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핍과 연약함마저 쓰시는 주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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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사사기 3–4장 | 온세대 예배 | 약 20분
1. 우리의 이야기
1. 우리의 이야기
[약 3분 · 모든 세대가 공감할 구체적 장면으로 시작]
여러분, 혹시 필통 속에 다 써서 몽당해진 연필, 부러진 색연필 하나쯤 있으신가요? 어린 친구들은 알 거예요. 너무 짧아지면 손에 잡히지도 않고, ‘아, 이건 이제 못 쓰겠다’ 하고 버리고 싶어지죠.
그런데 사실 우리 마음속에도 그런 서랍이 하나 있습니다. ‘이건 못 쓰는 거야’ 하고 넣어 두는 서랍이요. 어린이는 시험을 망친 날, 그 성적표를 그 서랍에 넣습니다. 청소년과 청년은 밤늦게 스마트폰을 보다가, 나보다 예쁘고 잘하고 앞서가는 친구들 사이에서 ‘나는 왜 이 모양일까’ 하며 자기 자신을 그 서랍에 넣습니다. 어른들은 회사에서, 집에서 부족함이 들킬까 봐 그것을 감춥니다. 나이 드신 분들은 ‘이제 나는 쓸모없어졌다’는 말을 스스로에게 합니다.
세대는 다르지만, 우리는 모두 같은 질문을 품고 이 자리에 앉아 있습니다. ‘이렇게 부족하고 약한 나도, 쓰임 받을 수 있을까?’ 오늘 사사기 3장과 4장은, 바로 그 질문에 하나님께서 친히 대답하시는 이야기입니다.
2. 본문의 이야기
2. 본문의 이야기
[약 10분 · 관찰–해석–통합. Big Idea를 선포하고 반복]
사사기의 세계는 이렇습니다. 이스라엘은 자꾸만 하나님을 잊고 떠납니다. 그러면 강한 대적에게 눌려 신음합니다. 그러다 견디다 못해 하나님께 부르짖습니다. 그럴 때마다 하나님은 ‘사사’라는 구원자를 보내 건지십니다. 그런데 오늘 하나님이 보내신 구원자들의 얼굴을 하나씩 보면, 우리는 자꾸 이렇게 묻게 됩니다. ‘하나님, 정말 이 사람을요?’
① (1) 에훗— 오른손이 묶인 사람
① (1) 에훗— 오른손이 묶인 사람
모압 왕 에글론이 이스라엘을 18년이나 짓눌렀습니다. 하나님이 세우신 구원자는 에훗이라는 사람이었는데, 성경은 그를 ‘왼손잡이’라고 소개합니다. 히브리어 원문은 더 정확히 말하면 ‘오른손이 묶인 사람’입니다. 오른손을 제대로 쓰지 못하는, 말하자면 약점을 가진 사람이었던 거예요. 게다가 그는 ‘오른손의 아들’이라는 뜻을 가진 베냐민 지파 사람이었습니다. ‘오른손의 아들’ 집안에서 나온, ‘오른손이 묶인’ 사람. 세상 기준으로는 웃음거리가 될 만한 약점이었습니다.
그런데 바로 그 약점이 열쇠가 되었습니다. 당시 경비병들은 오른손잡이가 칼을 차는 왼쪽 허벅지만 뒤졌거든요. 에훗은 오른쪽 허벅지에 칼을 숨겼고, 아무에게도 들키지 않고 왕 앞에 나아가 이스라엘을 건져냅니다. 세상이 ‘약점’이라 부른 그것을, 하나님은 ‘구원의 통로’로 쓰신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가 오늘 붙들 한 문장이 나옵니다. 함께 마음에 새겨 봅시다. ‘약한 나도, 하나님 손에 들리면 쓰임 받습니다!’
② (2) 삼갈— 소 모는 막대기 하나
② (2) 삼갈— 소 모는 막대기 하나
다음 구원자는 딱 한 절, 삼갈입니다. 성경은 이렇게만 말합니다. 그가‘소 모는 막대기’로 대적 육백 명을 물리치고 이스라엘을 구원했다고요. 소 모는 막대기는 무기가 아닙니다. 농부가 매일 들고 다니던 그냥 농기구예요. 번쩍이는 칼도, 창도 아니었습니다. 그저 그의 손에 늘 들려 있던 일상의 연장이었습니다. 하나님은 대단한 무기가 아니라, 한 사람의 평범한 일상 속 도구를 붙들어 쓰셨습니다.
