대해 주로 다루겠습니다. 그는 목회자로서 특별히 간구합니다. 다른 어떤 관계보다 목회자의 입장에서 하나님께 나아갑니다.
>>
목회자는 쉬지 않고 기도하는 사람이어야 한다.
저는 그것을 목회자는 늘 기도하는 사람이라는 뜻으로 받아들입니다. 목회자는 사역에 집중할 때마다 사역 중이건 아니건 하늘을 잘 겨냥한 화살처럼 자신의 거룩한 소원을 올려보내며 간구합니다. 언제나 기도만 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런 심령으로 살아갑니다. 마음을 사게 두면 먹든지 마시든지 혹은 쉬거나 잠을 자거나 깨거나 늘 뜨거운 소망과 무거운 사명감과 하나님만 의지함을 느낄 수 있습니다. 따라서 어떤 식으로든 계속해서 기도하게 됩니다. 하늘 아래 쉬지 말고 기도하라는 데살로니카전서 5장 17절의 가르침을 반드시 실천해야만 하는 사람이 있 있다면 그는 분명 목회자일 것입니다.
목회자에게는 독특한 유혹과 특별한 시험과 유별란 어려움과 막중한 사명이 있습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듯이 사람들에게 깊은 관심을 가지고 대해야 합니다. 따라서 보통 사람들보다 더 많은 은혜가 필요합니다. 자신도 일을 잘 알기 때문에 끊임없이 전능자에게 능력을 강구하며 내가 산을 향하여 눈을 들리라. 나의 도움이 어디서 옳고라고 부르짖게 됩니다. 얼라이은 친한 친구에게 이런 편지를 쓴 적이 있습니다. 원래 내가 잘 흔들리고 평정을 읽기 쉬운 편이지만 늘 해왔듯이 하나님과 교재하지 않으면 둥지를 떠난 새처럼 안정이 안 되네. 나침 바늘이 북극을 가리킬 때까지 요동하는 것처럼 받을세.
은혜로 말미암아 나는 모든 성도와 더불어 밤에 내 영혼이 주를 사모하였사온즉 내 중심이 주를 간절히 구하오리니라고 말할 수 있네. 내 마음은 자게나 하나님께 있네. 그분을 찾는 것이 내 삶의 사명이자 기쁨이라네. 오, 하나님의 사람들이요. 그러한 모습이 바로 여러분의 한결 같은 삶의 방향이어야 합니다. 여러분이 어 목회자로서 열심히 기도하지 않는다면 여러분은 참으로 불행한 사람입니다. 앞으로 여러분이 크든 작든 목회 직분을 감당하도록 부르심을 바꿔서 은밀한 기도 생활을 테만히 한다면 여러분만 불행한 것이 아니라 성도들도 됩니다. 게다가 여러분은 책망받을 것이며 언젠가 치와 욕을 당할 것이니이다.
>> 네.
목자는 기도를 통해 목회자로서 다듬어진다.
개인 기도의 수중한 유익을 여러분께 굳이 말씀드릴 필요는 없겠지만 그래도 말씀드리겠습니다. 하나님이 사신 여러분께 은혜 보좌는 측량할 수 없는 능력을 발휘합니다. 하늘의 본종에 친멸할 수 있고 살수록 여러분의 맡은 소명을 더 잘 안수할 것입니다. 목회에서 하나님께 귀하게 쓰임받는 사람이 되는데 병을 미치는 여러 요인 가운데 은혜의 보좌에서의 친밀한 교재보다 더 강력한 곳은 없습니다. 학교에서 신약사할 수 있는 것은 하나님과 교재에서 얻는 영적이고 섬세한 단련에 비하며 전부 조잡하고 형식적인 것입니다. 기도는 다듬어지지 않은 목회자가 준비 과정이라는 농로를 도는 동안 위대한 토기장이신 그분께서 그릇을 빚으시는 방편입니다.
과 책과 공부들도 은밀한 골방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닙니다. 우리는 일한 기도를 통해 잘하고 강건해지며 모든 것을 이게 됩니다. >>

2.기도는 능력이 있는 설교의 비결이다.

1)설교를 준비할 때 기도해야 한다.

기도의 열쇠로 성경 본문을 열라.
설교를 준비할 때도 기도는 가장 유능한 조력자입니다. 다른 사람들이처럼 밖에서 사냥하고 있을 때 여러분은 기도의 도움으로 집에서 마시는 음식을 만들어 야곱처럼 여호와께서 나로 순적히 만나게 하셨음이다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야곱은 거짓이었지만 여러분은 참되게 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의 붓을 심령 속에서 주셔서 주님께 간절히 호소하면 여러분의 설교문은 명문이 될 것입니다.
