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이 말하는 진리, 하나님이 말씀하시는 진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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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대주의
상대주의
그 때에 이스라엘에 왕이 없으므로 사람이 각기 자기의 소견에 옳은 대로 행하였더라
때가 이르리니 사람이 바른 교훈을 받지 아니하며 귀가 가려워서 자기의 사욕을 따를 스승을 많이 두고
또 그 귀를 진리에서 돌이켜 허탄한 이야기를 따르리라
그러나 너는 모든 일에 신중하여 고난을 받으며 전도자의 일을 하며 네 직무를 다하라
전제와 같이 내가 벌써 부어지고 나의 떠날 시각이 가까웠도다
사랑합니다! 꿈사땅 예배에 오신 여러분을 진심으로 환영하고 축복합니다. 여러분, 친구들과 이야기하다가 이런 말을 들어본 적 있는가? “그건 네 생각이고.”, “사람마다 다 다른 거지.”, “정답은 없어.”, “난 그렇게 생각 안 하는데?” 예전에는 시험 문제처럼 정답이 있는 것들이 많았다. 그런데 요즘은 많은 사람들이 옳고 그름조차 사람마다 다르다고 이야기한다. 예를 들어, 누군가는 “거짓말은 절대 하면 안 돼.”라고 말하지만, 다른 사람은 “상황에 따라 거짓말도 괜찮아.”라고 말한다. 누군가는 “이건 죄야.”라고 말하지만, 다른 사람은 “그건 네 기준일 뿐이야.”라고 말한다. 심지어 신앙도 마찬가지다. “교회를 꼭 다녀야 해?”, “예수님만이 구원의 길이라고 어떻게 말할 수 있어?”, “착하게만 살면 되는 거 아니야?” 이처럼 오늘날 사람들은 ‘절대적인 기준’보다 ‘내 생각’을 더 중요하게 여기는 시대를 살아가고 있다. 이런 생각을 철학에서는 ‘상대주의’라고 부른다. 상대주의란 ‘절대적인 진리는 없고, 사람마다 모두 자기만의 진리가 있다’고 믿는 생각이다. 그래서 상대주의에서는 “내가 옳다고 생각하면 그것이 곧 옳다.”고 말합니다. 그런데 여러분, 재밌는 것은 이런 시대는 오늘날에만 있었던 것이 아닙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사사기 21장 25절은 이스라엘의 모습을 이렇게 한 문장으로 정리한다. “그 때에 이스라엘에 왕이 없으므로 사람마다 자기 소견에 옳은 대로 행하였더라.” 사람마다 자기 기준으로 살아갔다. 그리고 디모데후서 4장에서는 마지막 시대의 사람들이 듣고 싶은 말만 들으려 하고, 하나님의 진리보다 자신의 욕망을 따라 살아갈 것이라고 말한다. 약 3,000년 전 사사 시대와 2,000년 전 바울이 경고한 모습이 오늘 우리가 살아가는 시대와 너무도 닮아 있다. 그래서 오늘 우리는 ‘상대주의 시대 속에서 그리스도인은 무엇을 기준으로 살아야 하는가?’를 함께 말씀을 통해 살펴보려고 한다.
사사기에는 반복해서 나오는 한 문장이 있다. “그때에 이스라엘에 왕이 없으므로…” (삿 21:25) 많은 사람들은 이 말씀을 보면서 “왕이 없어서 나라가 혼란스러웠다.”라고만 생각한다. 하지만 이 표현은 부정적인 의미만 담고 있는 것이 아니라, 긍정적인 의미도 함께 담고 있는 말씀이다. 먼저, 이스라엘에 왕이 없었다는 것은 원래 이상적인 모습이었다. 왜냐하면 이스라엘의 진짜 왕은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이셨기 때문이다. 모세나 여호수아 같은 지도자가 있었던 때와 달리, 사사 시대에는 인간 왕이 없었고, 하나님만을 왕으로 섬기며 살아가는 공동체였다. 또한 당시 주변 나라들은 왕이 백성을 다스리고 많은 것을 빼앗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이스라엘이 그런 나라처럼 되기를 원하지 않으셨다. 이스라엘 백성은 원래 애굽에서 종살이를 하던 사람들이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그들을 구원하시고 자유롭게 하셨다. 그래서 하나님은 “너희는 다시 사람의 종이 되어서는 안 된다.”고 말씀하셨다(레위기 25:42, 55). 그렇다고 해서 하나님께서 “이제는 마음대로 살아도 된다.”고 하신 것은 아니다. 이스라엘은 애굽 왕 바로의 종에서는 벗어났지만, 이제는 하나님을 섬기는 백성이 되었다. 그래서 이스라엘은 자유를 누리면서도 하나님을 섬기는 삶을 살아가도록 부르심을 받았다. 이런 점에서 사사 시대는 사람이 왕이 아니라 하나님만을 왕으로 모시며 살아가는 공동체였고, 자유와 평등을 누릴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 시대였다. 하지만 실제 이스라엘은 하나님을 왕으로 섬기며 살아가기보다, 각자 자기 눈에 옳다고 생각하는 대로 행동하며 살아갔다. 그래서 사사기의 “그때에 이스라엘에 왕이 없으므로…”라는 표현은, 하나님만을 왕으로 모시는 공동체라는 이상적인 모습과, 그 기회를 제대로 사용하지 못했던 당시 이스라엘의 모습을 함께 보여 주는 표현이다.