어린 친구들, 다시 한 번요. ‘약한 나도, 하나님 손에 들리면 쓰임 받습니다!’
③ (3) 드보라와 바락 — 칼이 아니라 말씀으로
③ (3) 드보라와 바락 — 칼이 아니라 말씀으로
이번에는 가나안 왕 야빈입니다. 그의 군대장관 시스라에게는 무려 철 병거 900대가 있었습니다. 오늘로 치면 최신 탱크 부대예요. 이스라엘은 20년을 그 앞에서 벌벌 떨었습니다. 그때 하나님이 세우신 사람은, 놀랍게도 칼을 든 장군도 왕도 아니었습니다. 종려나무 아래 앉아 사람들의 다툼을 재판해 주던 여선지자, 드보라였습니다.
드보라는 힘으로 나서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전했을 뿐입니다. 그녀가 장군 바락을 불러 ‘하나님이 시스라를 네 손에 넘기실 것’이라 말하자, 바락은 이렇게 대답합니다. ‘당신이 나와 함께 가면 가겠지만, 함께 가지 않으면 나는 못 갑니다.’ 솔직히 좀 겁이 많죠? 그런데 하나님은 그 겁 많은 바락도 물리치지 않으시고 함께 데리고 가 쓰십니다. 두려움 많은 사람도, 하나님의 손에 들리면 쓰임 받습니다.
④ (4) 야엘— 살림하던 여인의 장막 말뚝
④ (4) 야엘— 살림하던 여인의 장막 말뚝
드디어 전투의 날. 성경은 이렇게 말합니다. ‘여호와께서 시스라와 그의 모든 병거를 혼란에 빠뜨리셨다.’ 이 ‘혼란케 하셨다’는 말은, 옛날 홍해에서, 또 여호수아의 전쟁에서 하나님이 친히 대적을 무너뜨리실 때 쓰던 바로 그 말입니다. 900대의 탱크는 이스라엘의 힘이 아니라, 하나님의 손이 일으키신 공포 앞에 무너졌습니다.
도망친 시스라는 한 장막으로 숨어듭니다. 야엘이라는 여인의 집이었죠. 야엘은 그에게 우유를 주고 이불을 덮어 재웁니다. 그리고 그가 잠들자, 매일 장막을 치며 손에 익힌 도구 ― 장막 말뚝과 방망이를 들고 대적을 끝장냅니다. 900대 병거를 자랑하던 그 강한 시스라가, 살림하던 한 여인의 말뚝 앞에 쓰러진 것입니다. ‘여호와께서 시스라를 여인의 손에 파실 것’이라던 예언 그대로였습니다.
본문의 큰 그림
한쪽엔 900대의 철 병거(세상의 힘). 다른 한쪽엔 묶인 오른손, 소 막대기, 종려나무 아래 말씀, 장막 말뚝(연약함).
그런데 이긴 쪽은 언제나 약한 손을 붙드신 여호와이십니다.
3. 우리의 한계
3. 우리의 한계
[약 3분 · ‘우리 힘으로는 왜 안 되는가’를 그림 언어로]
그렇다면 우리는 왜, 이 진리를 알면서도 자꾸 무너질까요? 우리는 약함 앞에서 보통 세 가지 중 하나를 합니다. 감추거나, 강한 척하거나, 아니면 그런 자신을 미워합니다. 다 써 버린 연필을 서랍 깊이 숨기듯 약함을 감추고, 아무렇지 않은 척 어깨를 펴고, 밤이면 ‘나는 왜 이것밖에 안 될까’ 하고 자신을 미워합니다.
우리 사회는 이 세 가지를 부추깁니다. ‘충분히 강해야만, 충분히 잘나야만 쓸모 있다’고 매일 속삭이지요. 그 무게가 얼마나 무거운지, 지난해 국가 통계에 따르면 우리나라 청년 셋 중 한 명이 번아웃 ― 몸과 마음이 다 타 버린 소진을 경험했다고 합니다. 그 첫째 이유가 ‘진로 불안’이었습니다. 더 강해지려고 달리다가, 오히려 재처럼 스러지는 것입니다.
문제는 여기 있습니다. 우리는 우리가 필요하다고 믿는 그 ‘강함’을 스스로 만들어 낼 수 없습니다. 아무리 감추고 꾸며도, 약함은 사라지지 않습니다. 게다가 우리가 자랑하던 강점조차 언젠가는 무너집니다. 그러니 우리 힘으로는, 이 서랍을 결코 비울 수 없습니다. 다른 손이 필요합니다.