여러분의 문제들을 무릎 위에 올려놓고 하늘문 앞에 가면 여러분은 분명 청산 뉴스로 설교하게 될 것입니다. 기도는 정신적 활동 면에서 머릿속에 온갖 설교의 소재들을 상기시킴으로써 설교 주제를 성정하는데 도움을 주는 남편 우리 영을 고도로 집중시킴으로써 우리 마음의 눈을 시켜 하나님의 빛 가운데 진리를 볼 수 있게 합니다. 설교 본문은 기도의 열쇠로 열지 않으면 그 부활를 잘 드러내지 않습니다. 다니엘이 간구할 때 얼마나 놀랍게 책들이 열렸습니까? 베드로는 기도하러 지붕에 올라가서 얼마나 많은 것을 알게 되었습니까? 은밀한 골방이야 말로 최고의 공급방입니다. 성경 주석들도 훌륭한 스승이지만 성경 저자이신 그분이 더 그분이 훨씬 더 훌륭합니다.
기도는 그분께 직접 호소해서 도움을 요청하는 일입니다. >>
기도로 본문의 핵심에 깊이 들어가라.
본문의 심으로 스스로 깊이 들어갈 수 있도록 기도하는 것이 좋습니다. 마치 벌레가 껍질을 뚫고 단단한 열매 속으로 들어가는 것처럼 말씀을 거룩하게 섭취함으로써 말씀속으로 파고 들어갈 수 있도록 말입니다. 기도는 묵중한 진리를 들어올릴 지렛때입니다. 사람들은 돌들이 어떻게 그 자리에 놓였는지 놀라워 합니다. 그런데 사실은 어떤 이들이 어떻게 그런 신비로운 말씀을 놀랍게 깨았는지를 더 궁금하게 여겨야 합니다. 기도야말로 그런 경의로운 일을 이루어낸 강력한 수단이 아니겠습니까? 하나님을 기다리다 보면 종종 어둠이 빛으로 바뀝니다.
거룩한 성소에서 끈기 있게 간구하다 보면 어느덧 대일이 벗겨지고 하나님의 어 깊은 것을 들여다볼 수 있는 은혜가 임합니다. 어느 청교도 신학자는 토론 중에 앞에 놓인 종이 위에 뭔가 쓰는 것 쓰는 모습을 자주 보았다고 합니다. 다른 사람들이 호기심에 그 메모지를 이어보니 주여 더 많은 빛을이라는 글만 수십게 적혀 있었다고 합니다. 그 바로 말씀을 배우는 여러분이 설교를 준비할 때 해야 할 가장 적절한 기도입니다. >>
기도의 지팡이로 말씀의 샘을 뚫어라.
그러면 여러분은 마치 모세가 지팡이로친 바위처럼 여러분 앞에 놓인 본문에서 신선한 생각에 신내물을 솟아오르는 것을 느낄 것입니다.
여러분이 하나님의 말씀을 켜내며 부지런히 기도를 지을 할 때 새로운 보석 광명의 눈앞에 돌답게 비쳐질 것입니다. 새로운 때 새로운 사방이 완전히 꽉 맡힌 것 같다가도 갑자기 새로운 길이 탁트일 것입니다. 다윗의 열쇠를 가지신이가 열면 다들 제가 없습니다. 라인을 따라 내려다가 보신 분이 있다면 아마 그 장어원 강의 위치 흡사 후수가 연달아 있는 듯하다고 생각하셨을 것입니다. 배 앞뒤로 온통 거대한 발벽이나 엉클로 뒤덮힌 둥구스름만 단구 지형으로 둘러싸여 있는 듯 보이다가 강해의 가장자리를 돌며 갑자기 딱인 강쫄기가 넘질되며 앞쪽으로 힘 있게 뻗은 모습이 놀랍게 펼쳐집니다.
말씀이 열심히 파고 들다 보면 말씀에서도 그런 체험을 하게 됩니다. 본문이 여러분 앞에 꽉 막혀 보이다가도가 기도로 백기를 대축하며 웬머리 들려 새로운 강조기로 쳐버리면 거룩한 진리의 넓고 깊은 물살이 충만히 흘러가 흘러 큰 물결로 여러분 실어는 것을 보게 됩니다. 이것만으로도 간구로 매달릴 만한 충분한 이유가 되지 않습니까? 기도로서 말씀을 뚫는 지팡이를 쓰십시오. 그러면 생명수샘이 말씀의 깊은 곳에서 솟아오를 것입니다. 생명수 이렇게 누가 목마음에 만족하겠습니까?
맥체인은 기도로 설교를 준비했다.
가장 탁월하고 경건한 분들도 기도를 설교 준비에 가장 중요한 부분으로 여겼습니다.
맥체인 목사님에 대한 이런 기록이 있습니다. 주일의 성도들에게 뭔가 수고로 얻어낸 귀한 메시지를 정하고 싶어 급한 이유가 아니면 사전에 많은 기도와 묵상을 하지 않고는 성도들 앞에 나서지 않았다.이 이 주제에 대한 그의 원칙은이 문제로 대화를 나누던 우리에게 남긴 말 속에 담겨 있다. 우리가 설교 전에 열심히 준비하는 일에 내 어떻게 생각하는지 묻자 그는 출애굽기 27장 20절을 상기시켜 주었다. 감남으로 찌어낸 순결한 기름을 등불를 위하여 내게로 가져오게 하고 그의 기도에 대한 열심은 더욱 놀라웠고 참으로 그는 성도들 앞에 서기 전에 하나님과의 교재를 결리하지 않았다.