하지만 이스라엘은 하나님께서 주신 자유를 하나님을 섬기기 위한 자유가 아니라, 자기 자신만을 위한 자유로 사용했다. 사사 시대의 이스라엘은 자유는 있었지만 하나님을 섬기는 삶은 없었다. 그래서 사사 시대는 ‘섬김 없는 자유’의 시대라고 말할 수 있다. 그런데 이런 자유는 오래 지속되지 않았다. 사사기의 첫 번째 사사인 옷니엘의 이야기를 보면, 하나님을 섬기지 않는 자유는 결국 이방 나라의 지배를 받고 종이 되는 삶으로 이어졌다. 이처럼 이스라엘의 ‘섬김 없는 자유’는 두 가지 모습으로 나타났다. 첫째로, 하나님의 전쟁에 함께하지 않았다. 이스라엘 열두 지파는 하나님을 왕으로 섬기는 백성이었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명하신 전쟁에 함께 참여해야 했다. 하지만 실제로는 각자 자기 생각에 따라 행동하며 하나님의 부르심에 모두가 함께 순종하지 않았다. 대표적인 예가 드보라와 바락이 가나안 군대 장관 시스라와 싸웠던 때이다. 어떤 지파는 전쟁에 참여하지 않았고, 어떤 지파는 멀리서 지켜보기만 했다. 반면 스불론과 납달리 지파는 앞장서 싸웠고, 에브라임, 베냐민, 잇사갈 지파는 지원군을 보냈다. 이처럼 이스라엘은 하나님께서 맡기신 일에 한마음으로 참여하지 않았고, 결국 이방 민족의 지배를 받게 되었다. 둘째로, 공동체 안에서도 서로를 섬기지 않았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이 하나님만을 왕으로 섬기며 자유롭게 살아가기를 원하셨다. 하지만 이스라엘은 모두 자기 눈에 옳은 대로 행동했고, 그 결과 공동체 안에는 종교적인 혼란과 도덕적인 타락이 일어났다. 사람들은 서로를 섬기기보다 자신의 행복과 이익을 더 중요하게 생각했다. 같은 하나님을 섬기는 형제자매라는 의식보다, 서로를 이용하거나 자신의 목적을 이루기 위한 대상으로 여기기 시작했다. 그래서 사사기 마지막 부분에서는 나그네를 환대하지 않고, 심각한 성적 범죄가 일어나며, 여성을 납치하여 아내로 삼는 일까지 벌어지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사사기에서는 “그때에 이스라엘에 왕이 없으므로”라는 말이 네 번이나 반복됩니다. 이 반복은 단순히 당시 상황을 설명하는 것이 아니라, 왕이 없는 이스라엘의 현실을 계속 보여 주는 표현이다. 그리고 이러한 반복을 통해 왕이 있는 시대에는 지금과 다른 모습이 될 것이라는 점을 암시하고 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을 왕으로 섬기는 마음보다, 주변 나라들처럼 자신들도 인간 왕을 갖고 싶어 하는 마음을 가지게 되었다. 그래서 사무엘 시대에 이르러 백성들은 사무엘에게 "다른 나라들처럼 우리에게도 왕을 세워 달라."고 요구했습니다(사무엘상 8:5). 이런 상황 속에서 하나님께서는 인간 왕의 제도를 허락하시기로 하셨다. 한편, 어떤 성경학자들은 사사기가 앞부분에서는 왕을 반대하는 것처럼 말하고, 마지막 부분에서는 왕을 긍정하는 것처럼 보여 서로 다른 생각이 섞여 있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그러나 올바른 해석은 그렇게 보지 않는다. 사사기가 비판하는 것은 모든 인간 왕 자체가 아니라, 하나님의 왕 되심을 인정하지 않고 하나님의 권위를 대신하려는 왕권이다. 이후 사무엘서에서는 하나님께서 인간 왕의 제도를 허락하시고, 그 제도 안에서 하나님의 통치가 이루어지도록 이끌어 가시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이러한 흐름 속에서 사사기는 여호수아서와 사무엘서를 이어 주는 책으로서, 하나님께서 어떻게 인간 왕의 제도를 허락하시고, 그 안에서도 자신의 통치를 이루어 가시는지를 보여 주고 있다.