4. 예수님
4. 예수님
[약 5분 · 이 설교의 무게 중심. 십자가를 새로운 이미지로]
자, 오늘 본문에 숨은 놀라운 그림 하나를 보여 드리겠습니다. 사사기의 구원자들은 하나같이 대적의 ‘머리’를 칩니다. 야엘은 말뚝으로 시스라의 관자놀이, 곧 머리를 꿰뚫습니다. 이 장면은 사실 성경의 아주 오래된 약속을 메아리처럼 되울립니다. 창세기 3장 15절, 하나님이 뱀에게 하신 말씀이지요. ‘여자의 후손이 네 머리를 상하게 하리라.’
드보라의 시대에 한 ‘여인의 손’이 대적의 머리를 부순 사건은, 장차 오실 참된 ‘여자의 후손’을 가리키는 희미한 그림자였습니다. 그렇다면 그 참된 구원자, 예수님은 어떻게 뱀의 머리를 부수셨을까요? 야엘처럼 말뚝을 손에 쥐고 힘껏 내려치셨을까요? 아닙니다. 정반대였습니다.
예수님은 말뚝을 휘두르신 것이 아니라, 스스로 못에 박히셨습니다. 오늘 본문의 도구들을 떠올려 보세요. 묶인 왼손, 소 막대기, 장막 말뚝 ― 세상이 ‘이건 못 쓰는 거야’ 하고 버릴 만한 것들이, 하나님 손에 들리자 구원의 도구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 절정에, 가장 ‘잘못된 도구’가 있습니다. 바로 십자가입니다.
십자가는 그 시대에 가장 수치스럽고, 가장 약하고, 저주의 상징이었습니다. ‘나무에 달린 자는 저주 아래 있다’고 성경은 말합니다. 세상에서 가장 버림받은 형틀이었죠. 그런데 하나님은 바로 그 버려진 형틀을, 온 인류를 건지는 구원의 왕좌로 바꾸셨습니다.
예수님은 강함으로 이기지 않으셨습니다. 스스로 약해지심으로 이기셨습니다. 대적이 그분의 발꿈치를 상하게 하던 바로 그 순간 ― 못이 그분의 손과 발을 꿰뚫던 그 순간에, 그분은 뱀의 머리를 영원히 부수셨습니다. 그러니 복음은 이것입니다. 하나님은 약한 사람을 쓰실 뿐 아니라, 우리를 구원하시려 친히 약해지신 하나님이십니다.
이 사실이 모든 것을 바꿉니다. 이제 당신의 약함은 더 이상 ‘버려질 이유’가 아닙니다. 그것은 하나님이 당신을 붙드시는 손잡이입니다.
5. 그래서 우리는
5. 그래서 우리는
[약 3–4분 · 세대별 짧은 적용, 한 문장 메시지로 마무리]
어린이 여러분. ‘나는 아직 어려서, 못하는 게 많아서’ 하고 속상할 때가 있죠? 괜찮아요. 하나님은 삼갈의 작은 막대기 같은, 여러분의 작은 손을 기뻐 쓰십니다. 오늘 여러분의 두 손을 하나님께 내밀며 이렇게 기도해 보세요. ‘하나님, 작은 저를 써 주세요.’
청소년·청년 여러분. 스마트폰이 ‘더 강해야, 더 멋져야 가치 있다’고 속삭일 때, 진로가 불안해 번아웃으로 스러질 때 기억하세요. 하나님은 여러분의 스펙을 보시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드려진 약함을 쓰십니다. 여러분의 결핍은 실격 사유가 아니라, 하나님이 붙드실 손잡이입니다.
부모·장년 여러분. 부족함을 감추느라 더는 지치지 마십시오. 감춘 약함은 하나님도 쓰실 수 없습니다. 그러나 정직하게 드린 약함은, 바로 그 자리에서 하나님이 일하시는 무대가 됩니다.
어르신 여러분. ‘이제 나는 쓸모없다’는 거짓말을 믿지 마십시오. 종려나무 아래 앉아 있던 드보라처럼, 어르신의 기도와 말씀과 그 존재 자체가 여전히 하나님의 손에 들린 귀한 도구입니다.
오늘 우리 각자의 약함을, 더는 감추지도 미워하지도 맙시다. 그저 그분께 내어드립시다. 하나님은 그 약함을 결코 버리지 않으시고, 도리어 구원의 도구로 붙드실 것입니다. 왜냐하면 ―
“약한 나도, 하나님 손에 들리면 쓰임 받습니다!”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