하나님의 사랑이 가득 잠길 필요를 느꼈던 것이다. 그의 목회는 먼저 자신의 영혼을 성결하게 했던 자신의 생각을 그대로 보여 주었다. 그래서 영혼의 경건함이 이외의 활력과 힘을 불어넣는데 절대적으로 필요했다. 그에게 있어 모든 사역은 변화없이 자기 영혼을 준비하는 미래에서 시작되었다. 그의 방 벽에 벽이 그의 부르짖음이뿐 아니라 간절한 기도와 눈물의 증인이었다.이 >>

2)설교하는 동안에도 기도해야 한다.

기도는 설교를 전할 때 큰 도움을 줍니다. 사실 하나님과의 교재의 산에서 이제 막 내려와 사람들에게 말씀을 전하는 것만큼 설교하기에 안숨 맞추는 경우가 없습니다. 성도들을 위해 하나님과 실름한 사람만큼 성도들에게 호소력 있는 사람은 없습니다.
언라인 목사님은 이런 평을 들었습니다. 그는 온 마음을 기도와 설교에 쏟았다. 그의 기도와 설교는 애정이 넘치고 거룩한 열심과 생명과 활력으로 가득해서 중을했다. 그 해중을 감동시켜 가장 완악한 심령도 누구리고 위로하며 때로는 녹였다. 그의 마음이 먼저 부활하신 주님과의 은밀한 교제로 의의 태양신의 뜨거운 햇살를 받지 않았다면 이처럼 거룩하게 심령을 녹이는 일은 결코 없었을 것입니다. 가식이 없고 애정으로 충만한 참으로 감동적인 설교는 오직 기도에서 나옵니다. 가슴에서 오나는 진심만한 웅변술은 없으며 십자가 아래에는 그 웅변술을 배울 수 있는 학교는 없습니다. 퀸리아누스, 키케로, 아리스토텔레스를 통달하고도 사도로서의 기름부음이 없는 것보다 인간의 운변술은 못 배웠어도 하늘에서 난 사랑의 능력으로 충만한
것이 화이 습니다. 인간의 방식대로는 기도 때문에 말주변이 늘지는 않겠지만 가슴에서 울어나온 말을 하기 때문에 말에 참된 능력이 생길 수는 있습니다. 그것이 오히려 엄변이라는 말의 참뜻이 아니겠습니까? 기도만이 여러분의 재물 위해 하늘의 불을 끌어내려 하나님께 연락되었음을 보여줄 것입니다. 설교 준비하는 동안 기답으로 신선한 생각의 샘이 자주 터져나오듯 설교를 전할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성령에 의지하는 설교자라면 내게 자신의 가장 새롭고 탁월한 생각이 미리 생각해 둔 것이 아니라 천사의 날개를 타고 날아온 것처럼 떠오르는 생각이라고 말할 것입니다. 하늘의 손길이 갑자기 가져다진 뜻밖에 보하여 모약산에서 떠내려온 천국에 핀 꽃들의 시습니다.
저는 생각과 표현이 막힐 때마다 심령의 은밀한 탄식이 저를 살려주어서 평소보다 더 많은 자유를 누리게 된 경우가 아주 많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말을 말을 타고 출전할 준비를 하는 동안 주님께 한 번도 부르짖은 적이 없다면 싸움터에서 어찌 기도드릴 체면이 있겠습니까? 강단에 서면 부담을 느끼는 설교자라도 집에서 기도로 씨름 기억하면 안심이 됩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버리지 않으면 하나님도 우리를 버리지 않으실 것입니다. 형 여러분, 여러분은 기도로 매일 감당할 힘을 공급받을 수 있음을 알게 될 것입니다. 사도들이 앉아서 하늘을 기도할 때 불레가 그들 위에 임했듯이 여러분에게도 똑같이 임할 것입니다.
무기력에 빠져 있을 때 갑자기 스랍천사의 능력이 임한 것처럼 되살아날 것입니다. 무겁게 질질끓던 여러분의 병거에 불붙는 바퀴가 달리면서 하늘의 말들이 순식간에 여러분의 불병거를 끌고 올라가 마침내 여러분은 엘리야처럼 불붙는 영감에 월결병속에 승천하는 체험을 할 것입니다.

3)설교 후에도 계속 기도해야 한다.

설교의 기도로 영혼의 유를 찾아야 한다.
설교의 설교자가 은혜의 보좌에 나아갈 수 없다면 양심정 설교자가 어떻게 자신의 감정을 분출하고 영원히 위로를 찾을 수 있겠습니까? 최고의 흥분 상태에 도달했다면 절박한 광고가 아니면 어떻게 우리 영을 가출 수 있겠습니까? 또는 실패할까봐 두려워에 눌려 있다면 하나님 앞에 우리의 말지 않고서 어떻게 위로를 받겠습니까? 여러분 자기 설교에 부족함을 자각하고 암새 침상을 이처 얼마나 많습니까? 다시 강단을 가려가 너무나 냉랭하게
내했던 말들을 다시 한번 더 열정적으로 토해 냈으면 하고 바았던 적이 얼마나 많습니까? 죄를 자백하고 우리 연약함과 어리석음 때문에 성령께서 방해 받으시지 않도록 일렬히 강구하지 않으면 어디서 영혼의 안식을 찾을 수 있겠습니까? 공적인 모음에서는 양떼에 대한 우리의 마음의 사랑을 쏟아내는 것이 불가능합니다.