너는 말씀을 전파하라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항상 힘쓰라 범사에 오래 참음과 가르침으로 경책하며 경계하며 권하라
바울은 디모데에게 가장 먼저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라고 명령한다(딤후 4:2). 왜냐하면 하나님의 말씀은 변하지 않는 진리이며, 사람들을 바르게 세우는 기준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바울은 앞으로 사람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점점 더 듣지 않으려는 시대가 올 것이라고 경고한다.
때가 이르리니 사람이 바른 교훈을 받지 아니하며 귀가 가려워서 자기의 사욕을 따를 스승을 많이 두고
“때가 이르리니 사람이 바른 교훈을 받지 아니하며…” (딤후 4:3) 여기서 ‘바른 교훈’은 하나님의 말씀, 곧 복음의 진리를 의미합니다. 문제는 사람들이 진리를 몰라서가 아닙니다. 오히려 자신이 듣고 싶은 말만 들으려고 한다는 것입니다. 바울은 사람들이 ‘귀가 가렵다’고 표현합니다. 이 말은 정말 귀가 가렵다는 뜻이 아니라, 자신의 마음을 만족시켜 주는 말만 듣고 싶어 하는 상태를 말한다. 그래서 사람들은 하나님의 말씀보다 자신의 생각을 인정해 주는 사람, 자신이 원하는 것을 말해 주는 사람을 더 찾게 된다. 오늘날에도 이런 모습은 쉽게 볼 수 있다. 사람들은 “내가 듣기 좋은 말”, “내 생각과 맞는 말”, “내 삶을 불편하게 만들지 않는 말”을 더 좋아한다. 반대로 죄를 지적하거나 회개를 요구하는 말씀은 부담스러워한다. 결국 사람들은 진리에 자신의 삶을 맞추기보다, 자신의 생각에 진리를 맞추려고 한다. 그래서 바울은 디모데에게 사람들의 반응에 따라 말씀을 바꾸지 말고,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하나님의 말씀을 계속 전하라고 권면한다. 사람들이 좋아하든 싫어하든, 말씀을 전하는 기준은 사람의 반응이 아니라 하나님의 진리이기 때문이다. 또한 바울은 사람들이 결국 진리를 떠나 허탄한 이야기로 돌아설 것이라고 말한다(딤후 4:4). 여기서 말하는 허탄한 이야기는 사람을 구원하는 복음이 아니라, 사람들이 만들어 낸 거짓된 가르침이나 자신들의 마음을 만족시키는 이야기를 가리킨다. 그래서 바울은 디모데에게 어떤 시대가 오더라도 흔들리지 말고, 하나님의 말씀을 끝까지 붙들며 맡겨진 사명을 감당하라고 권면한다.
사랑하는 여러분, 오늘 우리는 사사기와 디모데후서를 통해 공통된 한 가지 모습을 보았다. 사사 시대 사람들은 "자기 소견에 옳은 대로" 살았다. 바울은 마지막 시대 사람들은 "듣고 싶은 말만 들으려 할 것"이라고 말했다. 시대는 다르지만 공통점은 하나다. 하나님보다 자기 자신을 기준으로 삼았다는 것이다. 생각해 보라. 상대주의는 단순히 “사람마다 생각이 다를 수 있어.”라는 말에서 끝나지 않는다. 상대주의는 결국 “내가 기준이 되겠다.”는 삶의 방식이다. 하지만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그렇게 부르지 않으셨다. 이스라엘은 하나님만을 왕으로 모시는 백성이었다. 교회 역시 예수 그리스도를 왕으로 모시는 공동체이다. 그래서 우리의 삶의 기준은 내 기분도 아니고, 친구들의 의견도 아니고, SNS의 유행도 아니다. 우리의 기준은 변하지 않는 하나님의 말씀이다. 여러분은 매일 선택의 순간을 만난다. 친구를 따라 거짓말할 것인가. 남들이 다 하니까 따라갈 것인가. 내 감정을 따라 행동할 것인가. 그때마다 우리에게 필요한 질문은 하나이다. “내가 원하는 것은 무엇인가?”가 아니라, “하나님은 무엇을 원하시는가?” 이 질문을 하는 사람이 하나님을 왕으로 모시는 사람이다. 세상은 계속해서 “네가 하고 싶은 대로 살아.” “네가 행복하면 그게 맞는 거야.” “네 마음이 가장 중요해.” 라고 말할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에게 이렇게 말씀한다. “네 마음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이 기준이다.” 사랑하는 꿈사땅 여러분. 상대주의 시대를 살아가는 그리스도인은 세상의 기준을 따라 사는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기준으로 살아가는 사람이다. 이번 한 주도 여러분의 생각보다 하나님의 말씀을 먼저 묻고, 자신의 마음보다 예수님을 왕으로 모시며 살아가는 꿈사땅 공동체가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한다.