설교 후에 사람들의 영혼을 위해 간절히 기도해야 한다.
요셉처럼 사랑하는 목자는 울 곳을 찾습니다. 아무리 자유롭게 자신을 표현해도 강단에서는 감정의 제안을 받습니다. 개인적으로 기도할 때만 감정을 본물처럼 꺼내 터트릴 수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대신하여 사람들을 설복하지는 못하더라도 사람들을 대신해서 하나님을 설복하려는 노력은 해야 합니다.
우리는 사람들을 구원하거나 심지어 그들을 설복시켜 할 수 없지만 적어도 그들의 어리석음을 애통해하며 주님이 나서 주시길 간구할 수 있습니다. 예레미야처럼 우리도 이같이 결심할 수 있습니다. 너희가이를 듣지 아니하면 나의 심령이 너희 교만을 인하여 은근히 곡할 것이며 눈물을 흘려 통곡하리라. 그런 감동적인 후소에 주님의 마음이 냉담할 리가 없습니다. 때가 되면 울며 간구하는 자는 간구한 자는 기쁨으로 영혼을 얻게 될 것입니다. >>
브레이너 사역의 열매는 기도로 말미암은 것이다.
끈질긴 먼부림과 참된 열매 맺음 사이에는 산고와 출산의 관계 눈물로 씨뿌림과 기쁨으로 거둠의 관계와 같은 분명한 과관 관계가 있습니다.
자네 씨앗은 어찌 그리 싹이 빨리 났나 하고 한 농부가 못자 상대편 농부가 답했습니다. 물속에 담과뒀거든 우리도 하나님만이 보시는 은밀란 중에 모든 가르침을 눈물 속에 담가 주어야 합니다. 그러면 그것이 훌쩍 자라나 우리를 놀라게 하며 기쁘게 할 것입니다. 브레이너의 일기에 있는 이런 기록을 보면 그가 열매 맺은 것이 당연하지 않습니까? 4월 25일 주일 오늘 아침 경근 생활에 두시간 정도를 하해했다. 점처럼 변하지 않는 영혼들을 위해 평소보다 더 몸부림칠 수 있었다. 일은 아침이어서 햇빛도 전혀 안 비쳤는데도 온몸이 땀에 흠뻑됐다. >>
루터의 능력의 비결도 기도였다.
루터 가은 능력의 비결을 바르지 않습니다. 데오도스는 그대 이렇게 말합니다. 그가 기도를 엿들었다. 그런데 오 하나님 얼마나 열과 성을 다해 기도하든지 마찬님께 아뢰듯 경외감으로 가득하면서도 친구의 말하듯 담대했다. 여러분 기도의 사람이 되시기 부탁드립니다. 위대한 재능은 없어도 기도로 충만하다면 여러분 재능 없이도 사역을 충분히 감당할 것입니다. 뿌린 것들을 놓고 기도하지 않으면 하나님 주권을 복을 주시기로 작정하실 수 있을지 몰라도 여러분은 그런 일을 기대할 자격도 없고 그런 일이 일어나도 여러분의 심령에 아무 위로도 되지 못할 것입니다. >>
설교의 열매는 사실 기도의 열매다.
저는 어제 브론 프롬 푸턴에 있는 오라토리오 수도의고 파베르 신부가 진 책강을 읽었습니다.
만남매가 그런 말이 묘하게 뒤섞힌 책이 있는데 내용 중에 대충 이러한 이야기가 있었습니다. 설교로 많은 사람을 회심시킨 어느 설교자가 하늘에서 계시를 받았는데 지금껏 회심한 일들이 전부 자기의 재능이나 엄면이 아니라 해중석 앞자리에 앉아 설교자가 열매 맺도록 기도하는 무지한 어느 평신도의 기도 때문이라는 것이었습니다. 모든 것이 다 밝혀지는 날에 우리도 그렇게 될지도 모릅니다. 설교하느라 오랫동안 힘들게 했었는데 나중에 보니 모든 영광 금선 보석 같은 기도로 쌓아올린 다른 건축자에게 돌아가고 우리의 설교 사역은 기도를 빼고 나니 풀이나 지풀하기에 불과한 것으로 드러날지 모릅니다.
>>
설교를 마친 후에도 기도를 멈춰서는 안 된다.
설교를 마친 후에도 하나님의 참된 사역자라면 기도를 멈춰서는 안 됩니다. 온 교회가 사도행전에 나오는 마게도냐 사람들의 말처럼 기도 중에 건너와서 우리를 도우라고 온갖 말로 부르짖고 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이 무시로 기도할 수 있게 된다면 여러분에게 와서 기도를 요청하는 성도들을 위해 간구할 일도 많을 것이고 따라서 여러분은 친구들과 회중을 위해 은혜의 보좌에 나아갈 사명을 받았음을 느낄 것입니다. 제 사명도 늘 그러합니다. 저는 주님 앞에 그런 간부를 드리는 일이 늘 즐겁습니다. >>
성도들을 위한 기도의 제목이 부족한 경우는 없다.
여러분의 기도 부탁한 사람이 아무리 아무도 없더라도 기도할 제목이 모자할 일은 결코 없습니다. 성도들 보십시오. 몸이 아픈 성도들도 있고 영혼히 아픈 성도는 더 많습니다. 구원을 받지 못할 못한 분도 있고 찾고 있지만 발견하지 못한 분도 있습니다. 낙심한 분들도 많고 침체됐거나 슬픔에 빠 성도 많습니다. >> 우리 병에 담아 주님 앞에 쏟아야 할 밥의 눈물과 고의 탄식 있습니다. 여러분이 하나님의 참된 목자라면 주님 앞에 제장으로 서서 영적으로 이스라엘 자손들의 이름이 새겨진 에옷과 흉패를 입고 회장 안에서 그들 위해 간구할 것입니다. 저는 특별히 기도해 줘야 할 사람들의 명단을 갖고 다니 성도들을 봤습니다.
그런 명단은 그들이 자칫 잊기 쉬운 기억들 상기시키는데 큰 도움을 주었을 것입니다. 성도들만이 여러분의 기도로 필요한 것이 아닙니다. 민족과 열방이 다 여러분의 기도를 필요로 합니다. 기도에 강한 사람은 조국을 지키는 불의 성벽이요 수호 천사의 광패일지라지도 모릅니다. 청교의 대적들이 존스의 기도를 수만 명의 군사부터 두려했다는 것을 다 잘할 것입니다. 저 유명한 존 웰치도 자기 조교 위대한 중구자였습니다. 그는 성도가 어찌 기도하러 일어나지 않고 온 밤에 침상에 놓으실 수 있는지 아주 없다고 말하고 했습니다. 한번은 부인이 남편이 감기될까 봐 그의 방가 봤더니 간간히 주여 스코틀랜드를 제게 맡혀 주소서라는 기도소리가 들렸다고 합니다.
우리 단밤 중에 주여 회중의 영혼을 우리에게 맡겨 주소서라고 부르짖시며 실름했으면 좋겠습니다. >>

3.기도는 목회 성공의 비결이다.

기도를 소홀히 하는 목회자는 목회에 관심이 없는 사람이다.
사역을 위해 열심히 기도하지 않는 목회자는 허용과 교만으로 가득한 사람임에 분명합니다. 그런 사람은 자기 힘만으로도 충분하니까 하나님께 부르짖을 필요가 없다는 듯이 행동합니다. 그러나 우리의 설교가 사람들을 죄에서 돌이켜 성령의 역사 없이도 하나님께 인도할 수 있을만큼 강력하다는 착각은 얼마나 근거없는 교만입니까? 우리가 진정 겸손하다면 만군의 여호와께서 모든 능력으로 우리에게 입히시고 너는이 내 힘을 의지하고 가서라고 말씀하실 때까지 감히 싸움토러 나가지 않을 것입니다.
기도를 소홀리하는 목회자는 목회에 관심이 없는 사람임에 분명합니다. 자신의 소명조차 제대로 이해할 리가 없습니다. 한 영혼의 가치도 생각해 보지 않았거나 영혼의 의미도 따져보지 않는 것이 분명합니다. 단지 제사 직분에 뒤따르는 꼬모리나 꼬모리 탐나 간단을 선택한 사건 목사거나 사람들의 칭찬은 받고 싶고 하나님의 칭찬에는 관심 없는 위선자의 분명합니다. 그런 사람은 분명 은혜는 뒷전이고 화려한 겉모습만 좋아하는 곳에서나 칭찬받을 천박한 말주군이 될 것입니다. 그런 사람은 흙을 깊이 갈아 풍성한 수학을 거두는 사람은 결코 될 수 없습니다. 그는 순전히 게으름이지 일꾼이 아닙니다. 울은 아닙니다.
그는 설교자로서 살았다 하는 이름은 있으나 죽은 자입니다. 그는 잠에 나오는 다리 길이가 서로 안 맞아 저는 자처럼 기도가 설교보다 항상 짧기 때문에 평생 저음은 발리 신세를 놓지 못합니다.
목회자는 아무리 기도해도 부족한 사람이다.
저는 우리 대부분이이 문제에 대해 많든 적든 자신을 살펴보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이 중에 혹 자신은 학생으로서 마땅히 할만큼 기도한다고 감히 말하는 분이 있다면 저는 그 말을 매우 의심할 것입니다. 목사든 집사든 장로든 자신이 최대한 능력 하나님께 기도에 전념하고 있다고 공원할 수 있는 사람이 있다면 어 누구든지 좀 알고 싶습니다. 그렇게 탁월한 사람이라면 저는 그보다 한참 뒤 떨어져 있다고 고백할 수밖에 없군요.
저는 전혀 그렇게 말할 수 없는 처진이 말입니다. 저도 그럴 수 있다면 좋겠습니다. 이렇게 얼굴 한번 안 불키고 아무렇지 않은 듯 고백합니다만 그렇게 고백할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가 남들만큼 기도의 소홀한 편은 아니라 해도 그것으로 위로를 삼아서는 안 됩니다. 남들이 부족한 것이 우리의 변명거리가 될 수는 없습니다. >>
조셉 언라인의 탁월한 기도 생활
우리 중에 전에 제가 수업한 조셉 언라인 목사님과 비교할 사람이 얼마나 될까요? 그의 부인이 이렇게 썼습니다. 그는 건강할 때 항상 새벽시나 그 전에 일어났다. 그는 자신의 하나님과 교재신을 갖기도 전에 대장인 다 이꾼들이 릴터로 가는 소리를 들으며이 부세한 소리만 들으면 나 자신이 참 부끄럽어 내 주님이 저들의 주인보다 더 존귀함을 받으셔야 하지 않겠소라고 이뻐버릇처럼 말하며 기록하곤 했다.
4시부터 시까지 기도와 경건한 묵상과 찬송을 했고 그 시간을 아주 즐거워했다. 두 가족들과 함께 달고 있을 때뿐 아니라 혼자했을 때도 매일 그렇게 했다. 대로는 이성적인 신방을 수 미르면서까지 며칠은이 은밀한 교재에 몰두했다.이를 위해 어느 먼 어느 빈집이나 널한 골짜기 어느 외딴 곳에 혼제 리를 했다. 거기에서 하나님과 천국에 대해 많은 기도와 묵상을 했다.
데이비드 브레이너드의 탁월한 기도 생활
조나단 에드워드 에드워즈 데이비드 브레이너드를 묘산 이야기를 읽고 나뜨겁지 않은 사람이 있을까요? 에드워즈는 이렇게 말했니다. 그의 삶은 목회사에게 성공하는 바른 길을 제시한다.
그는 마치 전쟁터에서 승리를 위해 군투하는 불굴의 병사처럼 큰 상을 바라고 전력 진주하는 선수처럼 최선을 다했다. 그리스도와 영혼들에 대한 열렬한 사랑으로 공적이건 사적이건 말씀과 교에 있어서 얼마나 늘 열심으로 했었는가. 그뿐 아니라 기도에 있어서도 밤낮으로 은밀한 중에 하나님과 실름하며 자신이 보내 받아 섬기는 사람들의 심령에 그리스도의 형상을 이루기까지 말할 수 없는 신음과 고통으로 해산하는 수고를 했는가? 얼마나 사역에 축복해 주시기를 갈망했으며 영혼을 위하여 경성하기를 자기가 회개할 자인 것 같이 있는가? 얼마나 자신을 도우시고 밀어 주시는 성령의 특별한 특별한 감화를 구하고 의지하며 주 하나님의 능력으로 사역을 행했는가? 그리고 오랜 기다림과 온갖 어둠과 어둡고 낙심되는 상황 끝에 마침내 얼마나 복된 열매를 맺었는가? 참된 야곱의 자손처럼 그는 치흙 같은 밤을 날이 세도록 끈질기게 신음했다. >>
헨리 마틴의 탁월한 기도 생활
헨리 마틴의 일기 가운데 이런 내용을 보면 부끄럽지 않습니까? 9월 24일 어젯밤 자기 전에 오늘 하루를 기도와 금식에 속기로 결심했던 것을 실천할 수 있었다. 먼저 하나님의 능력과 약속을 의지하며 세상적인 생각에서 벗어나기 위해 또 기도하는 동안 온 영혼을 집중하기 위해 기도하는 중에 거의 한시간 정도 세상과 단절되는 경험을 했다. 그러고 나서 하나님이 옛조상들에게 얼마나 친밀하게 자신을 계시하셨는지를 보기 위해 아브라함의 일생을 읽었다. 그다음에는 나 자신의 생활을 위해 기도하다가 내 영혼이 하나님의 거룩하심을 마음껏 흠뻑드리다.
이때가 하루 중에 가장 좋은 시간이었다. 그가 사역 차퇴를 보낸 뒤 탄식하면서 했던 말은 우리가 더 쉽게 공감할 수 있을 것입니다. 영적인 사역에 너무 많은 시간을 하해했고 개인적인 하나님과의 교재에는 너무 적은 시간을 보냈다고 생각한다. >>
모든 목회 성공의 비결은 기도에 달려 있다.
우리가 간구를 게을리해서 놓친 복이 얼마나 많을지 상상도 할 수 없습니다. 평소에 기도를 하님과 더 친밀하게 살았더라면 밖에 있을 우리 모습과 비교할 때 지금 우리가 얼마나 초라한지 아무도 알 수 없습니다. 헛된 후회와 추측은 소용 없지만 고르는 진정 결심은 많은 도움이 됩니다.
우린 단지 더 기도해야 할뿐 아니라 반드시 그렇게 해야 합니다. 사실 모든 복회 성공의 비결은 늘 은혜 보좌에 나간데 있습니다.

4.기도는 성령의 기름을 기름부음을 받는 비결이다.

성령의 기름부음은 기도하는 사람에게 임한다.
개인 기도가 목회에 미치는 한 가지 큰 복은 표현할 수도 표현낼 수도 없고 차라리 언어로 표현하기보다 머리로 이해하기가 더 쉬운 어떤 것입니다. 그것은 하나님에게서 온 이슬이며 제가 거룩하신 분의 기름부이라고 표현하면 여러분이 곧 알아들실 하나님의 임재입니다. 그게 뭐냐고요? 기름부음이 임하는 설교를 이해하기 쉽게 표현하려면 얼마나 고민해야 할지 잘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설교자도 그것이 있을 때는 알 수 있고 회중도 그것이 없을 때를 곤금치 수 있습니다. 그것이 없는 설교는 기근이 들었을 때에 사마리아 땅에 그것이 가득한 설교는 골수가 가득한 기름진 것들로 연애가 벌어진 예루살렘에 각기 비유할 수 있습니다. 뜨는 곳에 진주처럼 용롱한 이슬 방울이 풀림마다 가득 맺쳐 있을 때에 하나 아침에 신선함을 누구나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제연하는 것은 고사하고 누가 그것을 묘사할 수 있겠습니까? 영적인 기름부음의 신비가 그렇습니다. 우리는 그것이 무엇인지 알지만 남에게 말해 줄 수는 없습니다. 그것을 꾸며낸다는 것은 어리석은 일입니다.
마치 열렬한 사랑을 표현하려고 주여 짜 말이 되게 지나치게 감상적이거나 가식적인 말로 들릴 때가 많은 것처럼 말입니다. 사람들이 귀하신 주여 사랑하는 주님 존귀하신 그리스도시여 같은 말들을 아무렇지 않게 마구 쏟아내는 것에 거부감이 들지경입니다. 이런 친밀한 표현은 하나님의 성도에게서 말하자면 탁월한 은혜 가운데 처음 나온 말이라면 충분히 납득할 만하고 아름답다고도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경박하게 자꾸 되뿌리하면 귀에 거스리는 것은 물론이고 신성 모두까지 아니어도 꼴불견입니다. 어떤 이들은 이상한 오로 우는 소리를 내면서 눈을 까비짓고 우습스럽게 손을 지켜들며 성령의 기름부음을 흉내내려 합니다.
맥체인 목사님의 독특한 말씨와 억양은 스코틀랜드 사람들에게서 쉽게 볼 수 있는 것이었습니다. 우리는 그분의 독특한 맛이나 동작보다 그분의 심령을 본받기를 원합니다. 능력이 없는 단순한 흉내내기는 복기 싫고 해로운 생명 없는 썩은 고기와 같습니다. 어떤 이들은 성령의 감동을 받으려고 몸부림치고 소리를 지르는데 감동이 오질 않습니다. 어떤 이들은 설교하다 말고 하나님의 복이 있기를 하고 소리칩니다. 어떤 이들은 과장된 동작을 취하면서 마치 하늘의 불을 받아 경년을 일으킨 듯이 두 손을 꽉 움켜집니다. 그런데 어쩐지 무대에선 영국 배우를 보는 것 같지 않습니까? 설교자가 그럴 듯하게 꾸며 회중의 열정을 자극하는 것은 정직한 사람들의 비웃음을 살펴스런 속임수입니다.
리처드셋실은 말합니다. 감정을 꾸며내는 것은 불쾌감만 주고 곧 불통나게 돼 있다. 그러나 자신 스스로 감동받는 것은 사람들의 심과 소통하는 지름길이다. 기름부음은 여러분이 만들어낼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을 꾸며내는 것은 백해 무익한 짓입니다. 그러나 기름부음은 본질적으로 한없이 귀하며 성도들을 교화하고 죄인들을 예수님께로 인도하려면 절실이 필요한 것입니다.이 비밀한 것은 하나님께 은밀히 기도드리는 자에게 허락됩니다. 그의 위에는 하나님의 이슬이 임하며 그의 곁에는 마음을 유쾌하게 하는 향기가 납니다. 우리에게 있는 기름부음이 만군의 여호와에게서 나온 것이 아니면 우리는 사기꾼에 불과합니다.
오직 기도로만 이것을 얻을 수 있으니 바로 지금 꾸준히 열렬하게 간구를 계속합시다. 여러분의 양털를 하늘 이슬에 젖을 때까지 간구의 타장마당에 놓으십시오. 물도명에 씻기 전에는 성전에 섬기로 들어가지 마십시오.

5.기도는 영적 충만의 비결이다.

영원히 하나님 앞에 조용히 엎드려보낸 시간이야말로 기운을 묶도는데 가져습니다. 아이스 앞에 들어가 앉았습니다. 이렇게 거룩하게 앉아 있는 것은 바람직한 일입니다. 햇빛을 받는 할짝 빈꽃처럼 이미지를 수용하는 감광칸처럼 마음이 하나님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는 것입니다. 이런 고유함은 어떤게는 자신의 마음속에 빈걸 드내기 때문에 참을 수 없는 것이지만 지혜로운 자에겐 백향목 군정과도 같습니다.
왕이신 주님이 형성하게도 그 거룩한 공전을 따라 걸어오시기 때문입니다. 거룩한 침묵 너는 깊은 신명이 충분 신령한 열매 열어붙은 입 누어버린 마음 말의 인사도 귀하지 못 침묵한 습관에 훨씬 더 귀합니다. 제가 케이크 귀도 같으니까 그 그럴지도 모르죠. 저는이 점에 대해서 조지폭스를 기꺼이 본받겠습니다. 우리 대부분의 생각의 껍데기에 불가 말을 지난책에 중시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조용한 묵상, 고유한 경배, 말없는 기쁨이 모든 것은 제가 가장 아끼는 고습 같은 것들입니다. 여러분 바닷에 깨진 조개 법질이나 밀려하는 물거품 따위에 신기하며 재거리나 정작 마음속 기쁨의 시면을 잃어버리거나 그가 그 깊은 곳에 있는 생명을 놓쳐 놓치는 일은 없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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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기도를 위한 특별한 시간을 떼어놓어야 한다.

기도만을 위한 시간을 따로 떼어놓으라.
목회가 안정되면 따로 일정을 잡아 경건의 시간을 보내시길 진지하게 권합니다. 일상적인 기도로는 영혼의 신선함과 할력이 지속되지 않고 영적으로 침체된 느낌이 든다면 한 주나 가능한 한 달이라도 혼자 지내십시오. 때때로 휴일도 있는데 거룩한 날을 자주 갖지 못할 이유가 없지 않습니까? 경제적으로는 경제적으로 여유 있는 사람 여유 있는 분들은 시간을 내서 예루살렘 성지술도 다녀온다는데 천성에 가는 가는 덜 힘들고 훨씬 더 유익한 여행을 위해 시간을내는 것은 안됩니까? 한때 프레스턴에서 목회했으며 유명한 책 예수님 바라보기를 쓴 아이작 암브로스는 가스탱이에 있는 숲속에 한 오두막에서 항상 매년 한 달씩 혼자 지냈습니다.
그렇게 긴 시간을 정기적으로 산속에서 하나님과 함께 보냈으니 능력 있는 사역자가 된 것이 당연합니다. 천중에서는 소위 피정이라는 시간을 갔는데 익숙하다고 합니다. 그때는 여러 사제가 잠시 일상에서 물러나 완벽한 정신적 정적 속에서 영혼의 열심을 불어넣기 위해 온 시간을 기도와 금식으로 보냅니다. 대적들에게도 배울 것이 있습니다. 가끔 정말로 영적인 형제들끼리 하루 이틀 정도 뜨겁게 기도하는 시간을 갖는 것은 좋은 일입니다. 목회자들만 모이면 다른 이행과 섞여 있을 때보다 더 자유롭게 시간을 활용할 수 있을 것입니다. 모든 교회의 경건과 기도의 시간도 우리가 온 마음을 다해 동참한다면 그 유익을 얻을 것입니다.
저희 타번 나클 교회의 금식 기도해도 매우 유익한 시간이었습니다. 하늘문이 그때처럼 활짝 열린 적이 없습니다. 심령이 하나님의 영광에 그렇게 가까이 다간 적이 없습니다. >> 선원이 육지의 닿을 날을 손꼽 기다리듯 저도 우리가 특별한 경건의 달을 갖기를 거대합니다. 우리가 특별히 기도할 여유를 갖기 위해 공적인 사역을 잠시 접어두더라도 교회는 큰 유익이 될 것입니다. 하나님과의 교재와 묵상이라는 황금의 강으로 항해를 떠나면 거룩한 감정과 고매한 사고라는 귀한 물건을 가득 싣고 돌아오게 될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옛날 제롬이 하늘에서 부르심 받은 사명을 이루기 위해 다른 급한 일들을 다 내려놓을 때 했던 위대한 일이었습니다.
그는 우리 누구라도 선망할만큼 많은 성도를 거느렸지만 그들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신약 성경을 번역해야 함으로로 다른 설교자를 찾아보십시오. 저는 번역을 마춰야 합니다. 광야로 가서이 일을 마칠 때까지 돌아오지 않겠습니다. 그리고는 원고를 가지고 멀리 떠나 기도하며 수고한 끝에 라틴어 불같서를 편했습니다.이 책은 세상 끝날까지 사라지지 않을 가장 탁월한 성경 번역 중 하나입니다. 공부와 조용한 기도 생활이 결합해 그렇게 불멸의 작품을 탄생시킬 수 있었듯이 우리도 때때로 그렇게 해야겠다고 느낄 때 성도들에게 사랑하는 여러분 조용히 홀로 영혼을 새롭게 하러 잠시 다녀와야겠습니다라고 말한다면 우리가 얻을 유익은 곧 분명해질 것입니다.
라틴어 불가타역 성경은 못써도 심판의 불을 견딜 수 있는 영원한 공력은 세울 수 있을 것입니다. >> 네. 오늘 어 목회자와 개인 기도에 대한 내용을 함께 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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